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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유리벽 꽉 막힌 한국여성
[Cover Story]여성 쿼터제 확산
[11호] 2011년 03월 01일 (화) 이주희 economyinsight@hani.co.kr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기업에서 여성의 승진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하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모든 국가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전체 취업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에 비해 전체 관리직 중 여성의 비율은 현저히 낮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문제가 다른 선진국가보다 훨씬 더 심한 편이다. <그림1>의 ‘국가별 취업자 중 여성 관리직 비율’은 2001년의 국제노동기구(ILO) 자료에 기초하고 있고, 한국은 2010년의 통계청 취업통계와 고용노동부의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Affirmative Action) 적용기업의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여성 관리직 비율의 평균을 구해 작성했다. 5~10년의 시차에도 한국은 네덜란드나 독일, 싱가포르와 같이 여성 취업률이 낮은 보수적 국가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여성 관리직 비율을 보여준다. 물론 고위 관리직으로 갈수록 여성을 찾기가 더 힘들어지며, 여성 최고경영자(CEO)는 영세 중소기업에서 간혹 발견될 뿐이다.
전체 여성 취업자 중에 여성 관리직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미미한 수준이다. 고용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 남성 취업자 중 관리직 비율이 3.44%였는 데 비해, 여성은 0.33%로 남성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생산성 차별적 인식이 악순환 초래
다른 분야에서는 여성이 약진하는데도, 이처럼 관리직 비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이 기업조직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직무에 수평적으로 분리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유리벽’(Glass Wall)은 이런 유리천장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노력에서 탄생한 용어다. 즉, 여성의 일자리가 암묵적으로 비핵심 직무에 국한된다면 여성이 남성보다 승진 가능성이 뒤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리벽 역시 유리천장에 못지않게 견고하다. 여성은 서비스업 중에서도 정보기술(IT) 등 핵심 업종보다는 음식·숙박업 등 하위 서비스직에 몰려 있다. 심지어 같은 금융 업종이라 하더라도 조직 내에서 승진이 허락되지 않은 비정규직이나 그에 준하는 고용형태에 집주되기 쉽다. 2007년 비정규 보호법의 도입을 앞두고 성별 분리 채용과 직무 격리 관행이 깊게 자리한 은행권에서 실시된 분리직군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권 직군제의 큰 특징은 정상적인 승진 루트에서 벗어나 완전한 정규직 전환 대신 반정규직, 혹은 준정규직화된 대상의 절대다수가 여성 노동자라는 점이다. 이처럼 주변적인 여성의 일과 핵심적인 남성의 일로 은행 업무를 나누는 전통적인 직무 분리로 인해 은행권의 여성 관리직 비중은 미미하며, 대신 하위 직무에서는 과다 대표되고 있다.
유리천장이 유리벽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의문은 계속 남는다. 그렇다면 성별로 서로 다른 일자리, 특히 여성에게는 낮은 보상과 승진 가능성이 없는 나쁜 일자리가 주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해 남성보다 여성의 인적자원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여성 스스로 일과 가족을 양립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따라서 승진 가능성이 낮은 직무를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합당한 남성과 여성의 생산성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이미 남성과 동등한 교육수준을 획득한 현 상황에서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다. 여성의 생산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다음과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낳을 수 있다. 여성이 가사와 양육의 부담 때문에 스스로 승진을 기피하는 ‘선택’을 하든, 아니면 그런 선택을 강요받든 여성에게 더 과중한 돌봄노동의 부담이 생애 특정 시기에 몇몇 여성의 생산성을 낮출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기업의 인사담당자나 CEO가 이를 전체 여성의 생산성이 낮은 것으로 일반적으로 확대해석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필자가 2006년 실시한 조사에서 기업체의 인사담당자들은 여성의 업무 태도나 몰입도를 남성보다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부정적 평가는 다시 여성의 실제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본인의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기업조직의 이등 시민’으로 평가돼 진급 가능성이 차단된 상태에서 누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겠는가.
만일 조직 차원에서 작동하는 인사 관행이 성 차별적이라면, 즉 여성에 대한 잘못된 스테레오타입으로 인해 여성 전체의 생산성과 업무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그리고 이런 결정이 기업의 일상적 업무와 관행에 완벽히 내재화돼 해당 조직의 관료적 관성에 의해 수정이 어렵게 된다면 이는 제도적 개입이 필요한 주요한 사회문제이다. 기업 내 관행과 문화가, 여성이 남성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조성하지 않는다면 규정상의 평등은 무의미하다.

   
2005년 9월 삼성그룹 여직원들이 점심시간에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을 나서고 있다.

 
기업조직의 ‘이등 시민’ 여성
시장경쟁 논리는 외견상 중립적인 원칙의 강조를 통해 여성에게 공정하게 게임에서 뛸 기회를 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기존에 행한 불평등한 대우와 억압에 의해 이미 뒤처진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란 이미 존재하는 격차를 확대재생산하는 기회에 불과하다.
