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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과 결별하라
[Cover StoryⅠ] 원전 재앙
[12호] 2011년 03월 01일 (화) 프리츠 포어홀츠 economyinsight@hani.co.kr

   
 
일본말로 지진해일을 뜻하는 ‘쓰나미’가 국제 공용어로 쓰일 만큼 일본은 쓰나미에 익숙하다. 그러나 지난 3월11일 오후 일본 도호쿠 지방을 강타한 규모 9의 강진은 쓰나미의 ‘원조’조차 공포에 떨게 했다.
60여 년 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보다 무려 3만 배 강한 충격에 일본은 물론 전세계가 전율했다. 하지만 일본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대재앙 앞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인내로 혈육과 재산을 잃은 아픔을 삭이고 있다. 그들은 1945년의 태평양전쟁이나 1995년 고베 대지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재난도 무난하게 극복할 것이다.    
진짜 공포는 다른 곳에서 오고 있다. 쓰나미에 이은 원전 사고가 상징하는 것은 석유의 대체재로 각광받던 원자력 에너지 시대의 종말이다. 원전 강국의 첨단 기술도 속수무책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면서, ‘100% 안전’을 확신하는 인간의 오만함에 다시 한번 몸서리친다. 이미 미국과 중국, 독일, 프랑스 등 원전 강국들은 에너지 정책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하지만 후쿠시마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 정부는 “바뀔 게 없다”고 큰소리친다. 
인류의 석유에 대한 의존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새로운 대체에너지로 거론되는 에너지는 환경오염을 비롯한 막대한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인류의 소비 지향적 문화를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 아닐까.


프리츠 포어홀츠 Fritz Vorholz <디 차이트> 경제 편집장

‘잔여 위험’(Residual Risk)이라는 표현은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했다. 독일에서 두 달 전 울리케 폴케르츠 수사관이 주연으로 나오는 텔레비전 재앙영화의 제목도 ‘잔여 위험’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잔여 위험은 과학 픽션이나 오락영화 사전에만 나오는 용어였다.
하지만 일본 시각 지난 3월12일 오후 3시36분을 기점으로 전세계 모든 사람이 잔여 위험의 위력을 실감했다. 전날 엄청난 위력의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북동부 지역을 할퀴고 지나간 뒤 6호기로 이루어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1호기 냉각 시스템이 정확히 이 시각에 고장이 났다. 전례 없는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위험은 하루가 다르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헛된 꿈의 종말을 알리는 서막
바람이 방사성 구름을 어디로 몰고 가든 상관없이 원자력 에너지의 안전성에 대한 논의는 진작에 했어야 한다. 독일 정부가 도입한 ‘바이오연료 E10’(에탄올 성분이 10% 함유된 대체 연료)을 주유하면 자동차 엔진이 손상될 것을 우려하는 독일 자동차 운전자들의 분노의 게이지는 내전에 빠져든 리비아로부터의 원유 수입량 부족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독일 국내의 핫이슈도 이 시각을 기점으로 아주 지엽적인 문제가 돼버렸다. 3월12일 오후 3시36분을 기점으로 인류는 ‘원자력 에너지 수급을 위해 어떠한 고통도 감내할 것인가’라는 절체절명의 질문에 직면하게 됐다. 이 질문은 존재냐 파멸이냐의 물음과 직결된다. 이 물음은 원전 산업의 존재 여부와도 맞닿아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이미 오래전 악몽으로 돌변한 원전에 대한 인류의 꿈의 종말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하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원전 폐기물의 최종 처리장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사보타주나 테러 공격에서 안전한 원자력발전소가 있을 리 더욱 만무하다. 비행기 추락에도 끄떡없는 원자력발전소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대재앙은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가볍게 뛰어넘을 조짐이다.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원전 기술은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므로 원전 기술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원전 지지자들조차 시시각각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지난 3월15일 프랑스 리옹시 인근 생뵐바에 있는 뷔제 원전 앞에서 사람들이 원자력에너지 생산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앞으로 소신을 갖고 핵에너지를 강력하게 지지할 로비스트나 학자, 정치인은 절대 없을 것이다. 또한 처벌받을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원전이 안전하다는 ‘헛소문’을 퍼뜨릴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이제 원전의 안전성은 거짓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원자력발전소는 과거에 단 한 번도 안전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절대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인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원자력과의 작별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인류는 원자력발전소 시설과 최대한 빨리 결별해야 한다.
전세계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 442개는 부유한 10여 개국에 집중되어 있다. 원전 반대파와 원전 지지파, 양 진영 사이에는 원전의 대재앙론과 무해론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지금까지 원자력산업에 잠시나마 찬물을 끼얹은 원전 사고를 꼽으라면 25년 전인 1986년 4월 발생한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유일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가동에 들어간 원자력발전소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서구의 원전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원인을 소비에트연방의 미숙한 원전 기술 탓으로 돌리기에 바빴다. 반면 서구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은 당연하다는 듯 자부했다.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서구는 ‘원전 르네상스’의 도래를 이구동성으로 더욱 목청껏 외치고 있다.
원전 르네상스 구호가 지난 3월12일을 기점으로 일순간에 멈추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미국이나 프랑스, 혹은 독일의 원자력발전소만큼 안전하다고 여겨왔다. 하이브리드카 수출국 일본은 내진 설계된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한 기술강국이 아니던가. 히타치와 도시바의 본고장 일본에는 세계 초일류 원전 기업이 있다. 첫 폭발이 일어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제1원자로를 건설한 기업은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사다.

