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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문·언론 신뢰가 주춧돌
[집중기획] 세계 최초의 핀란드 고준위방폐장 ③ 높은 사회통합
[143호] 2022년 03월 01일 (화) 우베 부제 economyinsight@hani.co.kr

우베 부제 Uwe Buse <슈피겔> 기자

   
▲ 2018년 6월14일 핀란드 당국이 언론인들에게 영구 핵폐기물처분장 온칼로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REUTERS

에우라요키 주민들과 핀란드 국민에게는 원자력에너지를 신성시하는 진지함이나 독일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집요함을 찾아볼 수 없다. 핀란드도 원전 건설을 둘러싸고 격론의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독일의 브로크도르프 원전을 둘러싸고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였던 정도의 격렬한 시위는 없었다. 독일 북부 지역에서 중간 처리시설로 핵폐기물이 이송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볼 수 있던, 원자력에너지 반대 시위대가 철로에 쇠줄로 자기 몸을 묶는 시위도 핀란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녹색당, “원자력 제한적 사용 수용”
핀란드 녹색당이 원자력에너지를 거부하는 의미에서 2002년과 2014년에 두 차례 연정을 깨고 나온 적은 있다. 그나마 연정 파기가 핀란드 역사상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가장 격렬한 정치권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현재 핀란드 녹색당 벨리 리카넨 사무총장이 발표한 공식 입장에 따르면 “녹색당은 기후보호를 위해 적어도 기존 원전의 수명 기간으로 원자력에너지의 제한적 사용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핀란드 녹색당은 원자력에너지에 실용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당원들도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타협안을 찾으려 한다. 이를 통해 핀란드는 기후목표를 더 쉽게 달성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핀란드는 이를 더 쉽게 해낼 수 있을까? 핀란드의 실용주의는 무엇에 바탕을 두었을까?
헬싱키대학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에사 벨리베로넨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신뢰의 중요성”을 이유로 제시했다. 벨리베로넨 교수는 핀란드와 학문, 핀란드와 공공기관, 그리고 핀란드와 정치권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연구한다. 온갖 견해 차이와 논쟁을 뛰어넘어 사회를 통합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르타르(mortar·시멘트와 모래를 물로 반죽한 것) 구실을 하는 신뢰가 그의 핵심적인 연구다.
벨리베로넨 교수가 인용한 유럽연합(EU)의 설문조사인 유로바로미터의 통계치에 따르면 “기업의 80%는 학문과 연구 결과를 신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독일에서 해당 수치는 59%에 불과하다. 유럽연합에서 독일보다 수치가 낮은 국가는 키프로스가 유일하다. 키프로스인들만 독일인들처럼 학문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핀란드인과 독일인의 학자들에 대한 신뢰와 정직함의 평가도 큰 차이를 보인다. 핀란드 국민의 76%가 ‘학자들을 신뢰하고 그들이 정직하다’고 여기지만, 독일인은 46%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불가리아도 독일보다 높은 49%를 기록했다. 핀란드 국민의 70%가 ‘일상에서 학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데 비해, 유럽연합 회원국 전체 평균은 46%에 불과하다.
핀란드에서는 소셜미디어가 정보 출처로서 크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점도 한몫했다.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들에서 소셜미디어는 정보 출처로서 중요도 2·3위를 차지하는데, 핀란드에서는 소셜미디어가 TV, 신문, 학술잡지, 온라인 백과사전에 이어 5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이런 면에서 핀란드가 그간 코로나19 대유행을 비교적 잘 헤쳐 나온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핀란드 국민의 95%는 백신이 팬데믹 극복에 도움된다는 입장이다. 핀란드의 백신 접종률은 독일보다 3% 정도 높다. 게다가 탄탄한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코로나19로 인한 핀란드 국민의 누적 사망자 수는 1700명 남짓이다. 핀란드의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는 독일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물론 핀란드의 인구밀도가 낮은 점도 팬데믹 극복에 도움이 되고 있다.
