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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옐친 때부터 에너지 무기화
[SPECIAL REPORT] 발트해 가스관 파괴- ① 누구 소행인가
[152호] 2022년 12월 01일 (목) 마이크 바움게르트너 economyinsight@hani.co.kr

흡사 제임스 본드 영화 다음 편 시나리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발트해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해저 가스관이 파손됐다. 강력한 폭발물로 인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사건을 두고, 비밀 정보기관들은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의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을 둘러싼 바다 밑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이로써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졌다. 유럽의 해저 인프라가 극도로 취약한 시설이라는 점 말이다. _편집자

마이크 바움게르트너 Maik Baumgärtner 등 <슈피겔> 기자 11명

   
▲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은 워낙 두꺼워서 폭파나 폭발이 아니면 누출 사고가 있을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설치하기 전의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REUTERS

발트해를 가로지르는 가스관 선로를 눈으로 따라가다보면 크루즈 선박의 항로를 읽는 듯하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근처의 우스트루가 항구에서 시작해 핀란드만을 거쳐 바다로 나아간 뒤, 에스토니아의 히우마섬을 뒤로 돌아 남쪽으로 내려간다. 이어 스웨덴의 고틀란드와 보른홀름을 지나 덴마크 해역을 거치고 나면 독일의 해안 루브민에 닿는다. 이 노선은 특별히 위험한 구간 같은 건 없는 평범한 수로다. 배를 타고 편안히 지나는 항로로 여겨지던, 그래서 2000년대 초만 해도 나름대로 질서가 유지됐던 해역이다.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은 대구의 산란기를 보호한다는 조항이 2009년 계약서에 확정 조항으로 자리잡고 나서야 완공될 수 있었다. 유럽 북반구에서는 얼만 전까지만 해도 그런 분위기가 유지됐다. 멸치, 청어, 농어 등속만 주로 다룬 ‘어종과 어업에 관한 핵심 주제 보고서’만 해도 포괄적인 친환경 검토 자료로 무려 50쪽을 차지한다. 이런 보고서를 보면 과거가 지금보다 훨씬 나은 시대였다. 어업 방식이 잘 규제됐고, 국제법도 훨씬 평화적이었으며, 재판은 투명하게 이뤄졌고, 계약은 잘 지켜졌다. 그런데 2022년 9월26일 월요일, 세상은 한 단계 더 하강해버렸다.
발트해에서 이제 계약이 유명무실해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야기한 전쟁은 유럽 최대의 내해까지 이르렀고, 발트해 해저를 전쟁의 앞바다로 만들어버렸다. 덴마크와 스웨덴 앞바다의 해저, 그리고 보른홀름 내항에서 큰 진동이 감지됐다. 노르트스트림1·2 가스관 세 곳에서 가스 누출이 확인됐고, 이어서 네 번째 사고가 신고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최초의 폭발은 러시아가 건설한 지역의 파이프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피해를 본 부분은 지금 당장 가스관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수억㎡의 천연가스를 채운 가스관이다.

   
▲ 2022년 9월27일 덴마크 F-16 전투기에서 본 노르트스트림2의 가스 누출 현장. REUTERS

폭파나 폭발로만 설명 가능
원을 그리며 솟구치는 해수를 상공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순식간에 새로운 아이콘으로 전세계에 퍼져나갔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이 바닷물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건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러시아는 정말 새 전선을 구축한 것일까?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의견이 분분한 채 토론이 계속되는 것처럼, 미국이 옛날부터 못마땅하게 여기던 북구의 가스관 프로젝트를 깨뜨린 걸까? 혹시 저 ‘불한당’, 이를테면 자제력을 잃은 정보부원 한 무리가 자기들 힘으로 새로 역사를 만들어보겠다고 일을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음모론자 진영에서 늘 반사적으로 하는 중얼거림처럼,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가 배후에 있을까? 이 사건에 관한 가설 가운데 그럴싸한 증거를 제시하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가볍게 말하면, 이스라엘보다 러시아 소행이라는 느낌이 훨씬 그럴싸하게 다가온다. 또한 법률 용어를 빌려 말하면, 혐의가 갈 법한 이 대집단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다양한 범행으로 연관됐던 전력이 많지 않은가. 미국은 자국의 에너지를 가장 비싸게 값을 치러주는 나라에 팔지만, 러시아는 가스관 개폐를 이미 몇십 년 전부터 가차 없이 정치화해온 권력이다. 러시아 정부는 이번에 보폭을 아주 많이 넓혀 성큼 한 걸음 내디딘 것인가? 아니면 백악관이 러시아의 운신 폭을 제한할 목적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략을 쓴 것인가?
이번 같은 대규모 가스 누출 사태가 단순 사고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보른홀름 지역에서 한밤중인 새벽 2시3분, 그리고 그로부터 거의 17시간이 지난 저녁 7시4분, 두 차례의 지진 관측기 기록을 보면 이 사태는 폭파나 폭발로만 설명이 가능하다고 스웨덴 SVT라디오방송의 지진네트워크에 근무하는 비에른 룬드는 주장했다.
처음에 룬드는 보른홀름 남쪽 덴마크 해역에서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의 누출을 발견했고, 거기서 북쪽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의 누출을 두 군데 발견했다. 지진네트워크는 사고가 아니라 “방대한 에너지 방출을 야기한” 파괴였다고 본다. 새 가스관에서는 1만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훼손 사건이라고 독일 연방정보부(BND)는 판단한다. 기계 고장이나 마모 등의 원인으로 일어날 리 없다는 것이다.

