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 Culture & Biz
     
불확실성 시대가 부추기는 ‘안전자산’ 투자
[CULTURE & BIZ] 영화와 드라마의 리메이크·리부트 열풍
[148호] 2022년 08월 01일 (월)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 2022년 6월20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영화 <탑건: 매버릭>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톰 크루즈(가운데)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성경에 나오지만 의외로 콘텐츠 제작 쪽에서도 자주 듣는 말이다. 지금 같은 다매체·다채널 시대에 작품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 시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기는 갈수록 어렵다. 가장 중요한 독창성과 고유성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모방과 클리셰가 넘쳐나고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와 포맷의 재생산이 지금의 콘텐츠 시장을 지배한다. 이런 시장 환경에서 최근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리메이크 또는 리부트, 리바이벌로 불리는 제작 방식이다. 이미 나온 콘텐츠를 재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의미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다.
자주 보는 리메이크(Remake)는 원작을 크게 바꾸지 않는 방식이다. 보통 다른 스튜디오에서 제작 권리를 사서 만든다. 리부트(Reboot)는 원작의 브랜드와 기반 스토리를 유지한 채 새로 설정하는 작품을 뜻한다. 옛날 명작을 현재의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컴퓨터그래픽 같은 기술로 볼거리를 덧붙이는 식이다. 오래된 지식재산권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도 쓰인다. 리바이벌(Revival)은 속편에 가깝다. 리부트와 달리 극 중 시간의 흐름이나 캐스팅을 그대로 쓰는 사례가 많다. 애초 후속작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마무리된 콘텐츠를 다시 살린다는 의미에서 속편과 약간 구분된다.

열풍의 진원지
최근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재생산된다. 2022년 개봉 또는 제작되는 영화나 TV시리즈 목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아바타 2>처럼 뒤에 숫자가 붙는 속편, <더 배트맨> <토르: 러브 앤 썬더> 등 프랜차이즈 후속작, <로 앤 오더> 같은 1990년대 유명 TV시리즈의 리바이벌 작품 등이 있다.
최근 유행하는 콘텐츠 재활용 비즈니스를 선도하는 것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다. OTT 플랫폼의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에서 눈에 띄는 라인업이 바로 리메이크나 리바이벌이다. OTT 플랫폼은 과거 유명 작품과 그 팬층을 구독자로 유입시키는 것만큼 확실한 성장전략이 없다고 믿는 듯하다.
이 흐름에 대해 일부에선 콘텐츠 범람으로 더는 오리지널 작품을 만들 수 없는 창의력의 실종을 지적한다. 어떤 것을 만들어도 비슷한 예전 작품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옛것을 가져다 다시 만드는 게 낫다는 얘기도 나온다. 분명한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세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리메이크·리부트 작품이 올랐고, 여전히 많은 작품이 이런 길을 간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리메이크·리부트 열풍에는 미디어·콘텐츠 업계의 필수 전략으로 자리매김한 콘텐츠 프랜차이즈의 포석도 깔려 있다. 30년도 더 지난 명작 <탑건>은 최근 개봉된 <탑건: 매버릭>으로 프랜차이즈의 탄탄한 기반을 갖췄다. 외신에 따르면 이 작품의 흥행에 힘입어 OTT용 드라마 시리즈의 제작이 활발하게 논의된다고 한다. 이들의 계획대로 톰 크루즈를 대신할 젊고 매력적인 새 조종사가 등장하는 시리즈가 성공한다면 <탑건>은 상위 프랜차이즈로 도약하는 기회를 잡을 전망이다.
<탑건: 매버릭>이 1986년 개봉한 원작의 속편을 표방하지만 리부트에 가깝게 만들어진 데는 이런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원작의 스토리 구조와 전개,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와 새로운 기술과 버무렸다. 원작을 본 사람이든 보지 않은 사람이든 서로 다른 경험을 얻는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탑건>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크게 높인 비즈니스 전략의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 한국판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계륵 같은 도박
할리우드 관계자는 ‘리메이크는 과거의 영광을 놓고 벌이는 큰 도박’이라고 표현했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리메이크는 할리우드 등 대부분의 제작업계에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대다수 리메이크작이 원작의 인기를 뛰어넘지 못하고 대중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흐름이 뒤바뀐 것은 2010년대 중반 들어서다. 장기불황과 저성장 기조가 보이면서 리메이크 붐이 일었다.
