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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의 독점 카르텔’을 깨라
[Forum]
[11호] 2011년 03월 01일 (화) 이태주 economyinsight@hani.co.kr

이태주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ODA WATCH 대표
 
오는 11월29일부터 3일간 부산에서 중요한 대규모 국제회의가 열린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포함하는 170여 개국 고위급 대표단과 유엔·경제협력개발기구(OECD)·세계은행 등 다자기구 대표, 전세계 시민사회 대표 등을 포함해 2천 명 이상이 참가하는 국제개발 분야의 세계 최대 고위급 회의인 ‘원조효과성고위급회의’((High-level Forum on Aid Effectiveness)가 열린다. 로마에서 1차 회의(2002), 파리에서 2차 회의(2005), 가나 아크라에서 3차 회의(2008)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다.
이번 부산 회의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원조효과성’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향후 대안을 마련하는 중차대한 시점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국제사회는 최빈국과 개발도상국의 빈곤을 완화할 목적으로 제공하는 국제개발원조의 효과성을 높이려는 5가지 원칙과 이를 측정하는 12개 지표를 마련해 원조 효과를 높이려 했다.
‘파리 선언’으로 알려진 5가지 원칙이란 △원조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수원국의 주인의식(Ownership)을 존중해야 하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상호책임성(Mutual Responsibility)이 중요하고, △원조를 수원국의 정책 우선순위에 일치(Alignment)시켜야 하며, △선진국의 원조를 상호조화(Harmonization)시키고, △성과관리(Managing for Results)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5가지 원칙에 대한 이행 성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향후 더 구속력이 있는 국제원조 규범을 마련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회의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이다.
 
   
2007년 5월 인도 뭄바이의 슬럼가에서 한 소녀가 부서진 자기 집 한가운데에 누워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국제개발원조는 적잖은 성과와 인도주의 정신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판 대상이 되었다. 성과 없는 원조로 인한 ‘원조 피로’ 현상은 점차 심화됐고, 대규모 원조를 받은 나라들은 ‘원조 종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부작용도 많았다. 최근에는 아프리카에서부터 ‘원조는 죽었다’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서방 원조가 오히려 부패를 심화하고, 시장구조를 왜곡하며, 빈부 격차를 더욱 악화하고, 자원의 유출과 환경 파괴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선진국 영향력 지렛대로 전락한 개발원조
국제사회에서 원조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확산된 것은 무엇보다 선진국의 원조 동기와 목적이 시장과 투자 확대, 자원 확보, 안보 전략, 외교적 목적 등 공여국의 첨예한 이해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됐기 때문이다. 수원국의 탈빈곤과 평화 구축, 경제개발과 사회 안전망 확충을 목적으로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1980년대에 아프리카에서 무리한 민영화와 탈규제를 포함하는 구조조정을 강요해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 미국은 옛 소련과의 경쟁으로 수십 년간의 냉전 원조 이후에도 세계 안보 전략의 수단으로서 대외 원조를 활용했다. 일본과 대부분의 공여국들은 자국의 경제적 진출과 자원 확보,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대외 원조를 제공했다. 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 인도, 브라질뿐 아니라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거의 모든 신흥 경제국이 대외 원조를 확대하면서 글로벌 정치와 역내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한국도 세계 중심 국가로 진입하고, 국격을 제고해 소프트 파워를 증대시키며,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다목적 포석으로 개발원조를 급격히 확대하고 있다. 또한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에 이어 원조효과성고위급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국제개발원조의 주요 논의와 규범은 세 축을 통해 만들어지고 실행된다. 하나는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이고, 다른 한 축은 세계은행과 아시아은행 등 다자은행들(MDBs)이며, 그리고 가장 최고의 합법적 무대인 유엔이다. OECD 개발원조위원회는 ‘백인의 도덕적 책무’를 다하기 위한 서방의 전통적 원조 규범을 만들어내는 본거지다.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원조의 독점 카르텔’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방국가들이 모든 원조 논의와 규범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은행을 포함하는 다자은행들도 미국과 선진 공여국들이 의결권을 독점함으로써 경제원조를 통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비해 유엔은 192개 회원국이 평등한 주권국으로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지구촌의 빈곤과 분쟁, 식량 위기와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를 논의하는 장이다. 2000년 유엔은 모든 회원국과 23개 다자기구가 합의한 가운데 ‘새천년개발목표’(MDG·Millenium Development Goals)를 선포했다. 이를 통해 △2015년까지 절대빈곤 인구를 반으로 줄이고 △보편적 초등교육을 달성하며 △성평등 촉진과 유아사망률 감소 △모성보건 △에이즈와 말라리아 퇴치 △지속 가능한 환경보전 △발전을 위한 세계적 파트너십 구축 등 8개 개발목표를 정했다. 개발원조위원회는 공여국 중심의 원조 규범을 통해 원조 효과성을 높이려 한다. 세계은행과 다자은행들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경제 인프라를 건설하고 무역을 촉진해 세계화와 시장경제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유엔은 모든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지구 공공재와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통해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는 점이다.

