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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에서 발전의 다면성으로
[Forum]
[11호] 2011년 03월 01일 (화) 최나래 economyinsight@hani.co.kr

최나래 영국 옥스퍼드대학 박사과정·개발학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차 ‘원조효과성고위급회의’(High-level Forum on Aid Effectiveness)는, 향후에도 기존 원조 효과성 중심의 국제개발원조 체계를 유지할지, 아니면 새로운 체계를 정립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다. 이번 회의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개발도상국이 주인의식을 갖고 자국의 발전 전략을 수립·이행할 수 있었는가 △원조를 지원하는 공여국과 원조기구들이 개발도상국 발전 전략에 자신의 원조 정책을 얼마나 일치·조화시켰는가 △집행된 원조 정책의 성과를 엄밀히 측정·관리했는가 등이 될 것이다. 현재까지의 전반적인 평가는 ‘개발도상국 발전 전략의 질을 높여야 하고, 원조기관이 개발도상국 정부 체계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과관리 체계 역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존 개발원조 지표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
이런 평가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면 그에 대한 ‘원인 분석’이 필수적이다. 이는 원조 효과성 제고를 위한 5가지 원칙을 천명한 파리 선언 이행 여부만을 따지는 평가 기준과 지표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지표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즉, 원조 정책(수원국의 입장에서는 발전 정책)이 논의·수립·이행되는 과정 전반과 구조를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발전적 변화가 있었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해명할 수 있다.
 
   
2005년 7월, 아프리카 서부 니제르 북서 지역인 나후바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한 살배기 아이가 우유를 삼키려 애쓰고 있다.

지표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의 대표적인 예는 ‘수용자(Recipient)와 공여자(Donor) 간의 정치적 관계’다. 수원국의 주인의식 강화와 공여국 원조 간의 일치·조화는, 원조 정책 과정에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원조 관행의 문제다. 따라서 단기간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수원국의 주도권 강화에 대한 논의는 20세기 후반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원조 기관의 의제나 이해관계를 우선시한 데 대한 비판에서 제기됐다. 수원국이 주도적으로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할 역량을 키우지 않은 상태에서는 외부에서 강요된 획일적인 프로그램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 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주도 아래 추진된 ‘원조의 비구속성화’(Untying Aid) 프로그램은 공여국의 권력 행사를 통제하려는 시도의 하나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물적·기술적 자원을 수원국에 제공한 공여국 및 원조기관이 흔히 갖게 되는 권력을 전복해야 한다. 정치적 관계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제개발학계에서는 다양한 ‘원조 관계’ 연구가 진행돼왔다. 이 가운데 원조 관계를 정치·경제학적 권력관계로 보고 이론적·실증적으로 연구한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GEG·Global Economic Governance) 프로그램이 주목할 만하다. GEG는 “파리 선언 등 기존 원조 담론은 원조 관계를 동등한 파트너십으로 설정하면서 비정치화한다”고 비판한다. 이와 달리 실제로 원조 관계는 발전 정책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갈등과 협상이 이뤄지는 정치적 장이라는 게 GEG의 주장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GEG는 가나·말리·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8개국에서 원조 수원국의 협상력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분석했다.
원조 관계뿐 아니라 공여국 및 원조기관 내의 정치·경제학적 동력이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005년 스웨덴 국제개발협력청(Sida)은 원조기관의 조직 행동을 분석적으로 고찰해 원조 정책이 실패하는 원인을 파악했다. 이 연구 결과(‘사마리안 딜레마: 개발의 정치경제학’)는 원조 정책 과정에 관련된 행위자들이 처한 상황, 그들에게 가해지는 조건과 제약, 그들이 따라야 하는 규정, 각자의 유인 동기와 이해관계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각 행위자들의 선택과 행동이 집합적으로 모인 결과는 애초에 원조 정책이 제시하는 명목적 원칙들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는 원조기관이 끊임없이 기존 정책을 평가하면서 자성함에도 실질적인 개혁은 왜 이뤄지지 못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한다.

