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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마트 거센 공세 막고 식료품점·조합식당 지켜
[SPOT] 프랑스 산골마을 중심가 살리기
[148호] 2022년 08월 01일 (월) 뱅상 그리모 economyinsight@hani.co.kr

뱅상 그리모 Vincent Grimault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독일 초저가 할인마트 리들의 집요한 진출 시도에 맞서는 프랑스 남동부 작은 산골마을 아우스트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프랑스 남동부의 산골마을 아우스트쉬르시에 들어서면서 이 사람을 못 본 척 지나치기 힘들다. 건물 한 면을 꽉 채운 15세기 벽화 속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마을 방문객을 지켜보고 있다. 과거 로마 황제가 여행자를 돌보기 위해 설치했던 역참의 구실을 마치 벽화가 대신하는 것 같다. 그때부터 2천 년이 흐른 지금의 아우스트 모습은 골족(Gauls) 마을에 더 가까워졌다. 그래서일까, 2500명이 사는 마을은 정치적 분쟁으로 시끄럽다.
독일 저가 슈퍼마켓인 리들(LIDL)이 마을 외곽에 생길지 모른다는 얘기가 돌았다. 2017년 리들이 아우스트 자치단체에 첫 번째 건축허가 신청서를 낸 것이다. 이후 리들과 아우스트 자치단체, 아우스트가 속한 상위 행정구역인 드롬주의 상권조성위원회(CDAC) 사이에 협상과 절차의 마라톤이 시작됐다. 리들의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두 번째, 세 번째 건축 계획도 무산됐다. 그러나 리들은 집요했다. 2021년 네 번째 건축허가 신청서를 냈다.
이번에는 아우스트 주민들이 나섰다. 리들 개점 ‘반대파’ 주민은 자치단체 회의가 열리는 날 팻말을 들었다. ‘찬성파’ 주민은 서명운동을 벌여 660명의 찬성을 얻어냈다. 주민 사이의 갈등이 점차 심해지자 지자체 의회는 이 문제를 비공개 표결에 부쳤다. 결과는 찬성과 반대가 정확히 반반이었다. 리들은 분열된 마을의 상황을 이용해 지자체에 주민투표를 제안했다. 드니 브누아 아우스트 단체장은 완고하게 거절했다. “주민투표?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쪽 당사자가 엄청난 마케팅 영향력을 가졌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리들은 고도의 마케팅 전략을 두 개나 성공시킨 기업이다. 하나는 소비 욕망을 새로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욕망을 필요로 바꾸는 것이다. 그전엔 저가 슈퍼마켓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더욱이 여기서 3㎞만 가면 크레스트에 알디(ALDI)도 있다.”

귀촌인에 가려진 그늘
마케팅 부서뿐 아니라 ‘사회학’ 부서를 따로 둔 리들이 주민 반발을 예상 못했을 리 없다. 아우스트는 알프스산과 론강 계곡이 만나는 자리에 있는 작은 산골마을로 특별한 풍광을 자랑한다. 이른바 ‘신(네오) 귀촌인’이라는, 문화자본이 풍부한 프랑스 국내외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삶을 찾아 1970년대부터 이 마을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유기·친환경 농장 가꾸기, 내 집 짓기, 고쳐 쓰기를 실천하며 마을 모습을 바꾸고 있다.
‘선구자적’ 귀촌인의 뒤를 이어 정착한 모두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건 아니지만 마을에 매혹됐다. 지자체 의회에도 ‘신 귀촌인’이 많아 마을을 새롭게 가꾸는 데 힘을 실어줬다. 2002년 지속가능발전 토지개발 사업인 비오발레(생태계곡)가 그 예다. 이런 환경에서 공격적 할인, 환경오염, 일자리 파괴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글로벌 기업이 미움받는 건 당연하다.
이럴 때 리들은 무엇을 내세워야 하는지 잘 안다. 바로 가격이다. 리들이 유명해진 것도 상품 상자를 뜯지 않은 채 팔레트에 쌓아놓는 미니멀한 진열 전략 덕택이다.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상품 가격이 올랐지만 초저가 슈퍼마켓 이미지는 여전히 강하다.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가격은 중요한 문제다.
아우스트에 있는 사회센터 ‘니니셰즈’(Nini Chaize)의 티에리 베클랭 부센터장은 “귀촌인만 보면 아우스트는 그저 평화로운 동네라고 생각하기 쉽다”며 “그런 매력적인 얼굴 뒤에 빈민층이 감춰져 있다”고 말했다. 이웃 마을인 크레스트는 빈곤율이 18%에 이른다. 프랑스 전국 평균은 14.6%다.
귀촌 인구가 늘기 전 아우스트도 여느 농촌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인구 유출과 산업붕괴를 잇달아 겪으면서 빈곤해졌다. 니니셰즈의 쥘리앵 플루르 센터장은 “아우스트에 귀촌 인구가 계속 늘면서 전에 없던 주거 문제가 생겼다”며 “신 귀촌인들이 평범한 사람은 엄두도 못 낼 가격에 집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풀때기만 먹는 사람들
리들 개점 문제로 마을이 부유한 신 귀촌인과 가난한 토박이 주민으로 갈라진 걸까? 티에리 베클랭은 “상황을 부풀려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며 “갈등은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마을 중심가에 있는 ‘랑트르포트’는 아우스트에서 나고 자란 주민들이 자주 찾는 유명 술집이다. 그곳에선 리들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단골인 올리비에 코스타(54)는 공영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채식주의자를 “풀때기만 먹는 사람들”이라고 비꼬아 유명해졌다. “갈등을 과장해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지자체에서 주민 과반수가 찬성하는 리들 개점을 반대한 것은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아우스트엔 채식하는 사람들의 상징적인 장소가 있다. 마을 중심에 자리한 식료품점 ‘에피스리 제니알’(L’Epicerie géniale)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원래 이곳을 카페로 만들 생각이었다. 마을 식료품점 두 곳이 잇달아 문 닫으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자그마한 공간에 지역 상품과 유기농 상품이 가득 차 있다. 리들보다 가격대는 높지만 전국 체인점을 둔 유기농 마트에 견주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소비자층이 다양하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회적 다양성은 마을 변두리 ‘렐라보 드 폴레트’(L’Elabo de Paulette)의 존재 이유다. 2020년 말 문을 연 협동조합 식당이다. 주방장 이브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점심을 준비한다. 대형마트와 지역 농가에서 얻은 잔품(팔고 남은 상품)은 전식·본식·후식으로 구성된 11유로(약 1만5천원)짜리 식사로 재탄생한다. 주머니 사정이 괜찮다면 돈을 더 내도 된다. 그 덕에 다른 손님들이 더 싸게 먹는다. 이브는 “이곳에서 사회적 차별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 프랑스 파리에 있는 초저가 할인마트 리들. 리들은 2021년 아우스트 자치단체에 네 번째 건축허가 신청서를 냈으나 주민 반발과 지자체 반대로 결국 백기를 들었다. REUTERS

