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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기업 잇단 철수에 ‘짝퉁’ 장려하는 러시아
[SPOT] 러시아에서 서구 모방 제품 봇물
[149호] 2022년 09월 01일 (목) 미하엘 투만 economyinsight@hani.co.kr

맥도널드, 코카콜라, 이케아 등 서구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한 뒤 러시아에서는 대체재가 나오기 시작했다. <차이트>가 러시아의 대체재를 직접 이용해봤다.

미하엘 투만 Michael Thumann <차이트> 기자

   
▲ 2022년 5월23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거대한 아치 로고를 철거하고 있다. REUTERS

일단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맥도널드 뒤를 이은 러시아판 패스트푸드점의 치즈버거 빵과 고기 패티에서는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점 맥도널드가 러시아에서 철수하자 맥도널드를 인수한 현지 브랜드 체인 ‘브쿠스노 이 토치카’(두말할 필요 없이 맛있다는 뜻)가 생겨났다. 매장명이 확신을 강요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는 햄버거, 프렌치프라이 그리고 레모네이드로 구성된 익숙한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있는 러시아판 맥도널드 매장의 화려한 개장 행사에 적이 놀랐다. 브쿠스노 이 토치카는 맥도널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에서 철수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개장했다. 맥도널드 매장은 순식간에 철거됐고, 매장 전면은 검은 유리로 교체됐다. 매장 앞에는 키가 아주 큰 열대식물이 놓여 있고, 매장 안에 주문용 대형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다. 앱으로 결제를 마치면 맥도널드에서처럼 주문한 햄버거가 실시간으로 나온다.

   
▲ 맥도널드가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한 지 두 달도 안 된 2022년 6월12일 모스크바에 문을 연 ‘브쿠스노 이 토치카’(Vkusno & Tochka)에서 시민들이 햄버거를 먹고 있다. REUTERS

모방은 승리의 지름길
러시아의 새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메시지는 ‘우리가 너희에게 보여줄게!’다. 서구 기업들의 자국 시장 철수에 반감으로 똘똘 뭉친 러시아는 총력을 다해 맞서고 있다. 러시아는 서구 기업의 철수에 자국산 제품, 브랜드와 기술로 더 나은 소비생활을 하자는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 현재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로 벌어들이는 외화로 러시아에 돈은 충분히 많다. 서구가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하지 않더라도, 대신 중국과 남아시아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대폭 늘렸다.
하지만 러시아가 닮으려는 국가는 중국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국민을 상대로 서구를 향한 증오심을 전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대놓고 서구를 모방하고 있다. 푸틴은 냉전시대 옛소련 산업스파이들을 최근 공개적으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푸틴은 모방이 승리의 지름길이라고 치하했다.
