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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에너지 위기의 대안, 자급자족과 미니멀리즘
[TREND] 인플레이션에 맞서기
[149호] 2022년 09월 01일 (목) 알렉산더 퀸 economyinsight@hani.co.kr

자급자족주의자와 미니멀리스트는 예전에 흔히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식량과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는 시대로 들어서자 자신의 정원에서 채소를 키우거나 소비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알렉산더 퀸 Alexander Kühn
알렉산더 프레커 Alexander Preker
안톤 라이너 Anton Rainer
<슈피겔> 기자

   
▲ 자급자족주의자 파트리시아 크로민스키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텃밭에서 돼지를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희망사항일 뿐이다. REUTERS

돼지 한 마리. 이 여성이 향유하는 커다란 행복에 아직 부족한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매년 이른 봄에 돼지 한 마리를 사서, 여름에 텃밭에서 잘 먹여 키우고, 가을에는 잡아먹는 일 말이다. 그러나 양돈에 대한 정부의 지침, 즉 돼지우리에 관한 규정, 먹이통까지의 거리, 동물 의료기관 등록, 도축자가 특별히 알아야 할 지침 등을 자세히 숙지한 뒤 파트리시아 크로민스키(34)는 “개인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대신 암탉을 키우려 한다. 물론 오직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지금 연습 삼아 이웃집 여성의 닭에게 모이를 주곤 한다.
어느 토요일 오후 독일 포츠담의 보르님. 바깥 기온은 섭씨 35도다. 그보다 10도가 더 높은 조그마한 온실에서 크로민스키는 고추에 물을 주고 있다. 그가 1년 넘게 가꾸는 이 정원은 친구 소유다. 330㎡ 크기에 나무 여러 그루가 자라고 채소 모판도 여러 개 있다. 친구에게는 단지 물값만 내면 된다. “내 꿈이 실현됐다”고 크로민스키는 말했다.
34살인 크로민스키는 콜센터에서 일한다. 펑크족 출신으로, 일찍부터 어디에 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첨가물을 쓰는 식품산업과 농약 없이는 운영이 안 되는 농업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슈퍼마켓에서 산 과일을 먹고 피부에 뭐가 나서 곪고, 입술이 부은 적도 많다. 그가 처음 스스로 농사한 복숭아를 입에 물었을 때, 즉 ‘나무에서 입으로’에 성공했을 때,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물가가 폭등하자 스스로 먹거리를 해결하려는 자급자족주의자가 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한 옥상 텃밭. REUTERS

늘어나는 자급자족자들
크로민스키는 수확한 것의 대부분을 가공한다. 자두, 루바브(대황), 베리 등으로는 케이크를 굽는다. 사과로는 주스를, 토마토로는 케첩을, 감자로는 수프를 만들어 저장용 유리용기에 넣어 선반에 보관한다. “내 아이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주고 싶다.” 살라미(소시지의 일종) 역시 훈제품을 제조하는 지인의 오븐에서 사냥꾼 친구가 잡은 야생 고기로 직접 만든다. “고기를 잘게 갈아 (돼지) 대장에 넣고 훈연한다. 그러면 끝.”
돈을 절약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는 아니었다고 크로민스키는 말한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이 높은 요새는 가계 살림에도 도움이 된다.” 현재의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할 때 그의 생활방식이 옳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위기가 닥쳐도 두려워할 이유가 훨씬 적다.”
시골 아낙네와 페터 루스티히(자연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독일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의 중간쯤 되는 자급자족자, 얼마 전부터 많은 도시인이 막연히 동경하는 바다. 그들이 품은 농업적 꿈이 기껏해야 부엌 창틀에서 바질 화분 하나 키우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독일 TV 뉴스 진행자인 유디트 라커스가 자급자족을 시작한 것에 대해 저술한 책은 2021년 가이드용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독일에 사는 사람 중 61%가 시골에 살고 싶어 한다. 임대 텃밭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48%는 ‘생태 정원을 꾸미고 싶어서’, 40%는 ‘건강한 먹거리’를 이유로 들었다.
이전에는 자급자족자를 흔히 히피, 미치광이, 낙오자 등이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물가가 7% 이상 오르고, 농산물의 생산가가 1년 사이 약 40% 인상됐다. 전시와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먹거리를 재배하고, 전기를 직접 생산하고, 소비를 급격하게 제한하는 것은 괴상한 고집이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영리한 것이다. 자급자족은 이상적인 상태로 보이지만, 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정치적 행위인 셈이다.
자급자족자가 되는 길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는 신입자를 포함해 수천 명의 자급자족자가 소통하는 페이스북 그룹에서 엿볼 수 있다. 잎이 시드는 것을 걱정하고, 민달팽이와의 싸움에 조언을 구하고, 우박으로 채소 모판이 망가지면 서로를 위로한다. 처음으로 호박이나 고급스럽게 자란 오이를 수확했을 때는 마치 막 태어난 아기를 소개하는 부모처럼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551g이나 나가요” “난 정말 행복해요”처럼 말이다. 공동으로 농사를 지으면 더욱 쉽다. 대신 몇몇 사안에서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도록 요구받기도 한다.

