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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 안착이 먼저다
[이창곤의 웰페어노믹스] 녹색복지국가를 위한 전략 ⑥ 노동시간 단축
[145호] 2022년 05월 01일 (일) 이창곤 goni@hani.co.kr
   
▲ 2018년 10월24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고용노동부가 ‘노동시간 단축’ 안착을 위한 기업인 간담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시간이 새 정부 노동정책과 관련해 이슈로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후보 시절 강조한 핵심 노동공약 중 하나가 ‘노동시간 유연화’였고 2022년 4월1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주52시간제) 기본 골격은 유지하되 융통성 있게 조절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노동시간이 노사정 사이의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짧아진 노동시간은 투쟁의 성과
기실 노동시간은 오랜 노동 이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에 쓴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에세이에서, 자신의 손주 세대는 1일 3시간 및 주 15시간 일하는 시대에 살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예측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노동시간은 지속해서 짧아졌다. 짧아진 노동시간은 노동자들의 기나긴 투쟁의 결과이기도 하다. 187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무려 3천 시간이었다. 하지만 2020년 들어 1687시간으로 단축됐다. 한국의 연노동시간은 아직도 1908시간에 이른다. OECD 국가 중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긴 나라는 멕시코(2134시간)가 유일하다.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는 단지 장시간 노동의 개선만을 뜻하지 않는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과 삶의 균형, 일자리 나누기, 소득재분배, 생산성 향상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정책 수단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기존 의미를 더해 생태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책 수단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미래의 위기인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우리 사회의 대전환을 이룰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서 의미다. 생태위기 시대의 복지 비전인 ‘녹색복지국가 비전’의 핵심 전략 중 하나로 노동시간 단축이 강조되는 이유다.
기후생태학자들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은 근본적으로 브레이크 없는 생산활동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따라서 노동시간을 줄이면 온실가스 배출도 응당 줄어들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적게 일할수록 그만큼 생산 과정이 줄어드니 탄소발자국 또한 적어진다는 상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처럼 노동시간 단축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유효한 사회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스웨덴 연구진은 노동시간이 1% 단축되면 가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최대 0.8% 감소한다는 걸 증명했다. 스웨덴 가정의 시간 사용과 소비 형태를 분석해 소득과 여가의 변화를 살폈더니, 작업시간이 1% 감소하면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각각 약 0.7%, 0.8% 감소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 보스턴대학 연구진도 2007~2013년 미국 50개 주의 탄소배출과 노동시간의 관련성을 연구한 결과, 긴 노동시간은 화석연료 배출은 물론 화석연료의 대량소비와 강한 생태발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노동시간 단축이 탄소배출량 감소에 그치지 않고, 일자리 나누기 정책과 결합하면 고용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영국 환경단체 ‘플랫폼 런던’도 주 4일 근무제로 전환하면 영국이 2025년까지 연간 1억2700만톤(t)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녹색복지국가는 기후위기 해결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국가 비전이다. 이 비전을 이루는 전략으로서 이렇듯 노동시간 단축의 효용은 크지만, 단순 적용할 수 없는 한국의 일터와 임금 등의 현실이 있다. 구체적인 추진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고, 특히 적용을 위해선 넘어야 할 장벽이 적잖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노동시간은 임금과 직결된다. 노동시간 단축은 곧 임금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삶의 기반을 소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노동자로선 아무리 기후위기 해결과 일자리 나누기 등의 명분이 있다고 해도 당장의 임금 감소를 감내하기란 쉽지 않다. 노동시간 단축을 고용주가 아니라 노동자가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 노동시간 감축이 이뤄질 때 일부 노동자는 선뜻 수용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반발한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은 임금 보전 등의 조처를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노사의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는 ‘일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는 노동자에게 적정 시간을 보장하는’ 대책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 이처럼 사회적 합의 모색과 사회보장 시스템 강화를 함께 논의하고 실행할 때 노동시간 단축은 실효성 있는 방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주52시간제 안착이 먼저다
노동시간 개념은 실근로시간·지불근로시간 등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동시간은 근로기준법상의 ‘법정 근로시간’을 가리킨다.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종속된 시간”을 뜻하며, “주 단위 및 1일 단위로 정해져 있는 최저 근로조건의 기준근로시간”이다. 현재 만 18살 이상 성인노동자의 경우 1일 8시간, 일주일 40시간을 의미하며, 당사자 간 합의하면 일주일에 12시간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다. 이름하여 근로기준법 제52조 ‘주52시간제’이다.
새 정부가 내건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은 주52시간제가 아직도 안착하지 않은 시점에서 여러 우려를 낳는다. 정보기술(IT) 업계를 비롯해 적잖은 사업장에서는 여전히 저임금과 철야노동이 강요되고 있다. 이런 일터 현실에서 성급한 노동시간 유연화는 장시간 노동으로 회귀할 길을 터주는 일이나 진배없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주52시간제 안착이 먼저다. 선택근로제 등 노동시간 유연화는 그런 뒤에 검토해도 좋을 듯하다.

* 복지를 다년간 살피고 책도 펴냈다. 그러다 ‘복지와 경제의 호혜적 융합’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늦깎이 경제 공부에 매달리는 언론인이자 사회과학도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개혁, 그 수단으로서 좋은 정책과 복지정치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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