원전 안전성 주창자는 ‘과실치사범’
   
일본에서 원전사고가 일어나자 스위스는 원전 교체 계획을 보류했다. 취리히에서 두 여성이 ‘원자력 사양’이라고 적힌 천조각 둘레에 촛불을 놓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원전 안전성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음이 여실히 증명됐다. 원전 안전성이란 원자력산업이 직면하는 ‘불편한 진실’을 숨기려고 고안된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설혹 지진에 안전한 지대일지라도 원자력발전소에는 언제든 갖가지 형태의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원자력의 역사는 악몽의 역사나 다름없다.
안전한 기술도 실은 허상에 불과하다. 2007년 1월 독일 베를린에 신설한 중앙역사의 40m 높이 천장에서 갑자기 중량 2t의 강철 받침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9년 3월에는 쾰른의 한 지하철역 공사가 한창이던 중에 인근 시립문서보관소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0년 4월에는 몬타바우르~림부르크 구간을 전속력으로 운행 중이던 고속철도 ICE의 문 하나가 갑자기 떨어져나가는 사고가 났다. 그렇다고 기차역이나 고속열차, 지하철을 더 이상 짓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황당한 사고는 최악의 경우에도 피해 규모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전 사고는 이런 사고와는 차원이 다르다. 원전 사고는 한번 터졌다 하면 해당 국가나 대륙 전체를 대재앙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이것이 원전 기술이 다른 기술과 다른 점이다. 따라서 원자력의 안전성을 운운하는 것은 ‘과실치사’ 행위나 진배없다. 원자력산업과 비교해 훨씬 규모가 작은 분야의 기술도 안전성을 논하기 힘든데 하물며 원자력산업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독일 본의 원자력 안전성 사무소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안전성이란 ‘객관적인 상태’가 아닌 ‘특정 위험성에 대한 평가 결과’를 의미할 뿐이다. 즉 원자로가 안전하다는 것은 해당 원자로가 특정한 위험에 대해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도대체 원자로는 어떤 위험에 대해 안전하다는 것일까? 국제 리스크 연구에 따르면, 10만 개 원자력발전소의 연간 ‘노심융해’ 평균 빈도수가 1임을 고려한다면 독일의 총 17개 원자력발전소에서 60년간 원전 대재앙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1%이다.
원전 대재앙 사고 확률 1%, 과연 원전은 안전한 것일까? 이는 확률 게임이며 ‘러시안룰렛 게임’이다.

‘러시안룰렛 게임’ 즉각 중단해야
체르노빌 원전 사고 발생 몇 개월 뒤인 1986년 가을에 독일연방정부는 “독일의 모든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을 재차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점검 결과 독일 원자력발전소는 모두 안전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독일 원자력발전소의 현재 안전성은 어떠할까?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지 몇 시간 후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인간의 안전성이 최우선”이라며 독일 원전의 안전성 검사를 지시했다.
사람의 안전성이 최우선이라는 말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진심이라면 전세계 30개국의 모든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독일의 원자력발전소 17개도 즉각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또한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이나 신규 건설 허가 신청은 이미 수년 전부터 드러나고 있는 원전 안전성 부족으로 애초에 성사될 수 없다.
체르노빌 사고가 발발한 지 8년이 지난 1994년 헬무트 콜 독일 총리가 집권시 개정한 법 때문에도 원천적으로 신규 원전 건설 및 허가를 받을 수 없어야 한다. 당시 개정법에 의거해 1994년부터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원전의 노심융해가 원전의 최근접 지역에만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기준을 충족해야 허가를 받았다. 즉, 대재앙 수준의 원전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원전 외부에는 그 어떠한 피해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내재적 안전성’이라는 개념은 원전 안전성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원자력 사고가 발전소 내부에만 미치는 내재적 안전성을 보장하는 원전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 신규 원자력발전소만 허가한다면 앞으로 전세계 어디에서도 원자력발전소는 건설될 수 없을 것이다.
   