   
 

좌파와 환경주의자들의 공동체
독일의 가장 큰 농촌공동체를 보면, 신입자들은 몇 달 지나 포기하고는 한다. 카셀 근처 니더카오풍겐(Niederkaufungen) 공동체는 후배 세대가 절박하게 아쉽다. 농촌공동체 삶의 꿈이 아주 매혹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향해 걸음을 떼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때 독일에서 그러한 정치적 공동체가 수백 개 있었으나 지금까지 남은 것은 수십 개에 불과하다.
니더카오풍겐 공동체는 1986년에 설립됐다. 이 공동체는 마을 속의 마을이다. 숲 가장자리 근처, 옛날 대농장이었던 곳에 지금은 좌파이며 환경주의자이고 자유를 사랑하는 75명이 산다. 서로 반말하고 기초 민주주의 방식으로 결정을 내린다. 이 공동체는 잘못된 삶 속에서 올바르게 살려는 시도다. 헤센주 한가운데 존재하는 1만㎡의 사회주의다.
이 공동체 회원들은 자동차 8대, 세탁기 3대 등 재산을 공유하며, 호박밭 옆 포스터에 쓰인 “시멘트와 아스팔트 대신 채소와 숲을” 같은 신조를 공유한다. 그들은 농사짓고, 목축하며, ‘빨간 비트’(Red Beet)라는 이름의 농장 가게, 유기농 파티 서비스 ‘콤메뉴’(Komm Menu)를 경영한다. 그 밖에 기계공작실, 목공소, 치매 데이케어센터가 있다. 이것들은 모두 공동체에 소득을 가져다준다. 이 공동체가 1980년대에 유아원을 개원했을 때, 지역 사람들은 처음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지역 교회 목사를 비롯해 거의 모든 정당의 지역의회 의원들이 아이들을 이 유아원에 보냈다.
6월의 어느 날 오후, 몇몇 공동체 주민이 포도주 한 병을 갖고 기계공작실 앞에 앉았다. 주민 중 한 여성이 베네수엘라 협동조합에서 온 방문객들에게 공동체 시설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집단농장이 어떻게 자본주의적 독일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 보려 한다. 도서관에는 울리 바르트가 앉아 있다. 68살인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흰 수염이 무성하고 샌들을 신고 있다. 바르트와 그의 아내는 이 공동체의 창립자다. 석사 엔지니어인 그는 지금까지도 행정을 맡고 있다.
바르트의 인상은 부드럽지만, 그가 하는 말 속에서 계속 튀어나오는 마르크스주의적 이데올로기는 단호하다. 바르트는 오래전부터 “신자유주의가 재앙을 불러올 것”을 확신했다. “제국적 삶의 방식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유발한다.” 젊은 시절 바르트는 이와는 다른,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생각에 매혹됐다.
바르트와 그의 공동체 지지자들은 이윤에 지배되지 않는 삶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려 한다. 창립자 17명 중 지금까지 그곳에 사는 사람은 5명이다. 십수 명은 이미 정년을 지나 연금생활자 나이에 들어섰다. 최근 본관 건물에 엘리베이터 공사를 했다. 이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든 사람이 꽤 생긴 것이다.
공동체는 고령화의 위협에 놓여 있다. 바르트의 자녀들은 성년이 되자마자 공동체를 떠나 핵가족으로 살고 있다. 바르트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것도 일종의 반항이다.
바르트의 사무실은 공동체의 재정센터다. 이곳에 화폐 금고가 있다. 누구든 여기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돈을 가져갈 수 있다. 그가 몇 시간을 일했든 얼마나 많은 돈을 공동체에 입금했든 상관없다. 150유로(약 20만원) 이상의 지출에 대해서는 칠판에 있는 목록에 신고해 아무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도 이견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한 여성 주민은 ‘발트해로의 휴가’라는 제목에 “약 1200유로, 16일, 가족 전부, 기차-음식-숙박”이라고 적었다.

