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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손실 부담으로 물꼬 트고 선순환 정착
[CULTURE & BIZ] 영화산업 벤처투자 열기
[151호] 2022년 11월 01일 (화)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영화산업에 처음 진출한 금융자본인 일신창업투자가 투자해 큰 성공을 거둔 1996년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포스터. 신씨네 제공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대기업이 영화산업에서 철수한 뒤 그 공백을 채운 것은 금융자본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김대중 정부는 새로운 경제성장 패러다임으로 벤처투자와 문화산업 진흥을 내걸고 지원을 강화했다. 이때 마련된 문화산업 지원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문화산업진흥기금 설치, 영화·문화산업 투자 세제지원 혜택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문화산업 지원을 위해 1999년 500억원을 출자해 문화산업진흥기금을 만들었다. 문화산업진흥기금은 2006년 폐지 때까지 1905억원 규모로 확대된 제법 규모가 큰 기금이었다. 이 기금으로 문화산업 지원사업 대부분이 실행됐고 대출과 투자도 이뤄졌다.
1999년부터 중소기업창업투자조합, 신기술투자조합, 문화산업전문투자조합 등 펀드들이 문화산업에 투자하면 제조업 투자 때 제공하는 세제 혜택으로 민간투자를 촉진했다. 사실 영상산업 투자에 법인세 감면이나 세무조사 유예 같은 혜택을 주는 것은 김영상 정부 때인 1995년에 마련됐다. 하지만 여러 법·제도에서 규정하는 영화산업의 분류 기준이 달라 실질적 지원은 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어떤 법에선 영화산업을 서비스업으로 분류했다. 서비스업은 ‘향락 산업’이어서 금융자본이 공식적으로 투자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여러 부처가 충돌하는 제도를 손봐 1999년 영화를 ‘준제조업’으로 규정해 투자의 길을 터줬다. 정책은 디테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스닥 열풍
특히 당시는 벤처투자 지원정책이 많이 늘어나던 때였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시작한 김대중 정부는 정보기술(IT) 벤처기업 육성을 목표로 내걸고 1999년 5월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코스닥시장 등록 요건을 완화하고, 코스닥에 등록한 중소·벤처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벤처투자 시장에 자금이 많이 몰렸다.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등 경기부양 정책으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고, 코스닥 투자에 성공한 뉴스도 쏟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나스닥에서도 IT 투자 붐이 일던 때라 우리나라에 그 여파가 미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산업 투자에도 세제 혜택을 준다는 발표가 나오자 많은 벤처캐피털이 관심 갖기 시작했다. 벤처캐피털의 시각에서 문화산업 투자는 이점이 적지 않았다. 우선 시장의 큰손이던 대기업이 외환위기를 계기로 철수해 영화계에 뚜렷한 투자자가 없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경쟁 대상이 없다는 것은 큰 강점이었다. 영화 분야는 흥행에 대한 위험 예측이 어렵지만 몇 번에 한 번은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점도 벤처캐피털의 구미에 맞았다. 대기업은 투자하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 퇴출도 빨랐다. 하지만 벤처투자에선 여럿 가운데 하나만 성공하면 된다는 ‘포트폴리오’의 관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영화 같은 분야는 투자 기간이 1년 안팎으로 짧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제조업 투자의 자본 회수 기간은 짧아야 4~5년, 길면 7년 이상이었다. 그런데 벤처 펀드는 한번 조성하면 보통 5~7년간 운용된다. 이 기간에 자금이 계속 투자에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투자 대상을 찾는 시간이 길어지면 투자금은 펀드 안에서 잠시 쉬어야 한다. 이럴 때 잠깐씩 영화에 투자하고 회수할 수 있다면 자금 활용 측면에서 나쁘지 않아 보였다. 영화 제작 후반부에 투자하면 3~4개월 만에도 투자금이 회수되기 때문이다.

   
▲ 한국 영화 최고의 르네상스 시기인 200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상전문투자조합
영화산업에 처음 진출한 금융자본은 1995년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 투자한 일신창업투자였다. 이 영화가 1996년 서울 관객 45만 명 이상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면서 다른 창업투자사들도 속속 영화산업에 진출했다. 1996년 장은창투·한림창투 등, 1998년 미래창투·국민기술금융·삼부파이낸스, 1999년 무한기술투자·KTB네트워크 등이 영화 투자를 시작했다.
