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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간판스타의 몰락, 2천년대 초 닷컴버블 연상
[ANALYSIS] FTX 파산- ① 집단적 광기였나
[153호] 2023년 01월 01일 (일) 팀 바르츠 economyinsight@hani.co.kr

미국 가상자산거래소 에프티엑스(FTX)의 파산과 창립자 샘 뱅크먼프리드의 스캔들은 암호화폐 시장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뜨렸다. 블록체인 화폐의 꿈은 단지 집단적 환상이었을까.

팀 바르츠 Tim Bartz <슈피겔> 기자 등 6명

   
▲ 샘 뱅크먼프리드 FTX 창립자가 2022년 12월13일 바하마 나소에서 체포된 뒤 치안법원 건물 밖으로 호송되고 있다. REUTERS

시간당 상담료로 1300달러(약 168만원)를 요구하는 변호사 존 레이 3세는 법률가로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파산 사태를 여러 번 경험했다. 그중에는 미국 역사에서 큰 파산 중 하나인 엔론(Enron)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맡은 사건은 그로서도 너무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는 뉴욕의 담당 법정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통제 메커니즘이 그토록 완벽하게 무너지는” 것은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은 미증유의 사태라는 것이다.
문제의 회사는 에프티엑스(FTX)로 파산하는 가상자산 시장의 대명사가 됐다. 최근까지도 FTX는 세계에서 중요한 가상자산거래소 중 하나였다. FTX 대표 샘 뱅크먼프리드(30)는 정계 인사들과 친하다. 미국 패션잡지 <보그>에 자신의 기업을 선전하는 휘황찬란한 광고를 싣고, 톱모델 지젤 번천과 함께 포즈를 취한다. 미식축구 스타인 톰 브래디를 내세워 자기 기업을 적극 추천하게 한다.
뱅크먼프리드는 암호화폐 세계의 얼굴이었다. 컴퓨터게임을 즐기면서 동시에 320억달러의 기업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경영하는 반바지 차림의 천재적 컴퓨터 마니아. 그가 궤도 밖으로 나가떨어질 때까지는 그랬다.
자칭 “세계에서 가장 잘 관리되는 가상자산거래소”는 며칠 사이에 미치광이들의 집합소로 판명됐다. 이 거래소를 지휘한 곳은 바하마에 있는 호화로운 셰어하우스(공유주택)로 회사가 고용한 심리치료사까지 두고 있는 폴리아모리(다자간 연애) 집단이었다.

   
▲ 지금은 이혼한 톱모델 지젤 번천과 미식축구 스타 톰 브래디 부부가 출연한 가상자산거래소 FTX 광고. 유튜브

블랙록, 소프트뱅크도 당해
뱅크먼프리드와 그의 측근들이 파산하면서 남은 것은 100개 이상 기업들이 얽혀 있는 불투명한 네트워크다. 자신이 저축한 모든 것을 잃은 소액 투자자뿐 아니라 블랙록이나 소프트뱅크 같은 전문 펀드들도 FTX에 당했다. FTX는 50여 곳에 이르는 거액 투자자들에게 30억달러(약 3조8천억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다. 피해를 본 투자자가 100만 명이 넘을 것이다.
도대체 FTX 같은 유명 기업이 어떻게 하룻밤 새 망할 수 있는가? 심지어 전문 투자가들조차 뱅크먼프리드 같은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간다면 이는 어쩌다 벌어진 끔찍한 개별 사례인가, 아니면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모래 위에 쌓은 집이란 말인가?
그 답에 많은 돈이 걸려 있다. 예금을 중시하는 독일인조차 많은 사람이 암호화폐의 흡인력에 휘말려 빠져나오지 못했다. 2021년 비트코인 가격이 기록적으로 올랐을 때 수십만 명이 이 거래에 끼고 싶어 했다. 그때 이 시장에 뛰어들지 못한 자들은 영원히 뒤처지는 것처럼 느꼈다. 외부 사람들로서는 호들(HODL), 대체불가능토큰(NFT), 포모(FOMO) 같은 이 부문의 은어들이 블록체인 기술 자체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어도 그건 문제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하기 힘들수록 더욱 좋은 것이라는 모토를 내세우며 투자를 부추겼다. 다음번 가격이 뛸 때를 또 놓치지 않기 위해 오히려 지금 뛰어들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비트코인·이더리움 같은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가히 철학적이라 할 만한 약속, 즉 권력을 탐하는 ‘낡아빠진’ 감독기관이나 중앙은행을 대신할 금융시스템, 뇌물로 매수할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통제되는 더 나은 금융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약속이 매력을 더했다. 이런 광적 열기의 절정은 암호화폐, 모두 합해 3조달러의 가치를 상회하는 암호화폐였다. 이 모든 것이 집단적 광기였는가?