심지어 핀란드의 극우정당 핀란드당(PS)도 독일의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PS는 적어도 독일의 AfD만큼 기후위기와 이에 따른 위험을 격렬하게 부정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핀란드는 지금 시대의 적대적 분위기에 조금이나마 내성을 더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핀란드 범죄율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핀란드 국민의 95%는 경찰이 임무에 충실하다고 여긴다. 핀란드 국민이 사회 전반에 상당한 신뢰를 가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부러움의 대상인가, 아니면 너무 순진한 것인가.
핀란드에서는 전문가들이 정치인들과 함께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시설이 들어설 부지를 선정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반면 독일에선 반드시 최고의 터를 선정해야 한다. 독일에 만약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시설이 들어선다면 100만 년은 안전하게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비해 핀란드 전문가들은 10만 년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아카이브(기록보관소)는 온칼로 시설에 관한 연구보고서와 서류 903점을 보유하고 있다. 해당 자료는 온칼로 입지의 지질학적 특징, 강의 지류, 처리시설의 유독물질 운송 등에 관한 것이다. 903점이면 충분한가? 더 많아야 하지 않을까? 더 많아야 한다면 얼마면 충분할까?
전문가들이 광산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현재에도 ‘앞길이 캄캄하다’는 광산업의 오랜 경구는 여전히 시의적절하다.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시설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시설의 영향도 절대 100%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정치권과 모든 국민이 방폐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원해야 가능하다.
핀란드 사회학자 타피오 리트마넨은 동료 학자들과 함께 방사선·원자력안전청과 방폐장 건설·운영 업체인 포시바(POSIVA)의 역할분담을 조사했다. 학자들은 방사선·원자력안전청과 포시바의 관계를 ‘상호적’이라고 설명하면서 두 기관이 “상호 학습과 개선”에 영향받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물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선 “두 기관 사이에 평소보다 긴장관계가 더 조성”되기도 한다.
이에 대중이 관여할 여지는 매우 적다. 대중은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논의에 굳이 관여하려는 마음도 없다. 리트마넨은 각 기관에 대한 통제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기관은 비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함에 따라 유기적 화합을 이뤄낸다고 한다. 리트마넨은 “언론에서 보도하는 공개 토론은 중립적·친기술적”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스웨덴 국민은 더 비판적이고 반기술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독일 국민은 스웨덴 국민의 성향에 더 가깝다고 한다.
현재 최종처분시설은 핀란드 언론의 관심사가 아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온칼로 시설과 핀란드, 핀란드의 원자력에너지에 관한 보도량이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탈핵을 앞둔 독일로서는 핀란드 상황이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조만간 에우라요키에 원전 3호기가 원래 계획보다 13년이나 늦게 상업운전에 들어갈 예정이다. 원전 건설 비용은 원래 계획인 30억유로에서 무려 10억유로나 더 들었다. 소재 수급 문제를 비롯해 운영업체 TVO와 프랑스 원전 설비업체 아레바(AREVA) 및 지멘스의 법적 다툼으로 건설 비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우라늄 128t을 보유한 원전 올킬루오토 3호기는 올킬루오토 1, 2호기 옆에 들어선다.

   
▲ 독일에 마지막 남은 원전 셋 중 하나인 란츠후트 원전 앞에서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시위하고 있다. REUTERS

독일, 2022년 말 모든 원전 중단
올킬루오토 3호기의 발전 용량은 1600㎿로 전세계 최대 규모다. 올킬루오토 3호기는 핀란드의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기후목표 달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독일에서도 2022년 원전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란츠후트, 엠슬란트 그리고 네카르베스트하임 지자체에 마지막 원전이 가동 중이다. 독일에 있던 원전 총 17기에서 마지막 남은 원전이다. 2022년 말이면 마지막 원전 3기가 모두 가동을 중단한다. 그러고 나면 독일은 드디어 탈핵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 Der Spiegel 2022년 제4호
In alle Ewigkeit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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