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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로 장난치다 덫에 빠져
[집중기획] 집장막 뒤 원자재 거래업자들 ① 두 얼굴
[146호] 2022년 06월 01일 (수) 팀 바르츠 economyinsight@hani.co.kr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소수의 강력하지만 비밀스러운 원자재 거래업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석유·금속·밀 등 원자재 투기로 가격을 올리는 이들은 결국 스스로 시스템을 위협하는 리스크가 됐다. 이들은 마침내 금기를 깨고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다. 국내총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도 그동안 감독 권한조차 없었던 스위스 연방정부는 이들과 맺은 ‘파우스트적 계약’을 끝낼 수 있을까. _편집자

팀 바르츠 Tim Bartz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슈피겔> 기자

   
▲ 스위스 제네바의 쇼핑 거리 론가. REUTERS

제네바의 론가는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쇼핑 거리 중 한 곳이다. 유명한 랜드마크 제토분수가 있는 레만호수 인근에 위치한 이 명품 거리에는 개인은행, 시계 매장, 쇼콜라티에(초콜릿 장인) 등 스위스 경제 아이콘이 늘어서 있다.
스위스연방의 숨겨진 챔피언 중 일부도 론가에 입주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유행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론가 전면부의 뒤편에 숨어 있다. 이들은 뜨내기손님에게는 관심이 없다. 군보르(Gunvor), 머큐리아(Mercuria), 트라피구라(Trafigura), 비톨(Vitol), 번지(Bunge) 같은 이름으로 수천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원자재 거래업체다. 시장 선도자인 글렌코어(Glencore)는 스위스의 다른 지역보다 세율이 더 낮은 추크호수 인근 독일어권 소도시 바르에 자리잡았다. 스위스 매출 순위 10대 기업 중 6곳이 원자재 트레이딩 회사다.

   
▲ 영국 런던금속거래소 모습. REUTERS

호화로운 쇼핑가 이면의 존재
이들 기업이 없었다면 지난 수십 년간의 세계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투자은행의 ‘마술사’들과 달리, 그들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실물 상품을 취급한다. 원자재 트레이딩 회사는 전세계에서 석유 등 화석연료와 금속(경성 원자재), 밀·옥수수 같은 농산물(연성 원자재)을 사고, 보관창고를 임대하며, 전세선박으로 상품을 세계 곳곳에 운송한다.
이 업계는 교황청처럼 은밀하다. 많은 회사가 연례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글렌코어를 제외하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이 거의 없다. 주요 소유주는 창업자 가족이거나 최고경영자인 경우가 많다. 이들 기업은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언론의 헤드라인에 오르는 경우는 대부분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회사 소유 광산의 환경오염, 일용직 노동자 착취, 또는 독재자와의 더러운 원자재 거래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뿐이었다.
그러나 목가적인 ‘하이디 마을’(스위스)에서 방해받지 않고 돈을 벌던 시절은 끝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기존 세계질서를 전복했다.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제재 대상이 된 거대 자원 수출국 러시아는 자국 상품의 약 80%를 스위스에서 거래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자원시장도 혼란에 빠뜨렸다.
석유, 천연가스, 니켈, 팔라듐, 백금 등 거의 모든 원자재 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동시에 밀·옥수수 등 농산물 가격이 치솟아 농업시장에 새로운 기아 위기가 대두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계화의 승자였던 글렌코어·카길 같은 기업이 이 위기의 희생자인지 부당 이득자인지, 그들이 항상 주장하듯이 공급 문제 해결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위험한 사업모델로 스스로 시스템적 위험이 됐는지 묻고 있다.
전쟁 이전에도 원자재 가격은 상승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진정 국면에 들어서면서 수요가 늘었지만, 공급망이 붕괴해 많은 상품창고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거기에 전쟁까지 일어났다. (스위스의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스위스는 러시아 경제제재의 거시경제적 결과를 “공급 충격이 1973년 석유파동보다 훨씬 더 심각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상황은 드라마틱하게 흘러갔다. 제재와 가격 급등에 따른 생산량 감소라면 아무 잡음 없이 진행됐을 원자재 무역의 사업모델마저 위협받고 있다. 무역업자는 은행과 자본시장에서 돈을 빌리고 상품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한다. 이윤은 낮지만 대체로 일정하며 기업에 요구되는 막대한 유동성은 보통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포격이 시작된 뒤 어떤 것도 더는 정상이 아니다. 원가 폭등으로 일부 원자재 구매에 몇 배의 자금이 더 필요해졌다. 가격은 언제든 다시 내려갈 수 있기에 거래업자의 사업은 매우 위험한 도박으로 변했다.

