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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나라 금리인상에 생존 내몰린 빈곤국
[ANALYSIS] 몰려오는 세계 금융위기
[150호] 2022년 10월 01일 (토) 토마스 피셔만 economyinsight@hani.co.kr

서구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개발도상국들은 국가부도의 위협에 직면했다. 이들 나라에서는 서구의 금융질서에 대한 신뢰가 점차 줄고 있다.

토마스 피셔만 Thomas Fischermann <차이트> 기자

   
 

세계 금융시장에 대위기가 도래하며, 누구나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계은행이 ‘국가부채 위기’를 경고하는가 하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채무불이행(디폴트) 문턱’에 다다른 국가가 늘어나는 것을 알린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도미노효과를 수반할 가능성이 있는 광범위한 부채 위기”라고 확실한 진단을 내렸고, 미국 월스트리트의 제이피모건은행은 투자자들이 개발도상국 채권을 매도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음을 지적했다. “매도를 이처럼 서두르는 건 지난 17년간 전혀 볼 수 없었던 현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국가가 현재 금융 문제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IMF는 세계 최빈국 중 60%가 과다부채 직전 상태까지 와 있다고 추정한다. 여기에는 세네갈이나 가나 같은 국가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경제 사정이 좀더 나은 개발도상국 가운데 30%도 이미 위험선 안으로 들어와 있다. 아르헨티나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들이다.
앞에서 언급한 두 경우 중 첫 번째 국가들은 이미 채무불이행 상태가 됐다. 잠비아가 2020년 말 코로나19 사태로 최초의 국가부도를 통보한 뒤, 차드와 에티오피아 같은 가난한 나라들도 채무상환 유예를 요청했다. 최근에는 스리랑카가 국가채무 상환을 중지했다. 식량 부족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정부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국민을 먹여 살리느냐, 아니면 외국의 금융자본 국가에 이자와 원금을 내느냐? 정부는 기아를 막는 쪽을 택했다.

   
▲ 하카인데 히칠레마 잠비아 대통령(오른쪽)이 2022년 7월7일 잠비아 루사카에서 이탈리아 대통령 세르조 마타렐라를 만나고 있다. 잠비아는 코로나19 사태로 국가부도를 선언한 첫 번째 나라다. REUTERS

