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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에는 암으로 죽기를 권하다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50호] 2022년 10월 01일 (토) 박중언 parkje@hani.co.kr
   
▲ 2018년 1월 서울시청 별관에서 열린 서울시 고독사 예방대책 토론회. 혼자 살다 숨진 뒤 장기간 방치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여러 방안이 제시됐다. 연합뉴스

“당신은 지난 추석에 혼자 지냈습니까?”
국민 대다수가 고향을 찾아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명절 연휴는 ‘싱글’의 외로움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다. 싱글에게는 명절이 ‘지옥의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연휴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지냈다면 매우 고립된 생활을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얼마 전 추석 연휴에 우에노 지즈코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가 쓴 도발적 제목의 책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와 전작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을 읽었다. 그가 책에서 소개한 요코하마시 쓰루미구의 고령자 약 4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홀로 사는 남성의 60% 이상이 ‘명절에 혼자 지냈다’고 답했다. 같은 대답이 여성에게선 30%에 못 미쳤다. 나이 든 남성이 얼마나 세상과 단절돼 사는지 잘 보여준다. 한국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다.

홀로여도 괜찮아
70대 비혼인 우에노는 자신의 즐거운 ‘나 홀로’ 삶과 풍부한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싱글예찬론’을 꾸준히 펴고 있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1인가구가 급증하지만, 나이 들어 혼자 사는 것이 ‘불쌍’ ‘비참’ 등의 편견이 따라붙는 고독한 삶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오사카시 이비인후과 의사 쓰지가와 사토시가 60살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벌인 면접조사 결과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 데이터다.
460명이 대답한 이 조사에서 혼자 사는 고령자의 생활만족도(행복지수)가 가족 동거 때보다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독거노인을 불행의 대명사로 여기는 우리 상식이나 정부·연구소 등의 설문조사와 전면 배치되는 결과다. 경제적 어려움이 적은 대도시 근교 주택가의 중산층 고령자가 조사 대상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이 너무 많다보니 일반 조사에서는 ‘홀로 노후’가 곧 불행으로 왜곡돼 나타난다는 것이다.
함께 사는 사람의 수까지 구분해 만족도를 비교한 이 조사에서는 부부 또는 ‘부모 한쪽+자녀 1인’으로 구성된 2인가구의 만족도가 가장 낮았다. ‘자녀 부양’이라는 공동 목표와 더불어 애정이 떠나버린 은퇴 부부나 성년이 된 자녀의 뒷바라지 의무를 벗지 못한 노부모가 싱글보다 훨씬 불행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텔레비전만 보고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아 왕짜증’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반대 의견 내면 호통쳐 대화 불가’ ‘집안일은 돕지 않고 틀어박힌 존재 자체로 온종일 우울’과 같은 아내들의 볼멘소리는 은퇴 남편이 가정에서 높이는 불쾌지수를 재확인해준다.
만족·고민·외로움·불안 정도와 자녀 유무, 멀어진 거리 등을 세밀하게 나눠 조사한 쓰지가와는 “만족스러운 노후 모습을 따라가보니 결론은 혼자 사는 거였다”고 말한다. 기혼자인 쓰지가와가 꼽은 2인가구의 이상적 모습은 ‘혼자인 둘이 한지붕 아래 사는 것’이다. 따로 때때로 같이다. ‘혼자는 외롭고 여럿은 피곤한’ 관계의 본질이 가족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뜻이다.
싱글의 행복한 노후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요양시설이 아니라 익숙한 내 집에서 자유롭게 지내려면 건강과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가족 아닌 친구나 지인과의 교류는 풍부할수록 좋다. 외로움은 대체로 일시적 감정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또 인간관계가 풍성한 사람에게 혼자 사는 것은 고립이 아니다. 가족 안에서만 안주해 있으면 자녀가 독립하고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 되레 감당하기 힘들다.
거동이 불편해지더라도 혼자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가 노인돌봄(장기요양보험) 제도다. 보험에서 지원받는 이상으로 돌봄을 받기 위해 모아둔 노후자금을 사용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이 방식이 1인실이 너무 비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의 이용 요금에 견줘 가성비가 높다.
자녀에게 부양을 기대하는 시대는 지났으니 성인 자녀와 따로 살다가도 다시 합치는 것을 고민할 때가 생긴다. 배우자 사별로 혼자가 되면, 특히 일상생활력이 떨어지는 남성이라면 더 그렇다. 이럴 때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말라고 우에노는 당부한다. 성인 자녀는 선의에서 함께 살자는 말을 꺼낸다. 그러나 동거 뒤 시간이 지나면 노부모는 자기결정권을 잃고 ‘가족’의 바람에 따라 언제든 요양시설로 ‘추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독사 아닌 ‘재택사’
홀로 살기의 마지막 단계는 혼자 죽는 것이다. 흔히 고독사로 알려진 ‘홀로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다. 독거노인이 숨진 뒤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은 채 방치된 끔찍한 현장이 두려움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노후에 가족, 친구, 지인과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살지 않는 한 이런 비극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천천히 쇠약해지기 때문에 죽음이 대체로 예측 가능하고, 돌연사가 드물다. 오히려 노인돌봄의 관계망이나 지자체 저소득층 지원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중장년에게 고독사의 위험이 높다.
이런 고독사와 홀로 죽음은 전혀 다르다. 우에노는 “전자는 고립돼 쓸쓸하게 생을 마치는 죽음인 데 반해 후자는 혼자 살아온 인생의 연장선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 뿐”이라며 고독사 대신 ‘재택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한국과 달리 주치의 제도가 있고 방문진료(왕진)를 하는 의사도 적지 않은 일본에서는 사망진단서를 받기 위해 굳이 병원이나 요양시설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살던 곳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임종 케어’라고 한다. 임종 케어를 실천하는 일본 의사들은 ‘죽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암으로 죽고 싶어 한다’고 우에노는 전했다. 물론 고령일 때의 얘기이지만, 암 선고를 청천벽력으로 받아들이는 보통 사람의 생각과 판이하다. 암은 △죽는 시기를 가늠할 수 있어 미리 준비할 수 있고 △신체 활동 수준이 말기까지 유지되며 △마지막까지 의식이 또렷하고 △혼수상태에 빠지면 단시간에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96년의 장수 가운데 70년 동안 왕관을 쓰고도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린 지 하루가 지나지 않아 숨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같은 ‘죽음 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지리한 자리보전보다 깔끔한 마무리가 낫다는 것이다. 암환자에게 항암치료는 고통스럽지만 암과 동행하는 일은 그렇지 않다. 나이 들면 암세포 활동도 왕성하지 않고 통증은 현대 의학으로 얼마든지 누그러뜨릴 수 있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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