위험한 도박으로 변한 사업
대형 원자재 거래 기업 중 한 곳은 “리스크 관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사업비용은 물론 ‘거래 상대방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고 다소 복잡하게 설명했다. 거래 상대가 계약을 이행 못할 위험이 커진다는 의미다.
거래자가 가격 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선물시장에서 그 조짐이 보인다. 이런 계약을 위해 원자재거래소는 최근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막대한 현금 보증금을 담보로 요구한다. 전문 용어로 ‘마진콜’이라 하는 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다. 그런데 추가 자본을 조달해야 할 은행이 이를 거절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전쟁이 오래갈수록 사업 리스크가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특정 원자재 거래 계약이 애초 이뤄지지 않을 위험을 증가시켜 경제와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 “가격변동성이 증가하면 자본비용도 증가한다. 거래자는 동일한 거래를 하기 위해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거래 1회당 두 배의 자본이 필요하면, 거래자는 기존 거래 횟수의 절반만 수행할 수 있다”고 원자재 거래업체 비톨은 경고한다.
업계의 우려는 깊어진다. 원자재 거래업체 트라피구라의 최고재무책임자(CFO) 크리스토프 살몬은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산업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최근 니켈 시장에서 극적인 방식으로 볼 수 있었다. 2022년 3월8일 영국금속거래소(LME)에서 수요가 많은 이 금속 원자재의 가격이 불과 몇 시간 사이에 톤당 10만달러(약 1억2천만원)를 돌파하며 두 배 이상 폭등했다. 중국의 한 대형 니켈 생산·거래 업체가 (공매도로) 위기에 빠져 원자재거래소에서 니켈을 매수해야 했다. 가격은 거의 수직으로 치솟았다. 상황이 격화되고 은행은 식은땀을 흘렸다. 장신구, 항공기 엔진, 컴퓨터 및 전기자동차에 사용되는 금속인 니켈의 거래자와 구매자는 재정적 붕괴 위험에 처했다.
“이것은 모든 검은 백조(블랙 스완) 중의 검은 백조다!”라고 한 LME 트레이더는 트위터에 올렸다. 증시 전문가들은 미국 9·11 테러나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같은 예측할 수 없는 극단적인 사건을 ‘검은 백조’라고 부른다. LME가 일부 거래를 취소하고, 일주일 동안 거래를 중단한 뒤에야 상황이 다시 진정됐다.

   
▲ 마르가리타 루이드레퓌스(왼쪽)가 이끄는 루이드레퓌스컴퍼니는 브라질에서 대규모로 과일 플랜테이션을 운영한다. REUTERS

정부에 손 벌리는 거래업자들
현장의 충격은 너무 커서 같은 날 거래업자들은 금기를 깨뜨렸다. 그들은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수년간 원자재 대기업들은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기를 원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사회)체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과소평가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사회화하기 위해 정치권 문을 두드리고 있다.
니켈 거래자들에게 악몽의 날인 2022년 3월8일, 유럽에너지거래자연맹(EFET)은 각국의 정부와 중앙은행에 급신을 보냈다. 이 로비단체에는 원자재 거래 기업뿐만 아니라 BP, 셸(Shell) 같은 석유기업,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이 속해 있다. 원래라면 국가의 개입을 ‘극혐’하는 이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4쪽 분량의 서신에는 적나라한 공포가 넘쳐났다.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폭등과 그 변동은 “극단적”이며 거래업자들은 자금조달 압력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코로나19와의 전쟁으로 피해를 본 업계에 즉각 유동성을 투입해 지원해야 한다. 그들의 암묵적인 메시지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자재 거래가 붕괴하고, 전세계에 부수적인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거래업자 로비단체의 외침은 일단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 그러나 이 서신의 내용은 해당 업계가 현재 얼마나 불안해하는지를 보여준다. 트라피구라 같은 대형 기업도 잠시 곤경에 처했고, 은행에서 23억달러(약 2조9천억원) 이상의 새로운 유동성을 확보해야 했다. 제네바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총 150개 신용기관과 상담했고, 금융투자자도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트라피구라보다) 더 힘없는 기업은 자금공급을 이렇게 빨리 조직하는 것이 어렵다. 현재 곡물 거래시장에서도 소규모 거래자는 구매·운송 자금을 사전에 조달하기 위해 은행 대출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많은 거래자가 곤경에 처했다. 선물거래소의 곡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을 때, 이들은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돈을 추가로 투입해야 했다. 며칠 사이에 밀 계약 가격이 50% 이상 올랐다.
퍼블릭아이(Public Eye), 옥스팸(Oxfam) 등 비정부기구(NGO)가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소수의 대형 원자재 거래 기업이 소규모 공급업체를 희생시키면서 그들의 시장지배력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다. 업계 거물은 정부를 협박하거나 자기자본 거래(고유계정 거래)로 가격을 조작할 수 있다.
비판자들은 오랫동안 원자재 거래 업자들이 투기로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2010년 폭염으로 밀 생산량이 급감하자, 글렌코어는 러시아를 부추겨 밀 수출을 금지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글렌코어가 사전에 밀 가격 인상에 베팅했고, (러시아의) 수출제한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지금은 농산물을 거래하지 않는 이 기업은 이에 대해 당시 딜러 한 명의 단독 행동이었다고 해명했다. 세계 4대 곡물 도매기업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rcher Daniels Midland), 번지(Bunge), 카길(Cargill), 드레퓌스(Dreyfus)를 업계에선 줄여서 ABCD라고 부른다. 이들 기업은 전세계 곳곳의 곡물저장고를 소유해 공급과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부는 자체적으로 경작한다. 전 아디다스 최고경영자(CEO) 로베르 루이드레퓌스와 사별한 아내인 마르가리타 루이드레퓌스가 이끄는 루이드레퓌스컴퍼니(Louis Dreyfus Company)는 브라질에서 축구장 3만5천 개 크기의 과일 플랜테이션(대규모 영농)을 운영한다.

ⓒ Der Spiegel 2022년 제14호
Die Profiteure vom Genfer See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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