   
지난해 8월, 여성가족부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숙명여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인터넷 상거래(e-Biz) 교육을 받고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원조 과정상의 문제들은 지표화해 평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고위급 회의 같은 자리에서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특히 원조 효과성 논의는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론적 논의, 즉 국제개발원조 ‘산업’의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실무자 논의에 가깝다. 따라서 권력관계의 구조적 변화 같은 정치적 문제는 이 자리에서 쉽게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원조 관계’의 정치·경제학적 권력관계
지표가 말해주지 않는 것 중 간과해선 안 되는 또 다른 문제는 원조 정책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 즉 원조 정책의 가시거리를 벗어난 ‘파급효과’다. ‘효과성’과 ‘파급효과’를 구분하기 위해 원조 효과성 논의를 주도하는 OECD/DAC가 제시한 5가지 원조 평가 기준을 살펴보자. 첫째는 원조의 목적, 이행 계획과 방법 등이 적절했는지 검토하는 적절성 또는 타당성(Relevance)이다. 둘째는 투입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는지를 따지는 효율성(Efficiency)이다. 셋째는 원조가 목적한 바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그리고 목표 달성에 성공 또는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지를 분석해 원조의 효과성(Effectiveness)을 평가한다. 넷째는 원조가 의도한 효과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포함해 광범위한 사회·정치·경제적 파급효과(Impact)를 점검한다. 마지막 평가 기준은 원조 지원이 종료된 뒤에도 정책 또는 사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검토하는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현재 원조 효과성 논의는 원조의 효율적 사용과 원조 목적의 효과적 달성을 측정하는 협소하고 기술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파급효과나 지속 가능성 등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분석을 요하는 항목은 유의미한 평가가 부족한 실정이다. 그 결과 원조 효과성 논의에서 평화·인권·환경·양성평등·노동·이주 등 국제개발 분야의 핵심 안건들이 다각도로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 원조 정책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가 주변화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개발에 따른 강제이주다. 댐·철도·도로 등 대규모 인프라 사업뿐 아니라 도시 재정비, 관개수로 개선 등 다양한 농촌·도시 개발사업의 결과 발생하는 철거와 이주 문제는 개발사업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불가피하게 초래될 수밖에 없는 과정이라고 인식돼왔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축적된 강제이주 사례는 강제이주된 주민들이 주로 부적절한 주거환경에서 살아온 빈민이었으며, 강제이주 결과 이들이 토지 이용, 고용·생계, 건강 상태, 교육 등에서 소외와 빈곤화를 더 깊이 경험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개발사업의 부정적 파급효과는 개발사업의 목표 달성 여부만으로 사업을 평가하는 건 부적절함을 시사한다.
기존 원조 효과성 평가는 ‘발전’이라는 긍정적 가치에 기여했는지를 따지는 데 집중돼 있다. 반면 강제이주 사례 같은 원조의 다양하고 포괄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는다. 이런 문제들은 쉽게 지표화하거나 수치로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원조의 다면성을 인정하고 이를 원조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의 부재에 있다. 즉, 지표가 ‘말해주지 않는 것’ 또는 ‘말해줄 수 없는 것’ 속에 기존 원조 효과성이 갖는 근본적 한계가 도사리고 있다. 이제 원조의 파급효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나아가 이른바 ‘발전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다룰 것인가 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원조의 부정적 파급효과 주목해야

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는 ‘발전의 다면성’을 반영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1980년대 말에는 국내총생산(GDP) 중심의 거시경제 지표가 발전의 주요 척도였으며, 이를 목표로 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국제개발의 주류를 이뤘다. 유니세프(UNICEF)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개발도상국의 보건·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보고서 ‘인간의 얼굴을 한 구조조정’(Adjustment with a Human Face·1987)을 펴냈다. 이 보고서는 이후 세계은행 등이 ‘빈곤퇴치 전략 보고서’(PRSP·Poverty Reduction Strategy Paper)로 정책을 전환하는 데 기여했다. 비슷한 시기에 저명한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팀이 개발경제학의 초점을 ‘사람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1인당 GDP에 기대수명과 읽고 쓸 줄 아는 문해 능력을 더한 ‘인간개발지수’(HDI·Human Development Index)를 고안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 보고서의 주요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이런 정책 전환이나 지표 개선도 여전히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PRSP는 사회 발전 및 복지를 파편화된 사회 안전망의 문제로 치환하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에 입각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HDI는 <자유로서의 발전>을 비롯한 다수의 책을 통해 국제개발 분야에 기여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야 센의 이론을 현실화하려는 일환이었다. 그러나 일찍이 센은 이론과 개념의 복잡성이 단순 지표로 환원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연구는 ‘옥스퍼드 빈곤 및 인간개발 이니셔티브’(OPHI·Oxford Poverty and Human Development Initiative)에서 추진하는 ‘다면적 빈곤지표’(Multidimensional Poverty Index) 개발이다. OPHI는 빈곤이 복잡다단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노동의 질, 신체적 안전, 정신적 안녕 등을 포괄하는 지표 고안을 목표로 한다. 이런 노력이 수치나 지표 중심으로 이뤄온 국제개발원조 분야의 기존 관행을 바꾸지 못하겠지만, 점차 ‘빈곤의 다면성’을 부각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젠 원조 효과성 논의를 다양한 발전 가치를 포함하는 ‘개발 효과성’(Development Effectiveness) 논의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발전의 다면성을 심층 분석하고 이를 통해 국제개발원조에 얽힌 정치경제적 권력관계나 관행을 선명하게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narae.choi@qeh.ox.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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