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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스스로 정의하는 것이다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미술과 유행
[146호] 2022년 06월 01일 (수) 이승현 shl219@hanmail.net

이승현 미술사학자

   
▲ 연합뉴스 한겨레 자료

지인들이 미술작품을 살 때면 미술을 잘 안다는 이유로 내게 물어보곤 한다. 묻는 작품은 대개 둘 중 하나다. 한 부류는 시장에서 핫하게 거래되는 돈 되는 그림이고, 다른 부류는 보기에 예쁜 그림이다. 전자는 자본주의의 심화에 따라 미술품도 금전적 가치로 평가하는 통념에 따른 것이고, 미술이란 아름다운 것이라는 후자의 생각은 다소 뿌리 깊은 오해에 따른 것이다. 이 중에서 미술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짚어보자.
미술이란 말은 메이지 시대에 일본에서 서양의 파인아트(Fine Art)를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서 아름다울 미(美)와 꾀나 수단을 뜻하는 술(術)의 합성어로 만들어졌다. 미술은 아름다운 기술이다. 미술작품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은 이처럼 미술이란 말 자체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최근 현대미술 전시장을 찾은 분들은 미술이 꼭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아름다움의 상식적 정의와 기준에서 볼 때, 아름답기는커녕 오히려 추하고 외설스럽기까지 한 작품을 쉽게 접한다.

자본은 유행으로 아름다움을 정의
미술과 아름다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의 물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물음은 의외로 자본주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본주의에서 생산력, 즉 기술이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기에 충분한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자본주의는 성장을 위해 생산보다 판매가 더욱 중요하게 된다. 이미 필요한 옷이나 신발 등을 가지고 있는데도 굳이 신상품을 다시 사게 하는 일이 상품을 새로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이처럼 생산보다 소비가 더 중요해서 “소비자가 왕”이라고 치켜세우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소비사회라고 한다.
소비사회는 미국의 경우 1920년대에 도래했고,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가 수습된 1950년대 중후반 서유럽 전반에 본격화됐다고 본다. 판매가 관건이 되면 자연스럽게 광고와 선전, 무엇보다 유행의 유포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1920년대 최초의 PR 전문가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미국 뉴욕의 신사가 자기 취향에 따라 옷을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프랑스 파리의 디자이너가 만든 취향을 따를 뿐이라고 말한다. 흔히 우리는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름다움의 기준은 유행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소비사회를 진단했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에서 “아름다움은 유행의 주기 안에서만 효력이 있다”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아름다운,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옷은 유행을 끝장낼 것이며, 따라서 유행은 그런 옷을 부인하고 없애야 한다. 만약 모두가 각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옷을 이미 가졌다면 누가 새 옷을 사겠는가? 따라서 유행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부인하면서, 유행의 변화에 따라 아름다운 것이 추한 것이 되고 추하던 것이 어느새 아름다워 보이도록 한다.
고대 그리스인은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어떤 비례와 조화에 따른다고 생각했다. 인체를 7등신 또는 8등신으로 묘사하는 원칙은 수학적으로 가장 조화로운 비율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유행에 따라 아름다움의 정의와 기준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유행은 치마 길이나 양복 재킷 길이, 오버핏과 슬림핏, 특정 색상 등을 아름답거나 추하게 한다. 심지어 최근 유행하는 ‘디스트레스트 룩’(Distressed Look)의 경우 빈티지함을 강조하면서 신발에 마치 진흙이 묻은 것처럼, 찢긴 부분을 덧댄 것처럼 때 타고 헤지게 하고, 멀쩡한 청바지를 찢어서 덧대고 꿰맨 흔적까지 인위적으로 만든다. 낡고 더러운 것이 아름답고, 멀쩡하고 깨끗한 것은 추하다.

미술의 정의를 바꾼 뒤샹
이처럼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이 유동적이라면 아름다움의 기술로서 미술은 어떻게 해야 할까? 1910년대에 남성용 소변기에 서명하고 <샘>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전시에 출품해서 물의를 일으켰던 ‘레디메이드’ 작가 마르셀 뒤샹은 그의 작업을 위해 어떤 사물을 선택하느냐는 질문에 겉모습에 주의하라고 강조한 바 있다. 아무런 미적 감정도 느낄 수 없어 시간이 지나도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을 것을 고른다고 답한 그는 유행에 따라 아름다움이 추함으로 변할 수 있음을 간파했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단색화는 뒤샹의 선택처럼 미적 감정과는 동떨어져서 시간의 경과에 따른 유행이나 취향의 변화를 견뎌낼 수 있다.
그런데 뒤샹은 유행의 변화에 따라 아름다움이 추해질 위험을 회피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마치 유행으로 아름다움을 정의하듯이 미술을 정의하고 나아가 아름다움을 정의한다. 그는 멀쩡한 자전거 바퀴살, 병 건조대, 그리고 변기를 미술작품이라고 정의했다. 그것들의 외형은 미적 감정을 일으키지 않아서 그의 작품이 일반적인 아름다움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지만, 과거 미술의 범주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뒤샹은 미술이 스스로를 정의하여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작품으로 보여줬고, 그로 인해 현대미술의 장을 연 작가로 미술사에 이름을 남겼다.
내 지인들이 그렇듯 우리는 여전히 미술은 아름답거나 예쁜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단색화가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아름다움의 정의나 기준에 일부 변화가 생겼지만, 여전히 아름다움을 새롭게 정의하거나 미술을 편견 없이 감상할 준비는 돼 있지 않다. 유행이 바뀌듯이 서구 주류 미술계에서 미술은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기준을 정하지 못하면 정해진 기준을 따라야 하는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 자본은 유행으로 아름다움을 정의하고, 미술은 스스로를 정의함으로써 아름다움을 정의한다. 아름다움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정의하는 것이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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