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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머리 따뜻한 가슴
[경제와 책]
[11호] 2011년 03월 01일 (화) 조계완 economyinsight@hani.co.kr

조계완 국내편집장
 
“어떤 소년이 자신이 직접 먹기 위해 검은 딸기를 딸 때 따는 행위 자체가 잠시 동안은 즐거울 수 있다. 그리고 좀더 긴 시간 동안은 먹는 기쁨이 따는 수고를 보상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가 상당히 먹고 나면 더 먹고 싶은 욕망은 체감한다. 반면에 딸기를 따는 일이 피로를 야기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실제로 피로라기보다는 단조로운 느낌일 수 있다. 마침내 놀고 싶은 열망과 따는 일에 대한 싫증이 먹고 싶은 욕망을 정확하게 상쇄할 때 균형에 도달한다. 여기서 과일을 따서 얻을 수 있는 만족은 극대치에 도달한다.”(<경제학원리> 2권, 23쪽) 마셜은 이 짧은 사례를 통해 한계효용체감·한계효용균등에 의한 소비자의 극대화 선택과 균형 등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기업 성장이 나무 성장에 빗대 간명하게 분석된다. “숲 속의 많은 어린 나무들이 도중에 쓰러지고, 소수만이 살아남는다. 소수의 나무들은 해마다 더욱 강해지고, 키가 자라면서 좀더 많은 햇빛과 공기를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주변의 나무들보다 더 높게 자라며, 영원히 자랄 것처럼 보인다. 어떤 나무는 더 오랫동안 활력을 유지하고 더 크게 자랄 것이다 그러나 조만간 그들도 나이에는 어쩔 수 없게 된다. 비록 키가 큰 나무들이 경쟁상대들보다 햇빛과 공기에 더 잘 접근할 수 있지만, 점차 생명력을 상실한다. 그리고 차례로 젊음의 활력을 가지고 있는 다른 나무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반면, 거대한 주식회사는 종종 정체되긴 하지만 나무와는 달리 쉽사리 사멸하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날 나무의 성장이 보여주는 규칙이 예외 없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규칙은 여전히 다수의 산업과 업종에서 유효하다.”(1권, 404∼405쪽) 여기서 보듯 마셜은 자연과 인간의 일상 행동을 통해 경제를 분석하고 있다. 특히 경제는 이런저런 경제법칙이 지배하는 생물로 묘사된다.
   
