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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이 누구나 기본서비스를 주자!
[이창곤의 웰페어노믹스] 녹색복지국가를 위한 전략 ④ 보편적 기본서비스(UBS)
[143호] 2022년 03월 01일 (화) 이창곤 goni@hani.co.kr
   
▲ 오늘날 사람이 살아가려면 물과 음식, 주거에 더해 교통, 정보, 돌봄 등 사회서비스가 기본적 필수 요건이다. 2022년 2월8일 마다가스카르의 한 여성이 태풍으로 무너진 집 옆에서 망연자실한 채 서 있다. REUTERS

복지국가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이다”라는 기본 가치에 뿌리를 둔다. 인간의 존엄성, 곧 인간다운 생활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가치다. 모름지기 복지국가라면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 기본생활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복지국가의 역사는 국민 기본생활수준 보장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누구나 기본적 필요 충족해야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한다는 가치의 실현은 현실에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식비, 임대료, 공과금 등을 현금으로 내야 하는 게 우리 삶이다. 하여 입을 옷, 먹을 음식, 잠자고 쉴 집, 이른바 의식주가 보장돼야 한다. 이것으로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가? 누구도 그렇다고 답하지 않을 것이다. 아플 때는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하고 누구든 배움의 기회, 즉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몸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장애인이나 노인은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 즉 사람살이의 기본적 필요는 비단 의식주에 그치지 않는다. 시대와 국가에 따라 사람이 직면하는 환경이 바뀌기 때문에 기본적 필요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20세기에는 인터넷 접속이 기본적 필요가 아니었지만, 21세기에는 누구에게나 삶의 필수 목록이 된 것처럼. 이런 필요는 욕망과는 다르다. 욕망은 끝이 없다. 충족하지 못하면 괴롭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 필요는 얻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없다. 기본적 필요는 서로 대체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물이나 집을 교육이나 의료가 대체할 수 없다.
기실 현대 복지국가의 시민들은 비록 충분하지 않더라도 국가로부터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이미 받고 있다. 복지국가가 구축한 사회보장제도 덕분이다. 복지국가는 현금이나 현물(서비스) 급여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사회보장 방식으로 시민들의 필요를 보장한다. 문제는 급여가 충분하거나 보편적이지 않아서 많은 이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기본소득(BI) 또는 보편적 기본소득(UBI)이 주목받았다. 기본소득은 누구에게나 아무런 조건 없이 일정한 돈을 정기적으로 지급해 이런 필요를 현금소득으로 보장해주자는 구상이다. 이 구상의 가장 큰 어려움은 돈이 무척 많이 든다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30개국 대상으로 비슷한 기준으로 소득보장제도의 비용을 계산해보니 대부분 나라에서 국내총생산(GDP)의 20~30%가 든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도 어떤 형태의 기본소득이라도 시행되면 “가진 것이 거의 없거나 또 하나도 없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적어도 조금은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금 지급에 따른 소득 보장만으로 인간의 존엄성이란 필요를 충족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사람이 살아가려면 물·음식·집은 물론이고 안전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일, 교육, 의료서비스, 아동의 안전, 의미 있는 일차적 관계, 신체적·경제적 보장, 그리고 안전한 환경 등이 필요하다고 열거한다. 이런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한 개인의 소득이나 능력만으로 충족하기 어려운 필수 요건이 있다는 데는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세금으로 이런 유의 일부 서비스를 공동으로 충족해왔다. 특히 의료나 교육, 안전한 환경 등 사회서비스가 그럴 것이다. 이들 서비스는 공동으로 마련하면 훨씬 돈도 적게 들고 효율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이나 스웨덴 등 여러 나라가 시행하는 무상의료시스템인 국민보건서비스(NHS)나 우리의 국민건강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더 넓혀 누구나 무료로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제시된 새로운 사회정책 구상이 ‘보편적 기본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s)이다. 이 개념은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필요가 발생할 때 무료로 이용하게 하자는 것으로 ‘서비스’와 ‘기본’과 ‘보편적’이란 세 단어의 조합이다.
아직은 낯선 이 아이디어는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대학(UCL) 소속 글로벌번영연구소(IGP·Institute for Global Prosperity)의 앤드루 퍼시가 2017년 ‘미래를 위한 사회적 번영: 보편적 기본서비스 제안’이란 보고서를 통해 처음 제기했다. 이어 영국 신경제재단 수석연구원인 애나 쿠트 등이 이를 합창하면서 서서히 논의가 확산 중이다.
이들에 따르면, 여기서 서비스(Services)는 “공익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집단으로 창출되는 활동들”을 말한다. 의료, 교육, 교통, 돌봄 서비스 등이다. 기본(Basic)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필수적이고 최소라기보다 충분한 서비스”를 뜻하며, 보편적(Universal)이란 “모든 사람이 지급능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충분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걸 가리킨다. 이들은 보편적 기본서비스가 “개인 각자가 부담해야 하는 지출을 대체하는 가상소득”으로 일종의 “사회임금”이라고 강조한다.

대표적 UBS는 주거, 교통, 정보, 돌봄
IGP의 보고서에는 보편적 기본서비스 영역으로 보건의료, 교육, 민주주의와 사법서비스에 주거(Shelter), 음식, 교통, 정보를 더해 제시했다. IGP 보고서는 나아가 공유된 욕구와 집합적 책임을 원칙으로 하되 물질적 서비스보다는 모든 시민에게 보장돼야 할 활동에 더 초점을 맞춰 아동돌봄과 노인, 장애인 등 성인돌봄을 포함했다. 이 개념을 국내에 소개한 김보영 영남대 교수는 “대부분 발달한 민주주의 국가가 그렇듯 민주주의와 사법체계는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IGP 보고서는) 주거, 음식, 교통, 정보를 새롭게 제안했던 셈”이라고 평했다. (계속)

* 복지를 다년간 살피고 책도 펴냈다. 그러다 ‘복지와 경제의 호혜적 융합’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늦깎이 경제 공부에 매달리는 언론인이자 사회과학도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개혁, 그 수단으로서 좋은 정책과 복지정치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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