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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살부터 배우는 페미니즘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51호] 2022년 11월 01일 (화) 박중언 parkje@hani.co.kr
   
▲ 2020년 방영된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포스터. 엄마의 졸혼 선언을 계기로 감춰졌던 가족 이야기가 차례로 전개된다. 티브이엔 제공

올해 환갑을 맞은 친구들이 다수인 중견기업 P부장의 고교 동창 만남에서는 부부 관계가 이따금 술자리 안줏감으로 오른다. 가벼운 부인 뒷담화와 더불어 집안의 ‘실세’가 된 부인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한 갖가지 요령도 주고받는다. 경기도 일산에서 부인의 요양원 운영을 돕는 친구가 어느 날 문제를 하나 냈다. “요양원에 함께 들어온 부부 가운데 같은 방을 쓰지 않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노년 부부의 허실을 상대적으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P부장은 넉넉잡아 절반으로 봤다. 빙긋이 웃으며 내놓은 친구의 답변은 7 대 3이었다. 7이 아니라 3이 같은 방을 쓰는 부부였다. “설마!” 참석자들은 일제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실적 선택
거동이 힘든데 집에서 돌봄을 받을 수 없어 요양원을 찾은 노년 부부의 이런 모습은 노후의 원만한 부부 관계 유지가 참으로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요즘 황혼이혼 증가는 전혀 새롭지 않은 소식이다. 2021년 통계를 보면 이혼율과 건수 모두 줄었다. 유일하게 60살 이상(남성 기준)에서만 늘었다. 인구 1천 명당 이혼율도 60살 이상만 전년보다 증가(4.3%)했다. 또 50살 이상의 이혼이 전체의 절반(49.5%)을 차지했다.
가끔 이혼을 거부하는 아내를 폭행하거나 외도하고도 뻔뻔하게 이혼하자며 목소리를 높이는 남성들의 얘기가 보도된다. 하지만 노후에 이혼을 요구하는 쪽은 대부분 여성이다. 나이 든 남성일수록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에서 자신이 얼마나 기득권을 누리는지 모른다. 그러니 응당한 업보라고 하겠다. 애정의 자취는 흔적을 찾기 어렵고 자녀 양육이라는 공통 과제도 끝내, 더는 참고 살지 않겠다는 여성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혼까지 가지 않았다 해도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한방에서 지내는 게 차라리 낫다고 여길 만큼 배우자에게 넌더리를 내고 기존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아내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황혼이혼이 노후생활의 중대한 리스크라는 점은 새겨둘 필요가 있다. 돈벌이를 핑계로 집안일을 아내에게 떠맡기다시피 하면서 자기 한 몸 건사하는 것도 익히지 못한 남성에게는 생존마저 위태롭게 하는 위험이다. 노후에 더욱 소중해지는 가족 관계가 파탄 나고, 정신·정서적 타격이 극심하다. 경제 손실 또한 만만치 않다. 이혼하면 한쪽의 특별한 귀책사유가 없는 한, 보유 재산은 물론 함께 산 기간의 국민연금도 절반으로 나눈다. 집 한 채 외에 노후자금이 별로 없는 평범한 노년 부부가 살림살이를 쪼개면 가난한 독거노인으로 전락하기 쉽다.
관계를 끊어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혼인 상태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 법적 이혼만 피한 졸혼(결혼졸업)을 비롯한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또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이거나 그림자만 스쳐도 미워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닐 때는 한집에 사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1인가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요즘은 독립된 방을 갖고 거실·부엌 등을 같이 쓰는 공유주거(셰어하우스)가 흔하다. 거기서 배우자가 아니라 동거인이나 세입자와 같이 지낸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쿨하게’ 각자의 노후생활을 즐기다가 이따금 필요할 때 함께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지적과 기대치, 의존도를 줄이는 등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은 관계 유지의 부담을 한결 가볍게 한다. 배우자를 몇십 년 어울린 친구나 동료로 생각하면 롤러코스터를 타듯 애증이 엇갈리는 심적 고통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한혜경 전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인터넷 칼럼에서 “주변에 은퇴 뒤 갑자기 친한 척하면서 같이 놀자고 하고 집안일에도 관심을 가지는 등 평소와 다른 태도를 보이는 남편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여자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집안에서 ‘을’이 된 은퇴 남편의 생존전략이 가동된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개과천선’할 리도 없거니와 “그런들 관심 없다는 게 대다수 아내의 반응”이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잔머리 굴리지 말고 △집안일을 ‘돕는 게 아니라 하고’ △제 앞가림을 하며 △혼자서도 놀 수 있기를 그는 주문한다. 아내들도 헤어질 결심이 아니라면 ‘돌아오려는 탕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게 “현실적 계산”이다.

인격의 성장
법정 정년으로 다수가 공식 은퇴하는 나이인 60살은 ‘관계의 재구성’을 피할 수 없는 시기다. 남편과 아내의 역학 관계에서 가장 큰 변화가 생긴다. 삶의 주무대가 직장에서 가정으로 바뀌는 남편은 이혼당하지 않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도 페미니즘(여성주의)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대학 진학과 취업, 결혼 등의 어려움 때문에 자신들이 역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젊은 남성들의 공격과 달리, 페미니즘은 과격한 사상이 아니다. 성별로 생기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당연한 견해일 뿐이다. 성평등을 위해선 구조적이고 관습적인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는 여성의 자각을 촉구하고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는 게 필수여서 여성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자연스럽다.
남성 중심의 공고한 기득권 구조에 젖어 살던 남성이 평등한 남녀 관계를 저절로 깨치기는 힘들다. 여성의 눈높이,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면 무엇이 차별인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또 상대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가 행동으로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페미니즘의 ‘세례’가 필요한 이유다. 페미니즘은 내 권리만큼 다른 이의 권리가 중요하다는 보편적 사고다.
나이 들면 호르몬의 변화로 남성은 여성성, 여성은 남성성을 확연하게 더 띤다. 생물학적 남녀 차이가 크게 줄어든다. 자손의 번식과 종의 보존이라는 유전자의 절대명령을 이행할 시기가 지났기 때문이다. 이성을 향한 끌림은 남아 있지만, 남녀라는 구별보다 동등한 인격체라는 공통분모로 수렴된다. 페미니즘을 배우는 것은 이런 자연의 섭리에도 맞다. 나이 들어도 정신적 성장은 계속할 수 있다. 요구당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성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더 나은 인격체로 성숙해가는 길이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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