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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자유 vs 부자의 자유
[이재성의 노벨경제학상 다시 읽기]
[150호] 2022년 10월 01일 (토) 이재성 san@hani.co.kr
   
▲ 강연하는 아마르티아 센. 플리커

아마르티아 센(1933~)은 우리에게 아시아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1998)로 유명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경제학의 인식과 방법론에 근본적인 혁명을 일으킨 선구적 존재로 더 유명하다. 주류 경제학의 공리주의와 결과주의가 전제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합리적 바보’(rational fools)라고 비판하면서 경제학과 철학을 접목해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연구의 새 장을 열어젖힌 학자로 평가받는다.

대기근의 진짜 원인은 불평등
어린 시절 인도 벵골에서 살았던 센은 9살이던 1943년, 300만여 명이 사망한 벵골 대기근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아버지가 다카대학교 화학과 교수였으므로 본인은 굶지 않았겠지만, 빈곤과 불평등에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왕립과학아카데미가 “복지(후생) 경제학에 대한 공헌”이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을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한 그의 연구는 기념비적이다. 그중에서도 기근에 대한 오랜 통념을 뿌리부터 뒤흔든 저서 <빈곤과 기아: 자격과 박탈에 관한 에세이>(1981)가 대표적이다. 대기근의 원인이 단순한 식량 부족이 아니라 식량 분배 메커니즘에 내장된 불평등이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벵골 지역의 식량 생산량은 전년도보다 줄었지만, 기근이 없었던 다른 평년보다는 많았다. 군대의 대규모 식량 확보와 이에 따른 패닉바잉(공황구매), 사재기와 바가지 등으로 식량 가격이 상승했는데, 농촌 노동자들의 임금은 오히려 하락했다. 여기에 실업까지 겹치면서 식량을 구할 돈이 없어 대규모 기아가 발생한 것이라고 센은 분석했다. 식량은 줄지 않았지만, 식량에 접근할 자격(Entitlement)과 박탈(Deprivation)을 결정하는 사회·경제적 구조가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복지에 대한 견해도 마찬가지다. “복지를 창출하는 것은 재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재화가 획득되는 활동임을 강조했다.”(노벨경제학상 보도자료) 이것이 센이 강조하는 ‘역량 접근’(Capabilities Approach)이다. 투표권이 있다 해도 자신의 정치적 선호를 확립하고 후보들의 정책을 분별하는 역량을 가지도록 하는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투표권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장애인이거나 자가용이 없는 사람의 경우 투표소로 가는 교통편 같은 구체적인 요소까지 빠짐없이 갖춰야 비로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센은 인도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그 수가 적은 이유에 대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의료적 접근을 비롯한 사회적 기회가 많고 성선택적 낙태까지 횡행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모든 연령대에서 사망률이 더 낮고 더 오래 사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복지를 측정할 때는 이렇게 비경제적 요소까지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센의 주장이 보편성을 획득한 사례가 유엔개발계획(UNDP)이 해마다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DI)다. 유엔의 인간개발지수는 센이 파키스탄 경제학자 마흐붑 울하크와 함께 1990년 처음 발표한 지수를 지금도 큰 틀에서 따르고 있다.

말은 같은 자유인데…
주류 경제학 비판을 서슴지 않은 센이 계량경제학회(Econometric Society)와 미국경제협회(American Economic Association) 회장을 지냈을 정도로 주류 경제학계의 인정을 받았던 것은 주류 경제학의 방법론으로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업적이 197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1921~2017)의 사회선택이론(Social Choice Theory)과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를 수정하고 확장해 풍부하게 한 것이다. 애로의 사회선택이론과 불가능성 정리의 결론은 모든 개인을 만족하게 하는 집단적 결정이란 없으며, 특정 사안에 대한 개인들의 선호를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당시 경제학자들은 개인의 빈곤과 복지 상태를 비교할 수 없고, 국가 간의 빈곤과 복지 상태를 비교할 수도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센은 애로의 이론이 완벽히 평등한 개인들을 상정한다고 비판하면서, 사람들의 선호를 비교할 수 있고 또한 일관된 사회적 선호를 확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고전파 경제학이 전제하는 합리적 개인 대신 약속과 의무, 책임 등 사회적 헌신을 다하는 개인으로 인간의 정의를 넓혔고, ‘파레토 최적의 상태’(평등 개념이 결여된, 사회적 자원의 가장 적합한 배분 상태) 대신 개인의 자유를 우위에 두는 해법(자유주의의 역설)을 제시했다. 이렇게 해서 다시 분배 문제를 분석의 틀로 끌어들였다.
센은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국가에서는 기근이 발생할 수 없다고 본다.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서라도 식량 가격을 조절하거나 분배 시스템을 손볼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경제발전이란 국내총생산(GDP)이나 1인당 소득 같은 지표를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개인이 향유하는 ‘진정한 자유’를 증진하기 위한 노력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자유로서의 발전>, Development as Freedom, 1999) 경제는 자유의 물적 토대로서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치적 자유이며,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는 경제적으로도 발전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시각이다. 센의 이 모든 학문적 연구의 바탕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유독 자유를 외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입으로는 자유를 말하면서 부자와 대기업의 세금을 줄여주고 국가 자산을 팔아넘기는 데 열중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부자와 대기업의 자유이며, 오래전에 수명을 다한 신자유주의적 자유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같은 자유인데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 누구 편인지가 중요하다.

* 노벨경제학상은 뒤늦게 따로 태어난 사생아 같은 노벨상이지만 현대 자본주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같은 존재다.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업적과 관련 논쟁을 통해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본다. 너무 전문적이지 않은 상식의 수준을 지향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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