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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정책 감당할 리더십 부재
[경제의 속살] 자금시장 경색
[153호] 2023년 01월 01일 (일) 권순우 soon@3protv.com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 전남 나주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 연합뉴스

자금시장이 말랐다. 몇몇 증권사, 건설사의 이름이 거론되며 도산에 대한 두려움이 시장에 팽배하다. 일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금리는 20%에 육박했다. 법정 최고 금리가 20%다. 웃돈을 주고도 자금을 구할 수 없는 시장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전채, 레고랜드, 보험사 영구채 콜옵션 등 채권시장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 정치권은 책임을 묻기 바쁘다. 금융당국은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자금경색을 해소하느라 동분서주한다. 안타깝게도 정치적 책임을 묻는다고 자금시장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모두가 문제를 해결하느라 분주한데 정작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자금시장에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한국전력의 적자다. 2022년 3분기까지 21조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4분기 적자를 더하면 적자 규모는 3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전은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서 소비자에게 파는 전기 유통상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해 전력 구매비는 2배 넘게 늘었는데 판매가격은 거의 그대로다. 110원 팔면 60원이 적자, 55조원어치 전기를 팔면 30조원 적자가 나는 구조다. 적자가 나면 회사에서 자금이 빠져나간다. 어딘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한전은 대규모 채권 발행으로 시장에서 돈을 빌려온다. 2022년 한전이 발행한 채권의 순발행 규모는 20조원이 훌쩍 넘는다. 전체 공사채 순발행액의 3분의 2를 한전이 차지했다.
초우량등급인 한전이 6%에 육박하는 금리를 제시하며 시장의 자금을 끌어가니 그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다. 한전은 만기가 3년 이상인 장기자금뿐 아니라 단기자금도 조달하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만기가 3년 이상인 장기자금으로만 조달했는데 장기로 빌려줄 주체가 없으니 단기자금 시장까지 넘어온 것이다. 3년물 미만 발행이 65%로 확대됐다. 단기자금 시장에서는 기업어음(CP), 부동산 PF-ABCP 등이 거래된다. 국내 채권시장이라는 연못에 한전이라는 고래가 뛰어드니 다른 물고기들이 숨을 쉴 수가 없다.

단기 대책의 풍선효과 반복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많은데 돈을 빌려줄 사람이 없다. 돈을 빌려주는 주체는 주로 금융사다. 은행을 제외한 대부분 금융사는 제 발등의 불 끄기 바쁘다. 증권사가 보증한 PF-ABCP 전체 규모는 20조원이 훌쩍 넘는다. 레고랜드 사태로 PF 시장의 채무불이행 우려가 커지면서 증권사들이 보증한 ABCP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6% 수준이던 PF-ABCP의 금리는 최근 10% 이상으로 치솟았다. 금융당국은 대형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자금을 마련해 1조8천억원 규모로 중소형 증권사들의 ABCP를 매입해주는 유동성 공급책을 내놨다. 2022년에는 정책 지원을 받아 어떻게든 버텼지만 2023년은 구조조정 없이 넘기기 쉽지 않아 보인다. 증권사는 자금 공급은커녕 지원을 받아야 할 상황이다.
부동산 PF에 발이 묶인 곳은 증권사만이 아니다. 캐피털 등 여신전문금융사의 부동산 PF 대출도 만만치 않다. 자동차나 기계류 할부, 리스 방식으로 대출해주던 캐피털 기업들은 최근 3년간 부동산 관련 대출을 대폭 늘렸다. 2022년 6월 말 기준 여신전문금융사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6조7천억원으로 3년 동안 3배가 늘었다. 부동산 경기가 좋고 너도나도 부동산 PF 대출에 나설 때 여신전문금융사도 합류한 것이다. 여신전문금융사는 명칭 그대로 예금 등 수신 기능이 없는 금융사다. 자금을 채권 발행으로 조달해야 하는데, 채권시장이 경색되면 자금조달 방법이 마땅치 않다.
또 다른 자금 공급의 주체로 채권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가 있다. 일반인이 채권펀드에 가입하면 운용사는 그 돈으로 채권을 매입해 수익을 올린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2022년에는 금리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가격이 폭락했고 채권펀드 수익률은 추락했다. 운용사들은 엄청난 손실을 보았고 고객도 많이 이탈했다. 이들은 일찌감치 장부를 닫고 채권시장에서 발을 뺐다.
생명보험사들은 10년 전 판매한 저축성보험 때문에 속앓이하고 있다. 2013년 초 보험사 저축성보험에 2억원까지만 비과세 혜택을 주는 한도가 생겼다. 이전에 가입한 사람은 10년 이상 저축성보험 계약을 유지하면 이자에 대한 세금이 면제됐다. 그러다 2억원 이상 납입금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게 된 것이다. 생보사들은 비과세 혜택이 줄어들기 전에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며 2억원 이상 자금을 맡길 거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절판 마케팅’을 벌였다. 당시 집중적으로 가입한 고객들의 10년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이 2022년 10월부터 2023년 1월이다.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10년을 채운 고객들이 줄지어 자금을 빼고 있다. 이 와중에 회계기준, 지급준비율 기준 변경 등 회계적 요인도 겹쳤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은행을 제외하고 대부분 금융사가 자금이 없다. 레고랜드, 흥국생명 등은 지방자치단체, 금융당국의 잘못된 판단으로 시장 분위기를 더욱 냉각시킨 사례다. 어디가 끝일지 알 수 없지만 말라버린 금융시장에서 제2의 레고랜드, 제3의 흥국생명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흥국생명 본사. 연합뉴스