신음하는 개도국
이제 관건은 바로 최악의 상황을 막는 것, 그리고 이 책임을 져야 할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금융위기 때 가난한 국가의 대표들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IMF와 민간투자자, 그리고 채권국이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여러 해 동안 이행했는데도 금융위기 조짐이 보이기만 하면 즉시 자본이 빠져나간다. 기간산업 육성부터 기업 확장 등 여러 프로젝트를 지원하던 국내외 투자금의 흐름이 딱 끊겨버린다. 그런 상황이 되면 서구의 투자자들은 종종 해당 국가에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방만한 지출, 사회 특권층의 부패, 전체적인 경제정책 실패 등이 그 원인이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2022년에 닥친 이 위기는 어디서 비롯했는지 자명하다. 무엇보다 서구 국가들, 정확히 말하면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미국 워싱턴 같은 금융 수도가 제시한 높은 금리가 주요 원인이다. 자국 통화의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이 나라들이 기준금리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정책의 결과로 어려움을 겪는 건 개발도상국들이다. 그 이유는 첫째, 이 가운데 상당수 국가가 달러로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그 달러화가 지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융정책으로 비싸지고, 결과적으로 채무국이 상환해야 할 빚의 액수도 많아지고 있다.
둘째, 이자율이 오르면 빈곤국들은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아르헨티나, 수단 또는 과테말라의 채권을 누군가가 사도록 하기 위해서 이들 나라가 제시하는 금리가 투자자에게 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매력적인 프리미엄에는 해당 채무가 상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위험이 포함돼 있다. 반면에 이자율이 전세계적으로 치솟으면서 투자자들은 위험이 비교적 적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다시금 수익성 높은 채권 상품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결과 많은 투자자는 이제 개발도상국 채권 시장에서 자금을 빼내어 서구 금융시장에서 매수에 나서고 있다.
석유를 수출하는 몇몇 운 좋은 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은 (코로나19 등으로) 불운한 몇 년을 보내던 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에 몇몇 국가의 생존이 달린 국제 원자재 시장은 심하게 부침했다. 원자재를 사들여야 하는 나라들은 난방과 전력 원료, 주요 식량을 지급 가능한 가격으로 수입할 수 있는지가 생존을 결정하는 관건이다. 수입에 실패하면 국내에 심각한 불안과 위기가 도래할 위험이 있다.
남반구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발생한 위기로 이미 한 차례 크게 타격을 받았다. 이 지역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의료비의 폭발적 증가와 실업 사태가 재정이 넉넉한 서구 국가들보다 훨씬 더 큰 문제로 등장했다. 중국 상하이 같은 주요 무역중심지가 마비되고 항구와 해로가 막히는가 하면, 항공 물류도 특별히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수출과 수입에만 의존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게다가 관광객까지 발길이 끊어졌다.
그럼 지금 상황은 어떤가? 앞으로 몇 개월 안에 빈곤국들의 국가부도 위기가 도미노처럼 발생하는데도 긴급대출이라든가 그 밖의 프로그램으로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이는 엄청난 인도주의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식량난과 얼어 죽는 사람들이 생기고, 공급망 병목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다른 위험도 내재한다. 개발도상국에 이런 위기가 닥치면 전세계 금융시스템의 안전성이 위협받는다. 한 지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다른 나라로까지 퍼지는 현상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개발도상국의 위기로 다른 나라의 주요 은행이나 채권자들이 어려움에 부닥치는 이유도 있지만, 투자자들이 위기 소식에 패닉 상태에 빠져 아주 안전한 국가에서도 투자금을 황황히 회수한다.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취약계층 지원을 요구하며 “그들의 부유함은 우리의 빈곤”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서구의 금리인상으로 아르헨티나 같은 개발도상국도 디폴트 위기가 커지고 있다. REUTERS