리메이크 열풍의 저변에 불황 코드가 있는 것은 리메이크가 ‘안전자산’이어서다. 할리우드에서는 리메이크나 리부트를 ‘관객이 확보된’ 영화라고 부른다. 기존 팬과 함께 관객의 정서적 친밀감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을 갖췄다. 작품마다 편차가 있지만, 리메이크의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은 원작보다 평균 20~30% 낮다고 한다.
장점만 있는 것 같지만 제작업계에서 리메이크는 계륵 같은 존재다. ‘리메이크는 잘 만들어봐야 본전’이라고 한다. 양날의 칼인 셈이다. 그래도 리메이크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원작의 명성을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메이크는 원작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갖게 한다. 새로운 독창적(오리지널) 요소는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다. 리메이크작의 완성도를 평가할 때는 원작을 얼마나 잘 재현했는지가 판단의 첫 번째 척도가 되고, 그다음이 독창적 요소와 재해석의 참신성이다.
그동안 리메이크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던 이유는 원작을 그대로 현지화하는 기계적인 리메이크가 많았기 때문이다. 좋은 리메이크로 평가받는 작품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문화의 융합이 돋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13년 방영된 한국 드라마 <굿 닥터>를 리메이크한 미국과 일본의 작품이 대표 사례다.
서번트증후군인 천재 소아외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미국 <ABC방송>(2017년)과 일본 <후지테레비>(2018년)가 리메이크했다. 미국과 일본 특유의 독창성(오리지널리티)을 잘 반영하고 현지화에 충실했다. 미국에서는 2022년 방영한 시즌5가 괜찮은 시청률을 보였고, 일본에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해 성공한 리메이크의 본보기가 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주된 스토리라인이 동일하지만 작품에 담긴 이야기가 각 나라의 문화에 맞게 잘 재해석되고 원작의 정서와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2017년 처음 방영된 스페인의 동명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공개 전 스페인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가 만나면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감이 컸다. 초기 넷플릭스의 국외 부문을 선도하던 스페인과 최근 기세가 무시무시한 한국 드라마의 만남이기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수그러들면서 그 반작용으로 가입자 감소와 주가 폭락을 겪은 넷플릭스에선 분위기 반전 카드가 되리라는 기대도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종이의 집>은 <오징어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비영어권 부문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보유한 작품이다. 리메이크작 공개 뒤 반응은 갈렸다. 원작을 한국적 상황에 잘 버무려 녹여냈고 원작 재현도도 높아 만족스럽다는 견해와 함께, 원작과 거의 비슷하고 딱히 새로운 점이 없어 시시하다는 혹평이다. 리메이크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프랜차이즈 전략
한때 한국에서는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가 유행했다. 하지만 실제로 재미를 본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에는 상황이 역전돼 한국 드라마를 일본에서 리메이크하는 사례가 늘었다. 원작 <이태원 클라쓰>가 넷플릭스를 통해 일본에서 큰 흥행을 거두자 일본에서 <롯폰기 클라쓰>라는 리메이크를 만들었다. 아직 방영 중이라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는 ‘원작보다 못하다’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사실 원작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기란 절대 쉽지 않다. ‘차라리 오리지널 작품을 만드는 게 더 쉽다’고 제작자들이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고할 만한 원작이 있어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기겠지만, 비교 대상인 원작을 뛰어넘지 못하면 원작 팬들에게 비난받기 일쑤다.
장기 불황으로 가는 시대에 리메이크나 리부트는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인식된다. <탑건: 매버릭> 등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더 지속될 전망이다. ‘지식재산권 재활용’이란 측면도 제작자에게 리메이크나 리부트에 더 관심을 갖도록 한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제작자가 새로운 것에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리메이크나 리부트는 더 활성화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이는 최근 미디어·콘텐츠 업계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프랜차이즈 전략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리메이크·리부트 열풍의 배경에는 불확실성 시대에 새로운 것이 아닌 익숙한 것에서 또 다른 경험을 원하는 대중의 요구와 이에 따른 사회 분위기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 문동열 칼럼니스트는 업계 경력 20년 이상의 콘텐츠산업 전문가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며, 콘텐츠 제작과 금융이 전문이다.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졸업하고 LG인터넷과 SBS콘텐츠허브 등에서 방송·게임·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IBK기업은행에서는 콘텐츠 금융과 관련한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8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