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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문턱 높아져 ‘작은 영화’ 제작 위축 우려
[CULTURE & BIZ] 영화 표값 인상의 여파
[150호] 2022년 10월 01일 (토)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 1903년 개봉해 10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상영돼 대흥행을 거둔 12분짜리 서부영화 <대열차 강도> 포스터. 위키피디아

역사상 최초로 알려진 영화 상영은 1895년 프랑스 파리의 카페에서 진행됐다. 이후 100년이 넘도록 영화는 줄곧 싸고 접근하기 쉬운 오락거리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의 발명가이자 영화감독 뤼미에르 형제가 받은 상영료는 1프랑이었다. 당시 대중소설 한 권 가격이 0.5~1프랑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사람들은 재미있는 책 대신 영화를 선택했다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첫 상영회 때 30명 남짓이던 관객은 입소문을 타고 일주일 사이에 7천 명으로 불어났다. 뤼미에르 형제의 성공에 고무된 각국의 사업가들이 영화를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삼으면서 영화산업 시대가 열렸다.
영화는 국제적 문화산업으로 성장하면서 대중의 여가시간을 차지했던 서커스나 보드빌(노래, 춤, 마술 공연 등이 복합된 일종의 버라이어티쇼) 같은 실시간 콘텐츠를 빠르게 대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쌌기 때문이다. 실시간 콘텐츠와 가장 다른 점은 한 번만 비용을 들여 작품을 만들어놓으면 언제, 어디서, 몇 번이든 상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토머스 에디슨이나 프랑스 조르주 멜리에스 같은 사람들은 이 점에 착안했다. ‘영화를 많이 만들어 싸게 판다’는 박리다매형 사업 형태를 만들었다. 더욱이 초기 영화는 배우 출연료나 스태프 인건비도 많이 들지 않아 ‘영화 찍어내기’는 바로 수익으로 연결됐다. 초기 영화 역사에서 길이 남을 흥행작 <대열차 강도>(1903)가 좋은 예다. 이 12분짜리 영화의 제작비는 150달러였다. 현재로 따지면 4300달러(약 6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개봉 후 무려 10년간 미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상영됐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던 당시 불법 복제 필름까지 널리 퍼졌던 것을 고려하면, 수익률은 역대 최고가 아닐까 한다.

불황 시기의 벗
영화 다작 흐름이 만들어지자 극장들도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다양한 방식을 고민했다. 190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니켈로디언이라 불린 극장이 등장했다. 5센트 주화를 의미하는 ‘니켈’에 그리스어로 극장을 뜻하는 ‘오데온’을 합친 이름의 이 극장은 입장료가 단돈 5센트였다. 극장주들은 세계 곳곳에서 생산된 필름을 싸게 모아 되도록 많은 관객에게 상영했다.
싼 영화표 덕분에 문화생활에 소외됐던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영화관에 모여들었다. 영화관은 지역의 문화·사교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니켈로디언의 등장은 영화가 가장 일반적인 대중 엔터테인먼트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하는 사건이다. 영화 표값은 비록 5센트였으나 영화관에서는 맥주, 핫도그, 나초 등을 팔았다. 그 수익이 티켓 판매 못지않게 짭짤했다. 영화관은 중산층 이상에게만 허락됐던 여가와 문화생활을 노동자 계층에게도 제공했다. 토요일만 되면 한 주의 노동에 지친 사람들이 맥주와 핫도그를 들고 영화관에서 울고 웃으며 삶의 애환을 달랬다.
세계를 휩쓴 1930년대 대공황은 역설적으로 영화산업의 호재가 됐다. 장기불황으로 다른 여가생활을 포기한 사람들이 그래도 즐길 수 있었던 게 영화였다. 다른 문화산업이 침체를 겪은 것과 대조적으로 영화산업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데 기여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도 “국민의 사기가 그 어느 때보다 낮았던 대공황 시기에 국민이 단 15센트짜리 영화로 웃는 얼굴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영화계에 치사를 남겼다.
산업이 양적으로 성장하면서 대작이라고 불릴 만한 영화도 잇따라 제작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즈의 마법사> 등이 이 시기에 나왔다. 이때를 할리우드의 고전 황금시대로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산업 규모라는 양과 콘텐츠의 질이 동반 상승하면서 영화 감상은 사람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여가 선용 방법이 됐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1950년대 텔레비전이 등장해 영화산업이 휘청거린 시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주말에 극장에 가지 않고 집안 소파에 앉아 TV를 보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영화산업은 TV에 종속될 것이란 생각이 우세했다. 영화관들은 적자 탈출을 위해 표값을 올리는 방안도 검토했다.
그러나 영화업계는 가격을 올리는 쉬운 방법 대신 불확실하지만 더 적극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그 한 가지가 10대를 위한 청춘영화(틴에이저 무비)였다. 10대들은 주말에 부모와 함께 앉아 눈치 보며 TV를 시청하기보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영화관에 모여 작은 일탈을 즐기며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했다.
영화관들이 10대 눈높이에 맞춘 가격과 서비스를 내놓자 청춘영화 붐은 더욱 확산했다. 이 시기 ‘할리우드 키드’로 불리는 10대들이 문화 흐름을 바꾼 곳도 영화관이었다. 이렇듯 영화관은 언제나 사람들의 애환과 추억이 있는 공간이며 새로운 문화 흐름을 만들어내는 곳으로 우리 곁에 존재했다.
2022년 봄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며 한적했던 극장가에도 관객이 붐비기 시작했다. 다시 찾은 극장이 반가운 것도 잠시, 이를 노린 듯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표값을 일제히 올렸다. 주말 기준으로 일반관 영화 1편에 1만5천원까지 뛰었다. 한때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젊은 연인들의 낭만이 있었던 조조할인도 1만1천원이 넘는다.
표값만이 아니다. 영화관에서 왠지 먹어야 할 것 같은 매점 먹거리 가격도 일제히 올랐다. 주말에 4인가족이 영화를 보고 팝콘이나 음료를 사 먹는다면 10만원 가까이 든다. 주말에 별 계획이 없을 때 ‘가볍게 영화나 한 편 볼까’ 하는 게 점점 옛말이 되고 있다.
최근 영화 표값 상승은 영화산업에 여러 화두를 던진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소비심리 감소다. 가격이 올라 영화 소비에 고민할 수밖에 없다. 가격이 싸면 사람들이 소비 효용성에 큰 고민을 하지 않는다. 단가가 올라갈수록 합리적 소비인지 고민한다. 사람들이 블록버스터같이 표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에 몰릴 것이란 예상도 가능하다.
영화 표값 인상으로 같은 영화를 몇 차례 보는 ‘멀티 관람’도 줄어들 전망이다.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다. 2022년 6월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이번 가격 인상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탑건: 매버릭> 같은 ‘1지망’ 블록버스터 영화에 맞서 멀티 관람으로 관객을 동원하는 ‘2지망’ 영화가 점점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 국제영화제 수상과 함께 관객의 호평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씨제이이엔엠 제공

