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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 대다수 긍정평가 경제 안정화 ‘갈 길 멀어’
[GLOBAL] 도입 20년 맞은 유럽단일통화 유로
[143호] 2022년 03월 01일 (화) 오드 마르탱 economyinsight@hani.co.kr

오드 마르탱 Aude Martin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터키 이스탄불의 환전소에 유로와 달러 등 다른 통화와 터키 리라의 환율이 표시돼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 국민 다수는 유로 도입을 긍정 평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REUTERS

2002년 1월1일. 프랑스 프랑, 독일 마르크, 이탈리아 리라, 스페인 페세타를 대신해 유로가 유럽 시민들 지갑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유럽집행위원회가 현재 유로존에 가입한 19개 나라의 국민에게 최근 시행한 연례 조사에서 ‘단일화폐 도입이 유로존에 좋은 일’이라고 평가한 응답자가 78%에 이른다. 유럽 단일화폐 역사는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걸까?
조사 결과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유로 도입으로 유럽연합(EU)이 긍정적으로 진전했다고 보는 이탈리아 응답자는 전체의 72%였다. 아일랜드(83%)와 슬로베니아(89%)에 견줘 그 비율이 낮다. 유로 도입이 유로존 전체가 아닌 ‘자국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응답자의 69%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여기서도 나라별 격차는 컸다. 긍정적으로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아일랜드에서 82%였지만 이탈리아에서는 60%에 그쳤다.
유로 도입 20년에 대한 종합평가가 필요하다. 유로는 단일화폐 지지론자가 주장한 대로 유로존 번영의 매개였을까. 아니면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2016년 낸 책에서 쓴 것처럼 유로존 가입국 사이의 격차를 벌려놓았을까.
한 나라에서만 쓰는 화폐를 여러 나라와 같이 쓸 수 있는 화폐로 대체하면 분명히 이점이 있다. 우선, 화폐를 공유하는 지역 안에서 가계와 기업 모두 쉽게 거래할 수 있다. 거시경제적 이점도 크다. 이웃 나라에 불이익이 생기는데도 자국 화폐의 가치를 낮춰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을 쓸 수 없다. 유로가 생긴 뒤로 화폐 전쟁도 끝났다. 그런데 유로존 가입국 간 진정한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직도 규제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분열 촉매제
프랑스 파리-낭테르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화폐 분야 전문가인 로랑스 시알롱은 “2008년 금융위기는 물론이고 유로존 가입국의 국가부채가 쌓이면서 유로에 내재해 있던 취약성, 즉 아킬레스건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유로 도입 때만 해도 화폐를 공유하면서 가입국의 부채와 재정적자에 상한을 두는 ‘안정과 성장에 관한 협약’(SGP) 같은 공동 재정준칙을 마련하면 유로존 경제가 자연히 통합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효과는 없었다.
통화를 공유하면서 통화정책이 자연히 통일됐다. 그런데 이것이 경제를 안정시키는 다른 강력한 도구를 생각하지 않는 구실이 됐다. 유로로 생길 수 있는 불균형을 해소할 다른 경제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아 유로존 북부와 남부의 격차가 외려 심해졌다. 스페인과 그리스는 유로존 가입 이후 실질금리를 급격하게 낮춰 민간(특히 부동산)과 공공 부문에서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8~2009년 부채 거품이 터지자 유럽연합은 두 나라에 위기 극복 방안으로 공공지출 삭감을 강제했다.
책 <유로존의 경제정책>을 공동집필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아멜리 바르비예고샤르 교수(경제학)는 말했다. “캐나다 경제학자 로버트 먼델이 세운 최적통화지역(Optimal Currency Area) 이론에 따르면 경제 충격이 대칭적으로 일어나는 지역(이를테면 에너지 가격 인상 영향권에 있는 모든 나라)은 통화를 통합하는 것이 최적일 수 있다. 먼델은 그 밖에 생산요소 이동이 자유로운 지역, 가격과 임금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지역이 최적통화지역이 될 조건이라고 말했다. 먼델 이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재정연방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은 부분적으로나마 유럽중앙은행(ECB)이 맡고 있다. 2012년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로 살리기에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코로나19 감염병이 유행하자 ECB는 역내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충격을 흡수했다. 가장 취약한 나라도 합리적 비용으로 돈을 빌려 방역정책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프랑스경기연구소(OFCE) 소속 경제학자 크리스토프 블로는 “ECB가 유로존을 안정화할 강력한 도구를 갖고 있다고 해도 만능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몇 달 전부터 지속되는 물가 인상 압박이 장기화하면 ECB도 ‘가격 안정화’라는 본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독립성을 지켜야 하는 ECB가 유로존 경제를 규제한다는 점 역시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문제가 된다.