‘조건부 원조’ 강요와 테러와의 전쟁 자금
그러나 국제개발원조의 실상은 이런 원조 논의들과는 상당한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 원조자금의 4분의 1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과 이로 인한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전후 복구 프로그램에 사용됐다. 공여국들은 자국의 기업과 전문가들을 통해 원조자금의 70%를 환수하고 있다. 아직도 채무 상환 부담 때문에 경제발전을 이룰 수 없는 최빈국에는 차관원조를 하고, 공여국의 상품·기술·물자를 사용하게 하는 ‘조건부 원조’를 강요한다. 개발 재원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500억달러 이상을 추가로 제공하겠다던 선진국들은 약속을 이행하고 있지 않다. 실질적인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늘리지 않고 채무 탕감을 원조자금으로 이중 계상하기도 한다.
한편 개발원조위원회가 주도하는 원조 효과성 논의의 핵심인 파리 선언과 아크라 행동계획에는 공여국과 수원국 모두 참여가 저조하며, 이행 실적도 만족할 만한 진전이 없다. 파리 선언의 목표를 2010년까지 달성하는 것은 이미 실패했다. 파리 선언 자체가 원조의 전달 방식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공여국과 수원국 간의 불평등한 원조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OECD/DAC와 세계은행 등 다자은행들은 ‘금융위기’와 ‘식량위기’,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위기’ 등 세계가 직면한 삼중의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확산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에 전 지구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중국과 인도에서의 극빈층 인구 감소를 제외하면 절대빈곤 인구도 줄어들고 있지 않다. 개발원조는 점점 더 공여국 중심의 양자 간 이해관계 속에서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있으며, 원조의 질적 개선과 원조 효과성 제고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지난해 2월, 신라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코리아 2010’행사. 앞줄 왼쪽부터 에그하르트 도이처 OECD 개발원조위원회 의장, 이명박 대통령, 요란 레르손 전 스웨덴 총리.

특히 한국은 DAC에 가장 최근에 가입한 신흥공여국으로서 개발원조의 질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글로벌발전센터(Center for Global Development)가 조사 발표한 원조의 질 평가에 의하면, 한국은 23개 공여국과 8개 다자기구를 포함한 31개 조사 대상 중에서 거의 꼴찌다. 원조 효율성은 30위, 수원국 역량 배양은 16위, 수원국 행정 부담 경감은 31위, 원조의 투명성과 학습은 30위다. 심각한 원조의 질적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예산 낭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국민적 참여를 통해 비약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ODA 자금이 절대빈곤과 질병 퇴치, 인류의 보편 인권과 사회 발전을 위해 사용되기보다는 개발도상국의 부패와 환경 파괴, 자원 유출, 시장 교란과 자국 기업 진출, 지역 분쟁에 사용된다면 큰일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의 개발원조 논의는 더 이상 전통적 원조 방식인 ODA에 국한되지 않는다. ‘원조를 넘어서’ 개발을 위한 혁신적 재원 마련과 개발 효과성 증진을 위한 포괄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개발협력도 양자 간 전통적 원조 방식을 넘어 글로벌 기금과 글로벌 공공재 확산을 위한 다양한 협력 방식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선진 공여국들은 직접적인 재정 지원 방식의 원조(General Budget Support)를 시행하고, 글로벌 기금을 확대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이미 2003년에 의회의 주도로 ‘지구적 개발정책’(PGD·Policy on Global Development)을 추진하는 기본 전략문서를 채택했다. 노르웨이는 ODA 계정과는 별도로 지구적 공공재 지원 예산을 마련하고 국민총소득(GNI)의 0.3%를 배정하고 있다.

국제개발원조는 글로벌 공공재
부산에서 오는 11월에 개최되는 원조효과성고위급회의는 이런 맥락에서 중요하다.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글로벌 개발협력 정책 논의를 통해 전통적인 개발협력 방식과 글로벌 협력 체계의 일대 전기가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회의에서는 기존 원조 관행과 원조 효과성 논의의 틀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개발 효과성’(Development Effectiveness)에 대한 새롭고 진전된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과거의 잘못된 원조 관행은 타파해야 한다. 혁신적 개발재원 마련과 새로운 개발협력의 구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은 이런 중차대한 계기를 통해 국제사회에 무엇을 기여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전통적 원조 수단을 넘어 개발도상국이 포괄적인 사회 발전과 경제 발전을 성취할 수 있도록 복합적이고 일관성 있는 개발정책 수단을 제시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원조와 무역, 투자, 농업, 환경, 기술혁신, 교육과 이민정책까지 포괄하는 개발협력 논의가 필요하다. 최빈국과 개발도상국이 각국의 역사와 환경에 맞는 다양한 최적의 개발정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우리의 개발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할 것이다. 부산 회의가 ‘원조 효과성을 넘어 개발 효과성으로’ 이행하는 국제개발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고, 글로벌 개발 구상에 기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서구 중심, DAC와 다자은행 중심의 일방적인 선진국 원조 체제를 넘어 G77 등 개발도상국과 신흥공여국, 민간재단과 시민사회, 다자기구와 민간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새로운 글로벌 원조 체계를 마련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사우디아라비아 등 중요한 신흥 공여국들이 참여하지 않는 원조 규범 논의는 이제 의미가 없다. 시민사회와 민간재단 및 기업이 동참하지 않는 협력 체계는 한계가 있다. 부산 회의는 한국이 주도해 새로운 포괄적 글로벌 원조 체계를 구상하고 실현하는 중요한 계기가 돼야 한다.
개발원조가 지닌 연대와 협력의 숭고한 의미를 되찾고, 공여국의 편협한 국익 우선주의와 양자주의를 넘어 글로벌 공공재를 확대해야 한다. 빈곤과 질병을 퇴치해 인류의 보편 인권을 실현하며, 더 평등하고 정의롭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해야 한다. 
tjle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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