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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 분쟁, 경제전쟁 점화
[COVER STORY] 우크라이나 침공의 경제학- ① 경제제재의 지형
[144호] 2022년 04월 01일 (금) 지몬 보크 economyinsight@hani.co.kr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질서와 세계경제에 거센 후폭풍을 불러왔다. 미국 주도의 유례없는 러시아 경제제재가 잇따르면서 경기둔화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을 우려하는 가운데, 지정학적 분쟁이 경제전쟁으로 확전되는 ‘신 냉전시대의 경제전쟁’ 양상이 나타난다. 독일을 비롯한 수출지향 국가는 현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_편집자

지몬 보크 Simon Book
지몬 하게 Simon Hage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알렉산더 융 Alexander Jung
미하엘 자우가 Michael Sauga
<슈피겔> 기자

   
▲ 러시아의 침공 이래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의 무자비한 공격과 우크라이나인들의 결사 항전이 계속되고 있다. 2022년 3월12일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마을을 지나가고 있다. REUTERS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독일 니더바이에른 출신의 기업인 토마스 락스후버(49)는 지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한 박람회장에 부스를 차려놓고 자신이 제일 잘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락스후버가 경영하는 스텔라(Stela)는 농업과 산업 부문 건조시설을 생산하는 업체다. 이런 종류의 제조시설을 제작하는 기업은 전세계에 몇 곳 되지 않는다. 강소기업을 일컫는 ‘히든 챔피언’을 경영하는 락스후버는 1년 내내 바쁘게 전세계로 출장을 다닌다.

   
▲ 2022년 3월1일 스페인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생필품과 의약품이 부족한 모국의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해 물품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REUTERS