   
▲ 파리의 한 옥상 텃밭에서 기른 농산물. REUTERS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돈 문제로 싸우는 경우는 돈이 적을 때이다. 수천유로의 흑자가 나는 좋은 달이 있는가 하면 수천유로의 적자가 나는 안 좋은 달도 있다. 현재는 그저 그렇다.
공동체에서 운영해 나온 수입만 공동체 금고로 입금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주민이 이사 올 때 그가 가진 재산은 공동체의 재산이 된다. 공동체 외부의 직장에서 계속 일할 경우, 거기서 벌어들이는 급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공동체에 들어오면서 그때까지 하던 일을 그만둔다. 바르트를 도와 행정을 담당하는 여성은 은행원이었고, 젊은 남성은 교사였다.
이 공동체는 45㏊에 이르는 농지와 목초지를 경작한다. 매년 2.5t의 과일을 수확하며, 양배추 600㎏, 사과주스 2천ℓ, 잼 140㎏을 생산한다. 얼마 전부터는 밀농사도 짓는다. ‘유럽의 곡창’이라 불리는 우크라이나가 곡물을 수출하지 못하게 된 이래, 밀농사는 아주 귀한 일이 됐다.
이 공동체는 또한 젖소 9마리와 송아지 12마리, 돼지 11마리, 염소 4마리를 키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알을 낳는 닭 220마리가 있었다. 닭을 치던 여성 주민이 병이 들어 그 닭들은 모두 도축했다. 이제 새로 닭을 들여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급자족이 이 공동체의 주된 목표인 적은 없었다고 바르트는 말한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이 마을 한가운데가 아니라 남태평양의 섬에 공동체를 세웠을 것이다.” 부엌 팀이 생선, 국수, 쌀, 바나나와 같은 식료품을 추가로 사는 것이 그들의 자아상과 모순되지 않는 이유다. 농장 가게는 유기농 대형 업체에서 과일을 사오기도 한다. 어떤 때는 ‘사회주의’를 작동하기 위해 트릭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른 많은 일반 가정에 견줘 공동체 주민들이 의존적이지 않음은 분명하다. 에너지 가격이 급속히 상승하는 바로 지금, 태양광 전지를 지붕에 설치해 전기를 직접 생산하므로 가격 상승에 영향받지 않는다.
크리스티나 리켄(36)은 전기를 생산하지도 않고, 농사짓지도 않으며, 가축도 기르지 않는다. 이 여성은 자기 삶을 개선하기 위해, 더불어 이 세상도 약간 개선하기 위해 다른 길을 선택했다. 훨씬 더 급진적인 길이다. 리켄은 미니멀리스트다. 그는 “다르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소비하지 않으려 한다.
몇 개월 전부터 많은 독일인이 물가가 상승하니 지출을 줄여야겠다고 말한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2022년 4월 조사한 바로는 81%, 독일 신문 <빌트>(Bild) 일요판이 조사한 바로는 91%였다. 리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집에 두는 물건을 되도록 줄이려 한다. 옷장이 빌수록 리켄의 행복은 커질 뿐 아니라 더욱 지속적인 생활양식이 된다.

