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미국에서 교수 자리를 찾아볼 때의 일이다. 나를 초청한 경영대학원에서 한 기업인이 쓴 자서전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알고 보니 그 기업인은 엄청난 액수를 그 경영대학원에 기부했고, 그 대가로 경영대학원 앞에 그 기업인의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는 바로 내가 지원한 ‘기업윤리’ 교수직을 후원하고 있었다. 자서전을 읽어보니 그는 자수성가했고, 이제는 그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유지가 되었으며, 자식들 또한 정·재계 거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학교 교수 서너 명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에서 자연스레 그 기업인이 화제에 올랐다. 한 교수가 물었다. “자네는 이 기업인이 윤리적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생각하는가?”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그 기업인은 수십 년 동안 여러 가지 화학제품을 개발해 돈을 벌었지만, 자서전 어디에도 오염물질을 억제하기 위해 힘썼다는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되물었다. “상당히 귀감이 되는 기업인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화학산업에서 일했다면 환경오염에서 자유롭기 힘들었을 텐데, 그 부분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그러자 한 교수가 나를 거들어주었다. “글쎄, 이런 게 요즘 유행인 것 같아요.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자신이 돈 번 과정을 정당화하고 싶어서 ‘기업윤리’ 프로그램에 큰돈을 기부하는 것 말이죠. 학교 입장에서야 큰돈을 거부하기 힘들겠고….” 그 교수는 말끝을 흐렸고, 우리는 대화 주제를 다른 것으로 바꿨다.
흔히 기업윤리 또는 기업책임을 말할 때, ‘기업’이라는 단어와 ‘윤리’ 또는 ‘책임’을 떼어놓고 생각한다. 기업인이 경영 과정에서 져야 할 책임이나 윤리는 나중에 따로 해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기업인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기업인이 만든 플라스틱 제품들은 당연히 공장 주변을 오염시켰다. 그는 원가 절감 차원에서 오염을 방치했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설비를 상당한 비용이라 여겼을 것이다. 수년이 지난 뒤 그 회사는 상당한 매출을 올렸고, 그 기업인 또한 돈방석에 앉게 됐다. 자, 이제는 그동안 자신의 회사가 일으킨 환경오염을 원상복구하는 데 돈을 투자하겠다고 한다. 물론 오염된 환경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깨끗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환경오염으로 고통받은 지역 주민과 생태계는 어떻게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이해관계자 역설’의 함정
처음부터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줄이려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렇지 않다면 조폭이나 마피아 집단이 마약을 팔아 큰돈을 번 뒤 세계적 수준의 재활병원을 만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것이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소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외양간을 고급스럽게 다시 지어도 잃어버린 소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업윤리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이런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케네스 굿패스터 세인트토머스대학 교수는 “기업 경영자는 주주 또는 다른 이해관계자 중 한쪽을 택할 수밖에 없는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하며, 이를 ‘이해관계자 역설’(Stakeholder Paradox)이라고 불렀다. 기업인이 여타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하게 되면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을 희생해야 하고, 그렇다고 주주 이익만 추구하게 되면 다른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고려를 무시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이다.

삼성은 검찰수사 대상에 오를 때마다 사회공헌기금을 거론했었다. 실제 이건희 회장은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때 8천억원을 출연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 특검 수사 당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모습.

이 논리는 다른 학자에게서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이해관계자 이론을 주창했던 에드워드 프리먼 버지니아대학 교수는 이해관계자 역설이 “기업경영과 책임 또는 윤리를 별개라고 전제하는 근본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책임이나 기업윤리는 기업인이 경영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다루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관련 문제를 얼마나 책임 있게 대하는지가 핵심이라고 반박했다. 따라서 이해관계자 역설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책임감과 능력 있는 기업인이라면 이해관계자들과 관련된 문제를 돌보면서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도 챙길 줄 알아야 한다. 소를 키우는 것과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별개가 아니라, 소를 키우는 사람은 당연히 외양간도 함께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쟁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기업책임이란 기업활동에 윤리가 잘 스며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최근에는 경영자들이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번영을 함께 추구하기 위해 기업과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상호가치’(Shared Value)를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포터 교수는 경영자가 경영과 책임을 함께 아우르는 과정을 3단계로 정리했다. 가장 낮은 단계는 글 첫머리에 언급한 기업인처럼 돈을 번 뒤 나중에 기부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이 단계에서 경영자는 기업경영과 책임 또는 윤리를 전혀 별개라고 여긴다. 오염물질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회사가 환경오염을 방지할 수 있는 시설은 외면한 채, 환경단체 후원자로 나서거나 학교에 거액을 기부하는 경우가 있다. 이 회사와 기부활동 사이에는 기업경영 관련 연결고리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의 경영자들은 투입-생산-산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관계자 관련 문제를 줄이거나 개선하려고 힘쓴다. 이를 ‘가치사슬’(Value Chain) 단계라고 한다. 더 환경친화적인 원료를 생산하는 공급자와 거래하거나, 생산 단계에서 공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거나, 책임 있는 최종 제품을 만들어내는 경우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했던 보스턴 맥주회사 제임스 콕 회장이 품질 좋은 원료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파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운송택배 회사인 UPS도 최근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 텔레매틱스(Telematics)라는 기술을 이용해 UPS 운전자가 연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경로를 안내하거나 정기 점검을 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UPS 운전자에게 좌회전보다는 우회전을 하도록 유도하는데, 좌회전을 할 경우 신호대기 시간이 길어져 연료 소비량이 늘고 배달 시간이 길어진다는 게 그 이유다. 또한 지난해 현재 하이브리드 운송차량 330대와 천연가스 운송차량 245대를 이용하고 있다. UPS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일정 기준을 갖춘 배송품을 위탁하는 경우 겉포장에 ‘환경책임’(Eco Responsible) 문구를 표시하기도 한다. 이 사례들 모두가 기업경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책임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다.

