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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 움직임 뚜렷, 동맹 중심 편가르기도
[ANALYSIS]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화
[146호] 2022년 06월 01일 (수) 크리스티앙 샤바뇌 economyinsight@hani.co.kr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화가 주춤거린다.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생산·금융 시스템이 분열할 수 있다.

크리스티앙 샤바뇌 Christian Chavagneux
오드 마르탱 Aude Martin
<알테르에코노미크> 기자

   
▲ 2022년 4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경제 관련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화 흐름에 급제동이 걸렸다. REUTERS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대유행,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경제 세계화는 어디까지 왔을까? 이전만큼 활발하지 않아 보인다. 이런 분석의 배경을 알아보자. 세계화는 우선 여러 나라를 하나의 생산망으로 엮는 것이다. 다국적기업은 세계 어디서 무엇을 어떤 노동조건으로 만들지 결정한다. 2008년 이후 줄어든 그 선택지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화는 또 좋은 투자처를 찾아 세계 곳곳에 돈을 돌리는 것이다. 은행과 금융투자자들은 (중앙정부, 기업, 지자체 등) 누구에게 얼마의 이자로 돈을 빌려줄지 결정한다. 여기서도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탈세계화가 시작됐다거나 달러가 세계 금융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잃었다고 말하긴 이르다. 경제 세계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정도가 약해질 뿐이다.

슬로벌라이제이션 시대 개막
지금의 변화가 얼마나 큰지를 제대로 가늠하려면 한 걸음 뒤에서 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50~1990년대 세계경제는 국경이 점차 흐려지는 세계화 1기를 맞았다. 이후 2007~2008년 이어진 세계화 2기에는 다국적기업의 해외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자본의 국가 간 이동이 활발해졌다. 미국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은 이런 현상을 ‘초세계화’라고 불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세계화 3기에 들어섰다. 세계화의 역동성이 정점을 찍고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기업의 글로벌 생산체계 참여도를 꾸준히 조사하는 세계무역기구(WTO)는 이제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sation)이라는 세계화 둔화를 얘기한다. 생산망의 세계화 정도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국가 부가가치에서 중간재(미완성 상태로 수입해 가공하는 재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하는 것이 있다. 이 비중이 1995년 9.6%에서 2008년 14.2%로 올랐다가 2020년 12.1%로 떨어졌다. 세계화가 후퇴한 것이다.
금융시장에서도 똑같은 흐름이 나타난다. 각국 은행들의 대외 활동은 가장 활발했던 2008년과 2021년 말 사이에 25% 줄어들었다. 유로존만 보면 감소폭은 40%에 이른다. 정부들도 외국자본에 덜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프랑스에서 국외 거주자가 보유한 국채의 비중은 2010년 71%에서 2021년 말 48%로 떨어졌다. 가장 규모가 큰 미국 국채 시장의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2008년 약 50%에서 현재 45%로 줄었다.

   
▲ 2022년 4월13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워싱턴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에서 미국과 세계경제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옐런 장관은 이날 ‘동맹국 중심 세계화’ 라는 새 개념을 제시했다. REUTERS

세계 공급망의 약점
세계화가 후퇴하는 가운데 2020년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났다. 두 사건은 세계화 후퇴 흐름을 바꾸지 않았다. 세계무역기구는 “코로나19가 수많은 생산망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공장이 문을 닫고 항구가 막히면 자국 상황이 좋아졌다고 해도 공급체계를 작동하기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매년 4월 내놓는 경제전망에서 “끊어진 공급망이 기업의 재고, 생산, 판매에 실질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이 2022년 초에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면서 주요 항구인 상하이가 봉쇄됐다. 세계화의 큰 축이 고장 난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분쟁이 터지자 세계 곳곳에서 팔라듐·로듐 같은 금속과 더불어 식품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세계 교역망은 이제 각국 정부와 기업의 눈에 행복의 연결고리가 아니라 언제든 취약해질 수 있는 올가미로 보인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의 지도자들은 반도체, 배터리, 클라우드 산업 관련 정책을 새로 짠다. 대외의존도를 줄이고 자립하는 것이 목표다. 각국 정부는 핵심산업에 진입하려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문턱을 높인다. 2003~2007년 외국인 투자자 관련 규정을 고친 나라 가운데 규제를 강화한 곳은 15%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0년에는 이 비중이 30%를 기록했다.
여기에 더해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2022년 4월13일 연설에서 ‘동맹국 중심 세계화’를 뜻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라는 새 개념을 언급했다. “자유로우면서 안정적인 무역체계를 갖추는 것이 목표”라는 그의 말은 정치적으로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끼리 경제협력 체제를 꾸리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세계무역기구의 전망도 비슷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접적 여파로 “핵심 품목을 국내에서 생산하거나 동맹국에서 수입해 오는 편가르기식 세계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런 관점에서 프랑스공예원(CNAM)의 세바스티앵 장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팬데믹보다 세계화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의 여파는 오래갈 것이다. 러시아와 틀어진 관계는 금방 회복되지 않는다. 러시아 경제제재 역시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게다가 나라마다 각자도생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중국과 미국, 유럽이 이런 행보를 보인다. 이들 지역에선 역내 생산 역량을 높이기 위해 핵심산업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다국적기업이 해외 영업활동으로 낸 이익에 글로벌 최저법인세를 매기는 내용의 합의안이 2021년 체결됐다. 2023년 말 시행될 예정이다. 이 합의안이 체결된 뒤 각국 정부는 조세 주권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세계 최대 자산운영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가 30년 전부터 알고 있던 세계화를 끝냈다”고 말했다.

