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우파 극단주의자가 주는 교훈
[이재성의 노벨경제학상 다시 읽기]
[146호] 2022년 06월 01일 (수) 이재성 san@hani.co.kr
   
▲ 밀턴 프리드먼. 미국 시카고대학 누리집 갈무리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인물이다. 전투적인 반케인스주의자이자 신자유주의 전도사이며 통화주의 창시자로서 전방위적인 사상 투쟁을 벌였다.
그가 노벨상을 받은 1976년은 서방 경제가 고물가와 고실업이라는 유례없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와중이었다. ‘필립스 곡선’(윌리엄 필립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교수가 1958년 발표한 논문) 이론에 따라 물가상승률(임금상승률)이 높으면 실업률이 낮은 게 일반적이라고 여겼던 당시의 주류 케인스주의자들은 새로운 현상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필립스 곡선에서 물가상승률(Y축)과 실업률(X축)은 반비례 관계이므로 그래프가 우하향하는 게 일반적인데,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이어지면서 그래프는 우상향이 됐다.
1960년대부터 케인스주의의 약점을 파고들며 싸움을 벌여왔으나, 소수파로서 울분을 삼켜야 했던 프리드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프리드먼은 정부의 인위적인 실업률 감축 노력이 오히려 물가상승을 가중했다고 공격했다. ‘자연실업률’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며, 장기적으로 필립스 곡선은 수직이 된다고 주장했다. 실업률은 인플레이션율과 무관하다는 주장이었다.
노벨상 수상은 프리드먼이 더 이상 소수파가 아니라는 세계적 인증이었던 셈이다. 대공황 이후 40년 이상 세계경제를 주름잡았던 케인스주의가 퇴조하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또 다른 40년이 펼쳐지는 분수령이었다.

“대공황은 연준 탓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가 프리드먼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 가운데 중요한 것만 추려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에서 돈(화폐·통화)의 역할과 대공황 당시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역할에 대한 연구 △항상(영구)소득과 일시소득을 구분해 항상소득이 총소비지출의 결정 요소라는 소비 이론 정립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의 단순한 균형(Tradeoff)이라는 (케인스주의자들의) 가정이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
이 세 가지를 포함한 수상 이유 모두가 케인스주의를 반박하는 내용이거나, 반박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만드는 작업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프리드먼만이 아니라 당시 노벨상 주최 쪽조차 케인스주의에 대한 실망이 절정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돈이 중요하다!” 또는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에서든지 화폐 현상이다”라는 프리드먼의 주장으로 요약되는 통화주의 역시 케인스의 재정주의(실업률 감축과 유효수요 창출을 위한 정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중시하는 기조)에 맞서는 이론이었다. 프리드먼은 정부(중앙은행)가 할 일은 경제성장률에 맞춰 통화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라며, 매년 3~5%의 고정된 비율로 통화공급량(머니스톡)을 늘리도록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항상소득가설도 케인스의 대표작인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에 나오는 절대소득가설(가정의 소비수준은 절대적인 소득-현재소득-에 의존한다)을 비판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는 일시적인 재정지출로 생긴 변동소득이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프리드먼이 대공황 연구를 시작한 이유가 대공황의 원인을 자본주의경제의 고유한 불안정성 탓으로 돌리는 당시 통념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프리드먼은 특히 연준과 뉴욕연방준비은행 사이의 권력투쟁이 주요 원인이었다고 강조했다. 1929~1933년 통화량이 3분의 1 이상 감소했는데, 이런 전례 없는 통화량 감소는 연준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으로 미국 은행들이 연쇄 파산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대공황 당시 통화량 하락은 실물경제 위축(그에 따른 은행 파산 포함)의 결과였지, 그 원인은 아니었다. 특히 당시 시장금리가 하락했다는 사실은 통화긴축이 경기침체 가속화의 원인이라는 프리드먼의 주장을 머쓱하게 한다.
프리드먼의 논리에는 비약이 많다. 처음엔 화폐가 중요하다고 하다가 나중엔 화폐만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식이다. 이런 극단주의는 지금까지 열혈팬을 끌어모으는 인기 요소이기도 하지만, 학문적 정합성이나 정책의 현실성에서 그가 실패를 거듭했던 원인이다.

현실에서의 처참한 실패
노벨상은 학문적 권위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프리드먼의 노벨상 수상 이후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은 통화주의 정책을 받아들여 현실에 적용했다. 그러나 처참한 실패로 끝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프리드먼 인생 최대의 흑역사는 쿠데타로 집권한 칠레 피노체트 독재정권에 협력한 것이다. 프리드먼의 제자들이 피노체트 정권의 경제부처와 중앙은행을 이끌었고, 프리드먼도 두 차례나 칠레에 다녀왔다. 국영기업을 민영화했고 가격과 임금, 수출입 규제를 철폐했다. 처음엔 인플레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등 효과가 있는 듯했으나, 생산이 급감하고 임금은 크게 하락했으며, 실업률이 급증했다. 경기침체가 지속하고 대외부채가 급증하는 등 파탄 상태가 됐다.
역설적인 의미에서 프리드먼의 규제 철폐 주장이 성공을 거둔 분야가 금융이다. 이는 수십 년 뒤 서브프라임과 신용부도스와프(CDS) 사태로 이어지며 신자유주의 몰락의 직격탄이 됐다.
연재 첫 회가 밀턴 프리드먼인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윤석열 대통령이 학창 시절 애독했다는 <선택할 자유>의 저자 프리드먼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윤 대통령의 사유를 강하게 지배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취임사에 35번이나 등장하는 ‘자유’가 프리드먼이 말하는 자유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일체의 규제를 반대하는 기업의 자유, 노동자를 해고할 자유(노동유연성), 환경을 마음대로 파괴할 자유 말이다.
프리드먼이 남긴 교훈은 명백하다. 극단적 선명함은 지적 쾌감을 선사할지는 모르지만 위험하고 해롭다. 40여 년 전에 읽은 우파 극단주의 책을 붙들고 철 지난 자유 타령을 하는 것이야말로 반지성주의가 아닐까.

* 노벨경제학상은 뒤늦게 따로 태어난 사생아 같은 노벨상이지만 현대 자본주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같은 존재다.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업적과 관련 논쟁을 통해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본다. 너무 전문적이지 않은 상식의 수준을 지향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6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