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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이 된 미술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데이미언 허스트
[147호] 2022년 07월 01일 (금) 이승현 shl219@hanmail.net

이승현 미술사학자

   
▲ 데이미언 허스트의 대표작 <신의 사랑을 위하여>. REUTERS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양적완화로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소득과 부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있는 자들이 선호하는 부동산과 명품, 그리고 미술품의 가격이 급등했다. 수억, 수십억대 고가 미술품은 수백억대 자산가만이 소장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가격이 하락하면 굳이 저가에 팔려는 매물이 나오지 않는 ‘강남 아파트’처럼, 지난 10여 년간 큰 하락 없이 미술품 시장은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공급과잉으로 가치하락이 우려되는 화폐보다 미술품이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우월하다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오늘날 고가 미술품은 돈과 같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런데 미술이 돈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실제 돈으로 작품을 만든 작가가 있다.
1990년 무렵 한 무리의 젊은 영국 작가들이 기상천외한 작업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YBA(Young British Artist)라고 부르는 이들의 주모자 격인 작가는 데이미언 허스트다. 그는 당시 세계적 광고업자인 찰스 사치의 선구매로 상어를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 포름알데히드 용액 안에 박제한 작품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1억원에 산 작품을 2005년 약 130억원에 되파는 사치의 묘기를 곁에서 지켜본 허스트는 돈이 모든 가치평가의 기준이 된 신자유주의 시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세계 최고 작가가 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집이건 자동차건 옷이건 우리는 값비싼 것이 싼 것보다 더 좋다고 믿는다. 허스트의 계획은 좋은 그림은 비싸고, 따라서 비싼 그림이 좋다는 우리의 평범한 믿음에 기초한다. 말하자면 최고의 작가란 가장 비싼 작품을 만든 작가이고, 최고가의 작품을 만들면 곧 최고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최고가 작품 만들기는 예술작품도 제조원가가 있는 상품이라는 더욱 단순한 발상에서 출발했다.
허스트는 약 200억원어치의 다이아몬드와 백금을 사서 인간의 두개골을 화려하게 장식한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제작했다. 당시 생존작가 최고가의 작품은 1988년 경매에서 1700만달러(약 200억원, 이하 모두 당시 환율 적용)에 팔린 재스퍼 존스의 <거짓 시작>(False Start)이었다. 작고한 작가를 포함할 경우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이 199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8250만달러(약 984억원)에 팔린 것이 당시 최고가였다. 200억원의 원가를 들여 제작한 이 작품은 유사시 다이아몬드와 백금을 귀금속 시장에서 매각해 바로 현금화할 수 있으므로 최소한 200억원의 현금가치가 있고, 재스퍼 존스의 기록보다 비싼 가격이었다. 작품 판매가는 역대 미술품 거래 최고가인 약 1천억원(5천만파운드)으로 책정됐다.
제작이 완료됨과 동시에 허스트는 정해진 가격에 판매가 성사될 경우 생존작가 중 최고가 작품을 만든 작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2007년 자신과 자신의 전속 화랑인 화이트큐브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을 통해 실질적으로 본인이 재구매해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와 동시에 허스트는 순식간에 역대 최고가 작품의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 명성을 바탕으로 1년 뒤 소더비 경매에서 전속 화랑을 거치지 않고 특별경매로 신작 223점을 공개 매각했다. 이를 통해 단 이틀 만에 약 2300억원(1억1100만파운드)을 벌어들였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신의 사랑을 위하여>의 원본 이미지로 다양한 판화를 제작했다. 원작품을 제작한 해에 제작원가에 해당하는 판화를 복제했고, 2012년까지 판매가에 해당하는 판화를 제작해 팔았다. 이후에도 수차례 판화를 더 제작해 이미 이 작품의 복제판화 판매액은 작품 판매가격을 크게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뿐만 아니라 그가 제작한 다른 작품들을 원본으로 한 판화도 여럿 제작했다. 또한 판화 외에 그의 작품 이미지를 활용한 옷, 찻잔, 액세서리, 우산 등 다양한 제품군을 팔아 ‘데이미언 허스트’는 사실상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허스트의 신작을 발매한 소더비 경매가 있던 날 공교롭게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일어나, 세계경제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후 양적완화에 따른 통화 살포가 이어졌다. 당시 금융위기는 부동산 활황에 힘입어 주택을 담보로 과다한 금액을 대출해준 것이 부동산시장 침체로 부실화하면서 촉발됐다. 이런 상황은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사들인 허상의 거래를 통해 세계 최고가 작품의 작가가 되고 이를 기반으로 막대한 부를 벌어들인 허스트와 상당 부분 유사했다. 그래서 허스트가 세운 이 제국도 부실화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다수였다.
그러나 허스트는 2017년 구찌 등 명품 브랜드를 거느린 PPR그룹의 회장이자 세계적인 컬렉터이고 크리스티 경매회사의 오너인 프랑수아 피노와 또다시 돈으로 미술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피노는 베네치아 등지에 다수의 미술관을 소유하고 있었다. 피노는 그해 과거 베네치아의 세관 건물이던 푼타델라도가나를 미술관으로 개조해 팔라초그라시에 이어 베네치아에 두 번째 미술관을 개관할 예정이었다. 그해는 세계적 미술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예정돼 있었다. 피노는 자신이 소유한 두 곳의 미술관에서 허스트의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이라는 거대한 전시를 열었다. 그해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찾은 관객은 비엔날레보다 허스트의 이 전시에 열광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보물을 가득 싣고 침몰한 배에서 건져 올린 유물이라는 가상의 설정으로 제작한 엄청난 규모의 작품들은 제작비만 약 700억원이 들었다고 알려졌다. 전시 작품들의 판매로 약 1조원대를 벌어들였다는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금융위기로 방출한 돈을 회수하기도 전에 팬데믹으로 또다시 천문학적인 돈이 풀리면서 양극화는 더욱 심화했다. 부의 증가를 주체하지 못하는 부자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의 하방경직성이 있는 고가 작품을 더 찾는다. 자연스럽게 요즘 미술계는 더 큰돈을 들여 작품을 제작하고, 더 멋진 공간에서 더 스펙터클하게 전시를 꾸며 작품을 최대한 더 비싸고 고급스럽게 포장하려 한다. 바야흐로 미술도 ‘쩐의 전쟁’이 돼가고 있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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