도요타와 애플이 주는 교훈
가장 바람직한 단계는 기업의 책임이나 윤리를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오히려 기회로 삼아 해결함으로써 기업 경쟁력까지 갖추는 것이다. 애플컴퓨터가 아이튠을 선보여 디지털 음원을 둘러싼 음반산업자와 소비자의 다툼에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좋은 사례다. 아이튠은 단순한 제품을 넘어서서 디지털 음원을 둘러싼 사회 갈등을 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요타자동차가 하이브리드 차량을 개발해 상호가치를 만들어낸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도요타자동차는 프리우스를 구입한 소비자에게 환경문제 해결에 일조한다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고, 실제로 공기오염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 게다가 프리우스를 선보이기 전까지 ‘추종자’(Follower)라고 불리던 도요타자동차가 단숨에 ‘혁신기업’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도 중요한 성과이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도요타에 경쟁 우위를 제공함과 동시에 환경문제를 푸는 열쇠를 제공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마지막 단계에 이른 기업들은 이해관계자 관련 문제를 위협이라기보다는 기회로 삼아서 기업이윤과 이해관계자 이익을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경제적 이윤과 사회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해관계자 역설’을 둘러싼 논쟁이나 포터 교수가 정리한 ‘상호가치’에 대한 내용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거성인 프리드먼 교수의 주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프리드먼 교수의 “경영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증가시키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사람들 가운데는 프리드먼 교수가 기업책임에 반대했다는 결론을 내리는 이가 많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프리드먼 교수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 같다.
그 글의 말미를 자세히 살펴보자.
“경영의 사회적 책임은 유일하다. 자원을 활용하고 이익을 증가시키기 위한 행위에 몰두하는 것이다. 단 그 활동이 게임 법칙을 지킨다는 전제, 다시 말하면 속임수나 거짓말이 없는 자유경쟁을 지킨다는 전제하에서.” 이 글에서 프리드먼 교수는 ‘사회적 책임이 불편한 이유가 주주·소비자·종업원에게 돌아갈 몫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편다. 프리드먼 교수가 주장한 ‘이익을 증가시키는 일’이란 주요한 이해관계자인 소비자와 종업원에 대한 책임을 포함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 주장은 포터 교수가 정리한 두 번째 단계와 다를 바 없으며, ‘이해관계자 역설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과도 다를 게 없다. 이 모든 주장은 기업인이 지녀야 할 책임의 본질을 설파한 것이지, 기업인이 지닌 책임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소가 다시 돌아오려면
애석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프리드먼 교수의 주장을 아전인수 격으로 받아들이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정체 모를 주장을 하는 것 같다. 최근 한 컨설팅 회사가 몇몇 나라의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프리드먼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는지를 조사했다. 이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랍에미리트연합, 일본, 인도, 싱가포르에서 이 주장에 동의한다는 지식인이 60%를 넘는다.
그런데 요즘 몇몇 국내 대기업들의 경영활동을 보면 많은 기업인들이 프리드먼 교수의 주장을 오해하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 어떤 대기업은 해외 시장에서보다 국내 소비자에게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하고, 종업원들에 대한 배려가 터무니없이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창의력마저 부족한지 영세업자들 영역으로 사업기반을 넓히거나, 단순히 해외 명품을 수입해 판매한다. 그런 반면 ‘사회공헌’이라는 미명으로 기업경영과는 별개로 엄청난 돈을 기부하고 있다. 그네들 생각을 요즘 유행하는 우스갯소리를 빌려 표현하면 이렇다. “외양간 고칠 것 신경 쓰다 보면 소는 누가 언제 키우냐.”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소를 잃고 나서 외양간을 아무리 명품으로 치장한다 한들 잃어버린 소는 제 발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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