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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와 통화정책, 예술의 경지
[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146호] 2022년 06월 01일 (수) 조계완 kyewan@hani.co.kr

<한겨레> 기자 

   
▲ 각국 중앙은행은 한동안 잊혔던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2022년 3월3일 미 상원 청문회에 참석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REUTERS

경제학은 태생(<국부론> 1776년)할 때 인문학 스타일의 이야기와 도덕철학 성격을 대체로 띠고 있었다. 데이비드 리카도 등을 거치며 점차 수학이 도입됐으나, 앨프리드 마셜(<경제학 원리> 1890년 1판~1920년 8판)까지만 해도 여전히 글과 말이 경제학의 지배 언어였다. <경제학 원리>는 수요-공급·탄력성·한계효용 개념을 선보였으나 수식과 그래프는 최소한으로 줄였다. 꼭 필요하면 맨 뒤 주석으로 빼고 본문은 말로만 쉽게 설명했다.
스승의 이런 태도를 본받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수식과 그래프로 된 주석은 오직 경제학자만 보면 될 뿐이고 일반 독자는 본문만 봐도 충분하다”고 했다. ‘좋은 삶, 선한 삶’을 주창한 케인스와 함께 마셜의 또 다른 제자인 아서 피구는 효율성·합리성 못지않게 ‘윤리학’을 경제학 연구분석의 출발 지점으로 여기고, “경제학은 음침한 뒷골목의 불결함과 궁핍한 삶의 암울함에 분개하는 사회적 정열”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경제학이 스스로 ‘과학’(경제과학)이라고 지위를 부여하면서 수리경제 세계로 휩쓸려 들어간 건 20세기 중반부터다. 현대경제학의 문을 연 폴 새뮤얼슨(1970년 노벨경제학상)은 <경제분석의 기초>(1947)에서 “수학은 하나의 언어”라고 선언하면서, (수식·함수를 경계한) 마셜의 말은 뒤집혀야 한다고 말했다. 마셜이 수학 공식을 부록에 끼워넣은 반면, 새뮤얼슨의 책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방정식이 등장한다. 1969년부터 노벨재단은 과학 분야에 경제학상을 새로 제정하기에 이른다.
수학은 열쇠다. 기호와 곡선 등 잘 정의되고 정교하게 짜인 수학적 문법·언어·모형을 사용하면 종이와 펜을 절약할 뿐 아니라, 반박하기 어려운 강력한 설득의 힘을 갖게 된다. 경제학은 점차 사회과학의 여왕 자리에 오르고, 경제학방법론과 수학 분석도구를 정치·사회·행정·가족·외교학까지 거의 모든 인간행동 연구에 확장한 게리 베커(1992년 노벨경제학상)의 손을 거쳐 비로소 ‘예술’(Art)이 됐다고 흔히 말해진다.
엄격한 수리 훈련으로 무장한 로버트 루카스(1995년 노벨경제학상)는 이른바 ‘합리적 기대가설’을 동원해 정부의 모든 재정·통화 정책은 그 효과가 종국에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약간의 농담과 조롱을 담아 “통화정책은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예술 영역에 속한다”고 말했다. 요즘 각국 통화정책 당국은 ‘예술의 경지’에 도달해 어떻게 인플레이션 증상을 현명하게 치유할지 시험대에 올랐다.
1970~1980년대 세계경제를 괴롭혔던 인플레이션은 2000년대 들어 지구 경제에서 아주 퇴장한 것처럼 보였다. 지난 십수 년간 경제학 교수들은 “중앙은행의 전통적 임무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라고 설명하는 일에 애먹었다. 잊혔던 인플레이션 현상이 20여 년 만에 재등장하면서 한국·미국·유럽의 중앙은행들은 정책금리 변경(연 8회)의 폭과 시기를 최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임무 앞에 서 있다. 코로나19 이후 경기회복 불씨를 살리고 이어가면서 동시에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하는 ‘예술’이다.
정책금리가 실물에 파급되는 여러 경로(금리, 자산가격, 환율, 신용공급, 기대인플레이션)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영향의 ‘크기 및 시차’를 정교하게 분석·측정하는 수학적 방법은 그 예술을 뒷받침하는 도구다. 하지만 달라진 경제 조건·환경 아래, 통화정책과 경제변수들 사이의 전통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는 약화하거나 이제 뚜렷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래저래 통화정책 담당자는 더욱 예술가가 돼야 하는 처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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