그런데 브쿠스노 이 토치카 매장이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서 먹었던 햄버거를 토하고 싶은 일이 터졌다. 브쿠스노 이 토치카를 이용했던 사람들이 햄버거 빵에 파랗게 곰팡이가 핀 사진을 텔레그램과 페이스북으로 공유했다. 곧 소셜미디어에서는 ‘브쿠스노 이 토치카 곰팡이 버거’ 조롱이 잇따랐다. 브쿠스노 이 토치카 치즈에서 나왔다는 바퀴벌레와 벌레 다리 사진도 돌았다. 한 여성 아나운서는 매장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소스가 나왔다고도 전했다. 러시아가 치켜세운 ‘애국 버거’는 품질 문제가 터지면서 “처먹고 끝내자”라는 야유 섞인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러시아판 맥도널드는 러시아에서 철수한 서구 브랜드에 러시아가 어떻게 접근하는지 잘 보여준다. 러시아는 코카콜라가 자국에서 철수하자 짝퉁 브랜드 ‘쿨콜라’(CoolCola)를 만들었다. 쿨콜라 한 병을 사서 마셔봤는데, 유감스럽게도 굳이 한 병을 다 마시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쿨콜라는 코카콜라의 환타를 모방한 ‘팬시’(Fancy), 스프라이트를 모방한 ‘스트리트’(Street)도 출시했다. 쿨콜라에서는 이상하게 비누 맛이 났고, 갈색의 레모네이드는 탄산이 너무 적게 들어 병을 따는 순간 톡 쏘는 맛이 사라져 있었다. 러시아는 코카콜라 브랜드가 자국 시장에서 철수했어도 코카콜라가 상징하는 라이프스타일만은 잃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러시아의 국민 음료 크바스(Kwas)를 비롯한 러시아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병적인 서구 모방과 러시아 정권의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방식은 상당한 관련이 있다. 러시아 군인들은 자국민이 최대한 전쟁 소식을 접하지 못하도록 우크라이나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푸틴은 ‘작전’(Operation)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획대로 잘 돌아가고 있다”고 자평한다. 그래서 러시아 국민은 불안할 필요가 없고, 러시아인이 사랑한 서구의 생활방식을 바꿀 필요가 없으며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푸틴이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뒤 유럽연합의 식료품에 금수 조치를 했을 때, 러시아 국민은 이미 서구 브랜드의 부재를 경험했다. 올리브오일, 발사믹식초, 그리스 페타 치즈, 프랑스 카망베르 치즈, 이탈리아 모차렐라 치즈는 러시아 시장에 계속 공급됐다. 다만 대부분 대체상품이었다. 페타 치즈는 벨라루스산, 모차렐라 치즈는 러시아산으로 대체됐다. 발사믹식초는 이탈리아산이지만 평범한 식초 맛이었다. 특유의 향이 나지 않는 카망베르 치즈는 프랑스 오리지널 카망베르 치즈와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스페인산’이라는 올리브오일은 스페인에서 “태어났을 수는 있지만” 스페인에서 생산된 것은 아니었다.
서구 브랜드의 러시아 대체재들은 한결같이 ‘포템킨 원칙’을 충실하게 따른 결과물이었다. 1787년 러시아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새로 편입한 흑해의 북부 연안 크림반도를 시찰하러 나섰다. 러시아인을 정착시켜 지역을 재건해야 했던 그리고리 포템킨 공(公)은 예카테리나 2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예 가상의 ‘포템킨 마을’(Potemkin Village)을 만들기로 했다. 포템킨 마을처럼 이들 대체재는 실재가 아닌 가짜 현실을 만드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대체재보다 오히려 러시아산 생크림, 케피르(Kefir·러시아와 동유럽 국가에서 주로 마시는 유제품으로 캅카스 지방에서 염소, 양, 소의 젖을 발효해 만듦) 혹은 캅카스 치즈가 더 먹을 만하다.

