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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예술혼의 역설적 귀환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예술가로 살아남기
[153호] 2023년 01월 01일 (일) 이승현 shl219@hanmail.net

이승현 미술사학자

   
▲ 이주요의 2019년 전시 ‘러브 유어 디포’(Love Your Depot). 국립현대미술관

한때 예술가는 재물이나 명예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예술혼으로만 먹고사는 사람들이라는 환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엄혹한 생존의 현실이다. 2019년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여하는 ‘올해의 작가상’ 수상작가 이주요의 2013년 작품 <무빙 플로어>는 전시장 바닥에 쪽마루 조각들이 서로 짝이 맞지 않아 들뜬 상태로 널브러져 있고 관람객은 미끄러지고 소리 나고 걸리적거리는 그 위를 걷는다. 작품을 관람하면서 관객은 마치 10여 년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예술가들에게 입주 공간을 제공해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돌아다니며 안정된 주거를 마련할 수 없었던 작가의 삶처럼 마냥 불안하기만 하다.

작가의 불안 위를 걷다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이주요 작가는 ‘러브 유어 디포’(Love Your Depot)라는, 작가를 위한 일종의 창고를 전시장에 구현했다. 작가는 작업공간을 비롯해 촬영공간, 수익모델 격인 공구상, 수장고인 창고와 폐기에 관여할 고물상까지 작가가 예술활동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속가능 공간모델로서 창고를 제시한다. 작품을 제작하고 발표해야 하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아서 따로 수익모델이 필요하고, 쌓여만 가는 작품들을 보관하고 폐기할 장치까지 구비해야 하는 오늘날 작가들의 고단한 삶을 공간적 구상으로 표현했다.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이른바 성공한 작가 내지 잘나가는 작가의 삶이 이 정도라면, 젊은 작가들의 궁색함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015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젊은 작가들이 작품의 판로를 모색하고 컬렉터와의 만남을 위해 작품이 아닌 제품이라는 의미의 굿즈(Goods)를 만들어 판매하는 장터를 열었다. 누구는 작품이 아닌 제품의 거래를 통해 구매자와 시장을 이해하려 했고, 어떤 이는 작품으로 생계를 이을 대안을 모색했다. 이들 모두는 동시대 미술의 진지한 작가로서 살려 하지만 작품을 팔지 못하는 공통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굿즈 행사에 이어 2016년에는 ‘더 스크랩’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사진 전시·판매 플랫폼이 등장했다. 작가들의 현실이 대동소이하겠지만 사진은 그중에서도 주변적이어서 회화보다 판매가 더 어렵다. 그래서 이 행사는 “작업자로서 관객과 만나는 새로운 경로를 직접 만들어내는 경험, 관객으로서 다양하고 색다른 시도가 담긴 사진을 보고 만지고 사는 경험, 작업자와 관객의 서로를 향한 피드백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모이고 쌓이는 것을 넘어 작업자와 작업자 사이에 작은 교류가 시작되는 것”을 꿈꾸며 출범했다.
넓은 공간에 여러 작가의 작품을 동일한 사이즈로 출력해서 익명으로 전시하고, 고객이 사기 원하는 작품을 고르면 현장에서 출력해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한때 문화역사 서울역에서 대규모로 전시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필자도 사진 10여 장을 현장 구매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며 요긴하게 썼던 기억이 있다. ‘더 스크랩’이라는 이름과 그 판매 방식이 입소문을 타며 여기저기서 사업제휴가 들어왔지만 애초에 원가 이하 가격의 판매로 이윤을 생각하지 않았던 이 기획은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결국 전시와 판매 방식 등을 실험한 이 행사는 2019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고 말았다.

다양한 실험의 잇따른 실패
2017년에는 사진보다 훨씬 판매가 어려운 퍼포먼스나 영상작업과 같은 비물질적 작업의 공연 내지 상연을 목표로 한 ‘퍼폼’, 서브컬처의 파생상품인 굿즈를 현대미술에 거꾸로 차용해보려는 기획 취지로 조직된 ‘취미관’, 그리고 특정 크기로 한정된 작품을 규격화된 큐브 속에 넣어 전시·판매하는 ‘팩’ 등이 등장해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상업적으로 유통해보려 했다. 그러나 이런 판매는 지인이나 미술계 내 소수를 넘어선 외부적 확장에 한계가 있었고, 사실상 이들 공간을 유지하는 수익조차 내기 힘들었다.
현실적으로 젊은 작가들과 기획자들의 전시는 문예진흥기금이나 서울문화재단과 같은 공적자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들의 생계 또한 일정 부분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의존한다. 그러나 집안의 재력이나 배우자의 수입 등이 없는 이상, 작가들의 생계를 위해서는 작업과는 무관한 부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돼 작가로서의 성공을 위한 긴 여정에서 작업과 부업, 예술과 생계 사이에서 고민을 피해갈 수 없다. 게다가 ‘올해의 작가상’ 수상 같은 중견작가로서의 성공이 생계 전선에서 성공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이쯤 되면 오늘날 예술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생존 가능하지 않다. 우리 사회 모든 영역이 그렇듯이 아주 적은 예외적 작가를 빼고 대다수 작가는 예술을 본업으로 해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예술로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는 일이 불가능한 도전에 가까워지면서, 오늘날 예술가는 아예 돈과 명예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즐거움만으로 작업에 매진할 각오와 배짱이 필요하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우리는 예술혼으로만 먹고사는 낭만적 예술가의 귀환을 다시금 맞이하게 됐다. 그런데 예술뿐 아니라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여생을 살아가야 할 퇴직자, 자영업을 영위하는 분들 모두 이런 사정을 공유하고 있다면, 이주요의 <무빙 플로어>를 걷는 관객은 작가들뿐 아니라 우리 시대 수많은 이의 모습인 셈이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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