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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높아진 시장, 고급소비재로 공략해야
[세계는 지금] 중국
[150호] 2022년 10월 01일 (토) 이윤식 moglee@kotra.or.kr

이윤식 KOTRA 광저우무역관 차장 

   
▲ 광군제 기간인 2021년 11월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시민들이 쇼핑카트를 끌며 걸어가고 있다. REUTERS

30년 전인 1992년 8월 한국과 중국은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우리 정부는 수교를 위한 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단 6명으로 비밀수교팀을 꾸렸다. 비밀수교팀은 1992년 5월부터 네 차례 걸쳐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법으로 서울과 베이징을 오가며 비밀교섭을 진행했다. 외교부 내는 물론이고 일부 내용은 비밀수교팀 내에서도 공유하지 않을 정도의 극비를 유지하는 철통 보안 속에 회담했고, 8월24일 한-중 수교가 최종 체결됐다.

30년 전의 중국
이러한 정부의 노력 덕분에 필자는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낼 수 있었다. 1993년 1월26일 베이징에 첫발을 내디딘 뒤 받은 중국의 첫인상은 매우 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길거리에서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건 자동차보다 더 많은 수의 자전거였고, 또 그 자전거 사이로 다니는 적잖은 수의 마차와 인력거는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상당수 행인의 옷차림은 꾀죄죄했고, 중국 특유의 국방색 인민복을 입은 사람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겨울이면 베이징 하늘을 완전히 뒤덮는 검은 구름, 지금은 미세먼지라고 부를 법한 매연층으로 인해 도시 자체가 뿌옇게 보였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베이징이 가난함과 부유함이 적나라하게 공존하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상류층이나 외국인들만 살 수 있을 법한 고급 빌라촌의 담벼락 뒤쪽에는 논밭과 냄새나는 개천이 있었다. 베이징의 랜드마크이던 50~60층 높이의 징청(京城)과 징광(京廣)의 길 건너편에는 허름해서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더 어렸을 적 살았던 대만과는 차이가 매우 컸다. 얼마 알지도 못했지만, 원래 알던 ‘중국’과는 전혀 달랐다. 번자(繁字)가 아닌 간자(簡字)를 쓴다는 것, 자전거가 핵심 교통수단이라는 것, 화폐에 위안(元)보다 낮은 자오(角)와 펀(分) 단위가 있다는 것 등 모든 게 새로웠다. ‘전혀 다른 중국’을 알아야 했고, 베이징을 살펴봐야 했다. 아버지를 졸라 산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 시내를 누볐다.
자전거를 타다보니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이 눈에 띄었다. 일반 시민들이 아침 출근길에 흔히 사 먹는 유탸오(油条·발효한 밀가루 반죽을 길쭉한 모양으로 기름에 튀겨낸 것으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움)와 더우장(豆浆·콩물) 세트, 가장 잘 나가는 컵라면인 캉스푸(康师傅)가 모두 1위안에 불과했다. 밀가루 반죽에 달걀과 과자 비슷한 걸 넣어 만든 젠빙(煎餠)은 1.5위안으로 좀 비싼데, 달걀을 빼면 0.5위안이라고 했다. 길거리에서 파는 큼지막한 수박은 한 통에 2위안인데, 비싼 자전거를 탄 나에게는 4위안을 불렀다.
당시 상위 소득자인 베이징 공무원의 월급이 1천위안을 갓 넘겼고, 일반 회사원은 600~700위안 수준이었다. 단돈 1~2위안으로도 한 끼 식사가 가능했기에 한 판에 30~40위안이나 하는 피자는 아주 비싼 음식이었다. 따라서 피자헛은 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 ‘고급 식당’이었다.
1994년부터 대외 개방 확대와 외국자본 유입이 본격화하면서 경제가 탄력받아 빠른 성장을 거듭했다. 투자 주도적인 경제발전 정책의 영향으로 투자와 수출이 경제성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낮은 이자율과 낮은 생산 가격은 물론이고, 서부대개발·중부굴기 같은 정부 주도의 발전 정책에 힘입어 전국 각지에서 투자가 크게 늘었다. 1992년 약 8천억위안이던 고정자산 투자액은 15년 만에 10조위안을 돌파했고, 이후 4년 만에 투자액은 2배로 증가했다. 더불어 제조업 성장으로 2000년대에는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했고, 저렴한 제품을 앞세워 수출대국으로 성장했다. 투자와 수출을 핵심 발전 축으로 삼은 중국은 2000년대 중반 G2(주요 2개국)로 불릴 만큼 규모가 커졌다.
물론 투자를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이 한계와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투자가 소비로 전환되지 않으면 전부 부채로 잡혀 오히려 경제발전을 저해했다. 특히 성·시별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추진했던 투자가 전국적인 과잉생산과 비효율을 초래했다. 지역별로 설립된 신도시와 경제특구가 수용 가능한 인구 규모만도 무려 34억 명에 이르렀다. 중국 정부는 공급 개혁으로 생산과 투자의 비효율을 개선해야 했다.

