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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로 멍든 수단에 희망 움트길
[세계는 지금] 수단
[143호] 2022년 03월 01일 (화) 김재우 pizzzz@kotra.or.kr

김재우 KOTRA 하르툼무역관장

   
▲ 2022년 1월 수단 수도 하르툼에서 수단 국기를 흔들며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REUTERS

수단은 아프리카와 중동, 이집트의 색채까지 모두 담고 있는 나라다. 한때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를 차지했다. 이집트 아래에 위치한 이 나라는 기원전 8세기 무렵에는 고대 쿠시 왕국의 카시타 왕이 파라오가 되어 이집트를 다스리기도 했다. 당시 쿠시 왕가는 철기를 사용할 줄 아는 세계 최초의 문명에 속하는 집단이었다. 지금도 나일강으로 연결된 이집트의 아부 심벨 지역과 수단의 와디할파 사람들은 같은 인종이자 먼 친척이기 때문에 여권이 없어도 통행에 불편함 없이 오가며 살아간다.

4천만 다인종의 이슬람 나라
수단의 남부 지역은 지금은 분리독립된 남수단 사람들과 인종적으로 섞인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 고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 마 톤즈>로 알려진 이 일대는 일반 수단인들과는 인종이나 피부색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수단인들의 피부색은 이집트와 가까운 곳에서는 옅은 갈색을 띠다가 남부로 내려갈수록 더욱 짙어지며 키도 점차 커지는 경향이 있다. 영토가 넓다보니 수단에는 실로 다양한 인종이 각기의 언어를 사용하며 4천만 명을 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인종과 언어가 남아 있지만, 수단 사람들의 종교는 극히 일부의 콥트교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슬람이라는 하나의 뿌리를 갖고 있다. 수단은 아랍어를 공용어로 쓰기 때문에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처럼 아랍 국가들과의 교류가 빈번하다. 물자가 부족해 대부분은 수입과 원조에 의존하지만, 수단은 아프리카에 위치하면서 아랍과 아프리카의 색채를 모두 담고 있는 특이한 나라임이 틀림없다.
화려했던 고대 역사와 달리 수단의 현대사는 그리 녹록지 못한 편이다. 1956년 1월1일,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처럼 수단은 신생국가로 탄생했다. 현대 정부가 들어서기 전 19세기 말까지 영국과 프랑스가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아프리카 전역을 식민지로 삼을 때 바로 수단 파쇼다에서 일대의 사건이 일어난다. 이 지역이 동쪽 아프리카를 종단하던 영국과 서아프리카에서 횡으로 진격하던 프랑스가 결국 부딪힌 역사적인 곳이다. 1898년 영국과 프랑스의 육군이 파쇼다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는데, 영국의 윈스턴 처칠도 참전했던 전투다. 수단인들은 이 전투에서 영국군에 무참히 패하고 만다. 그 결과 수단은 영국 식민지로 70여 년간 종속됐다.
수단은 독립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려 16번의 크고 작은 쿠데타가 일어났다. 2021년 10월 군부 쿠데타가 발발한 것이 가장 최근 일이다. 지금도 반정부 시위가 거의 매일 일어나며 경제활동이 어려워져 생업에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이런 시위 상황에서도 수단에는 거의 매시간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진다. 철저한 이슬람문화가 삶과 비즈니스 곳곳에 들어가 있다. 영화 <모가디슈>에서 총을 내려놓고 기도를 올리는 장면은 다소 과장됐지만, 기도 시간 전에 시위가 끝나는 것을 보면 수단인들의 신앙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필자가 바이어와 면담하기 위해 회사를 방문하다보면 바이어가 갑자기 내게 양해를 구하고 나가는 일이 종종 있다. 10분쯤 뒤 다시 돌아오면 대부분은 하루에 드리는 여섯 번의 기도 중 한 번을 위해서임을 알 수 있다.
시위를 진압하는 군인과 경찰은 물론 시위를 주도하는 세력 모두 이슬람이라는 하나의 종교로 묶여 있다. 그래서인지 시위 양상이 그렇게 격렬하지 않은 편이라 나처럼 이방인의 눈에는 다행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서구 열강들이 별생각 없이 그어놓은 영토로 인해 수단은 10여 년 전 남수단과 분리독립됐고, 그 결과 석유 자원의 4분의 3을 잃었다. 어쩌면 오일 이코노미를 누릴 수 있었던 기회가 날아간 셈이다.
국내총생산(GDP)은 곤두박질쳤고, 그간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에 따른 숱한 제재를 감당하며 최빈국 수준으로 떨어졌다. 28년간 계속된 테러지원국이라는 오명은 과도정부의 노력으로 2020년 말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됐다. 수단은 다시 일어나 더 나은 변화를 꿈꿔왔으나 다시금 군부 쿠데타 이후 민간 시위대와의 충돌이 반복되고 있다.
쿠데타 직전 2년 가까이 유지되던 민군 과도정부 체제에서 필자는 가족과 함께 수단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고대했다. 30여 년간 군부독재에 저항한 시민혁명 끝에 2019년 8월 드디어 과도정부를 만들어낸 수단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수단의 봄이 오기를 기대했지만,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너무 체질적으로 허약했는지 국민의 삶은 별로 나아진 게 없었다.
사람들이 원한 변화는 그리 큰 게 아니었다. 매일 전력난으로 꺼지는 신호등 때문에 엉킨 차량에 교통경관이 수신호로 교차로를 정리해줬으면 했다. 여전히 수년째 방치된 도로 맨홀에 심심찮게 바퀴가 빠져 옴짝달싹 못하는 차량이 있다면 간단한 도로 정비는 국가의 책무다. 필자도 바이어를 만나러 가다가 이리저리 뒤엉켜 꼼짝하지 않는 차 안에 갇혀 교차로에서 시간을 다 허비해 낭패를 보기도 했다. 그 뒤 직원들은 근처에 사는 수단인 지인들에게 연락해 어느 교차로에서 차량이 막히는지를 점검하고서야 이동하기도 했다.
