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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낳는 거위 ‘미디어 프랜차이즈’
[CULTURE & BIZ] 마블 영화와 포켓몬 빵의 공통점은?
[144호] 2022년 04월 01일 (금)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 서울 은평구의 편의점 문에 ‘포켓몬 빵 품절’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겨레 옥기원 기자

얼마 전 지인에게서 요즘 영화는 너무 어렵다는 푸념을 들었다.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로 영화를 보는데 알 수 없는 용어와 인물들이 불쑥 튀어나와 줄거리를 도무지 따라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영화 제목을 듣고는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영화는 흔히 말하는 ‘유니버스 영화’ 가운데 한 편이었다.
그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관련된 영화들을 어느 정도 보고 그 영화의 ‘세계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얘기해줬다. 그러자 “이제 영화도 공부하면서 봐야 하느냐”며 더 크게 푸념했다. 최근 공통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 콘텐츠’가 많이 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것을 정리한 유튜브 계정이나 블로그도 성행한다. 제작사와 배급사도 이런 영화의 마케팅에서 관련 콘텐츠를 미리 보고 올 것을 권하고, 아예 유명 유튜버나 블로거에게 의뢰해 ‘선행학습’ 콘텐츠를 제공하기도 한다.
요즘 ‘포켓몬 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크게 유행하고 있다. 빵보다 봉지에 든 스티커를 모으는 것이 목적이다. 용돈이 부족해 예전에 못했던 스티커 컬렉션 완성을 ‘자금력 빵빵한’ 어른이 되어 해보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유니버스 영화와 포켓몬 빵.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 단어들 속에 10년, 20년이 지나도 콘텐츠의 생명력을 불타오르게 하며 세대를 초월한 마케팅 파워를 제공하는 콘텐츠 비즈니스의 열쇠가 숨어 있다.

지식재산권 시대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정착한 유니버스 영화의 대표 격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나온 지도 15년이 됐다. MCU의 성공은 콘텐츠 기업들이 가장 따르고 싶은 사업모델이다. 영화 시리즈 누적 흥행 1위를 달성한 지 오래다. 세계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시장을 군림하는 이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성장세는 가장 빠르며, 오랜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미디어 프랜차이즈란 하나의 지식재산권(IP)을 다양한 매체와 여러 장르의 콘텐츠가 공유해 사업하는 형태를 말한다.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여러 이름으로 콘텐츠 시장에 존재했다. 한때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란 용어가 많이 쓰이기도 했다. 이 사업모델의 핵심은 IP의 지속적 재활용이다.
투자자에게 미디어 프랜차이즈는 두 가지 장점을 제공한다. 먼저 콘텐츠 사업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흥행의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점이다. 모든 콘텐츠에는 흥행 불안 요소가 있다. 이는 투자 결정을 고심하게 한다. 미디어 프랜차이즈는 이미 성공한 콘텐츠의 IP를 활용하므로 기존 팬층이 두껍다. 수익성이 분명한 투자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다음은 마케팅을 포함한 초기 투입 비용의 감소다. 기본 구조를 갖춰 개발 비용이 적게 들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비용이 줄어든다. 여기서 절약한 비용을 콘텐츠 품질을 향상하는 데 쓸 여지가 생긴다. 프랜차이즈가 지속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제작 단계에서 충분한 자금 여력과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는 것도 강점이다.
2021년 기준으로 가장 강력한 미디어 프랜차이즈는 무엇일까? 업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바로 디즈니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틀린 답은 아니다. 들으면 알 만한 유명 미디어 프랜차이즈 대부분이 디즈니 소유다. 전체 시장에서는 디즈니가 최강자이지만, 개별 프랜차이즈로는 포켓몬이 그렇다. 일본 닌텐도의 게임 타이틀이 원작인 이 프랜차이즈의 연매출은 평균 100억달러(약 12조원)에 이른다.
1996년 발매된 포켓몬스터는 출시 26년째를 맞았다. 매출 상위 미디어 프랜차이즈 IP의 역사는 길다. 가장 최신이라고 할 만한 게 15년 된 MCU다. 한번 만들어진 미디어 프랜차이즈는 꾸준히 부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지식재산권 시대’로 이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IP가 콘텐츠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MCU만 보더라도 잘 자리잡은 IP 하나는 미디어 프랜차이즈로 발전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기회를 잘 잡은 콘텐츠 기업은 황금알 낳는 거위를 얻었다고 할 만큼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 2022년 3월12일 서울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콘서트 모습. 빅히트뮤직 제공