   
▲ 러시아판 롤스로이스이라고 불리는 아우루스(Aurus)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살피고 있다. 2021년 5월31일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에 있는 공장 내부. REUTERS

껍데기만 서구화 ‘포템킨 원칙’
러시아 소비자에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이케아의 러시아 철수였다. 러시아 대도시 교외의 대형 이케아 매장은 러시아인들의 소풍 장소이자,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의 대상이었고 동시에 마을 게시판 구실을 했다. 이케아가 철수하기 직전 매장에 남은 제품을 싹쓸이한 것은 다름 아닌 이케아 직원들이었다.
이케아를 대체할 만한 것은 없다. 짝퉁만 있을 뿐이다.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있는 가구업체 라주리트(Lazurit) 매장 쇼룸에 진열된 가구는 단순하고도 모던한 이케아 가구와 많이 닮았다. 대신 라주리트 매장에는 레스토랑이나 어린이 놀이터 혹은 주방 그릇이 없다. 대신 라주리트 가구 이름은 참으로 서구적이다. 라주리트 테이블은 단테(Dante), 두꺼운 받침대와 매트리스로 구성된 다이븐베드(Divan Bed)는 모건(Morgan), 리사본(Lissabon) 혹은 몬태나(Montana)로 불린다. 암체어(1인용 안락의자)는 랭스(Reims)나 카멜롯(Camelot)이라고 한다. 암체어는 현지 기준으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데 아주 푹신하고 넓다.
푸틴의 러시아는 표면만 서구화한 오래된 자국의 원칙을 반복한다. 명칭, 디자인과 껍데기는 서구적이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콘텐츠는 러시아산이다. 마치 18세기 초반 표트르 대제의 개혁이 수염을 깎고 전통의상을 벗어던지는 등 외적인 것에 치중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 표트르 대제처럼 푸틴의 러시아도 근본적인 개혁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표트르 대제와 자신을 동일한 선상에서 생각하는 푸틴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겉모습뿐이다.
에브로페이스키(Evropeysky) 쇼핑몰은 외형에 치중한 모스크바의 민낯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이 쇼핑몰에는 유럽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매장이 모두 모여 있었다. 쇼핑몰은 7월에 전쟁의 여파를 온몸으로 느꼈다. 대다수 매장에 조명은 켜져 있지만 실제로 적잖은 매장이 문을 닫았다. 보스(Boss), 타미힐피거 및 마르코폴로 매장의 유리문마다 “현 상황으로 당분간 문을 닫는다”고 적혀 있다. 그래도 일부 서구 브랜드 매장은 계속 영업하고 있다. 대다수 서구 브랜드가 문을 닫는 동안, 빈틈을 메우고 앞으로 치고 나온 것은 러시아 브랜드들이다.
러시아가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서구 수준의 자국 브랜드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적잖은 러시아인이 러시아가 아무리 강국이어도 서구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오랜 열등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도 서구 수준의 생산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전세계에 천명하기 위해 2012년 “국가의 주요 인사들을 위한 의전용 방탄 차량 생산”을 지시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러시아판 롤스로이스 ‘아우루스’(Aurus)다. 모스크바 도심의 아우루스 쇼룸에 아우루스 세나트 S600이 전시돼 있다. 아우루스 세나트 S600은 롤스로이스 고스트를 연상하게 한다. 롤스로이스를 3차원(3D) 프린터로 모방한다면 아우루스 세나트 S600처럼 보일 것이다. 차량 내부는 고급 베이지 가죽 의자가 설치된 탱크 안을 연상시킨다. 차량에는 샴페인 냉장고가 설치됐다. 아우루스 쇼룸의 직원은 8기통 엔진의 최대출력이 598마력, 3t 이상의 중량, 100㎞ 주행에 10ℓ 미만 연비 등의 제원을 막힘없이 줄줄 읊었다.
푸틴은 관련 제원이 일절 알려지지 않은 아우루스 방탄 리무진을 의전 차량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 전용 차량의 제원은 국가기밀이다. 푸틴은 자신의 ‘러시아산 애국 전용 의전 차량’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아우루스가 생산한 푸틴 전용 의전 차량 외에 27개 모델이 러시아의 도로를 누비고 있다.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옐라부가에 있는 아우루스 공장에서 롤스로이스와 벤츠 마이바흐 수준이면서도 철저히 러시아다운 자동차가 생산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닌 듯하다. 포르셰가 아우루스의 엔진 제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차내 기술은 보슈와 에베르슈페허(Eberspächer) 등의 독일 하청업체에서 왔다.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엄격한 제재는 아우루스의 때 이른 종말을 재촉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우루스는 외면상으로 차이가 없지만 내부 기술에서는 20년 전 수준의 차량밖에 생산해내지 못할 것이다. 아우루스 엔진은 현재 엄격한 유럽연합 배기가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함에 따라 유럽연합에서 판매 금지 대상이다. 러시아는 일단 급한 대로 자국 브랜드의 외형만 서구 수준에 맞추고 있다.
현재는 모스크바의 최고급 도심 지역에서도 아우루스를 우연이라도 보기 힘들다. 이와는 반대로 푸시킨 광장 부근의 파트리아르시예 연못(모스크바 중심 프레스넨스키 구역의 연못과 공원 등이 조성된 부유한 동네) 인근에서는 오픈카, 검은 리무진, 거대한 스포츠실용차(SUV) 등 독일산 고급 자가용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운전기사들이 고급 레스토랑 앞에서 차를 세우면, 화려한 의상으로 전신을 휘감은 장신의 여성들과 온통 검은 옷 차림의 남성들이 차에서 내린다. 유겐트 스틸(아르누보의 독일식 명칭) 양식의 레스토랑 건물 앞에 선 그들은 마치 영화 세트장에 출연한 배우들처럼 보인다.

   
▲ 맥도널드의 사업권을 이어받은 러시아 패스트푸드 브랜드 ‘브쿠스노 이 토치카’의 로고. REUTERS

서쪽에서 가장 서구적인 곳
환한 조명이 켜진 고급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술집은 하루 24시간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모스크바로서는 런던 소호, 뮌헨 슈바빙, 파리 생제르맹데프레를 전혀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러시아에서 유럽연합으로 운항하는 항공편이 더는 없다고? 러시아인에게는 독일, 프랑스, 영국 비자가 더는 발급되지 않는다고? “우린 신경 쓰지 않아!” 서쪽에서 가장 서구적인 곳은 단연코 모스크바일 것이다.

ⓒ Die Zeit 2022년 제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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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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