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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인가 비단주머니인가
[이재성의 노벨경제학상 다시 읽기] 금융위기 연구한 2022년 수상자들
[152호] 2022년 12월 01일 (목) 이재성 san@hani.co.kr
   
▲ 202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교수, 필립 디비그 워싱턴대 교수. REUTERS

2022년 노벨경제학상은 시사적이며 징후적이다. 세계적 차원의 금융위기 우려가 높아지는 시점에서 은행 위기의 파괴력과 메커니즘을 연구한 학자들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묵시록이 될지 제갈량의 비단주머니가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타산지석의 조언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공황의 진짜 원인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2006~2014)이었던 벤 버냉키(1953~)가 세 명의 공동수상자 중 한 명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버냉키는 평범한 경기침체로 시작했던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이 그토록 광범위하고 위력적인 경제 붕괴로 이어진 원인이 은행 부실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업적을 평가받았다.
1983년 버냉키가 논문을 발표하기 전까지 경제학자들의 통념(대표적으로 밀턴 프리드먼)은 당시 미국 중앙은행이 더 많은 화폐를 발행했다면 대공황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버냉키는 화폐 부족만이 아니라 저축을 투자로 전환하는 은행 시스템의 능력(금융중개자의 공급 능력) 상실이 더 중요한 원인임을 밝혀냈다. 불안해진 예금자들이 은행으로 달려가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하자 3년 만에 은행의 절반이 망하면서 은행 예금이 투자로 이어지는 고리가 끊어져버린 것이다. 은행은 기존 고객에게 대출을 상환하라고 압박했고 신규 대출은 거부했다. 부채를 감당할 수 없는 기업의 도산이 속출했고, 실업자가 양산됐으며, 소비는 극적으로 줄었다.
예금자 계좌에 있는 돈은 은행의 부채이고 은행 자산은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대출로 이뤄진다. 조급한 예금 인출 요구에 응하려면 은행은 자산을 팔 수밖에 없고 이는 은행의 투자 자산을 단기화해 실물경제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그 자체로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 된다.
버냉키의 연구 이전에는 은행 위기가 경기침체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버냉키의 논문이 나온 뒤 은행 붕괴가 깊고 장기적인 불황으로 발전하는 경기침체에 결정적 원인이라는 것이 상식이 됐다. 금융중개가 실물경제에서 당시의 통념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을 학계와 경제계에 두루 각인한 것이다.
공동수상자 더글러스 다이아몬드(1953~)와 필립 디비그(1955~)는 은행의 역할과 취약성을 구조적으로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은행의 금융중개자 구실은 오랫동안 논의한 주제였지만, 이전의 경제학자들은 은행의 존재와 구조를 설명하기보다는 가정하는 데 그쳤다. 차입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가 외생적으로 주어진다고 (원래 그렇다고) 가정했다. 다이아몬드와 디비그는 논리적으로 일관된 수학 모델과 미시경제적 토대를 바탕으로 은행의 존재와 구조 메커니즘을 드러냈다. 그 열쇠가 예금과 대출 사이의 근본적인 갈등이다.
예금자는 필요할 때 언제든 즉시 돈을 찾기를 원하지만, 주택구매나 생산투자를 위해 돈을 빌리는 차용인은 은행이 갑자기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에 따라 은행은 예금자에게 단기요구불예금을 제공해 유동성을 창출하고 차용인에게 장기 자금을 대출할 수 있다. 은행은 만기가 짧은 은행 계좌를 만기가 긴 자산으로 전환하는 중개자다. 이를 ‘만기 변환’ (Maturity Transformation)이라고 한다. 은행이 언제든 뱅크런에 처할 수 있는 이유가 이런 존재론적 구조에 있다.
다이아몬드와 디비그는 소문에 취약한 은행의 약점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의 예금보험을 해결책으로 제시했고 지금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현대 은행 규제의 주요한 기초가 이들의 이론적 통찰에서 비롯했다.
은행 규제를 강화했다고 금융위기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윤을 먹이로 살아가는 경제는 스스로 규제의 빈틈을 찾아 부실을 키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방아쇠 구실을 했던 서브프라임모기지처럼 부채를 증권화해서 거래하는 관행은 더욱 세분되고 교묘해졌다. 최근 한국 금융시장의 불안 요소로 등장한 레고랜드의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나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은 일반인이 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부채다. 새로운 부채가 어떤 위험과 부실을 키우는지 터지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2008년 미국 그림자금융(투자은행 등)의 부실화가 독일 저축은행의 가계신용 위축으로 이어졌을 정도로 세계경제는 난마처럼 얽혀 있어서 작은 불씨 하나라도 로키산맥을 불태울 수 있다.

시장 신뢰 가장 중요
고위험·고수익 거래를 통한 차익은 소수의 금융인이 즐기지만 초대형 화재로 인한 피해는 전세계 시민에게 고통을 안긴다. 그래서 더욱 세심한 감독과 도덕적 해이를 막는 노력을 해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그림자금융의 실패에도 공적자금을 투입했는데, 이에 따라 개별 은행의 리스크만이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체를 보호하는 ‘거시건전성 접근’(Macroprudential Approach)이 일반화됐다. 이런 노력 역시 버냉키가 강조한 신용 네트워크 붕괴의 부정적 결과와 다양한 개입 비용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2022년 노벨경제학상 위원회는 전세계 정책 입안자들이 시장참여자들의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은행 및 그림자금융은 본질적으로 소문에 취약하기에 소중한 신용관계를 유지하려면 신뢰가 가장 필수 요소라는 지적이다. 검사 출신의 김진태 강원도지사처럼 정치적 계산에만 능한 사람들이 쉽게 놓치는 대목이다. 전임자를 악마화해 정치적 차별화를 꾀하려던 그의 사적인 욕심에 나라 경제가 거덜 날 뻔했다.
신뢰의 기본 전제는 투명한 소통인데, 소수가 밀실에 모여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는 데 익숙한 검사 집단은 본능적으로 투명한 소통을 꺼린다. 검찰 만능주의와 무오류 신화에 빠진 이들은 경제도 자기들이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한다. 영국 리즈 트러스 정부가 감세정책을 추진했다가 금융위기에 빠질 뻔한 걸 보면서도 감세정책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외생변수에 대처하기도 버거운 시점에 무모한 불장난으로 스스로 불씨가 되려 한다. 불안하다. 

* 노벨경제학상은 뒤늦게 따로 태어난 사생아 같은 노벨상이지만 현대 자본주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같은 존재다.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업적과 관련 논쟁을 통해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본다. 너무 전문적이지 않은 상식의 수준을 지향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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