콘텐츠 세계관
콘텐츠의 홍수 시대에 미디어 프랜차이즈는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내놓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다. 포켓몬 빵처럼 사람들의 추억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특히 강력한 무기다. 이런 프랜차이즈를 계속 유지하고 새 콘텐츠를 만드는 핵심 도구가 바로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콘텐츠의 배경이 되는 현실 또는 가상 세계를 구체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 설정에는 해당 콘텐츠의 가치와 사상, 철학, 메시지 등이 담겨 있다. 콘텐츠의 형성과 전개에 중요한 준거를 제공한다. 바로 프랜차이즈와 연결되면서 세계관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에선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이 공동 작업을 한다. 예전 같으면 한 작가가 계속 같은 작품을 집필해 작가 본연의 색채를 유지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시스템에선 다른 작가들이 하나의 IP를 다룬다. 이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통된 틀이 필요하다.
긴 시간 동안 프랜차이즈를 유지하려면 세계관 정립이 필수다. 미디어 프랜차이즈들은 세계관 정립과 유지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MCU에는 세계관을 관리하는 위원회가 있다. 새 콘텐츠가 나올 때마다 설정 또는 상황의 변화를 일종의 타임라인으로 관리할 정도로 그 중요성이 크다.
최근 케이팝(K-Pop)에서도 세계관이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2012년 데뷔한 그룹 엑소(EXO)는 미지의 외행성인 ‘엑소 플래닛’에서 왔고, 멤버들이 각자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만화나 게임 같은 세계관을 표방했다.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의상, 헤어스타일 등 다양한 시각적 요소가 이런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당시에는 참신한 앨범 콘셉트 작업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이런 엑소의 시도는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요즘 데뷔하는 아이돌 그룹 대부분이 자체 세계관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현재 케이팝에서 가장 주목받는 세계관은 ‘BTS(방탄소년단) 유니버스’다. BTS는 세계관 개념을 가장 잘 활용하는 그룹으로 인정받는다. 팬들의 2차 창작물이 덧붙여지며 BTS 세계관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세계관은 콘텐츠나 아이돌 그룹들이 만드는 가상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정교하게 만들어진 세계관은 사용자에게 다른 콘텐츠 경험을 제공한다. 마치 그 세계가 실존하는 것처럼 등장인물과 세계가 점점 변화한다.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등장인물과 함께 콘텐츠 세계에 소속된 듯한 확장된 콘텐츠 경험을 제공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소비를 유도한다. 이런 세계관의 속성은 메타버스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씨앗이 된다.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 다른 팬들과 더불어 시각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팬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한다.

메타버스로 진화
이 흐름에 맞춰 최근 많은 콘텐츠가 세계관 강화에 주력한다. 그러나 세계관 자체가 매력이 없다면 사람들은 지겨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계속 찾는 세계관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매력 있는 캐릭터의 창조다. 그런 캐릭터는 언제나 이야기를 만들어낼 힘이 있다. 사람들에게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세계관의 설정이다. 해리포터, 스타워즈, MCU 등 아주 인기 있는 미디어 프랜차이즈를 분석해보면 나름의 특색이 있다. 이런 특색은 사람들의 욕망, 호기심 같은 대중 심리를 파악해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몰입되는 세계관이 형성되고, 정말 오래가는 미디어 프랜차이즈가 구축된다.
2021년 한국은 케이팝을 비롯해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세계적인 흥행작을 내놓았지만 유독 미디어 프랜차이즈 분야에서는 취약하다. 콘텐츠 제작 자본이 창작자인 제작자가 아니라 방송사 또는 배급사 같은 유통 라인에 여전히 집중됐기 때문이다.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제작 환경도 경쟁력 있는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탄생을 힘들게 한다.
세계관은 긴 시간을 두고 사람들을 빠져들도록 해야 하지만 한국의 콘텐츠 산업은 장기 투자에 익숙하지 않다. 자본력이 탄탄한 대기업들도 소극적인 상황이다. 영세한 콘텐츠 기업들은 미디어 프랜차이즈에 대한 의지는 있지만 쉽사리 나서지 못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K-콘텐츠가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K-콘텐츠를 대표할 미디어 프랜차이즈가 자리잡아야 한다. 이제라도 콘텐츠를 제작할 때 세계관이나 앞으로의 전략을 기획에 충분히 녹여낼 필요가 있다.

* 문동열 칼럼니스트는 업계 경력 20년 이상의 콘텐츠산업 전문가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며, 콘텐츠 제작과 금융이 전문이다.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졸업하고 LG인터넷과 SBS콘텐츠허브 등에서 방송·게임·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IBK기업은행에서는 콘텐츠 금융과 관련한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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