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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인플레는 인위적 가격 인하의 부메랑
[FINANCE] 저금리의 저주
[148호] 2022년 08월 01일 (월)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2년 6월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치솟은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 연방 유류세를 일시 면제하기로 한 정부 방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REUTERS

오늘날 인플레이션은 왜 치명적일까? 익숙하지 않은 ‘블랙스완’(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이례적 사건)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1990년대 이래 3%를 넘는 인플레이션이 드물었다. 5%를 넘은 적이 2005년과 2008년에 있긴 했지만 지속기간이 짧았다. 특히 2012년부터 3%란 수치는 만리장성처럼 높은 벽이었다. 그런데 이제 5%가 낮아 보이기까지 한다. 물가는 8%를 넘었고 좀처럼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은 공포가 됐다. 낯선 괴물을 상대하느라 연방준비제도(연준)뿐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낸 원인을 찾자면 끝도 없다. 전쟁, 공급망 혼란 등등. 하지만 진짜 문제는 너무 오랜 기간 이어진 저금리다. 저금리는 오늘의 인플레이션을 낳았을 뿐 아니라 기업 존재와 운영 방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제 역풍이 분다. 낮은 금리는 온실과 같다. 그 안에서 화초처럼 안주했던 기업들에 혹한의 삭풍이 분다. 그 바람을 이겨낼 기업이 얼마나 될까? 그 과정에서 추가로 발생하는 물가 압력은 소비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줄까? 지극히 금융화된 경제에서 과연 기업들은 ‘야성적 충동’을 되찾아 창조적 파괴를 통해 거듭날 수 있을까?
이런 고민 모두가 어쩌면 부질없을 수 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이 중앙은행의 제로금리 정책에 있다는 걸 모두가 알지만 그들은 이번 위기가 지나가도 또다시 동일한 행보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보조금 뿌리기
초저금리로 만개한 회사들이 있다. 이른바 혁신 스타트업(초기기술기업)이다. 이들은 저금리란 우산 아래 꽃을 활짝 피웠다. 비상장 스타트업의 자금조달 방식은 상장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 금융시스템에 의존한다. 벤처캐피털, 기관투자가, 부자, 사모펀드에 주식을 팔아 돈을 마련한다.
이들 기업이 지난 몇 년 번성한 이유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저금리다. 투자자에게 초저금리는 스타트업에 투자할 최적의 유인을 제공했다. 예금금리는 보잘것없다. 특별할 게 없는 회사 채권 수익률도 2%인 상황이다. 넘쳐나는 돈을 투자하기에 스타트업만 한 데가 없었다. 주식시장의 호황은 테슬라나 아마존과 같은 신화를 만들어냈다. 성공하면 수백, 수천 배의 수익을 내는 스타트업 투자는 황금알 낳는 거위로 여겨졌다. 몇 년 동안 이익이 나지 않아도, 매출이 발생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벤처자본은 이들 기업으로 물밀듯 들어갔다.
이런 자본의 홍수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는 동인이 됐다. 스타트업들은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고 출혈을 감수하며 시장지배력을 높이는 데 몰두했다. 결국 이들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지난 10년 도회지에 사는 청년들은 싼 가격에 혁신 신생기업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다. 이들 기업은 너나없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며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썼다. 온라인쇼핑몰은 말할 것도 없고 배달 등 인터넷 기반 스타트업들은 손해를 보면서도 사용자 확보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모바일과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청년들은 소비재 대부분을 노년층보다 싸게 살 수 있었다. 혁신이 가격을 낮춘다는 신화도 이때 탄생했다. 하지만 진실은 벤처자본을 등에 업은 스타트업들의 보조금 뿌리기에 불과했다. 가격을 낮춘 건 혁신이 아니라 ‘돈 살포’였다.
스타트업은 비영리기구나 자선단체가 아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수익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불멸의 진리가 어느새 무너졌다. 수익이 없는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투자자들은 아마존 같은 기업을 찾아 거액을 베팅했다. 성공 확률이 매우 낮았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설령 투자한 기업 대부분이 망해도 한 곳만 성공하면 모든 손실을 메우고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벤처 생태계를 지배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는 꿈같은 세상이었다. 손실은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았다. 확장만이 유일한 영업 방침이었다.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데 아낌없이 돈을 썼다. 저금리 환경은 이것을 부추겼다. 투자자들은 단기적 수익보다 장기적 성장을 매력적이라 여겼다.