전기료 인상-부실기업 퇴출
당장 큰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채권 발행 자제, 은행의 채권 매입, 금융기관의 출자를 기반으로 한 채권안정펀드 등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또한 정부는 한전 등 공공기관에 대해 채권을 발행하지 말고 은행에서 대출받도록 유도했다. 2022년 10월 은행의 기업대출이 13조7천억원 늘며 10월 기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채권이 아니라 대출로 자금을 조달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은행도 대출해주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은행은 자금조달을 위해 채권시장에서 은행채를 발행했다. 은행이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끌어가니 또다시 자금이 말랐다. 풍선에 바람을 빼야 하는데 부풀어진 풍선을 누른 것이다. 누른 쪽이 내려가면서 반대편이 부풀어 올랐다.
정부는 은행에 채권 발행 자제를 요청했다. 은행들은 채권이 아니라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예금금리를 올렸다. 예금금리가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대출금리가 올라간다. 대출금리가 올라가면 일반 서민들의 부담이 커진다. 이번에는 예금금리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 치 앞에서 문제가 생길 만한 조처를 계속 하고 있다”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일이 반복된다. 정부도 이런 상황이 지속할 수 없음을 안다. 정부 관계자는 “일단 연말까지는 큰 사고가 없도록 틀어막는 데만 집중했다”며 “구조적 개선을 하지 않고 2023년을 아무 일 없이 보낼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우선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 전기를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한국전력이 적자를 피할 다른 방법은 없다. 취약계층에는 정부예산으로 에너지바우처를 지원하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모든 부동산개발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는 없다. 오랜 저금리 환경에서 발생한 대규모 부채를 축소하는 과정은 피할 수 없다. 옥석을 가려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우량기업은 지원해야 하지만 부실기업은 질서 있게 퇴출해야 한다.
해법을 외면하는 이유는 정치적 부담 때문이다. 전기요금 인상을 반길 사람은 없다. 부실기업이라고 해서 도산을 원하는 기업은 없다. 해당 기업에도 직원들이 있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분노할 것이다. 국민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인기 없는 정책을 해야 한다는 정치적 부담은 매우 클 것이다.
운 좋게도 물가가 안정되고 금리와 국제유가가 떨어지고 경제가 성장세로 전환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2023년 안에 글로벌 경제의 골디락스(경제성장률은 높지만 물가상승 압력이 적은 상태)가 연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민이 함께 어려운 시국을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를 감수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며 “문제가 터지고 난 뒤 해결하려고 하면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경제 상황이 괜찮아 보이게 하려고 무작정 지원하다보면 가장 먼저 쓰러지는 부실기업만 지원하게 된다. 그러다 나중에는 우량기업에 유동성 문제가 생길 때 지원할 여력이 없어질 수도 있다. 옥석을 가려 구조조정을 연착륙시키는 큰 틀의 정책 운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권순우는 경력 15년의 현직 기자다. 금융, 산업 등 다양한 영역을 취재하며 생생한 현장을 전한다.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머니투데이방송>을 거쳐 현재는 <삼프로TV>에서 ‘압도적 권순우: 압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격변과 균형>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가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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