옛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가 발생한 4월26일을 전후해 매년 핵의 위험성을 알리는 이벤트가 열린다.
상황이 이런데 머잖아 70억 명을 돌파할 전세계 인구의 에너지 수급을 보장하기 위해 불안전한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을 인류는 계속 껴안아야 하는 것일까?
석탄, 기름, 가스 등 기타 에너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전세계 에너지 수급 현황을 살펴보면 원자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6%에 불과하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 비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원자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국가는 프랑스와 슬로바키아, 스웨덴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전체 에너지 수급에서 원자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 수준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적인 전기 수급만 떼놓고 보면 원자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15% 수준이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전기 소비 2위국으로 독일 연간 전기소비량의 무려 4배를 소비한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전기량 수요를 감당할 만큼 석탄이 충분히 지구에 매장되어 있다. 하지만 석탄 사용으로 인해 기후재앙의 원흉으로 지목받는 이산화탄소(CO₂)가 엄청나게 방출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환경 수호자’로 분장한 원전 옹호자들
반면 원전 산업 관계자들은 이산화탄소를 전혀 방출하지 않는 원자력발전소 지지자들을 ‘환경 수호자’로 일컫는다. 실제로 이산화탄소를 전혀 방출하지 않는다는 점이 원전을 지지하는 최대 이유이다. 원자력발전소보다 화력발전소가 전력을 더 많이 공급하는 순간, 공기 중에 방출되는 이산화탄소가 늘어나고 대기 온도는 상승하며 결국 자연이 파괴된다. 그 결과 가뭄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는 당연한 수순으로 뒤따르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원전 가동이 중단된다면 기후 재앙은 불가피한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더라도 기온 상승세가 일정 수준에서 멈출 수 있을 것인가’라는 중요한 물음을 원전 지지자들은 간과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산업화 이전 시대와 비교해 약 2℃ 상승 수준에서 억제되려면 향후 40년간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무려 절반 이상 감축해야 한다. 에너지를 극도로 절감하고 기타 에너지 수요량을 태양열, 풍력, 기타 재생 가능하고 기후친화적인 에너지원으로 감당해야만 실현 가능한 목표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한다면 인류가 절감해야 하는 에너지양은 더욱 늘어나며, 더 많은 ‘녹색’ 에너지원을 창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에너지 수급 정책의 획기적 전환을 위한 청사진은 이미 제시되었다. 독일항공우주연구원이 주도적으로 구상한 그린피스 시나리오나 환경보호 단체인 세계자연보호기금(WWF·World Wide Fund For Nature)의 시나리오 등은 핵에너지를 배제한 에너지 수급 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두 청사진은 핵에너지 없이 기후를 보호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
효율적인 에너지원 사용은 미래 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현재 발전소, 전구 및 자동차 엔진 등에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류는 에너지 효율성 면에서 아직까지 석기시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인류가 1년간 소비하는 에너지양보다 사막 지역에서 6시간 동안 저장되는 태양열 에너지원이 더 많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의 사용 기술도 전반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하지만 전세계 에너지 수급량에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 반면 원자력 등 기존 에너지 기술은 대규모 재정적 지원을 받는다.
인텔리전트 조정 장치가 부착된 펌프와 엔진은 기존에 소요되는 전력량의 극히 일부만으로 작동할 수 있다. 기존 전구와 비교해 전력이 거의 소비되지 않는 고성능 전구도 나왔다. 하지만 더 나은 전구를 사용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에너지 수급 정책은 인류의 삶 패턴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너지원 수급 정책의 전환이 인류에게는 불편한 것이다. 에너지원 수급을 전환하려면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용기가 필요하다.

0.7% 성장은 함께 폭발했다
최근 국제연구원 그룹은 전문학술지 <에너지저널>(The Energy Journal)에 기후변화의 흐름을 되돌리려면 미래 에너지원 수급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문을 게재했다. 그중 한 가지 방법으로 원전 가동 중단이 언급됐다. 원전 가동을 중단하려면 전세계 인류는 총생산(GNP)의 0.7%를 포기해야 한다. 과연 인류는 에너지 수급 체계를 전환하기 위해 GNP의 0.7%를 포기할 수 있을까? 전세계 어디에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떠올린다면 GNP의 0.7%는 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원전을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면 값싼 변명거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원전을 지지하는 명분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와 함께 이미 폭발돼 사라졌다. 
ⓒ Die Zeit·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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