> 뉴스 > 시각
     
빌라 반지하의 추억과 경제 공부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54호] 2023년 02월 01일 (수) 박중언 parkje@hani.co.kr
   
▲ 2022년 12월27일 주택 1139채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빌라왕’ 사건 피해 세입자들이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대책을 호소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40여 년 전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1년간 기숙사에서 지낸 뒤 자취방으로 옮겼다. 친구와 함께 당시 흔했던 연립주택의 방 한 칸을 빌렸다. 보증금 20만 원에 월세 4만 원. 전셋집에서 방 하나를 떼준 30대 아주머니의 잔소리 같은 부탁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의 가장 비싼 세간살이였던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을 때 꼭 따듯한 물을 써서 전기세를 아껴달라는 것이었다. 월세에 공공요금이 모두 포함돼 있어서였다.
대학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로도 한동안 단칸방에서 살았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동생과 합친 뒤 빌라라는 이름이 붙은 다세대주택 두 칸짜리 반지하로 승격했다. 결혼 전까지 엉성하게 지어진 다세대 반지하를 떠돌았다. 그렇게 옮겨 다니는 사이 복덕방(부동산중개업소)을 여러 차례 찾았지만, 전세보증금을 떼이거나 사기를 당할 거라고 걱정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등기부등본을 꼼꼼히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전이라 사회 전반이 상대적으로 어수룩했는지 모른다.

‘빌라왕’의 기억 소환
요즘 그렇게 살다가는 애써 모은 자산을 홀라당 까먹기 쉽다. 핫이슈로 떠오른 ‘빌라왕 사태’(조직적 전세보증금 사기)는 우리의 주거 생활이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잘 보여준다. 사기의 주요 표적은 피해자의 절반을 훨씬 넘는 2030 젊은이다. 부동산 계약을 한 경험이 별로 없어 이른바 ‘세상 물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돈이 모자라 대출까지 끼고 빌라 전세를 찾아야 하는 서민층일수록 쉬운 먹잇감이다.
2030은 이미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장년층의 자녀다. 이들이 입은 사기 피해는 부모의 노후설계에도 상당한 타격을 준다. 지금처럼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는 손실이 더 크다. 곳곳에 들어서는 신축 오피스텔과 빌라에는 금융기관의 대규모 담보대출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분양가에 가깝거나 그것을 웃도는 전세금을 받아 빌라 여러 채를 산 집주인도 많다.
생활공간이 필요하니 당장 세를 구해야 하지만 이런 주택의 ‘옥석 가리기’가 쉽지 않다. 정년퇴직 뒤 서울 인근 도시로 집을 옮길 예정인 중견기업 P부장도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곽으로 나가기 전에 성년인 두 아들이 살 전세 빌라를 마련해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교묘하고 다양한 수법이 동원돼 중장년층도 부동산 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기 방지는 물론 경제적 권리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도 경제 리터러시(Literacy)가 필요하다. 읽고 쓰는 능력을 뜻하는 리터러시란 문해력, 나아가 이해력을 말한다.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처럼 경제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 이해력이 있어야 일상적 경제생활을 원만하게 해나갈 수 있다. 금리, 인플레이션, 금융, 부동산, 연금 등에 관한 기본 지식과 소양이 노후의 재무 리스크를 낮춘다.

경제 리터러시
빌라왕 사태와 같이 컨설팅업체가 바지사장을 내세우고 브로커와 공인중개사까지 공모한 조직적 사기가 판치는데 세입자가 부동산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냥 당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부동산중개업자의 말만 믿었다는 식의 얘기를 아직도 하는 것은 일상적인 삶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경제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잘 보여준다.
그나마 2021년 8월부터 임대사업자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의무화가 시행됐기에 보증금을 떼일 염려가 줄었다. 임대사업자가 보증금을 제때 반환하지 않으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돌려준다. 그러나 일반 임대인은 보증보험에 들 의무가 없다. 이번 빌라왕 사태처럼 사기를 계획하고 보험 가입을 피할 때도 있다. 사전에 확인한 뒤 필요하면 보증보험 가입을 특약조건으로 전세계약을 맺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이름은 빌라로 불리더라도 주택과 근린생활시설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손해를 면할 수 있다. 상가 등 생활편의시설을 말하는 ‘근생시설’에선 취사와 난방을 할 수 없다. 이를 개조한 불법 주택인 이른바 ‘근생빌라’는 적발되면 원상 복구해야 한다. 이행하지 않을 땐 매년 시세 10%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이런 빌라는 보증보험 가입이 되지 않아 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 전세대출과 월세 세액공제(연말정산)도 되지 않는다.
근생시설은 층수 제한이 없고 주차 면적 기준이 다세대주택보다 훨씬 느슨해 건물주가 선호한다. 또 한 건물에 근생시설과 주택이 함께 있으면 구분하기 힘들다. 건물 용도 차이는 등기부등본에 나오지 않는다. 건축물대장으로 층별 용도를 알아봐야 한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건축물대장 인터넷 무료열람 방법을 안내하면서 △법 위반 건축물 여부 △건물 용도 △소유자 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 △동·호수를 정확하게 확인하도록 당부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금융사기가 노후자금을 노린다. 퇴직 뒤에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쫓기다 보면 사기의 덫에 걸리기 쉽다. 노후 리스크를 키우는 3대 금융사기가 보이스·메신저피싱, 펀드 사기, 코인 사기다. 이런 것만 피해도 한결 안전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특히 펀드나 코인 사기는 본인의 부풀어 오른 욕망의 그림자가 위험을 가려버린 데서 비롯한다. 라임과 옵티머스 같은 고위험 사모펀드를 금융기관에서 충분한 설명 없이 파는 불완전판매도 문제이지만 금융에 무지하면서 높은 수익률에 솔깃해 거액을 넣는 투자자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최근에는 기술에 어두운 고령자 대상의 다단계 코인(가상자산)·NFT(대체불가능토큰) 사기가 퇴직금, 전세금, 자녀 결혼자금 등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그 피해액이 조 단위로 펀드 사기와 보이스피싱을 앞질렀다.
노후에 사기로 목돈을 날리는 것은 경제적 손실도 상당하지만, 만회할 수 없는 사고를 친 데 따른 심리적 충격이 커 벗어나기 힘든 짐이 될 수 있다. 다단계 방식인 코인 사기는 주변 사람들까지 수렁으로 끌어들이므로 특별한 경각심이 필요하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2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