   
▲ 2022년 11월12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있는 FTX농구경기장 전경. REUTERS

‘김치 프리미엄’ 차익거래로 돈 벌어
가상자산 업계의 외양과 실재의 모순은 뱅크먼프리드에게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교수 아들인 그는 엘리트 대학인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제인스트리트(Jane Street)에 취직한다. 이 회사는 수학모델을 이용해 전세계 금융시장을 석권하려 했다. 제인스트리트는 자칭 ‘문제해결사 기업’이다. 뱅크먼프리드는 재빨리 그곳을 딛고 도약했다. 그보다 훨씬 더 큰 놀이터, 암호화폐의 세계가 그를 자극했다.
2017년 그는 알라메다리서치(Alameda Research)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처음에 이 회사는 상이한 거래 장소에서 각기 다른 가격이 매겨지는 상황을 이용해 차익을 취하는 사업을 운영했다. 한국의 비트코인 가격은 세계 시장보다 높은 편인데 업계에선 이를 ‘김치 프리미엄’이라 불렀다. (2019년 5월) FTX를 설립하고서 뱅크먼프리드는 드디어 자신의 거래소를 갖게 되었다. 그는 두 기업을 운영하면서 부유한 미국인이 됐다. 미국 잡지 <포브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재산을 265억달러(약 34조원)로 추정했다.
뱅크먼프리드는 워싱턴 정가에서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통 크게 기부했기 때문이다. 그중 큰 부분은 민주당에 흘러갔다. 약 4천만달러를 기부해 그는 ‘투자의 전설’로 부르는 조지 소로스 다음으로 민주당의 두 번째 거액 기부자가 됐다. FTX가 파산하기(2022년 11월11일) 불과 일주일 전 민주당의 실세들은 해피아워(이른 저녁 시간)에 뱅크먼프리드가 자금을 지원하는 재단의 워싱턴 타운하우스로 몰려갔다. 음료와 비건 스낵을 먹으며 뱅크먼프리드는 규제가 가벼워야 한다는 그의 아이디어를 홍보했다. 다른 날에는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만남을 청했다.
아무렇게나 걸친 옷차림에 부스스한 머리를 한 뱅크먼프리드는 스마트한 암호화폐 세계의 이미지에 꼭 맞는다. 민주당 하원의원인 짐 하임스가 묘사한 바에 따르면 “자기보다 두 배나 높은 아이큐를 지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천재적인 너드(Nerd·지능은 높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라는 것이다.
파산 직후 미국의 온라인 매체 <복스>(Vox)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이 암호화폐계의 스타는 가면을 벗었다. 기자는 (다른 발언들이 거짓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그가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가 가벼워야 한다고 선전한 것만은 솔직한 생각이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뱅크먼프리드는 아주 확실하게 대답했다. “규제 당국, 엿먹어라.” 그가 공개적으로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를 표방했기에 이런 발언은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효율적 이타주의의 추종자들은 먼저 소득을 극대화한 뒤 기부로 인류의 복지를 향상하겠다고 한다. 적어도 전자(소득 극대화)는 분명히 잘 진행된 것 같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뱅크먼프리드와 그의 친척, 매니저들은 최소 1억2100만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19채나 바하마에 소유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호화로운 해변 리조트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회사가 완전 뒤죽박죽이었으므로 ‘셀프 거래’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파산 관재인인 레이 변호사는 법정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FTX는 자사가 보유한 현금이 얼마인지, 직원이 몇 명인지를 중앙관리 차원에서 정리해놓은 것조차 없다고 기술했다. 지출 사항은 소수의 매니저가 채팅을 통해 “개인적인 이모티콘을 사용하면서” 결정했으며 고위 임원은 “경험이 없고 정교하지 않으며 심지어 부패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거래소가 파산한 뒤, 고객 자산의 상당 부분이 가상계좌에서 사라졌다. FTX의 변호사들은 해커의 공격이 있었다고 말한다.