침략전쟁 제재로 박람회 취소
그러나 현재 락스후버의 회사에서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이 거의 없다. 여전히 진행 중인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유럽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큰 원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과 이에 맞선 서구의 제재로 락스후버가 키이우에서 열려 했던 ‘곡물 테크 박람회’가 물 건너가버렸다. 더욱이 러시아에서의 사업 역시 당분간 접어야 할 상황이다.
락스후버는 <슈피겔>과의 통화에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아니었더라도,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자신과 같은 중소기업들의 상황이 어려워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 미국, 심지어 유럽에서 심화하는 보호무역주의로 2% 남짓에 불과한 마진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 같은 기업들은 지정학적 요인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 자체의 비극은 물론이고 지정학적(Geopolitical) 분쟁과 리스크가 경제에 얼마나 부담을 주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수석로비스트인 에카르트 폰 클레덴은 “2021년 말까지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지경학적(Geoeconomic) 핵심 리스크로서 무역정책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이제 푸틴은 폭력을 동원해 자신을 지정학적 의제에 올려놓은 셈이다.”
기업들은 매출액 폭락과 에너지 가격 상승에 신음하며 공급망 단절을 우려하고 있다. 주가도 내려가고 있다. 그나마 주가가 더 폭락하지 않은 것은 투자자들이 글로벌 경제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그만큼 미미하게 평가한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전쟁이 우크라이나 밖을 벗어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 케저 지멘스그룹 회장은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그리고 다양한 정치시스템 사이에 지정학적 지형이 크게 흔들렸다”고 말한다. 이런 변화가 독일 등 수출국에는 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국가보다 독일이 크게 혜택을 입었던 자유무역의 시대, 세계 정치가 상대적으로 안정됐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더불어 독일의 성공 모델 근간도 과거사가 돼버렸다. 독일 기업들은 수십 년간 시장개방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면서 개발도상국, 특히 중국의 산업화를 기계·로봇·설비 등으로 지원해주는 한편 자동차와 여타 소비재에 대한 중국 중산층의 수요를 감당해왔다.
이렇듯 국제분업은 독일 경제에 이익이 됐지만, 독일 정치권과 기업들은 지속해서 부가 늘어나는 것에 한껏 취해 국내 원자재와 1차 제품의 수급 안정화,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기술의 자체 개발 시기를 놓쳐버렸다. 순진했거나 혹은 안일했기 때문이다. 지금 목도하는 리스크와 유사한 위험은 과거에도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핵무기가 아닌 경제적 수단을 동원한 신냉전이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킬(Kiel)세계경제연구소 등이 실시하는 장기간 연구보고 등에 따르면 국가들은 경제력을 지속해서 악용해왔다. 지금 새로운 점이 있다면 자유무역 구상이 근본적으로 의심받는 현상이다. 킬세계경제연구소의 이코노미스트 카트린 카민은 “지난 10년간 국가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시 주요 관심사가 됐다”고 말한다.
이는 중국의 부상과 브라질·인도·러시아 등의 패권 야욕과도 관련이 있다. 동시에 전세계 경제는 강력하게 연계되고 통합됐다. “이는 새로운 레버리지(지렛대)와 취약점을 만들어낸다”고 카트린 카민은 설명한다. 특히 민주주의가 전세계적으로 후퇴하는 기조인데 “권위주의 국가와 포퓰리스트들이 통치하는 국가들은 보호무역주의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통계자료를 보면 무역분쟁은 특히 지난 10년 동안 엄청나게 늘었다. 킬세계경제연구소 데이터에 따르면 제재는 1950년 20건에서 2019년에는 250건으로 크게 늘었다. 카민은 “지정학적 목표를 위해 지경학적 수단이 활용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 중국은 이런 종류의 전쟁 수행에 능하다. 하지만 카민에 따르면 “유럽과 수출 강국 독일에는 새로운 세계 상황을 기존 사업모델과 조화시키는 지경학적 전략이 부재한 상황”이다.
클라우스 만골트 전 다임러그룹 임원은 “우크라이나 분쟁은 달라진 정치 상황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경고한다. 독일에서 동유럽경제관계위원장을 맡았던 만골트는 독일 내 동유럽 사업의 숨은 실력자다. 현재도 만골트는 독일과 유럽의 수많은 기업에 자문해주고 있다. 그는 개방된 시장이 점점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에 대비하는 전략과 공급망을 기업들이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로 본다. “지난 몇 년 동안 지정학적 분쟁은 차원이 달라졌다. 지정학적 분쟁은 모든 기업의 임원진과 감독이사회의 의제에 올라 있다.”
러시아는 몇 년 전부터 거대한 리스크로 분류된다. 크림반도 위기로 서유럽은 2014년 러시아 기업들과 러시아인들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독일 기업 일부는 러시아 시장에서 손을 털고 나왔고, 일부는 ‘로컬화 전략’을 구사했다. 다임러는 2019년 러시아 부유층을 대상으로 스포츠실용차(SUV) 조립공장을 세웠다. 현재 다임러의 내부 지표에 따르면 러시아 판매실적이 나빠지고 있다. 물론 다임러 전체 그룹으로 보면 러시아가 ‘핵심 시장’은 아니다. 대다수 기업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대러시아 무역은 2012년 800억유로로 사상 최대치를 찍은 뒤, 현재 4분의 1가량 급감했다.
지멘스는 푸틴과 특별한 경험을 했다. 러시아에 단행된 제재에 따라 러시아에 있어서는 안 되는 지멘스 가스터빈이 2017년 크림반도에 등장했다. 이에 지멘스는 러시아 고객사 TPE가 계약을 위반해 지멘스 가스터빈을 크림반도로 가져갔다고 설명하면서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독일 산업의 아이콘이던 지멘스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볼 수 있다. 20년 전만 해도 지멘스의 정치·대외관계 담당 부서의 주요 업무는 국가 정상들의 공장 방문 의전이었다. 현재 지멘스는 지정학적 분쟁을 알려주는 조기경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대기업 대부분이 위험 상황의 조기경보를 담당하는 대규모 부서를 베를린(독일), 브뤼셀(벨기에)을 비롯해 각국 수도에 가동 중이다.
지멘스의 리스크 보고서에는 지정학적 위험 요인이 적시돼 있다. 요인의 개수는 늘어날 때도 있고 줄어들 때도 있다. 때로 구체적이지 않은 일반적인 위험 요인이 적시된다. 최신 지멘스의 리스크 보고서의 한 대목에 “(특히 중동·홍콩·대만의) 지정학적 긴장 관계, 유럽연합의 대러시아 관계와 정치적 대변혁 과정에서 여타 근본적인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홍콩과 대만은 지멘스 비즈니스 보고서에 지금까지는 짧게 언급됐다. 두 국가의 영향력을 이렇게 과소평가하기도 쉽지 않다.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홍콩과 대만은 장기적으로 모든 것을 압도할 수도 있는 위험 요소다. 중국과 미국의 심화하는 대결은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에서는 ‘러시아의 침공 전쟁’이란 표현이 금지됐는데, 중국 정부는 러시아의 침공 전쟁을 중국의 경제권 확장 욕망의 틀에서 이해한다고 중국 재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의 글로벌 패권을 위해 경제를 무기로 활용한다.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중국이 추진 중인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 전략) 정책을 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무역로를 지배하려 한다. 시 주석은 중국이 세계적으로 선도할 핵심 산업 10가지를 지정했다. 중국 경제는 이미 오래전에 ‘세계의 공장’ 역할에서 벗어났다.
독일 기업들은 이를 뼈아프게 느끼고 있다. 뮌헨 인근 아쉬하임에 소재하는 유압 전문업체 하베(Hawe Hydraulik)의 대주주 카를 호이스겐(56)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베는 총매출액 4억5천만유로(약 6140억원) 이상의 70%를 국외에서 올리고 이 중 1억유로를 중국에서 기록하고 있다. 하베는 독일의 다른 수많은 기계제작 업체와 마찬가지로 수년간 중국의 시장개방 덕을 톡톡히 보았다. 독일의 기계제작 업체들은 독일에서 생산해 중국으로 수출했고, 기업 성장세는 최소 20%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노선을 수정해 산업 분야별로 자급자족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 몇 년에 걸쳐 중국 경쟁업체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독일 기계제작 기업들은 중국 시장점유율을 크게 잃었다.

   
▲ 2022년 3월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에 있는 마을의 슈퍼마켓 식료품 판매대가 텅 비어 있다. REUTERS

유압 전문업체 하베의 해결책
중국과 미국에서처럼 경제정책이 곧 대외정책으로 된다면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카를 호이스겐은 목소리를 높인다. 자신의 회사 하베는 해결책을 찾았다. 호이스겐은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 현지에 공장을 지었고 중국에 있는 한 독일 기업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하베는 중국에서의 매출액 감소에 대비해 브라질 등 다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동시에, 미국 시장에서도 몸집을 불리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이런 전략을 수행하기에 자금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호이스겐은 지적했다. “많은 독일 기업이 이제는 수출 모델만으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 Der Spiegel 2022년 제9호
Wirtschaft als Waffe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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