심지어 수단은 컨테이너선이 유일하게 하역 가능한 포트수단 항구마저 그 지역의 토착 세력에 의해 수시로 막히거나 풀리기도 했다. 중앙정부의 공권력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수도 하르툼으로 들어오는 물자가 모두 막혀 물가 급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이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처럼 일일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여건에서도 2021년 6월 주수단 한국대사관이 주도해 하르툼에서 한-수단 비즈니스 협력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은 외교부의 한-수단 고위급 정책협의회 부대행사로 코로나19 대유행 탓에 근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한국과 수단의 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전히 코로나19로 항공 경로가 막혀 있는 우리 기업인들은 온라인으로 포럼에 참여해 수단 진출의 방향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무역관에서는 수단 투자법을 한국어로 번역해 국내 기업들에 제공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 대우그룹이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면서 한때는 우리나라가 수단의 최대 투자국이었다. 덕분에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의 자동차, 제조 분야, 가전, 의약품 등은 수단에서 가장 좋은 브랜드 평판을 지니고 있다. 신풍제약과 포스코대우가 수단 쪽과 합작해 1982년 설립한 제약사인 지엠시(GMC)는 구충제와 아프리카 풍토병 치료제 등을 수단 전역에 보급하고 있다. 저렴하고 품질이 뛰어난 약 덕분에 수단인들의 삶의 질도 계속 향상됐다.
2021년 9월에는 수단의 투자·국제협력부 장관과 산업부 장관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수단의 투자촉진법 제정 사항 등을 설명하고, 테러지원국에서 벗어난 수단의 가능성을 홍보했다. 우리 외교부는 두 장관이 우리 정부 관계 기관을 한 곳이라도 더 방문할 수 있도록 주선했고, 한-아프리카 재단은 유튜브로 생중계하며 우리나라와 수단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수단에서 사업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은 모든 일을 빠르면서도 빈틈없이 처리하는, 그야말로 수단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입을 모아 말하곤 한다. 어떻게 이런 ‘멀티태스킹’ 능력을 갖췄는지 궁금해한다.
본래 멀티태스킹은 컴퓨터 연산을 병렬로 전개하는 과정에서 생긴 용어다. 이 말이 경영학에 접목해 대형 프로젝트를 할 때 동시다발로 작은 프로젝트가 완성돼 시간과 비용을 단축하는 보편적인 말이 됐다. 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2021년 <실리콘밸리의 시간>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때 멀티태스킹을 확장해 처음으로 ‘멀티 스위칭’을 언급했는데, 한국인들의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로 묘사했다.
지금 수단에 가장 필요한 부분은 멀티 스위칭 역량을 키우는 일이다. 수단처럼 급변하는 정세에 놓인 비즈니스맨들은 기회를 계속 찾아야 하고, 기한을 정해놓고 일을 마감하고, 바로 또 다른 기회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점을 조언했다. 수단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업무 스타일이 다소 스트레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립국을 이룬 지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한국과 수단의 가장 큰 경제 성과는 이처럼 성실함 속에서 절대적인 시간을 투입해 위기를 기회로 계속 전환하는 습관에서 이룩됐다고 믿는다. 이 시간이 쌓여갈 때 비로소 성장의 희망이 보인다.
한 나라에 거주하다보면 흔히들 그 나라의 정치 상황이나 불안한 경제시스템에 실망하면서도 점차 애정이 쌓인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나라가 될 수 있을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계속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한국도 한때 1인당 GDP가 1천달러 채 안 되는 시절이 있었다. 한국은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며 공여국으로 전환한 첫 나라가 됐다. 남들은 수단을 떠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유엔 원조 담당관뿐만 아니라 2022년 초에는 태권도 보급을 위해 사범 한 분이 현지에 도착했다.

   
▲ 수단은 아프리카와 중동, 이집트의 색채까지 모두 담고 있는 나라다. 수단의 옴두르만애서 소를 팔러 온 상인들이 잠시 쉬고 있다. REUTERS

수단인, 한국무역관 근무 자랑
다행히 우리 무역관 수단인 직원들은 유럽처럼 처음부터 선진국이었던 나라들보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한국 기관의 직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 필자의 역할일 것이다. 또한 앞으로 수단에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현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공관 직원과 주재원들이 2022년에도 더 멋진 수단을 건설하는 데 버팀목이 되기를 기대한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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