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국제편집장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수출이 잘되면 우리 경제가 그만큼 좋아진다고 학교에서 배웠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부모님 가운데는 살림이 어려워졌다고 하시는 분이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무역 이론으로 명성을 떨친 경제학자는 영국 태생의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입니다. 그는 대학에 발도 들여놓지 않았지만, 여느 경제학자 못지않은 탁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4살 때 주식 중개인이던 아버지의 일터에 뛰어들어 투자 경험을 쌓은 뒤, 증권·채권·부동산에 투자해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이처럼 탄탄한 실전 경험에서 나온 이론으로 어지간한 경제학자들과의 논쟁에서 결코 지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법 같은 비교우위론
그는 ‘비교우위’라는 절묘한 논리로 자유무역의 장점을 설명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흥부전> 이야기로 생각해봅시다. 흥부는 제비의 복수로 알거지가 된 형 놀부를 돕기 위해 형과 함께 호미와 삽을 만들어 팔기로 했습니다. 흥부는 호미 1자루를 만드는 데 10시간, 삽 1자루 제작에는 20시간이 걸립니다. 어려서부터 놀기만 하고 말썽만 부렸던 놀부는 호미 1자루에 15시간이 걸리고, 삽은 45시간이나 걸립니다. 흥부가 호미와 삽을 만드는 데 모두 놀부보다 더 능률적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흥부가 두 분야에서 모두 절대우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흥부는 놀부를 제쳐두고 혼자서 일하는 게 좋을까요?
두 사람이 분업하지 않고 각각 시간의 절반씩을 호미와 삽 제작에 투입한다면 생산량이 얼마나 될지 살펴봅시다. 1년에 흥부는 2000시간을, 놀부는 빨리 부자가 될 욕심에 3600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해보죠. 흥부는 1000시간씩을 각각 호미와 삽 제작에 투자해서 호미 100자루(1000시간÷10)와 삽 50자루(1000시간÷20)를, 놀부는 각각 1800시간씩 투자해서 호미 120자루(1800시간÷15)와 삽 40자루(1800시간÷45)를 만들어내겠죠. 둘은 모두 220자루의 호미와 90자루의 삽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제 두 사람이 분업하는 경우를 따져봅시다. 흥부는 2000시간을 모두 삽 제작에 투입하고, 놀부는 3600시간을 모두 호미에 투입합니다. 그러면 흥부는 100자루(2000시간÷20)의 삽을 완성할 것이고, 놀부는 240자루(3600시간÷15)의 호미를 만들어내겠죠. 한 사람당 120자루의 호미와 50자루의 삽이 돌아가는 셈이므로, 분업을 통해 흥부는 호미 20자루를, 놀부는 삽 10자루를 각각 더 이득을 보는 셈입니다(<표> 참조). 따라서 각자 유리한 조건의 물건을 생산한 뒤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면 혼자서 생산할 때보다 더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업 과정에서 누가 무엇을 생산해야 할지는 어떻게 결정할까요? 흥부는 삽 1자루를 만드는 시간이 호미 1자루 제작에 걸리는 시간보다 2배 더 걸립니다. 다시 말해 흥부는 삽 1자루를 만들 때마다 호미 2자루를 포기하는 셈이죠. 놀부는 삽 1자루를 만드는 데 호미를 만들 때보다 시간이 3배 더 걸립니다. 즉, 놀부는 삽 1자루를 만들 때마다 호미 3자루를 포기하는 셈입니다. 삽 1자루를 만들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호미 수가 더 적은 사람이 삽을 만드는 것이 현명합니다.
호미를 기준으로 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호미 1자루를 만들 때마다 흥부는 삽의 2분의 1을 포기하는 셈이고, 놀부는 3분의 1을 포기하는 셈이므로 포기량이 적은 놀부가 호미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포기되는 호미와 삽의 수를 ‘기회비용’이라 부릅니다. 두 사람은 각자 기회비용이 더 적은 것을 생산해야 하는데, 이것을 ‘비교우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흥부는 삽 제작에, 놀부는 호미 제작에 각각 비교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리카도는 각 나라가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에 주력하고, 그렇지 못한 분야의 상품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쓰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비교우위가 없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을 제한하거나 높은 관세를 매기는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난했죠.
하지만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비교우위가 없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지?” 리카도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교육을 통해 비교우위의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해!” 그는 그들의 일자리를 보호해서 얻는 이득보다 값싼 상품을 수입해서 얻는 소비자의 이득이 훨씬 크다고 목청껏 외쳤습니다.
리카도의 말대로 무역은 세계를 부자로 만드는 데 공헌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확대된 무역을 통해 각 가정이 해마다 평균적으로 1만달러씩 더 부유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1) 2010년 전세계의 부는 10년 전보다 72% 성장했고, 1인당 부는 3만700달러에서 4만3800달러로 늘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2) 우리나라도 수출을 통해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리카도의 바람처럼 자유무역이 모두를 잘살게 만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리카도가 살았던 200여 년 전보다 경제활동이 훨씬 복잡해지고 그 영역이 넓어진 지금은 오히려 무역으로 인해 부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아이폰 열풍으로 대박을 터뜨린 애플의 사례를 볼까요? 애플이 아이폰 시리즈와 아이패드로 엄청난 돈을 벌여들였지만, 애플 본사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엄청난 재정 적자에 시달리다 사실상 파산한 상태입니다. 경기 불황에 따른 실업난으로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은 까닭이죠.
　
리카도가 다시 태어난다면?
아이폰 수출이 잘되면 애플은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따라서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일자리가 늘어나 그만큼 세금을 더 많이 낼 수 있을 텐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바로 아이폰 조립 공장이 캘리포니아가 아닌 중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일자리가 캘리포니아에 만들어지지 않은 탓에 주정부의 재정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중국 노동자의 임금이 미국에 비해 훨씬 싸기 때문에 애플의 선택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폰 대박으로 인한 수익은 대부분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애플 본사의 직원들에게만 돌아가고, 캘리포니아의 상당수 주민들은 극심한 실업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유무역은 한 나라 또는 지역 안에서 경제적 불평등, 즉 빈부 격차를 심화하기도 합니다.3) 리카도가 다시 태어나 이 광경을 목격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우리나라에서 수출 실적이 가장 좋은 삼성전자는 지난해 약 154조원어치의 휴대전화를 팔아 17조3천억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해외 생산 비중은 80%가 넘습니다. 삼성 휴대전화 5대 가운데 4대가 외국에서 만들어지는 셈이죠. 삼성전자의 해외 법인에 고용된 노동자 수는 전체의 절반인 9만5천 명에 이릅니다.
최근 미국에서 많이 팔리고 있는 현대차도 지난해 해외에서 생산된 차가 188만여 대로, 국내 생산량(170만여 대)을 앞섰습니다. 미국 앨라배마와 중국 베이징에 생산 라인을 보유한 현대차는 올해 브라질 공장 착공식을 갖는 등 해외 생산 기지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랍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내 대기업들의 수출이 아무리 많이 늘어도 오히려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지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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