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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정책 산물인가 ‘설계 없던 성공’인가
[CULTURE & BIZ] 문화산업정책 변천사
[145호] 2022년 05월 01일 (일)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관객 600만 명을 동원해 360억원의 흥행수입을 올린 1999년 영화 <쉬리>의 한 장면. 한국은행은 처음으로 이 영화가 유발한 경제효과를 EF쏘나타 생산과 비교해 계산했다. 씨네21

“영화 <쥬라기공원> 1년 흥행수입이 우리나라 자동차 150만 대 수출 수익과 같다.”
한국 문화산업정책의 역사를 바꾼 것으로 회자되는 전설적인 문구다. 1994년 과학기술자문회의 대통령 보고에서 처음 등장한 이 문구는 이후 우리 문화산업정책의 씨앗이 됐다고 평가받는다. 오락거리로 여기던 대중문화 분야에 경제성을 도입해 ‘산업’으로 거듭나게 하는 시발점이 됐기 때문이다.
이 문구의 영향으로 문화산업에서는 큰 성공을 거둘 때 자동차 수로 환산해 경제효과를 표현하곤 했다. 1999년 영화 <쉬리>가 관객 600만 명을 동원해 360억원의 흥행수입을 올렸을 때, 한국은행은 이 영화가 유발한 경제효과 1107억원을 EF쏘나타 3119대 생산과 비교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와 <친구>(2001년)가 각각 올린 350억원, 574억원의 흥행수입도 EF쏘나타 2964대와 4860대 생산의 경제효과로 환산했다.

문화산업에 경제성 부여
최근 방탄소년단(BTS)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한류의 세계적 성공이 두드러지면서 서구 언론의 한류 분석 기사에도 이 문구는 자주 등장했다. 2021년 10월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한류! 한국 문화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스필버그의 1993년 영화 <쥬라기공원>이 현대자동차 수출보다 성과가 더 좋다는 계산이 나오자 한국 정부는 엔터테인먼트산업 육성과 수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썼다. 수십 년에 걸친 야심 찬 한국 정부의 계획으로 한류가 한국의 대표 상품이 됐다는 시각이었다.
한류의 성공을 전폭적인 지원정책의 결과로 보는 시각은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한국 정부가 과거 전자·조선·자동차 산업을 성장시켰던 것처럼 치밀한 대중문화 산업정책을 수립했고, 그 덕분에 한류가 대표 수출상품이 됐다고 분석한다.
이런 시각에 많은 한국 학자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평가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정부가 문화산업정책을 수립하고 지원을 늘린 것은 맞지만, 이후의 한류 성공을 모두 그 결과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창의성 중심 산업이다. 정부도 과거의 지원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워 숱한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한류가 “설계되지 않은 성공”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한류 성공에는 정부의 지원정책, 한국 대중문화의 경쟁력,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적 변화, 소수 기업가의 탁월한 능력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치밀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들 요인은 각자의 메커니즘에 따라 독자적으로 움직였고, 우연히 합류하면서 다양한 성공을 낳았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국외에서 한류 성공을 주로 정책의 결과로 바라보는 것은 다소 게으른 접근 때문이다. 한류 성공 초기에는 정부의 정책 수립 과정에 대한 연구가 많았다.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도 이런 연구 성과를 그대로 답습해 정책 지원을 과도하게 다루는 측면이 있다. 또 하나는 서구 학자들이 아시아 국가를 보는 관성 때문이다. 이들의 눈에 아시아는 늘 정부 주도로 무엇인가를 이루는 곳이어서 한류 성공도 그 연장선으로 보고 싶은 것이다.
한류의 성공 과정에서 정부 역할은 다른 의미에서 중요했다. 이 분야가 한국의 미래를 이끌 동력이 돼야 한다며 끊임없이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경제 환경의 변화 속에서 그런 주의 환기가 필요했다. 사회의 가치관이 바뀌는 데 정부가 크게 기여했다는 의미다.

