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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으로 되갚을 시간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47호] 2022년 07월 01일 (금) 박중언 parkje@hani.co.kr
   
▲ 요양시설 접촉 면회가 허용된 2022년 4월30일 서울 성동구 시립동부노인전문요양센터에서 노모가 찾아온 아들을 껴안고 있다. 연합뉴스

중견기업 P부장의 지인 K씨는 얼마 전 휴가를 내 경북에 있는 고향 집을 다녀왔다. 80대 중반 노모가 치매 증상을 보여서다. 예상과 달리 노모는 열흘 남짓 그와 함께 있는 동안 그를 잘 알아볼 뿐 아니라 상태 또한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고향 집에 갈 때는 형제자매 모두 노모를 전담해 돌볼 만한 사정이 못 돼 요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터라 다행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노모의 활기찬 모습에 그의 고민은 오히려 커졌다. 아직 치매 초기 단계이니 집에서 잘 돌보면 증상이 그리 심해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더욱이 시골은 도시와 달리 주변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잘 안다. 설령 노모가 집 밖에 나가 길을 잃어도 이웃을 통해 금방 찾을 수 있으니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요양원 같은 집단시설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고 있는 동네에서 돌보는 ‘커뮤니티 케어’가 유리한 상황이다.
K씨는 20년 이상 다닌 회사를 그만둘 수 없어 휴직이라도 해 노모를 돌보려 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현재 가족 돌봄을 위한 무급휴가는 10일 이내며, 돌봄휴직의 한도는 90일이다. 육아휴직(1년)과 차이가 크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므로 제도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초고령사회 일본은 유급 돌봄휴직 등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역시 기한이 93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노부모 돌봄을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 ‘돌봄퇴직’(介護離職)이 사회문제가 됐다. 그 수가 해마다 10만 명 안팎에 이른다.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돌봄퇴직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했으나 돌봄퇴직자 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리크루트웍스연구소에 따르면 전체 퇴직 가운데 돌봄퇴직 비율이 2017년 1.8%에서 2019년 2.6%로 증가했다. 돌봄퇴직자의 대다수가 50·60대이고,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세대 간 연대
5060세대의 노부모는 자식에게 부양과 돌봄을 요구할 자격이 충분하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절대적 가난이라는 격동의 시절을 살아냈다. 생존조차 쉽지 않던 시절 자녀 양육과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런 만큼 노부모 돌봄에 자식이 무한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세대 간 연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부모의 거동이 불편해지면 형제자매의 고민과 갈등은 깊어진다.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요양시설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 물론 요양원의 시설과 서비스가 갈수록 나아지는 등 장점도 있다. 하지만 다들 마음이 편치 않은 게 사실이다. 돌봄 문제는 묵은 섭섭함까지 끄집어내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직장에 나가지 않는 여자 형제가 ‘돌봄 독박’을 쓰는 사례도 흔하다.
80대 후반인 P부장의 노모도 언제 거동이 힘들어질지 모른다. 다행히 아직 요양 서비스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노모에게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P부장은 주저하지 않고 돌봄휴직을 할 예정이다. 노모와 훨씬 가깝게 있는 두 누이에게 책임을 온전히 떠넘기지 않을 작정이다. 어릴 때 받은 돌봄을 조금이라도 직접 갚을 것이다. 그의 주변에는 노부모 돌봄을 위해 회사를 쉬는 남성이 제법 늘었다.
P부장이 이런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나이 듦을 알아가면서 그는 노모와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무한히 베푼 노모야말로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때늦은 깨달음이다. 그는 1년 남짓 남은 정년퇴직 때까지 노모의 건강이 더 악화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후에는 부담 없이 ‘돌봄 전선’에 뛰어들 수 있어서다.
퇴직 뒤라면 누구나 돌봄노동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른 할 일이나 하고 싶은 게 많겠지만, 누군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만큼 좋은 노후도 없다. 쉽지 않은 돈벌이를 찾는 것보다 훨씬 낫다. 기술, 특히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될수록 인간의 손길이 꼭 필요한 돌봄의 가치는 커진다. 돌봄을 받는 누군가가 자신의 노부모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노모 돌봄은 ‘예습’의 성격도 띤다. 배우자 돌봄이 필요한 때가 닥칠 수 있다. 노모를 돌보면서 익힌 지혜와 노하우가 배우자 돌봄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돌보는 사람의 심정과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에 갈등과 마찰을 줄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가정 돌봄의 중요성이 한층 커졌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은 집단감염에 매우 취약하다. 대응이 어려워 코로나19 사망자의 다수가 요양시설에서 나왔다. 이런 비상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갖추면 마음이 한결 든든해진다.

요양보호 교육
돌봄노동은 결코 쉽지 않다. 어떤 경험자는 노부모가 “화장실에서 스스로 변을 볼 수 있을 때까지가 가족 돌봄의 한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이상의 어려움은 얼마든지 생긴다. 목욕·간호 등의 돌봄 기술도 필요하다. 돌봄을 제대로 배우기로 마음먹은 P부장은 앞으로 요양보호사 교육과정을 밟을 계획이다. 하루 8시간, 30일(240시간) 동안 이론·실기·실습(80시간씩) 교육을 받은 뒤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요양보험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시간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자신이 메울 생각이다. 다만 돌봄은 봉사 차원에서도 하는 만큼 주변에 돌봄 수요가 많아 그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요양보호사로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취업한 요양보호사 가운데 남성은 5% 정도다.
공공 직업훈련기관인 폴리텍과 서울시의 기술교육원에 무료 교육과정이 설치돼 있다. 또 고용노동부 직업훈련포털에서 국비지원이 되는 요양보호사 교육과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60만원 남짓인 교육비용에서 40%만 개인 부담이다. P부장은 퇴직 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요양보호사 자격을 딸 계획이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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