직원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회사 대표는 최소한 뉘우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되돌아가 사태를 변화시키고 싶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
워싱턴에서 이 거액 기부자에 관한 호감은 그의 자산만큼이나 빨리 사라졌다. 의회는 청문회를 열어 뱅크먼프리드의 파산과 관련한 문제를 다뤘다. 미국 재무장관인 재닛 옐런은 의회가 법률상의 공백을 메울 때까지 감독기구가 기존 통제 장치를 모두 동원하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디지털화폐를 규제하기 위한 법률 초안이 당파를 초월해 상원에 상정돼 있지만 이 법안은 유독성이 가득하다는 평가다. FTX 로비스트들이 법안 작성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짧은 기간 내에 많은 암호화폐 거래자가 망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사태가 돼버렸다. 자산 수십억달러의 암호화폐 대출기업 제네시스(Genesis)는 최근 부채 상환을 동결했다. 암호화폐에 투자한 헤지펀드들이 입을 손실이 수십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이 모든 것이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을 연상시킨다. 독일 투자은행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암호화폐 기업에 투자해 현재 업계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암호화폐 기업의 상당수가 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큰 충격에 빠졌다”는 것이다. 큰 이득을 기대했던 투자가들이 “돈을 잃고 흥미도 잃어버렸다”고 했다. 닷컴 버블 때 성황을 이뤘던 새로운 시장에서 약 95%의 기업이 어느새 사라졌듯이 “이제 또다시 그런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투자가들은 경기가 안 좋은 시기가 있음을 잘 안다. 업계는 이 시기를 ‘암호화폐 겨울’이라고 부른다. 이 겨울이 빙하시대로 넘어갈 수도 있다. 디지털화폐가 궁극적으로 소멸할지 많은 사람이 묻고 있다. 암호화폐 집단이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디지털 외환’이 물가상승에 효과적인 대책이라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고, 증권시장에 의존적이지 않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았다.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리자 테크놀로지 기업의 주식뿐 아니라 디지털화폐도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암호화폐 업계의 분산적인 조직 덕분에 훨씬 더 복원탄력성이 뛰어나다는 독단적 주장도 흔들리고 있다. 비트코인 개념이 2008년 발표됐을 때, 옹호자들은 중앙은행과 정치에 대한 신뢰는 과거의 것이 되리라고 자신 있게 공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것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대한 신뢰로 대체됐을 뿐이다.
2008년부터 비트코인 기술이 운영됐지만, 유로와 달러를 비트코인으로 교환하는 사설 거래소는 빠르게 새로운 과점 체제로 발전했다. 2013년에는 전체 비트코인 ​​거래의 약 60%가 마운트곡스(Mount Gox)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일어났다. 마운트곡스가 파산으로 치달을 때, 최근의 일들을 연상시키는 시나리오가 전개됐다. 수만 명의 투자자가 돈을 잃었다. 비트코인 가격은 곤두박질치고, 많은 초기 투자자는 회사 설립자이자 업계 간판인 마크 카펠레스가 어떻게 그렇게 속일 수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그는 당시 구속됐고, 2019년 자료 조작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후 수십 건의 해킹이 일어났고, 다른 거래소들이 연달아 파산했으며, 여기에 투자한 사람들은 전세계적으로 수십억달러를 잃었다. FTX와 함께 이 역사는 이제 훨씬 더 큰 규모로 반복되고 있다. 마치 투자가들도 규제 당국도 전혀 배운 것이 없다는 듯 말이다.

ⓒ Der Spiegel 2022년 제48호
Kryptoland, Abgebrannt
번역 최현덕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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