   
▲ 2021년 11월9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시민이 광군제 쇼핑 축제 조형물 앞을 지나고 있다.REUTERS

1인당 GDP 30년 만에 35배 증가
이런 난관에도 꾸준히 성장한 중국은 제조업 대국이자 막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한 소비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숫자로도 볼 수 있듯, 1992년 중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321위안(약 366달러)이었으나, 2021년에는 8만962위안(약 1만2550달러)으로 30년 만에 35배나 증가했다.
절약과 저축을 미덕으로 삼던 중국인들은 점차 지갑을 열어 소비를 늘렸다. 특히 ‘소황제’로 불리는 젊은 소비층은 절약보다 소비가 더 익숙한 세대로, 소득수준 제고와 탁월한 비즈니스 능력으로 축적한 부를 활용하기 원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길거리는 줄어든 자전거 수보다 많은, 외제차를 비롯한 자동차로 뒤덮여 교통체증이 일어났다. 한때 사치품에 가까웠던 무선 호출기 ‘삐삐’를 대체한 것은 두세 달치 급여에 맞먹는 가격의 노키아·삼성·모토롤라 휴대전화였다. 피자헛은 물론이고 고급 식당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고, 지금은 1인당 1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의 미슐랭 레스토랑이 예약조차 어려울 정도로 성황이다. 고급 아파트를 몇 채씩 가진 부동산 부자도 많은데, 집을 보여달라는 부동산중개업소의 요구에 “어떤 열쇠가 어느 집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며 열쇠 뭉치를 통째로 들고 다니는 집주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중국인들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11월11일을 보면 얼마나 광적으로 소비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중국에서 11월11일은 광군제(光棍節), 일명 ‘싱글데이’다. 일부 기업의 광군제 하루 매출이 연간 매출을 상회할 정도로 최대 소비 대목이다. 11일이 되기 전 장바구니에 사고 싶은 물건을 잔뜩 넣어뒀다가 11일 0시가 되는 순간부터 구매 버튼을 누르기 시작한다. 현재는 11일 하루가 아닌, 약 일주일의 판촉 주간을 운영해 소비자의 지갑을 공략한다. 최근에는 소비자의 관심이 다소 식었다지만 기분은 내야겠다며 1인당 최소 몇 개, 많게는 몇십 건의 물건을 구매한다. 이에 따라 매출액은 매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9년 처음 광군제에 참가한 티몰(天猫)의 매출은 5천만위안(약 730만달러)이었으나 2012년 191억위안, 2016년 1207억위안, 2018년 2135억위안, 2020년 4982억위안, 2021년 5403억위안(약 838억달러)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해외여행을 다니며 거침없이 쇼핑하는 소비자도 많았다. 해외출장이 잡힌 직원은 친구들의 쇼핑 목록을 받느라 바쁘고, 혼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물건을 사서 돌아오는 일이 흔했다. 면세점 분야에 일하던 친구가 공항 면세점에서 1인당 소비액 1~10위는 중국인이고, 단일 품목으로 가장 비싼 제품을 사는 사람 역시 중국인이 가장 많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일본을 다녀온 중국인이 친구에게 일본에서 도착한 택배를 받으러 가자고 했는데, 함께 간 친구는 컨테이너를 마주해야 했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도 들었다.
최근 주목받는 하이난의 면세경제는 주로 국외에서 이뤄지던 명품 소비를 국내로 돌려 내수시장을 더욱 키우려는 정책이다. 특히 이도면세(離島免稅)는 하이난을 떠나 중국 본토로 가는 내외국인에게 온·오프라인 면세점에서 면세를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이다. 하이커우 해관에 따르면 2020년 7월 기존 이도면세 정책을 정비한 이후 2년간 매출이 906억위안에 달했다. 2019년 한 해 이도면세 매출이 135억위안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증가율을 기록한 셈이다.

고품질 소비 욕구 커
또한 2021년 하이난에서 처음 열린 소비재박람회는 하이난을 중국, 더 나아가 아시아에서 가장 큰 면세시장으로 육성하기 위해 출범한 플랫폼이다. 제1회 소비재박람회는 참가기업 1500개사와 참관객 24만 명, 제2회는 참가기업 2800개사와 참관객 28만 명을 기록하며 고급 소비재에 대한 중국 소비자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보여줬다. 참관객들은 평소 보기 힘든 제품을 마음껏 살 기회라며 거침없이 몇 달치 월급을 지출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과거와 비교하면 현재의 세대는 더 부유하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해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미 막대한 구매력을 지닌 중국이지만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면 한국·미국·독일 등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중국의 소비시장은 더 성장할 여지가 많다고 한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상하이교통대학 루밍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최종소비율은 선진국 대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미국·영국·브라질 등의 국가는 최종소비율이 80%를 상회하고 한국·독일·일본은 70%를 상회하지만, 2020년 중국의 최종소비율은 55%에 불과하다. 루밍 교수는 선진국 대비 중국의 최종소비율이 15~25%포인트 낮은 것은 중국의 저축률이 높고, 또한 내수시장이 더욱 커질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경제발전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내수소비는 신성장동력이 될 것이며, 쌍순환 정책과 내수시장 확대 정책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고 언급했다.
이제 중국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욕구와 수요에 따른 고품질의 소비다. 이미 소비대국이 된 중국과 더 큰손으로 거듭나는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고급 소비재 개발과 시장 진출이 절실하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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