근시안적 자구책
여러 업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영화 표값이 한국 영화산업을 세계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린 숨은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 후반 일어난 한국 영화 붐에는 낮은 표값과 함께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린 이동통신사들의 마케팅이 한몫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이동통신사 할인만 잘 이용하면 2천원에 영화를 볼 수도 있었다.
영화의 관객 동원력은 영화산업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영화 표값이 평균 2만5천원인 일본 영화산업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횟수는 1년에 1.4회다. 한국인들의 4.1회에 크게 못 미친다. 상대적으로 높은 관람료는 일본 영화산업 침체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컬러TV가 도입되기 전 일본의 1인당 영화 관람 횟수가 연간 14.3회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표값이 끼치는 영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영화관의 잇따른 표값 인상이 코로나19에 따른 적자를 메우려는 근시안적 대책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같은 새로운 경쟁자에 대한 사실상의 ‘항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차라리 돈 되는 블록버스터만 개봉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는 것이다.
이렇게 관객의 진입 장벽을 높여놓으면 제작자들은 어쩔 수 없이 영화관을 포기할 것이다. 영화관에서 볼 만한 대작이 아니면 모두 알아서 OTT로 가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많은 영화 관계자에게 이번 표값 인상이 반갑지 않은 이유다. 가격인상이라는 손쉬운 방법 말고 영화관에 사람들을 불러모을 대안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당장은 가시적인 영향이 없겠지만 1~2년 뒤 과연 우리 영화산업이 어떻게 될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힘든 시기를 보낸 영화관들이 손실 만회를 위해 표값을 올리는 것을 무조건 잘못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는 역사적으로 대중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서민의 엔터테인먼트였다. 상업 공간이기 전에 영화관이 가지는 문화적 가치 또한 분명하다. 영화 표값 인상은 인플레이션 도래라는 시기적 측면이나, 코로나 이후 보복 소비 심리라는 산업적 측면, 극장의 장기적 기업가치 측면 어디에도 좋은 점이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 문동열 칼럼니스트는 업계 경력 20년 이상의 콘텐츠산업 전문가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며, 콘텐츠 제작과 금융이 전문이다.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졸업하고 LG인터넷과 SBS콘텐츠허브 등에서 방송·게임·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IBK기업은행에서는 콘텐츠 금융과 관련한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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