   
▲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맨 왼쪽). 김대중 정부는 문화산업 육성을 위해 법과 제도, 지원 체제를 마련했다. 한겨레 자료

팔길이 원칙
우리나라에서 문화산업을 경제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1993년 등장한 김영삼 정부 때였다. 당시 경제 환경은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1995년은 우루과이라운드의 결실로 탄생한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원년이었다. 시장개방과 무역자유화로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무한경쟁 사회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경제위기 담론이 팽배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중문화 소비시장이 크게 성장했고, 선진국일수록 대중문화산업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올린다는 담론이 쏟아져 나왔다.
김영삼 정부는 이 흐름에 맞춰 1994년 문화체육부에 문화산업국을 신설했다. 문화에 투자하면 사회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정책보고서들도 처음 등장했다. 1995년에는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해 문화산업 지원을 의무로 규정했다. 체계적 지원으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문화를 산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이후 시대를 이끈 큰 변화였다.
문화산업정책이 본격 시행된 때는 1998년 김대중 정부였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새로운 천년을 ‘문화의 시대’로 규정하고 문화산업과 벤처산업 육성을 최우선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김대중 정부가 문화산업을 전면에 내걸 수 있었던 것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어진 한국 경제위기 담론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벤처산업을 위해 투자 제도를 정비했고, 문화산업을 위해 기본적인 법과 제도, 지원 체제를 마련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9년 제정된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이었다. 이 법에서 ‘문화산업’이 처음 정의되면서 우리 행정체계에 등장했다. 문화산업진흥기금을 신설해 문화상품에 투자와 융자를 하고, 국가가 문화산업을 지원하는 것을 법규로 명문화했다. 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1999년), 문화산업비전21(2000년), 콘텐츠코리아비전21(2001년) 같은 중장기 계획도 수립했다. 문화 부문에 정부 예산의 1% 이상을 배정하고 문화산업 예산을 500% 이상 늘리는 등 재정 지원이 이어졌다.
이와 함께 문화산업 지원체제의 핵심 운영 원리인 ‘팔길이 원칙’을 도입했다. 대상자의 자유와 자율을 존중해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정부 주도로 정책의제를 발굴하지만, 대상자 선정 등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지원의 실질 권한을 다른 조직에 넘긴다는 의미다. 팔길이 원칙은 1946년 영국에서 ‘대영예술위원회’ 설립 때부터 정착된 문화예술 분야 지원의 거버넌스 원칙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문화산업 지원기구인 영화진흥위원회를 개편(1999년)하고, 방송위원회(2000년)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2001년) 등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이 원칙을 핵심 운영원리로 삼았다. 이 원칙이 중요한 까닭은 문화산업이 과거 정부가 자본을 집중 투입하던 중화학이나 반도체 산업과는 달라서였다. 개인의 창의성과 상상력 발현이 중요한 문화산업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적 분위기와 다양성의 힘이 필요했다.

지원보다 활용
한류 성공이 늘어나면서 정부는 문화산업 지원만큼 활용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수단으로 한류를 보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친기업 정책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국가 브랜드 제고 등을 위해 한류 성공을 차용하는 사업을 늘려갔다. SM타운 프랑스 파리 공연, 한류드림콘서트, 한류 스타 팬미팅 같은 행사가 정부 주도로 열렸다. 한류 성공이 국격을 높이고 다른 제품의 수출과 외국인의 국내 관광 등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사업이 늘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외신은 “한류는 국가가 조장하는 프로파간다(선전) 사업”이라는 부정적 시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업자들도 한류가 국책사업이나 선전사업처럼 추진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스스로 성공을 일궜다고 생각하는 일부 한류 기업은 “정부가 무슨 지원을 해줬냐”고 푸념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현안인 일자리 창출 차원으로 문화산업에 접근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운영 기조로 내건 ‘문화융성’은 “일자리 창출 잠재력이 크고 새 시장을 창출하는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문화산업이 관광·교육·의료 등 서비스산업과 제조업의 동반성장을 견인하는 것”을 의미했다. 문화산업이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 브랜드를 향상하는 수단으로 강조됐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바뀐 것이었다.
따라서 주요 정책도 산업생태계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그 결정체가 ‘문화창조융합벨트’ 건설이었다. 문화창조융합센터, 문화창조아카데미, 케이(K)컬처밸리, K팝아레나, K익스피리언스 등 6개 시설을 만드는 이 사업에 약 7천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이를 통해 향후 10년간 25조원의 직간접 경제효과와 17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거둔다는 청사진도 있었다. 이 사업은 하드웨어 건설 정도만 끝난 상태에서 국정농단과 연루되면서 중단됐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어진 팔길이 원칙이 파괴된 것은 무엇보다 아쉬운 대목이다.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 작성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부정적 사건이 문화산업정책과 많이 연루된 탓에 다음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 분야가 다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 김윤지 연구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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