   
▲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에서 가스가 부글거리며 분출하는 모습이 2022년 9월29일 공개된 위성사진에서 보인다. REUTERS

유럽연합의 정치적 태극권
이 사고는 도대체 어떻게 발생했을까.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그리고 사고 해역 국가의 대표들은 이 사건의 용어 확정에 조속히 합의해, 이를 ‘사보타주’(Sabotage·고의적인 파괴)로 규정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사보타주’라는 것에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 의견을 함께했다고 알렸다. 아울러 프레데릭센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한 전화 통화에서도 덴마크 정부 기관들이 이 사태가 사보타주임을 확신하며, 이 사건에 관해서는 사보타주라는 단어의 사용을 견지하며 의사소통을 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사고 당시 스웨덴 총리였던 마그달레나 안데르손은 공개적으로 이 사태를 ‘폭파’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스웨덴을 겨냥한 공격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도 언급했다.
독일 안보당국은 가스관에서 상당한 양의 폭약이 점화됐다고 본다. 지진계의 측정 수치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각각 강력폭약(TNT) 500㎏에 상당하는 폭발력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엄청난 폭발력도 이번 사건이 단순히 어떤 테러그룹의 소행이 아니라 한 국가가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조셉 보렐 폰테예스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으름장을 놓기는 했으나, 허공에 대고 위협하는 모양으로 끝나고 말았다. 유럽의 에너지 기간 산업을 고의로 파괴하려는 시도는 절대 용납하지 못할 행위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유럽연합이 힘을 합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 누구에 대한 대응인가? 무엇에 강력한 대응인가? 지금까지 상황은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이들이 일종의 정치적 태극권을 수행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눈으로 파악되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섀도복싱이라고나 할까.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이 사건의 책임자를 비판하지만, 그 모두는 지금까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한다.
9월28일 오후 나토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기구인 북대서양이사회(North Atlantic Council)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다. 이사회의 의결 내용이 그로부터 며칠 뒤 발표문으로 공개됐다. 북해 가스관이 “의도적이고 무자비하며 무책임한 사보타주의 목표가 됐다”는 점에 모든 참가국이 의견을 함께했다는 것이다. 발표문은 유럽연합 외교 정치인 보렐의 의중을 그대로 반영해 “동맹국의 주요 기간산업을 공격하는 행위는 회원국 공동의 단호한 대응을 받게 될 것”을 분명히 선언했다.
나토의 내부 서클은 대응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을 보일지는 미지수라고 얘기한다. 나토의 고위급 외교관은 “우리는 선택할 폭넓은 스펙트럼이 있다”고 귀띔했다. 어쨌든 발트해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2021년 6월에 결의한 주요 기간산업을 확고하게 하는 작업을 더욱 앞당길 것이다. 이 외교관은 “이로 인해 안전이라는 사안이 훨씬 더 주목받고 대책 마련에도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같은 시설을 공격하는 건 “우리가 상정했던 시나리오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고 했다.

