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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이 찜한 기름집, 이유 있었네
[재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셰브론
[147호] 2022년 07월 01일 (금) 찬호 Sodohun@naver.com

찬호 공인회계사

   
▲ 2022년 5월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셰브론 주유소. REUTERS

요즘 자동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가면 이전보다 시간이 배로 걸린다. 휴대전화로 저렴한 기름값을 검색해 찾아온 다른 차들이 길게 줄 서 있기 때문이다. 2021년 말 리터당 1600원대였던 휘발유 가격이 지금은 2천원을 훌쩍 넘는다.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이 미국의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이다. 버핏 회장이 이끄는 미국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는 2022년 1분기 글로벌 증시 하락장에서 미국 석유업체 셰브론 주식을 쓸어 담았다. 셰브론은 버크셔가 보유한 주식 종목 중 코카콜라를 제치고 보유 비중 4위에 올랐다.
셰브론 주가는 2021년 말 주당 117.35원에서 브렌트유가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한 2022년 6월8일 181.13원을 찍으며 무려 54% 올랐다. 혀를 내두를 만한 투자다. 다른 사람들이 성인잡지 <플레이보이>를 볼 때, 재무제표를 읽는다는 버핏은 셰브론 회계 장부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했을까.
셰브론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미국 엑손모빌에 이은 세계 3위 석유회사다. 국내 4대 정유사인 지에스(GS)칼텍스 지분 50%를 보유해 한국 소비자에게도 생소하지 않다. 칼텍스는 미국에서 셰브론과 텍사코 브랜드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 회사의 아시아 지역 브랜드다.
글로벌 석유기업들은 분할과 합병, 합종연횡의 역사를 갖고 있다.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가 1870년 설립한 스탠더드오일이 1911년 반독점법의 철퇴를 맞고 쪼개진 34개 회사 중 일부가 현재 미국 1, 2위 에너지업체가 된 엑손모빌과 셰브론이다. 140년 넘는 역사를 보유하고 직원 수 4만3천 명에 이르는 셰브론이 하는 사업은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크게 2개로 구분된다. 업스트림은 세계의 유전과 해저에서 원유와 천연가스를 탐사·채취·생산하는 단계를, 다운스트림은 이렇게 얻은 원유와 가스를 휘발유·경유 등 석유 제품으로 정제해 판매하는 단계를 뜻한다.
셰브론의 2021년 순이익에서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84%, 16%다. 업스트림 사업 부문의 수익성은 국제 원유 가격이 좌우한다. 한국에서도 GS칼텍스가 버는 돈의 절반이 셰브론의 다운스트림 이익으로 돌아간다.

“하느님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6월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 최대 석유회사 엑손모빌을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석유기업들이 유가가 치솟자 막대한 돈을 벌면서도 석유 생산을 늘리지 않으며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얘기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라는 골칫거리를 안은 바이든이 여론의 화살을 에너지기업 쪽으로 돌리는 정치 전략이다.
물론 아주 일리 없는 얘기는 아니다. 글로벌 에너지기업들이 돈방석에 앉은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셰브론의 2021년 당기순이익은 156억달러로, 1년 전(55억달러 적자)에 견줘 큰 폭의 흑자로 돌아섰다. 코로나19 여파 감소에 따른 연료 수요 증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와 비오펙 산유국 간 협의체인 오펙플러스(+)의 감산 영향으로 약 20조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셰브론 원유 판매 가격의 참고 지표인 브렌트유 가격은 코로나19 충격이 컸던 2020년 배럴당 평균 42달러에서 2021년 71달러로 올라갔다. 이 회사의 2021년 순이익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보다 5배 넘게 늘었다. 매출은 크게 증가했으나 영업비용이 제자리걸음을 한 덕분이다.
2022년에도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1분기 셰브론의 당기순이익은 63억달러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4배 이상 불어났다. 미국에서 번 업스트림 부분의 순이익만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32억달러에 이른다. 셰브론 쪽은 사업보고서에서 “지정학적 문제(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와 오펙플러스의 지속적인 공급 관리, 코로나19 제한 완화에 따른 수요 회복으로 유가가 뛰고 있다”고 설명한다.
반면 셰브론의 2022년 1분기 글로벌 석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306만 배럴로, 전년도 1분기에 견줘 오히려 2% 줄었다. 미국 내 석유 생산이 10% 늘었지만, 미국 이외 지역의 석유 생산은 유전 감소 등으로 더 큰 폭으로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셰브론 재무제표를 보면 이 회사의 원유와 천연가스 평균 생산 비용은 불과 9.9달러다. 금융투자 업계는 미국 내 셰일오일(퇴적암 셰일층에서 만든 액체 탄화수소) 생산 업체들의 손익분기점을 배럴당 40~50달러가량으로 본다. 기존 투자자산의 감가상각비 등 이런저런 비용을 더해도 국제유가가 40달러를 넘으면 돈을 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셰브론 같은 석유기업들이 투자와 생산을 늘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셰브론이 코로나19 회복 조짐이 뚜렷했던 2021년 4분기에 영업활동으로 번 현금 중 재투자한 금액 비중은 30%에도 못 미친다. 투자 부진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첫째로 꼽히는 배경은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바람과 규제다. 유가가 뛰지만 미래 수익 전망이 어두운 전통 화석연료 사업에 에너지기업이 투자금을 쏟아붓지 않는 셈이다.
셰브론은 쌓이는 돈의 상당 부분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에 쓰고 있다. 이 회사가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금은 34년 연속 증가하며 2021년 102억달러(약 13조원)를 기록했다. 수익성이 좋아진 2022년에는 더 공격적인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가 주유소에서 줄 서서 예전보다 더 치르는 기름값의 일부는 버핏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버핏은 2021년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1997년 담배주 매수와 관련해 ‘도덕적인 선’을 언급하며 “담배주 투자가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던 그가 탄소배출 기업인 셰브론에 투자하는 이유가 뭐냐는 거다.
버핏의 답은 이랬다. “여러분이 배우자나 친구에게 완벽을 기대한다면 그런 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셰브론은 적어도 악마 같은 기업이 아니다. 나는 셰브론 주식을 보유하는 데 죄책감이 없다.” 그때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세상은 천천히 변화하고, 돈에는 선과 악이 없다는 걸 말이다.

* 10여 년간 자본시장 언저리에서 밥벌이하는 공인회계사다. 시장 거품을 늘 걱정하지만, 우리가 숨을 거둔 뒤에도 자본시장은 계속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모두에게 공개하는 재무제표 등 공시 정보를 통해 기업의 속살을 톺아보는 글을 독자와 함께 나누려 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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