벤처캐피털의 영화 투자 진출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영화는 여전히 ‘딴따라’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정부 부처가 영화에 투자하는 창투사에 “왜 향락 산업에 투자하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정도였다. 당시 영화 투자를 이끌었던 일신창투 김승범 심사역의 회고에 따르면 부처와 금융계를 돌아다니며 영화가 연관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벤처투자자들의 영화 투자는 성공적이었다. 이들은 이전의 대기업들과 달리 조직이 작고 가벼웠다. 심사역 3~4명이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영화와 잘 맞았다. 영화는 트렌드에 민감한 분야여서 빠른 의사결정이 성공을 좌우한다. 영화인들에게는 투자 결정을 빨리 내리고 제작 사항을 일임하는 금융인이 더 좋았다. 대기업은 비디오 판권, 지방 배급권 등 여러 권리를 고려하느라 투자 결정이 더디고 모든 권한을 다 쥐려 했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의 영화 투자가 급물살을 탄 것은 1998년 9월 미래창투가 미래영상벤처1호라는 영상전문투자조합을 결성하면서다. 미래영상벤처1호는 박현주 현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영화기획사 신씨네와 함께 50억원 규모로 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영상전문투자조합이다. 규정에 따라 영화 등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인 이 조합은 정부 출자와 세제 혜택을 받는 대신 해당 분야에 일정 비율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정부 산하기관과 민간 벤처가 함께 출자해 조합을 결성하면 펀드가 유지되는 동안 영화 투자 비중이 50~70% 되도록 하는 것이다.
영상전문투자조합은 장기적인 영화 제작금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영화계는 영화의 흥행 리스크가 크기에 자금을 안정적으로 많이 확보해놓고 그 안에서 길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줄곧 주장했다. 여러 개로 분산투자한 뒤 한두 개의 성공으로 나머지 실패를 보전하는 벤처의 포트폴리오 투자와 마찬가지다. 장기 투자를 위해 벤처의 자금 운용 방식을 응용하자는 영화계의 아이디어가 영상전문투자조합으로 결실을 보았다.
정부는 영상전문투자조합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 보완책을 마련했다. 정부가 실패 위험을 더 떠안기 위해 ‘우선 손실 충당 조건’으로 조합에 출자했다. 해산 시점의 투자조합 손해를 정부가 민간투자자보다 먼저 감수한다는 의미다. 영상산업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중소기업 창업지원법상 투자로 인정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업 벤처투자와 달리 영화는 대부분 프로젝트 투자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당근
무엇보다 정부로서는 영상전문투자조합 제도로 ‘민간투자 활성화’라는 문화산업 금융·투자 정책의 기본 방향을 설정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영화를 비롯해 콘텐츠산업은 흥행 리스크 때문에 민간의 자발적 투자가 원활하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런 부분을 정부가 돈과 지원으로 메울 수는 없었다. 대신 정부가 종잣돈을 먼저 내서 위험을 부담하고 민간투자를 유인하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전문적인 투자 결정과 관리의 어려움을 투자조합이라는 외부 조직에 위탁하는 형태로 풀어가려 했다는 점도 중요한 선택이었다. 문화산업은 어떤 분야보다 전문가의 안목이 필요하고, 투자는 더 그렇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김대중 정부의 ‘팔길이 원칙’이 도입됐다. 이렇게 정부는 출자만 하고 펀드 운용은 매칭 투자를 한 민간 창투사에 맡기는 형태가 정착됐다. 이때부터 펀드 운용을 맡은 벤처투자자들이 경험을 늘리고 영화 투자를 지금까지 해오며 한국 영화산업의 밑거름을 만들었다.
벤처캐피털이 영화에 투자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한국 정부는 투자 기회를 찾는 벤처캐피털에 영화라는 새로운 ‘위험 산업’을 제시하며 당근을 던졌다. 이들의 투자가 쌓여 영화산업은 풍부한 제작 기회를 얻었다. 한국 영화 최고의 르네상스라고 일컫는 2002~2003년은 금융자본 유입으로 제작비 조달 환경이 어느 해보다 좋았던 시기다. 200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모두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세 감독은 전작에서 흥행 실패를 경험했거나 초짜 감독에 불과했다. 지금이라면 기회를 얻기 어려운 신인이었다. 이런 감독들에게 기꺼이 제작 기회를 부여할 정도로 당시 환경은 우호적이었다. 물론 이후 많은 실패도 거듭했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분투한 영화기획자와 감독만큼, 이들을 믿고 따르며 혹은 싸우면서 자금을 공급한 금융자본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류는 불가능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 김윤지 연구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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