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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 과세냐, 곡괭이냐
[Editor's Letter]
[147호] 2022년 07월 01일 (금) 이용인 yyi@hani.co.kr

이용인 편집장

   
 

“가난한 자든 부자든, 우리 모두의 복지를 위해 불평등과 맞서고 부자들에게 과세를 해야 한다. (…) 역사는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의 최종 종착지가 어떠할지에 대해 우울한 그림을 보여준다. (…) 과세냐. 곡괭이냐. 역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현명하게 선택하자.”
꽤 ‘과격하게’ 들리는 이 선언문은 사회당 소속 대선 후보의 출사표도, 노동조합 성명서도, 언론사 사설도 아니다. 월트디즈니 공동창업자의 손녀 애비게일 디즈니 등 미국·캐나다·유럽의 슈퍼리치 102명이 2022년 1월18일 발표한 ‘우리는 세금을 신뢰한다’라는 제목의 공개편지 가운데 일부분이다. ‘애국적 백만장자’로 자신을 지칭하는 서명자들은 “세계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큰 고통을 겪는 동안 우리 재산은 늘었다”며 “제 몫의 세금을 공평하게 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우리 가운데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강한 민주주의의 토대는 공평한 과세 체계”라며 “우리,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리라. 지금 당장 세금을 물리라”고 촉구했다.
이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도덕적 차원에서 부자 과세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길지 않은 편지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실용주의 혹은 냉정한 현실주의에 가깝다.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부의 불평등이 시민의 독립성, 공동체와의 일체감을 해쳐 로마제국을 쇠퇴시켰다고 갈파했다. 14세기 역사철학자 이븐 할둔도 이슬람 문명의 쇠락을 분석한 <역사서설>에서 사치와 타락은 공공정신과 사회적 연대, 집단의 응집력을 떨어뜨리며, 결국 조세와 수입이 줄어 정부가 위태로워진다고 경고했다. 백만장자들의 편지는 심각해진 양극화가 사회불안을 가중하고, 결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마저 위협한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을 담고 있다.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기후위기 등 삼각파도가 밀려오는 엄중한 상황에서 공동체의 분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지만, 또 다른 슈퍼리치들은 아랑곳없이 조세회피, 사치, 도덕적 해이 등으로 비난받는다. 이번호에서 소개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의 사례는 충격적이다. 그의 초대형 요트 인수를 위해 네덜란드의 국보급 철교가 일시적으로 철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등 미국 슈퍼리치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자산 집중이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경고음이 전세계에서 커진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6월16일 발표한 ‘경제정책 방향’에서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해법을 찾아보기 어렵다. 역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비용은 공동체 전체가 떠안아야 한다. 그 후과가 두렵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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