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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 구조적 부족, 노사 역학관계 변동
[FINANCE] 미국 노동시장 변화의 의미
[146호] 2022년 06월 01일 (수)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2년 5월5일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크리스천 스몰스 노조위원장이 아마존의 노동 관행을 다루는 상원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하고 있다. 아마존에선 2022년 4월 초 창사 이후 처음으로 노조가 출범했다. REUTERS

미국 정보기술(IT) 공룡 기업들에 노조 설립 바람이 불고 있다. 아마존 물류창고와 애플스토어에서 노조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던 미국의 노동운동이 다시 점화하고 있다. 언론은 그 이유로 노동 인력 부족을 든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수그러들며 경제 정상화가 시작되자 인력 부족이 가시화됐다. 시대정신 변화도 중요하다.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일보다 가족 등 삶의 다른 가치를 자각했다. 이것이 노동 쪽의 힘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분석은 이것으로 충분할까? 노사 힘의 균형이 노동 쪽으로 기우는 근본 원인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부족하다.

공급 감소 배경
1년 남짓 전 미국 노동시장은 거의 평형 상태를 유지했다. 2021년 4월 자료를 보면 970만 명이 일자리를 찾고 있었고, 일자리 수는 930만 개였다. 미국은 코로나19 충격을 딛고 빠르게 회복했다. 이때부터 노동력 부족이 화두가 됐다. 동시에 정부의 후한 지원금이 사람들의 노동을 막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진단은 몇 달 전까지 이어졌다. 일리가 있었다. 노동으로 얻은 소득보다 많은 돈이 주머니에 들어오는데 구태여 누가 힘들게 일하겠는가. 노동력 부족이 너무 많은 실업급여나 지원금 때문이라는 주장이 대세가 됐다.
원인이 분명하다면 그것만 제거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간단하다. 2022년 현재 미국인 가운데 지원금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추가 실업수당 지원은 2021년 9월 완전히 중단됐다. 노동시장 상황은 어떨까? 연방준비제도(연준) 통계를 보면 2022년 4월22일 기준으로 일자리가 1160만 개, 실업자가 590만 명 정도다. 일자리가 일하려는 사람보다 무려 2배 가까이 많다. 후한 지원금이 원인이라면 노동력 부족 현상은 말끔히 해결됐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오히려 더 악화됐다.
이것은 일시적 현상일까? 팬데믹 완화로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 열기가 한몫했을 수도 있다. 그 열기가 식으면 노동력 부족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정보기술 기업의 인력 채용 붐도 일부 작용했을 수 있다. 이제 이들 기업은 신규 채용 규모를 천천히 줄인다. 아마존, 메타, 넷플릭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 미국의 노동력 부족 사태는 끝나가는 것일까?
정확한 전망을 위해서는 21세기 노동시장 동향을 분석해야 한다. 2018년 초까지는 실업자가 일자리 수보다 많았다. 노동자들은 제한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그런데 2018년 초~2019년 상황이 역전됐다. 일자리가 실업자 수를 넘어선 것이다. 이때 팬데믹이 발생했다. 2020년 상황이 다시 바뀌어 실업자가 넘쳐났고, 일자리 수는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1년 5월부터 일자리가 구직자보다 많은 상황이 다시 연출됐다. 이후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팬데믹 영향을 제외하면 대침체가 끝난 2010년 이후 미국의 실업자는 계속 줄어들고 일자리 수가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이다. 따라서 노동력 부족은 2010년 이후 물밑에서 꾸준히 진행되던 현상이라는 얘기다. 2021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이다.

