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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국과 협력? 서구의 딜레마
[COVER STORY] 러시아 대안으로 떠오른 걸프 지역- ③ 실리냐 이념이냐
[153호] 2023년 01월 01일 (일) 모니카 볼리거 economyinsight@hani.co.kr

모니카 볼리거 Monika Bolliger <슈피겔> 기자 등 8명

   
▲ 2021년 4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계문화유산 알울라의 풍경을 드론으로 찍은 사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2019년 10월 사상 최초로 관광비자를 발급해 외국 관광객을 받아들였다. REUTERS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5년간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화해 자국민조차 사우디의 변화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빈 살만은 얼마 전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국가 개혁을 감행했다. 대중음악과 콘서트, 심지어 데이트앱을 허용하고 종교경찰은 길거리에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여성은 직업을 갖고 홀로 외출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는 신체를 가리지 않아도 된다. 사우디는 교육시스템 확충에 수백만유로를 투자했다.
사우디 정부는 2019년 10월 사상 최초로 관광비자를 발급해 외국 관광객을 받아들였다. 세계적 수준의 관광지에 전국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다. 수도 리야드에서 서쪽으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사막의 인상적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알울라 유적지가 대표적 사례다. 기원전 2세기께 나바테아 문명 왕가의 조각으로 장식된 거대한 돌산 무덤의 알울라 유적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배경으로 손색없어 보인다. 젊은 여성 안내원들은 완벽한 영어로 자국 역사를 설명한다. 이들은 어떻게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일까?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을까? 한 여성 안내원이 웃으며 아니라고 답한다. “넷플릭스를 많이 봤다.”
이제 겨우 37살에 불과한 빈 살만은 사우디의 수많은 청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개방적이고 현대적인 사우디의 미래를 열어줄 기대주로 말이다. 최근 개교한 공과대학에선 여대생들이 엔지니어링과 정보공학을 배운다. 사우디에서 수많은 저명한 스타트업의 설립자는 여성이다.

빈 살만, 여성 자유 대폭 확장
독일-사우디 경제연락사무소(German-Saudi Arabian Liaison Office for Ecnomic Affairs)의 달리아 삼라로테 대표는 “사우디의 경제 일상에서 경험하는 전환은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 전역을 다니며 젊은 여성 엔지니어와 여성 창업인, 여성 프로젝트 매니저와 이야기하면서 사우디의 전환을 분명하게 느꼈다. 사우디인은 암흑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자유롭고 발전하려 노력한다고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또한 사우디에 필요한 것은 서구의 끝없는 도덕적 우월감이 아니라 인정이라고 말한다.
한편 <슈피겔> 취재진이 만난 이들 모두 기사에 실명이 언급되기를 원치 않았던 것 역시 엄연한 사우디의 현실이다. 사우디에서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우디에서 자유가 얼마나 허용될지는 전적으로 빈 살만에게 달렸다.
독일·유럽연합·미국 정계 인사 다수가 사우디의 개혁 과정을 지지해도 되는지, 사우디 등 걸프 전제주의 국가들의 영원한 파트너가 돼도 되는지를 자문한다. 1년 전만 해도 그 대답은 당연히 긍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무역을 통한 (상대국의 인권) 전환’이라는, 독일 정부에 수십 년 동안 유효했던 기본 정책을 무참히 짓밟았다.
독일 정치인들의 사우디 방문이 번번이 불편한 주제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022년 9월 말 사우디와의 확대 정상회담에서 경제 비전에 대한 빈 살만의 일장연설을 들어야 했다. 단독 정상회담에서야 숄츠는 자말 카슈끄지 암살을 주제로 올렸다고 한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사흘 일정의 사우디 국빈 방문길에 숄츠 총리의 동행 기자단 가운데 누구도 왕세자를 직접 볼 수 없었다. 비판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은 왕세자 가까이에 올 수 없었다. 기자단은 전용기를 타고 가는 내내 숄츠가 왕세자의 기분을 건드릴 생각이 전혀 없음을 알았다.
독일과 서구에는 걸프 산유국과 에너지 수급을 합의해야 하는 정치적 이유가 여럿 있다. 푸틴을 고립시키기 위해 독일과 서구에는 단기적으로 걸프 산유국이 필요하다. 숄츠는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 정상회담에서 상대 정상들의 푸틴을 향한 거부감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사우디의 왕세자는 좀더 유보적이었다.
장기적으로 전세계에서 민주주의 국가와 전제주의 국가의 체제 경쟁이 예상된다. 걸프 지역은 기본적으로 전제주의에 속하는데 그렇다고 걸프 지역이 항상 화약고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우디나 카타르 등의 국가들과 서구는 전통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최상의 사업을 할 수 있는 국가와 정서적 유대감을 보인다. 과거에는 그 대상이 서구였다. 독일과 서구는 빈 살만 왕세자를 좋은 파트너로 보려는 유혹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구가 지지하는 천부적 인권, 독일 정부가 연정 계약에 서명한 ‘가치 기반’ 외교정책은 이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독일 정부는 연정 계약에서 사우디에 대한 무기 금수를 명시했다. 독일은 2018년 이후 사우디에 무기를 일절 수출하지 않는다. 독일 기업들이 유럽 파트너와 공동 생산하는 군수품은 제외되지만 말이다.