한국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전후로 급격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원칙의 확대와 기업의 구조조정을 경험했다. 경제 운용에서의 시장원칙 강화, 그리고 연공서열과 장기고용의 관행을 깨뜨린 기업 구조조정은 예상보다 빨리 미국식 신자유주의 원칙을 정착시켰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 경제가 남녀평등과 여성의 경제적 독립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무엇보다 외환위기 직후에 진행된 구조조정은 성중립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은 남성의 시장노동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치 있는 노동으로 평가하는 반면, 여성의 노동은 자아실현을 위한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통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는 신자유주의가 신봉하는 능력과 성과주의 원칙에도 어긋나지만, 이미 성차별적 관행이 작동하던 노동시장에서 주요한 이슈로 부각되지 못했다. 1998년 증가한 비경제활동인구 수는 약 72만 명이었는데, 그중 여성 비중은 무려 81%였다. 덕분에 약한 증가세를 보이던 여성의 고용률은 다시 정체됐고, 2008년 말 또 다른 경제위기에 부딪혀 더 심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통계청 자료에 근거한 <그림2>는 1997년 말, 그리고 2008년 말 경제위기 바로 다음해에 해당하는 ‘1998년과 2009년 전년 동기 대비 남녀 취업자 수의 증감’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잘 보여준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남녀 모두 급격한 취업자 수 감소를 경험한 1998년과는 달리, 2008년에는 일자리 상실의 피해가 여성에게 집중됐다. 여성의 총취업자 수가 남성보다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차이는 더욱 크게 부각된다. 2008년 하반기 남성 취업률 증가율보다 약간 높은 수준을 기록한 여성 취업률 증가율은 2008년 경제위기가 고용에 영향을 미치면서 급격히 감소했다. 감소한 여성 취업자의 총수가 1998년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경제위기의 성격과 고용에의 파급효과가 동일하지 않은 데에도 기인하겠으나, 이미 첫 번째 외환위기로 기업이 상시 구조조정 체제를 갖추고 직간접 비정규직을 늘려 이들을 위기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지대로 활용했음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2005년 12월 남녀고용평등법의 개정에 따라 2006년 3월부터 1천 명 이상 고용 기업을 대상으로 시작해 2007년부터는 500명 이상 고용 기업까지 포괄해 실시되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는 특히 우리나라의 기업조직에서 직무 격리 현상이나 승진 차별을 시정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다. 그러나 현재 실시 중인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는 주로 여성의 고용 비율을 제고하는 데 초점이 맞춰 있을 뿐, 이들의 고용 지위를 개선하는 데는 상당한 취약점이 있다. 현재의 고용평등보고서는 여성 고용 규모 제출시 ‘비정규직’ 규모를 따로 구분해 보고하고 있지 않은데, 이는 여성노동의 유연화와 질 저하를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관리직에 대한 기업 나름의 자의적 해석으로 인해 직무 명칭과는 달리 실질적 권한이 적은 여성 집중 직무의 일부가 관리직으로 분류되는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적극적 조치는 기업의 자발적 규제에 의존해 유리천장과 유리벽의 완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여성 차별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려면 강제력이 보강된 적극적 조치와 여성의 이중 부담을 덜 수 있는 돌봄노동의 사회화 같은 정책이 동시에 필요하다. 이런 정책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전반적인 인식 변화 역시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인식 변화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여성 친화적 정책이 기업에 여성 고용 비용을 높여 고용률 제고와 평등 실현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남성 생애주기의 여성화 필요
에스핑-앤더슨(Esping-Andersen)이 지적한 바와 같이, 여성은 남성과 거의 동등한 교육상의 성취를 이룬 뒤 대부분의 성인기를 일에 투자하려 한다는 점에서 생애주기를 남성화해왔다. 그렇다면 완전한 남녀평등을 위해 남성 생애주기의 여성화 역시 필요하게 된다. 즉, 가사 혹은 돌봄노동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의 투입이 남녀 간에 평등하게 분배돼야 한다. 아무리 육아휴직의 기간과 수혜율을 높인다 하더라도 육아휴직을 여성만 사용해서는 결코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적 관행을 허물기 어렵다.
사용자의 여성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돌봄노동에의 남녀 간 동등한 참여는 돌봄노동 가치의 재평가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경제활동의 우선순위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역시 전제로 한다. 물론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자리 확보에만 중점을 둔 단시간 근로 확대, 저임금 돌봄노동 일자리에의 여성 편중, 현저히 깊은 남녀 간 임금 격차에 대한 무관심, 형식적인 적극적 고용 조치, 여성의 낮은 단체교섭 포괄도, 그리고 일부 여성에게만 한정된 모성보호 정책 등은 여성 고용의 악화를 가져오는 유리천장과 유리벽을 깰 수 있는 근본적인, 그러면서도 다양한 정책 방향과 의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j.lee@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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