구조적 요인
1992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로 자신감을 얻은 미국은 21세기에 세계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본격화했다. 서구 선진국 이익을 위해 추진한 세계화는 시대 조류가 되는 듯했다. 기업은 싼 인건비와 약한 규제를 찾아 선진국에서 빠져나왔다. 선진국 정치인들은 사라진 일자리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자국민이 더 높은 임금의 질 좋은 일자리를 찾을 거라 자신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선진국의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은 각종 사회문제를 낳았고, 정치적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원인이 됐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중국 등 경쟁국이 코앞까지 쫓아왔고, 실업은 고질적 문제가 돼 있었다. 이대로 안 되겠다는 위기감은 도널드 트럼프 집권의 발판이 됐다. 그리고 팬데믹이 왔다. 세계화가 지속될 수 없다는 건 분명해졌고, 미국 등 선진국의 이익에 꼭 부합하지 않는다는 공감도 확실해졌다.
“세계화 퇴조 현상이 노동력 공급과 무슨 상관이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화 퇴조가 노동력 공급 감소의 원인이다. 세계화 시대에는 굳이 자국민이 아니라 임금이 싼 외국인 노동자를 얼마든지 고용할 수 있었다. 국외의 개도국 공장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제조업의 본국 회귀라는 리쇼어링(Reshoring) 바람으로 저임금 해외노동자 대신 자국민을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무엇보다 투자가 늘어난 첨단산업은 해외가 아닌 자국에서 운영해야 한다. 자국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은 팬데믹 상황에서 매우 어렵다. 게다가 국경 통제로 외국인 노동자 유입까지 줄었다. 미국 기업으로선 노동력 규모 자체가 쪼그라든 처지에 사람을 더 채용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노동력 공급 감소의 다른 원인은 바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다. 어쩌면 현재 벌어지는 노동력 부족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가 안정되던 2010년에 구직자 수는 일자리의 거의 6.5배에 이르렀다. 2000년대 들어 최고치였다. 그런데 2010년을 유심히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미국 인구구조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시점이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된 해였다.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Statista) 통계를 보면 2010년 66.81%이던 미국 15~64살 인구 비율이 2020년 65%로 줄었다. 같은 기간 65살 이상은 12.98%에서 16.63%로 늘었다. 은퇴 인구가 지속해서 늘어난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1946~1964년 출생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 세대의 은퇴는 앞으로 몇 년간 지속하고, 그에 따른 노동력 공급 축소가 불가피하다.
노동력 부족은 갑자기 발생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서서히 진행됐다고 봐야 한다. 2018~2019년 벌어진 현상이 결코 일시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미국은 노동가능인구 유입이 없다면 노동력 부족이 추세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엄연한 현실이다.

   
▲ 2022년 4월 미국 일리노이주 노멀에 있는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리비안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전기차를 조립하고 있다. REUTERS

기업의 대응
공급이 풍부할 때 소비자는 원하는 것을 골라 살 수 있다. 공급이 부족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고용시장도 마찬가지다. 노동력 공급이 넘쳐날 때 기업은 원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던 1980년대 이후 풍부한 노동력은 상식이었다. 이 흐름은 지난 30~40년 동안 지속됐다. 이제 그런 시대가 저물어간다. 기업은 줄어든 노동력 공급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힘’의 이동이 시작됐음을 뜻한다. 사용자가 온전히 행사하던 권력이 서서히 노동자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에서 노동조합이 다시 세를 확장하고, 기업의 노동자 통제가 점차 어려워지는 징후의 이유다. 문제는 이런 변화에 기업이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2022년 4월 초 경제주간지 <포천>은 흥미로운 조사를 했다. 팬데믹 완화로 재택근무 필요성이 줄었다. 이제 직원들을 사무실로 복귀시켜야 한다. 이때 출근하라는 지시에 직원이 불복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재택근무는 끝났다. 사무실로 복귀하지 않는 직원은 임금을 삭감하거나 해고하겠다.” 설문조사에 응한 경영자의 77%가 이런 대답을 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경영자의 사고방식은 고용 환경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동력 부족이 일시적이라 믿는다. 이들은 여전히 노동자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급 변화는 한쪽이 상대방보다 더 많은 힘을 갖게 한다. 사용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노동자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런 상황이 지금 바뀌고 있다.
기업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적자생존은 진리다. 달라진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기업은 성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수 있다. 어떤 기업은 자동화로 해결하려 할 것이다. 이는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 노동친화적 정책으로 문제를 풀려는 기업은 일부다. 대다수 경영자는 여전히 과거의 힘을 맹신한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 기업은 어떤가? 미국의 노동시장 변화는 남 일이 아니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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