서구 중심 금융질서의 위기
같은 위기가 최빈국에 닥쳤을 경우 위험은 그만큼 크지 않다. 이들의 총부채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채 규모가 좀더 큰 개발도상국이 위기를 맞는 순간,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흔들 위험은 급속히 커진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 전망은 계속 하향 조정됐다. 이 국가들의 2022~ 2023년 경제성장률은 애초 평균 5%로 예상됐다. 그러나 현재는 4% 미만으로 추정한다. 만약 이들 나라의 대형 금융기관이 파산한다면 상황은 아주 위험해진다. 그들이 빌린 자금의 회수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가 금융기관들을 구제해야 하는데, 이로써 국가재정이 다시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서서히 다가오는 이 위기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서구 중심의 세계 금융질서에 대한 평판이 심각히 손상되고 장기적으로는 영원히 신뢰를 상실할 위험이 있다. 남반구 개발도상국 사이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서구의 채무 관리 방식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다.
서구의 채무 관리 방식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 사안의 한편에는 이른바 파리클럽(Paris Club·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을 중심으로 발족한 채권국가 모임)을 결성하고 이 국제회의체에서 공동으로 채무 재조정을 협상하는 대규모 채권자들, 즉 부유한 국가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외에 워싱턴의 브레턴우즈금융기관(Bretton-Woods-Institution), 곧 세계은행과 IMF, 그리고 주요 산업국가들의 재무부 장관 국제회의가 여기에 속한다.
맞은편에는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의 금융전문가·정치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1980년대에 서구 정치가와 금융관리자들이 미국의 대대적인 금리인상으로 세계 부채 위기를 일으켰던 일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 때, 미국발 신자유주의 강령을 철저히 지키지 않은 국가들이 오히려 위기에서 다시 벗어날 수 있었던 사실도 생생히 기억한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는 투자가들이 운용하는 자본의 흐름을 엄격하게 통제했는데, 이는 당시 신봉되던 서구 이념과는 정반대의 방법이었다. 서구 이념을 고수한 결과는 이후에도 여지없이 몹시 가난한 나라의 채무 위기로 귀결됐고, 위기가 왔을 때 구조의 손길은 너무 늦게 와주곤 했다.
2022년 상황도 비슷하다. 개발도상국의 채무 위기는 이미 고지돼 있었다. 주요 20개국(G20)의 재무장관들이 7월 중순 인도네시아 발리에 모였을 때,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가 참가자들에게 남반구 국가들의 비참한 상황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G20 장관들은 이 주제에 관해 공동성명 하나 내지 않았다. 이들의 경제외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논의로 분주할 따름이었다.
서구의 세계 금융질서는 현재 매우 위험한 처지에 있다. 과거 몇십 년 동안과는 달리,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들은 이제 부유한 서구가 아닌 다른 대체 세력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2000년으로 넘어오면서 중국은 가난한 나라들에 고액 대출을 해주기 시작했다. 중국 나름의 조건이 달린 대출이었다.
중국 국책은행이나 투자기관과 맺는 계약은 언제나 비밀계약이다. 그럼에도 계약 조건의 일부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지급이 어려운 상황이 일어나면 우선 중국인에 대한 채무를 상환하고 그 외 나라들에 후순위로 지급해야 한다는 항목이 계약서에 흔히 들어 있다. 부채 재조정 역시 중국과 직접 상의해야 한다. 협상에서는 최대한 채무 기간 연장까지 논의할 수 있지만 부채 탕감은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중국의 투명하지 못한 거래 과정은 서구 정치가들과 금융시장 전문가들로부터 비난받는다. 서구도 요즘 혼란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파리클럽의 부유한 국가들은 채무국의 금융위기에 비교적 신속히 대응했고, 그 기간은 며칠에서 몇 주 정도 걸렸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주요 채권국들 안에 여러 상반된 이익이 공존한다.
게다가 국가 단위의 대출금 지원은 과거보다 중요도가 훨씬 줄었다. 외채의 경우 민간투자자 자금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 비율이 점차 늘고 있다. 채권을 매입하는 서구 국가의 민간펀드가 그런 예다. 글로벌 원자재 재벌그룹이 작은 국가의 채무 중 대부분을 보유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채무 재조정 협상이 열리면 채권자 전체가 모여야 한다. 어떤 참가자는 협상에서 옹골차게 흥정하는가 하면, 그룹을 형성해 행동하거나 법정으로 향하는 경우도 있다.

   
▲ 2022년 7월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오른쪽)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이 회의에서 남반구 국가들이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REUTERS

중국 협조 없이 극복 불가능
이 시스템을 좀더 잘 기능하도록 개선하려는 노력은 지금까지 많이 있었지만 성사된 것은 많지 않다. 다만 코로나19 기간에 G20 국가들은 조금이나마 진보해서 ‘채무 재조정을 위한 기본원칙’이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차드와 그 밖의 나라에서 시험 중인 이 절차는 최빈국만을 대상으로 한다.
다음번 금융 대위기가 닥치면 서구 국가들만의 힘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서구는 적어도 중국과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희망을 주는 건, 비록 코로나19 위기에 압박받아서이긴 하지만 동서 진영의 협력이 지금까지 두 번이나 성사됐다는 사실이다. 2020년 에콰도르가 채무상환 일정을 조정했고, 다음해인 2021년에는 수리남이 같은 절차를 밟았다. 두 사례 모두, 불편하지만 자신감 있고 영향력 있는 중국이 협상 테이블에 함께했다.

ⓒ Die Zeit 2022년 제31호
Auf den Schultern der Armen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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