이제 이 모델이 깨지고 있다. 그것이 인플레이션을 악화하는 요소가 됐다. 오르는 금리는 손실이 나는 스타트업의 목줄을 죈다. 이는 에너지 가격 폭등,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상승과 맞물려 상황을 악화했다. 스타트업의 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우버와 리프트 등 대표적인 서비스 스타트업들이 연이어 요금을 올렸다. 다른 기업들도 그 뒤를 따른다.
혁신 기업들은 전통적 서비스 요금을 끌어내린 주체였다. 하지만 그것은 저금리 상황이 만들어낸 마법에 불과했다. 이제 전통적인 택시 요금이 혁신 스타트업의 그것보다 싸다. 배달앱 서비스 요금도 마찬가지다.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던 할인 쿠폰이 점차 사라져간다. 이제 음식값에 맞먹는 배달 서비스 요금을 내야 한다.
인플레이션은 인위적으로 낮춘 가격의 끝단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가격 합리화 과정일 수 있다. 인위적으로 조작된 가격은 언젠가 기업 수익이 보장되는 합리적 가격으로 수렴한다. 스타트업들의 서비스 요금이 오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가격이 적정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 가격은 시장이 결정한다. 수익을 내면서도 소비자가 지급할 수 있는 가격에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격은 다시 내려갈 수 있다. 그동안 소비자는 높은 가격이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 2022년 7월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공항에 도착한 여행객이 우버 차량을 타고 있다. 우버 등 디지털 서비스 혁신 기업들은 최근 잇달아 요금을 올렸다. REUTERS

에너지산업의 전철
몇 년 전 에너지산업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저금리, 규제 변화, 신기술이 맞물리면서 이전엔 수익성이 없던 셰일오일과 가스 생산을 낮은 원가로 할 수 있었다. 원유 가격이 2010~2014년 5년 동안 배럴당 80달러 이상이었지만 생산원가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수익이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셰일오일 기업들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은행 빚을 늘렸고 새로운 생산자들이 밀어닥쳤다. 저금리는 이들에게 축복이었다.
이 때문에 에너지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신생기업은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주요 생산국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가격 인하 경쟁에 나섰다. 하지만 2015년 이후 새로운 투자를 할 유인이 사라졌다. 출혈경쟁으로 가격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닥쳐 원유 가격이 폭락했을 때 산업은 빈사 상태가 되다시피 붕괴했다.
상황은 역전됐다. 자본투자가 급감하면서 오일 기업은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고, 경쟁에서 밀려난 기업들은 문을 닫았다. 여기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각종 규제 등으로 오일 기업에 돈을 빌려주지 말라는 압박이 현실화했고, 자본투자 원가가 급속히 높아졌다. 셰일오일 생산이 줄자 그렇지 않아도 공급망 혼란으로 오르던 원유 가격은 천장을 뚫었다.
에너지기업들은 장기성장에 투자하지 않는다. 자신이 없어서다. 그들은 정부와 소비자가 재생에너지를 선호한다는 것을 안다. 환경 규제가 화석연료 생산 비용을, 높은 금리가 자본 비용을 높인다는 점도 의식한다. 무엇보다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이 크므로 2023년이나 2024년에 연료 수요가 급감할 수밖에 없어 어떤 새로운 투자도 수익성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에너지 생산자들은 되도록 투자를 줄이고 현금을 최대로 뽑으려 한다.
만약 지난 10년 동안 원유 가격이 80달러 선을 꾸준히 유지했다면 우리는 현재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을지 모른다. 원유 생산자는 괜찮은 이익을 내고, 공급은 적당하며, 인플레이션은 훨씬 덜 심각할 것이다. 초저금리로 발생한 활황이 마침내 붕괴되는 ‘붐-버스트 사이클’이 그것을 방해했다.
저금리는 왜곡된 시장을 만들었다. 무차별적 위험 선호를 불렀다. 혁신과 야성적 충동이란 기업가정신 대신 자본을 통한 시장 장악만이 최고의 선으로 인식됐다. 이제 이들 기업의 생존 투쟁이 벌어진다. 고비용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현금이 최고다. 무조건 수익을 내야 한다. 이것은 의미한다. 더 높은 인플레이션이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인위적으로 낮춘 가격은 일시적 호황을 불러올 뿐이다. 궁극적으론 튀어 올라 침체를 낳는다. 왜곡된 가격은 반드시 원점으로 회귀하려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적정가격을 유지하게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 그것이 중앙은행의 책무다. 그래야만 야성적 충동에 기초한 창조적 파괴가 속성인 자본주의가 지속가능하다. 외력이 아닌 자발적 혁신, 원가 절감, 생산성 증대를 통해 기업은 성장해야 한다. 저금리에 기댄 무차별적 확산은 일시적으로 소비자 후생에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영원하지 않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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