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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벨트에 공장·연구소 열풍
[집중기획] 세계 공장 빨아들이는 미국 ② 제2의 골드러시
[153호] 2023년 01월 01일 (일) 하이케 부흐터 economyinsight@hani.co.kr

미국 정부의 보호주의 경제정책에 힘입어 미국 기업들이 다시 자국에 생산기지를 확충하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심지어 독일 기업 지멘스의 미국 공장 확충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럽은 미국이 블랙홀처럼 자국 기업을 빨아들일 것을 우려한다.

하이케 부흐터 Heike Buchter <차이트> 기자

   
▲ 1995년 가동을 중단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베슬리헴제철소는 이제 카지노와 상점, 예술공연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철소는 문을 닫았지만 최근 각종 공장이 들어서면서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REUTERS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리하이밸리에는 베슬리헴제철(Bethlehem Steel)의 거대한 용광로가 여전히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다. 100여 년 전 이곳에서 생산된 철강은 산업국가로서 미국의 부상을 상징하는 금문교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건설에 쓰였다. 50대 중반의 돈 커닝엄은 “리하이밸리의 당시 운명은 전적으로 베슬리헴제철 공장에 달려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역시 베슬리헴제철에서 일했다.
이제 베슬리헴제철의 공장 굴뚝은 녹이 잔뜩 슬고, 공장 부지에는 풀과 꽃이 어지러이 피어 있다. 이곳은 각종 음악페스티벌을 준비하는 문화센터로 탈바꿈했다. 고등학교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커닝엄은 여전히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베슬리헴제철은 오랜 기간 몰락의 길을 걷다가 커닝엄이 ‘젊은’ 베슬리헴 시장으로 재직하던 1998년 결국 문을 닫았다. 베슬리헴 지역은 불황의 늪에 빠졌다. 불황은 단순히 경제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과거의 영광을 잃은 것에 대한 슬픔이 지역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베슬리헴의 경제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커닝엄은 현재 지역 경제진흥협회 회장으로, 지역경제 상황이 긍정적이라고 전한다. 커닝엄 회장은 과거 철강회사 이사들이 프라이빗 클럽으로 사용했던 빌라를 리모델링한 사무실에서 <차이트> 취재진에게 최근 베슬리헴의 눈부신 실적을 보여줬다. 베슬리헴은 미국 평균보다 소득이 높고, 실업률과 빈곤율은 낮다. 베슬리헴 경제 실적의 19%는 데오도란트, 초콜릿 마시멜로, 담배 등 다양한 사업체에서 창출된다.

활기 되찾은 러스트벨트
미국에서 새로 공장이 들어선 곳은 베슬리헴뿐만이 아니다. 미시간주와 인디애나주 등 이른바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제조업 지역을 비롯해 애리조나주와 오클라호마주 등지에서도 생겨나고 있다. 2020년 6월과 2022년 8월 사이에 미국 사업체들은 매달 평균 3만 명 이상 신규 채용했다. 자동차제조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미시간주에 신규 공장 4곳을 설립했고, 인텔은 애리조나주 피닉스 인근의 반도체칩 공장 2곳 건설에 120억달러를 투자했으며, 가전제품업체 지이(GE)어플라이언스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보일러 제조시설을 지었다.
독일 기업 역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베엠베(BMW)는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튼버그 생산기지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확충할 계획이다. 지멘스는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에 생산기지를 확장하고 신규 전기차 충전소도 확충할 예정이다.
미국 산업의 부흥은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2년 3월 백악관에서 직접 지멘스 확장 계획을 발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이른바 ‘미국산 우선 구매법’(Buy American Act) 강화도 언급했다. 앞으로 미국에서 최소 75% 이상 생산된 제품에만 국가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지금까지는 해당 비율이 55%였다.
이런 방식의 보호주의 경제정책은 원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하지만 바이든 역시 트럼프가 도입했던 수입관세 대부분을 그대로 유지했고, 무역장벽을 비롯해 자국산 제품에 대한 보조금과 세금 인센티브를 철저히 신봉한다. 바이든은 지멘스 확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내 양질의 일자리로 자국산 제품을 지원하고 미국 공급망을 강화하며 미래산업 진흥”을 목표로 천명했다.
미국의 최근 산업정책은 특히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미국의 의존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포드 등 자동차업체들은 아시아산 반도체 수급난으로 자동차 생산을 일부 중단해야 했다. 앞으로 이런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다.
그래서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 520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반도체칩·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이 2022년 여름 통과됐다. 10억달러를 들여 뉴욕에 신규 생산설비를 만들 계획인 미국 메모리반도체 업체 마이크론테크놀로지를 필두로 미국 국내 투자계획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8월 북미산 전기차에 대해서만 최대 7500달러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이 의회를 통과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 내에서 차량을 조립해야 하고, 배터리 부품 40% 이상이 자국산이어야 한다. 그리고 2029년부터는 배터리 부품 전량이 미국산이어야 한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3월 백악관에서 독일 기업 지멘스의 미국 투자 확대 계획을 이례적으로 직접 발표했다. 오른쪽은 지멘스USA 최고경영자 바버라 험프턴. REUTERS

저렴한 에너지와 보조금 매력
지금까지 미국에 유통망만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독일 자동차 하청업체들이 이제 미국 내에 생산망도 만들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미시시피개발청(Mississippi Development Authority)의 니컬라 미셸스 유럽 지사 부대표는 전한다. “미시시피개발청 유럽 지사에 기업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유럽연합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유럽 공장들의 국외 이전 열풍을 경고했다. 미국의 국가보조금, 자국산 우선구매법, 저렴한 에너지 가격은 유럽 기업들이 거부하기 힘든 매력적인 조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유럽 기업들의 미국행 열풍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의 단순한 귀환 이상을 의미한다. 고품질 안경 유리, 가스 배관망, 인공 기관 보조물을 생산하는 독일의 특수화학기업 에보닉(Evonik)은 2022년 9월 리하이밸리에 신규 연구소를 열었다. 트레이시 몰(44) 연구소장은 회의실, 실험실, 각종 최신 기술 장비, 환경친화적 바닥 등 연구소 내부를 뿌듯해하며 안내했다. 지금까지 에보닉의 연구개발은 전적으로 독일 국내에서 했다.
에보닉은 전통적인 러스트벨트 중심지에서 미국 현지 생산기지가 갖는 이점을 간파했다. 트레이시 몰 연구소장은 우수한 엔지니어와 기술자를 양성하는 지역 대학들의 장점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우수한 대학과 연구소들이 있는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가 자동차로 불과 몇 시간 거리라는 것이다. 한 독일인 연구원은 미국의 기업가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에보닉은 미국에서 혁신과 신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매진하는 스타트업 여러 곳에 투자하기도 했다. 그중에는 신종 가슴 봉합 수술법을 개발한 의료기술 스타트업 서컴픽스솔루션(CircumFix Solutions)과 3차원(3D) 프린터로 알약을 생산하는 스타트업 락손메디컬(Laxxon Medical)등이 있다.
그렇다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쇠락과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미국 러스트벨트의 현 상황은 어떨까? 트레이시 몰 연구소장은 이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과거의 쇠락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다고 답한다. 에보닉 직원으로서 그의 새 직장은 눈부신 성장 지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 Die Zeit 2022년 제45호
Abschied vom Abstieg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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