마을 재생 안간힘
“(이웃 마을) 사양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신구 대립으로 단순하게 해석된 적이 있다”고 모 뒤그랑은 말했다. 그는 2011년 사양에서 일부 주민이 중형 유통업체 카지노(Casino)의 건축 계획을 무효로 만든 사례를 취재한 경험을 책으로 썼다. 이후 지방선거에서 당선한 뒤그랑은 독특한 참여민주주의를 시도했다. “사람들이 카지노 개점에 반대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마을 중심가의 소형 가게를 걱정하는 건 모두 한마음이었다. 사양의 카지노가 리들과 다른 지점은 여기에 있다. 마을 중심가 살리기가 핵심이라는 것을 아우스트 지자체가 인식하고 있다.”
드니 브누아 단체장의 생각도 같다. “외곽에 대형 유통업체가 문을 열면 그 주변으로 또 다른 대형 유통업체가 생긴다. 그러다보면 중심가가 무너진다.” 단체장의 결정을 지지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이 점을 모르지 않는다. 그동안 지자체에서 마을 재생에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줄곧 봐왔다.
아우스트 중심가는 1980년대 이웃 마을 크레스트에 상업지구가 생기자마자 공동화현상을 겪었다. 아우스트는 상위 지자체와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은 돈을 마을 살리기에 나선 사람들에게 쓰기로 했다. 에피스리 제니알과 렐라보 드 폴레트가 개업한 지 2년도 안 돼 빵집이 다시 문을 열었다. 담뱃가게도 우편서비스를 다시 맡아 자주 문 닫는 우체국을 보완한다. 곧 정육점도 새로 생긴다. 인구 8600명 규모의 도시와 인접한 마을치고 활기가 넘친다.
마을 살리기 투쟁은 온 나라의 과제다. 정부는 ‘도심 행동’ ‘내일의 작은 도시’라는 이름을 내걸고 구도심 살리기를 지방 정책의 주요 의제로 삼았다. 2050년까지 ‘토지 인공화 넷제로’(개발토지 순면적 0)라는 목표가 ‘2021 기후·회복법’에 포함된 것도 이런 정부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이에 주거용 토지개발은 여전히 활발하지만 상업용 토지개발은 확연히 줄어드는 추세다. 2021년 상권조성위원회가 개발을 허가한 상업용 토지 면적은 전국적으로 55만㎡에 조금 못 미친다. 2011년 대비 17%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지역의 여느 업체들처럼 리들도 마침내 아우스트에서 백기를 들었다. 드니 브누아 단체장은 거침없이 말했다. “리들이 문을 열면 일자리가 20개 생긴다. 하지만 다른 데서 30개가 사라진다. 저비용 고수익, 그게 바로 리들의 존재 이유다. 기업의 부동산세는 기초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일부를 걷어간다. 리들이 크레스트에 생기면 아우스트에도 세수가 있을 것이다.”
아우스트를 벗어나면 크레스트와 아우스트 사이에 수백m의 밭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가게들이 밭의 가장자리를 야금야금 먹어버렸다. 하지만 이는 “섬세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드니 브누아는 말한다. “프나크(문화상품 대형 유통업체)가 크레스트에 생겼을 때도 밭 구역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래도 그 덕에 주민들이 멀리 발랑스까지 나가지 않아도 된다. 반면 안경점이 아우스트에 문을 열겠다고 하면 허가를 내줄 수 없다. 크레스트에 있는 안경점이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는 지금 남아 있는 밭에 당분간 가게가 들어서지 못할 것이라며 안심했다. 관건은 개발 금지가 얼마나 오래가느냐다. 금지가 풀리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벽화를 품은 밭이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2년 7월호(제425호)
Aouste-sur-Sye, Le Lidl de la discorde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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