   
▲ 2022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축제에 참여한 여성.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철권통치를 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복장 자율화 등 개혁을 추진해 이중적 성격을 띤다. REUTERS

중·러와의 동맹 막으려면
독일 외무부는 아날레나 베어보크 장관(녹색당) 취임 뒤 기후외교 정책을 기치로 내세웠고, 원대한 수소 비전을 가진 사우디는 독일에 최상의 파트너였다. 독일 외무부는 걸프 지역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부 장관도 “에너지 파트너십”이 “데탕트(긴장 완화)에 기여”한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사우디든 카타르든 독일이 기대했던 호의적인 원자재 공급처가 아니었다. 중앙아시아·중동 아랍어 국가 의원 친선협회 크리스토프 플로스(기독교민주연합) 회장은 독일 정부에 “걸프 지역 전략이 없다”고 지적했다. 플로스 회장은 현지에서 만난 파트너들이 모두 독일한테 자존감을 다친 모습이 역력했다고 말한다. 그는 사우디에 대한 무기금수령 해제를 주장한다. “독일은 개별 사례에 따라 무기 공급을 결정해야 한다. 사우디가 이란으로부터 해상무역로와 정유시설을 보호하려는 것은 결국 합법이다.”
당연히 사우디로의 무기 공급은 걸프 산유국들이 러시아와 중국으로 기울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다. 사우디는 물론이고 아랍에미리트에서도 미국이 더는 안보를 보장해줄 수 없고 신뢰도 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우디의 최대의 적 이란이 핵강대국이 된다면 러시아의 지원이 사우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세계질서 시대에 유럽이 도덕적 승자의 위치에 집착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순수하게 가치에 기반한 외교·경제 정책이 바람직할 수 있겠지만, 더욱 바람직한 것은 전제국가들의 동맹을 막는 일이다.
이러한 현실정치의 단점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최근 확인할 수 있었다. 리츠칼턴호텔에서 한때 자신의 정적들을 감금하고 제거했던 때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빈 살만 왕세자는 다시 리츠칼턴호텔에서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를 열었다.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과 마찬가지로 정적 구금 사태도 사우디 왕가와의 관계를 위해 리야드를 방문한 글로벌 금융·경제 엘리트 7천 명에게 더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밖은 사막의 찌는 듯한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리츠칼턴호텔에서는 골드만삭스와 블랙록 대표들이 전세계 에너지장관, 국부펀드 대표, 서구 국가들의 전직 총리·대통령들과 ‘새로운 세계질서’를 논의했다. 당연히 그간 걸프 산유국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역할이 더욱 커졌다.
대형은행 제이피(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대표는 “사우디와 미국은 75년 이상 동맹국”으로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전쟁과 대립의 시대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제시한 미국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프렌드 쇼어링’(Friend Shoring) 노선을 다이먼 대표는 충실히 이어받고 있다. 프렌드 쇼어링은 미국이 동맹 결속으로 공급망을 구축해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을 해결한다는 전략이다. 골드만삭스그룹의 데이비드 솔로몬 대표가 ‘미국의 강력한 리더십’을 칭송하자 청중석의 사우디인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를 쳤다.
변화하는 블록과 새로운 힘의 중심 시대는 어떻게 진행될까. 마지막으로 빈 살만 왕세자의 측근이자 6200억달러를 운용하는 야시르 알루마이얀 사우디 국부펀드 전문이사가 연단에 오르자 일순간 실내에 정적이 감돌았다. “여기에 모인 모두가 파트너로 밀접하게 협력한다면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해 나는 확신한다.” 문제는 각국 정부들이라면서 “실용적이 아닌 이데올로기적으로 사고하는” 서구 정부를 겨냥했다. 사우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정부 관계자들은 돈이 가는 곳을 따르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 Der Spiegel 2022년 제46호
Die Wüste Bebt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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