   
▲ 다시 돌아온 인플레 시대에 자급자족보다 한 단계 높은 수위의 대응 방법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미니멀리즘이다. 일본의 한 미니멀리스트의 욕실 선반. REUTERS

필수품 말고는 사지 않는다
리켄은 자기 옷이 몇 벌인지 즉각 말할 수 있다. 긴 바지 세 벌, 짧은 바지 두 벌, 티셔츠 여섯 벌, 털스웨터 세 벌, 치마 두 벌, 원피스 세 벌, 블라우스 세 벌, 후드티 두 벌, 속옷, 양말이 전부다. 이전에 30켤레였던 신발은 이제 6켤레다. 빨래통도 침실용 탁자도 없다. 샴푸병도 샤워젤도 없다. 비누로 씻기 때문이다.
리켄은 자신이 과거에 소비 중독자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대부분의 독일인처럼 살았던 것 같다. 토요일이면 옷을 샀고, 수요일엔 장식품, 가끔 귀고리를 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쇼핑하면서 보상받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이 사들인 것은 자신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 새로운 짐이고 의무였다고 그는 생각한다.
리켄이 미니멀리즘으로의 여행을 시작한 것은 한 텔레비전(TV)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그는 당시 살던 150㎡(약 45평) 집에 앉아 TV를 봤는데, 소비를 최소화한 사람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영화가 방영됐다. 그중 한 사람은 장기 여행을 위해 가방을 쌌는데, 그렇게 하자 옷장이 텅 비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살림이 적었다. “와, 마술 같다”고 생각한 리켄은 갑자기 많은 물건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음을 느꼈다.
리켄은 물건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옷장을 비웠고, 지하실을 비웠다. 얼마 안 있어 그는 남편과 결별했다. 리켄은 42㎡(약 13평) 주택으로 이사했고, 가구와 TV를 처분했다. 지키면서 살고 싶은 생활 규칙을 세웠다.
먼저 일상생활에서 정말 필요한 물건을 100개로 제한하는 ‘물건 100개 도전’을 시도했다. “소파 한 개, 진공청소기 한 대, 칫솔 한 개, 차 거름망 한 개” 식으로 따져 100개만 갖는 것이다. 두 번째로 수년에 걸쳐 그가 지닌 옷들은 검은색, 밝은 회색, 카키색, 이 세 가지 색 중 하나로 줄였다. 어떤 옷과도 같이 입을 수 있도록 말이다.
세 번째 규칙으로는 ‘사지 않기 도전’을 실행했다. 식품과 위생용품을 제외하고는 수개월 동안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것이다. 이불보의 경우에만 ‘조커’를 적용했다. “참 특별한 시절”이었다고 그는 당시를 떠올린다. 현재 리켄은 일주일에 이틀만 회계담당자로 일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과거의 그와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강의한다.
과거의 자신처럼 소비하는 사람들을 리켄은 치료사 같은 관점에서 본다. 전쟁과 위기가 닥치기 훨씬 이전에 리켄은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살펴봤다. 그는 수십 년간 시장경제에 중독된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 같다. 물건을 주문하면 도파민이 마구 분비되는데, 쇼핑은 점점 더 큰 갈증을 불러온다고 한다. 그러나 리켄은 (그런 소비자를) 단죄도 선교도 하려 하지 않는다. “내 친구들이 나에게 부탁하는 경우에만 (미니멀리즘을 위한) 정리를 해준다.”
얼마 전부터 리켄에게는 새로운 파트너가 생겼다. 파트너는 아마존에서 배터리, 컴퓨터 마우스, 발코니용 화분 등을 마구 사들이는 충동구매를 즐겼다. 리켄은 처음엔 그런 ‘맥시멀리스트’와 함께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파트너는 리켄 곁에 머물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비가 줄어들었다. 그는 이해한 것이다. 단지 샴푸병만큼은 아직도 없애지 못하고 있다.

ⓒ Der Spiegel 제28호
Ackern gegen Putin
번역 최현덕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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