<경제학원리 1, 2> 앨프레드 마셜 지음
백영현 옮김 한길사 | 2011
마셜은 <경제학원리>(초판 1890년) 제8판 서문에서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는 표어는 경제학 원론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경제적 진화는 점진적이며 경제의 전진운동은 결코 돌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촉진될지라도 진보는 점진적이고 상대적으로 완만할 수밖에 없다.”(334쪽) 그런 점에서 마셜은 급진적 사상을 경계한, 온건한 근대 주류 경제학의 선생이었다. 이는 ‘세트리스 파리부스’(Cetris Paribus·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엿보인다. “시간이라는 요소는 경제연구가 어려운 주된 원인으로서, 우리는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밖에 없다. 복잡한 문제를 분해할 때 우리는 연구를 방해하는 교란요인들을 당분간 ‘세트리스 파리부스’라고 부르는 울타리에 격리시킨다. …단계마다 좀더 많은 것들이 울타리에서 풀려날 수 있으며, 현실적이고 정밀한 논의가 좀더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2권, 63쪽)
다 알다시피 이 책은 현대 미시경제학의 원론적 분석 도구들을 집대성한 경제학 사상 기념비적 저작으로, 마셜은 피구, 케인스로 이어지는 케임브리지학파의 창시자다. 미시경제학에서 등장하는 각종 용어들- 한계효용체감·한계효용균등, 소비자잉여, 수익체감·수익체증, 대표적 생산자·소비자, 장기와 단기, 정태적 균형(가격·생산량), 비교정태, 부분균형, 세금의 귀착, 대체원리 등- 이 경험적으로 관찰되고,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에 기반해 흥미롭게 설명한다. 다소 어려운 경제 분석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추상적 개념화가 아니라, 애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모범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대중적이고 평이한 필치로 쓰여 있다. 예컨대 마셜은 운석에 대한 가정에 기초해 재화의 가치·가격, 생산자잉여, 자원의 최적배분 등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한 2천∼3천 개의 대형 운석 소나기가 한 장소에 쏟아졌다고 하자. 첫째, 그것들 모두 단 한 번에 채집되었고 아무리 탐색해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고 가정한다. 둘째, 다음으로 운석이 단 한 번에 모두 발견되지 않았고 지구표면에 걸쳐 공유지에 흩어져 있었다고 가정한다. 셋째, 이번에는 운석이 쉽게 부서지고 조만간 파괴되며 그 매장량이 무한히 많아서 추가적인 공급이 거의 일률적인 비용으로 빠르고 확실하게 획득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2권, 제9장)
마셜은 책에서 수학적 언어를 적용한 도표와 수식은 주석이나 별도의 부록에 수록한다. “많은 중요한 원리들은 도표를 통해 좀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호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저자를 제외한 누구에게나 힘겨운 일이 될 것이다. 어느 누구든 경제이론의 수학으로의 지리한 번역을 독해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보낼지 의문이다.” 마셜의 제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어디에선가 마셜이 수식과 그래프를 한구석으로 밀쳐내 처리하고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한 바 있다.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역시 수식과 그래프는 거의 없다. <경제학원리>는 경제사상사에서 <국부론>과 <일반이론>을 잇는 중간 다리로서, 이 세 고전 모두 수학적 수식과 도표의 사용을 매우 절제하거나 필요한 경우 주석에 처리하고 있다. 사실 경제학에서 수학과 도표는 말로 된 것을 단지 종이를 절약하면서 간명하게 설명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수요-공급 균형에 관한 마셜의 유명한 ‘가위의 날’을 보자. “가치가 효용에 의해 규정되는지 생산비에 의해 규정되는지 논쟁하는 것처럼, 우리는 종이를 자르는 것이 가위의 윗날인지 아랫날인지 정당하게 논쟁할 수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한쪽 날은 가만히 쥐고 다른 쪽 날을 움직여 종이를 자를 때, 우리는 두 번째 날에 의해 절단되었다고 무심결에 간단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것은 아니다.”(2권, 42쪽) 사실 우리는 ‘수요-공급’만 앵무새처럼 되뇌어도 복잡한 경제 분석들을 대부분 이해할 수 있다. 즉 수요라는 왼쪽 날과 공급이라는 오른쪽 날을 동시에 가지면 경제의 균형을 어렵지 않게 분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학은 어떻게 ‘경제과학’이 될 수 있는가? “여러 가지 작은 만족 사이에서 망설이는 사람이 귀갓길에 스친 가난한 병자를 잠시 생각한 다음 자신의 육체적 만족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인정 어린 행동을 하고 타인의 기쁨에 만족해야 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약간의 시간을 보낸다고 가정해보자. 경제학자는 그 심적 상태를 그 자체에 대해서보다는 외면적 표출을 통해 연구한다. …인간 동기의 힘이, 원하는 만족을 얻기 위해 그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금액 또는 그로 하여금 일정한 노고를 감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요구되는 금액에 의해 근사적으로 측정될 수 있다면 과학적 방법과 평가를 적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두 사람이 흡연을 통해 얻는 쾌락을 직접 비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동일인이 서로 다른 시점에 흡연을 통해 얻는 쾌락을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2∼3펜스를 시가에 지출할 것인지, 차 한잔에 지출할 것인지, 집에까지 걸어가는 대신 버스를 타고 가는 데 지출할 것인지 망설이고 있다면 그가 각각의 경우에 대해 동일한 쾌락을 기대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셜에게는 경제학이 무엇이고, 경제학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경제학은 부에 대한 이기적 욕망을 제외한 어떤 동기도 취급하지 않으며, 심지어 냉혹한 이기적 정책을 주입시킨다는 생각은 오해이다. 생활의 가장 순수한 사업적인 관계마저도 정직과 신뢰를 전제로 한다. 모든 경우에 경제학자들은 추상적 또는 경제적 인간이 아니라 육신을 가진 현실 속의 인간을 다룬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행동의 방향을 이해하고, 이기적이든 비이기적이든 고결하든 비열하든 목표에 맞게 행동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우리는 인간행동의 경향에 대한 어떤 관념을 반드시 구성해야 한다. 그것을 경솔하게 구상하든지 신중하게 구상하든지 선택해야 한다. 과업이 힘들면 힘들수록, 견실하고 끈질긴 탐구의 필요성뿐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인간행동의 경향에 대한 용의주도한 추정 또는 잠정적인 법칙을 고안할 필요성도 더욱 커진다.”(1권, 75쪽)
마셜은 책 제1판 서문에서 “(냉정하게 보이는) 경제학자라도 윤리적 힘 역시 고려해야 한다. 윤리적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세심하고 정력적으로 그러나 비정하고 이기적으로 금전상의 이득을 추구하는 경제인의 행동과 관련된 추상적 과학을 구성하려는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인간이 노역과 희생을 감내할 때, 가족을 위한 비이기적 욕망보다 더 강력한 동기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이기심뿐 아니라 윤리와 동정심 역시 강조한 마셜은 1885년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에 임용되면서 행한 ‘경제학의 현주소’라는 연설에서 “주변의 현실과 고통스런 문제들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가진 ‘차가운 머리, 따뜻한 가슴’(cool heads but warm hearts)을 가진 제자들을 길러내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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