달러 체제의 끝?
세계경제에 지금보다 더 큰 균열이 일어날 수 있다. 글로벌 생산망은 국가 또는 지역 중심으로 재편되고 국제지정학적 변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산체제만 분열되는 게 아니다. 금융시장도 분절될 수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은 “러시아 경제제재가 달러와 유로에 대한 신뢰를 빠르게 추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런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자 서구는 자국 역내에서 러시아 중앙은행이 보유한 화폐자산을 모두 동결했다. 프랑스 국제경제연구소(CEPII)의 이코노미스트인 칼 그르쿠는 이를 두고 “처음 있는 조처”라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고 인식되는 달러에 대한 신뢰가 러시아가 아닌 지역에서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동결 조치로 달러가 100% 안전한 자산이 아닐 수 있음이 증명됐다. 미국과 동맹을 맺지 않은 나라는 달러 보유가 외려 약점이 될 수 있다. 이를 일찌감치 이해한 러시아의 중앙은행은 달러 보유액을 줄이고 유로와 파운드, 위안을 사들였다. 그 결과 외환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22%에서 1년 만에 16%로 하락했다.
그래도 국제 통화시장에서 달러 지위는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달러 패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가 도입되면서 확립된 것이다. 프랑스 클레르몽오베르뉴대학의 마리프랑수아즈 르나르 교수(경제학)는 말했다. “화폐의 국제적 위상은 세계 무역·금융 시장에서 기본 결제 수단으로 쓸 수 있는지에 달렸다. 한 국가가 세계 무역시장에서 차지하는 중요도, 국가 경제규모, 금융시스템 발전도 등이 그런 준비통화의 역할을 결정하는 요소다.”
이런 측면에서 달러는 다른 화폐보다 앞서 있다. 2000년대 들어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달러의 비중이 줄어든(-12%)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달러 비중은 전체의 59%로 유로(20%)보다 훨씬 크다. 달러로 결제하는 국제 거래의 비중은 전체의 43%로 유로(37%)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달러가 사용되는 범위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1%밖에 되지 않는다. 달러의 국제결제 대비 미국 무역 규모는 3.7이다. 유로는 이 지수가 1.2다.”
현재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는 경쟁 화폐는 없다. 유로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다. 유로존 회원국은 대외 지급 부담을 함께 지는 연대 체계가 없는 것이 문제다. 독일을 비롯한 몇몇 나라가 발행하는 채권을 제외하고 유로존에서 안전자산으로 인정받은 자산이 많지 않다.

   
▲ 중국 상하이 환전소 앞에서 여행객이 바꾼 지폐를 확인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지만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할 만한 경쟁 화폐는 아직 없다. REUTERS

기축통화 꿈꾸는 위안
그런데 만약 중국이 변한다면? 중국은 몇 년 전부터 자국 화폐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5년에는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대안으로 중국국제결제시스템(CIPS)을 만들었다. 칼 그르쿠는 “친환경 전환이 위안 사용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친환경 전환에 필요한 희귀광물이 중국에 많다”고 말했다.
위안이 글로벌 시장에서 결제수단으로 쓰이는 날이 올 수 있다. 하지만 그날이 금방 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크레디아그리콜의 아시아 전문 이코노미스트인 소피 비뵤르카는 “중국 정부의 5개년 계획에서 그 목표가 빠진 적이 없다. 다만 이는 우선 과제가 아니다. 금융시장을 섣불리 개방했다가 (부동산 거품 등) 지금의 국내 경제 위기가 심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 통화시장은 몇 마디 말이 아닌 신뢰에 따라 움직인다. 세계가 미국 경제의 안정성과 경제력을 신뢰하는 한 달러는 특별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마리프랑수아즈 르나르는 말했다. 그렇다면 러시아 루블은? 영국 싱크탱크 유럽개혁센터(CER)의 잭 마이어스는 “러시아가 (러시아 수출기업이 보유한 외환을 러시아 중앙은행에 팔도록 강제하거나 천연가스를 루블로만 결제하게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등) 금융체제를 정치에 이용할수록 서구는 자국 통화의 힘을 더 이용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달러 강세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달러가 누리는 기축통화의 위상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 무대인 세계경제는 탈세계화의 길에서 분열할 조짐을 보인다. 내일도 어제처럼 경제 세계화는 ‘리더’인 미국의 손에 달렸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2년 5월호(제423호)
Petite mondialisation entre amis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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