   
▲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2022년 9월2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발트해의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에서 발생한 3건의 가스 누출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납득할 수 없는 이유
스웨덴의 로베르트 라르손은 이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학자다. 2006년 발표한 논문에서 그는 러시아 지도부가 1991~2006년 55차례 이상 그들의 에너지 사업을 압력 수단으로 사용해왔음을 상세히 열거했다. 매년 거의 네 번꼴로 일어났다. 에너지 공급 중단도 40회 이상 있었다. 그 밖에 위협이나 협박 시도, 공격적인 가격 정책 등도 블라디미르 푸틴의 무기고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의 전임자 보리스 옐친이 그랬듯이 말이다.
서방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한 현재의 가스 전쟁이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이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아챈 사람이 많지 않았다. 2021년 10월부터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회사 가스프롬이 유럽으로 보내는 천연가스 양을 줄였다. 러시아의 국영 독점사업자는 처음에는 단지 두 개의 수송 루트, 즉 폴란드를 통과하는 야말(Jamal) 파이프라인과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트랜스가스(Transgas) 파이프라인의 공급량만 감축했다. 반면 2011년 가동된 발트해 수송관 노르트스트림1로는 정상 압력으로 충분히 가스를 공급했다.
당시 이 변화를 알아챘던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부가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의 가동을 강요하기 위한 게 아닌가 추측했다.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건설은 완료된 상태였지만 아직 독일 정부의 가동 허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월이 되자 가스프롬은 야말 가스관 공급을 때때로 완전히 정지했다. 그러면서 상업적 이유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계약 사항은 이행한다고 늘 변명했다.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습격한 뒤에도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가스 판매는 이어졌다. 유럽 전체가 러시아에 봉쇄 정책을 펴야 한다는 외침이 높아짐에도 유럽 국가들은 가스를 샀다. 2022년 봄에는 가스 가격이 낮아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6월14일이 되자 갑자기 변해버렸다. 이날 가스프롬은 “발트해 가스관을 통한 공급을 40%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터빈이 하나 부족해 그렇다는 이유를 댔다. 이 터빈이 “캐나다에서 정비를 끝냈지만 서방국가들의 제재 때문에 러시아로 반송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가스프롬은 공급량을 또다시 3분의 1 줄였다. 독일 정부는 그 발표를 핑계라고 비난하면서도 문제의 터빈을 캐나다에서 가져오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이 기계는 지금까지 독일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쪽은 터빈을 보내주겠다는 독일의 제안을 거절했고, 예의 그 “노르트스트림1 라인에 기술상 문제가 있어서”라는 이유를 계속 내걸었다.
7월11일이 되자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가스 공급이 완전히 중지됐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원인은 연례 운영 방침에 따른 정비 작업으로, 정기적 일정이라고 했다. 이 정비 작업은 계획대로 열흘 동안 진행됐다. 이 사안을 검토한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부 장관은 사태 초반에 가스 공급이 이전과 같은 정상 수준으로 되돌아가리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의 판단은 옳았던 것으로 보인다.
9월1일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으로는 서구 방향으로 가스가 전혀 유입되지 않았다. 터빈 한 개에서 기름이 샜기 때문이라는 게 공급자 쪽에서 내건 이유였다. 독일 지멘스에너지는 러시아가 말하는 기계 고장이 “기계 가동을 중지할 만큼 기술적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독일로서는 사실 확인도 할 수 없었다.
대서양 해저는 몇십 년 전부터 군사작전의 공간이었다. 국제무역을 맡는 해상로, 에너지 운송용 파이프라인과 통신케이블 등이 깔려 있다. 전문 용어로 ‘핵심공공기반시설’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접근이 쉽지 않기에 이 시설들이 안전하다고 잘못 알려졌는데, 대체가 불가능하기에 사실은 반대로 고도의 위험에 처한 시설이라고 봐야 한다.

   
▲ 자료: 가스프롬, 덴마크·스웨덴 정부 발표 종합

‘해저 전투’는 진행 중
해저 소유권을 두고 일어나는 분쟁과 무장 현상을 ‘해저 전투’(Seabed Warfare)라고 한다. 이 적대적인 물밑 세상에 투입할 자원과 전문성을 갖춘 특수인력을 보유한 군사력의 분포는 균일하지 않다. 유럽의회가 2022년 6월 전문기관에 의뢰해 분석했던 연구조사 결과, 유럽연합에서는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고 프랑스가 왕성히 활동한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유럽의 해저 케이블이 손상되기 쉽다는 분석 결과를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한번 사고가 일어나면 복구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상당할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결론 내렸다.
2월에는 당시 프랑스 국방부 장관이던 플로랑스 파를리가 프랑스 해군의 ‘해저 전투’를 위한 포괄적인 전략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프랑스의 지하자원 보호와 함께 전기, 원유, 가스, 데이터용 해저 수송로 건설을 분명하게 밝혔다. “프랑스는 대서양 심해에서도 주권, 지하자원 그리고 인프라 시설을 보호할 것”이라고 파를리는 말했다. 그는 중국과 영국도 이와 흡사한 계획이 있음을 시사했다. 프랑스의 해저 소유권을 수심 6천m까지 강화하기 위해 프랑스 해군은 무엇보다 자율 수중 드론과 원격 미니 잠수함에 투자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공식적으로는 이 모든 것이 방어에 관한 일이라고 말한다. 전세계 주요 인프라 중 공격 대상으로 지목받는 시설을 열거한 미국 국무부의 비밀문서가 2009년 유출된 적이 있다. 여기에는 보호 가치가 있는 주요 해저 케이블과 육상 연결 지점 외에 드루즈바(Druschba) 같은 송유관도 함께 언급됐다.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해저 전투’는 이름부터 공격성을 내포하고 있다. 해저를 감시하고 해당 지역을 보호할 능력이 있는 주체라면 누구나, 필요에 따라서는 당연히 공격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종하고 사보타주할 수도 있다. 2022년 6월에 발행된 유럽연합의 분석서에는 ‘해상 급조폭발물’과 기뢰가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는 해저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이 보고서는 이런 사태를 유발할 적국으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 상세한 고려사항을 적어놓았다.

ⓒ Der Spiegel 2022년 제40호
Ausweitung der Kampfzone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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