   
▲ 2022년 2월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럽중앙은행(ECB)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정책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연방재정 만들기
여러 경제학자가 단일화폐를 보완하는 방안으로 공동 재정능력을 제안한다. 이른바 ‘유로존 예산’을 마련해 역내 경제를 안정화하는 데 쓰자는 것이다. 로랑스 시알롱 교수는 “근대 역사에서 연방재정 없이 살아남은 단일화폐는 없다”고 강조했다. 회원국이 현재의 체제를 버티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연방재정이 있으면 이런 상황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네바다주나 캘리포니아주가 경기가 안 좋다고 달러를 쓰지 않겠다고 하지는 않는다.”
연방재정 능력이 부재한 단일화폐 지역에선 ‘집적 현상’(Agglomeration) 또는 산업 양극화가 심해진다. 자본 이동이 자유롭고 산업 역량과 가성비가 뛰어난 나라에 필연적으로 산업시설이 몰린다. 브레드은행 총재이자 파리 고등상업학교(HEC) 교수(금융거시경제학·화폐정치학)인 올리비에 클랭은 “경쟁력이 높은 나라, 달리 말해 산업이 이미 발달하고 양질의 노동자원이 풍부한 나라에 산업활동이 쏠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로존에선 유럽 북부와 중부로 산업 집적 현상이 일어났다.
“미국에선 제조업이 발달한 주와 신기술 기업이 많이 들어선 서부 지역 주나 금융업체가 몰린 동부 지역 주의 소득수준이 비슷하다. 주들 사이의 성장률 차이에서 비롯한 소득 격차를 연방재정으로 줄인다”고 크리스토프 블로는 설명했다. 유로존에 미국과 비슷한 공동 재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뒤늦게 유로존에 합류한 동부 회원국에 재정을 지원하는 통합 정책 등이 있다. 문제는 그 규모가 유로존 역내 총생산의 1% 수준에 그쳐 별 영향력이 없다는 점이다.
코로나19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이 마련한 7500억유로(약 1024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은 회원국 사이의 연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것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연방재정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새 재정은 곧 새 재원을 의미한다. 세금을 신설하고 회원국 주권을 축소하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일부 나라와 정당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유럽집행위의 파올로 젠틸로니 경제위원장은 “코로나19 경기부양책이 효력이 있으면 그와 비슷한 공동 공채를 다른 상황에서도 쓸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를 영구적 방안으로 삼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게다가 그런 공동 공채가 생긴다고 해도 현재 유로존이 겪는 특수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지금 유로존에 필요한 것은 유로가 다양한 경제 충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제대로 된 재정 이전 체계다.
연방재정이라고 부를 만한 공동 재정이 없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유로존 회원국은 경제위기 때마다 자국 재정으로 각자도생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재정 역시 ‘안정과 성장에 관한 협약’에 구속돼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이 재정준칙은 회원국의 국가부채와 재정적자가 각각 국내총생산의 60%, 3%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재정준칙 개정하기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각국이 의료시스템과 국내 경제를 지킬 수 있게 재정준칙 적용을 일시 중단했다가 2023년 다시 적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2021년 1분기 유로존 부채비율이 역내 총생산의 100%를 넘어버려 재정준칙의 효력이 끝났음이 증명됐다. 유럽연합은 몇 달 안에 이 준칙을 손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국가부채와 재정적자의 상한을 높이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회원국이 저마다 다른 노선을 취하게 이대로 둬야 할까? 지금보다 많은 투자가 필요한 에너지전환 계획에 맞게 재정준칙을 바꿀 수 있을까?
연방재정 마련, 재정준칙 개정, 금융 통합의 방향 설정 등 유로가 위기를 극복하는 힘을 가지려면 할 일이 많다. 프랑스 앙제대학의 다비드 카일라 교수는 “유로 때문에 회원국 간 격차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진짜 문제는 산업 양극화다. 이를 해결하려면 자유로운 이동 원칙을 포기하는 산업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단일시장은 1986년 이 원칙 위에 세워졌다.”
벨기에 브뤼겔연구소와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속 경제학자인 니콜라 베롱도 말했다. “유로는 특수한 화폐다. 그 한계를 보완하는 데 참고할 만한 사례가 전무하다. 유로는 탄생 자체가 실험이었다.” 발행된 지 20년 된 유로는 지금도 미완이다. 제구실을 잘할 수 있게 회원국이 더 결집해야 한다. 그러려면 유럽연합을 세운 바탕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2년 2월호(제420호)
L’euro a 20 ans, mais toujours pas l’âge de raison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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