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낙오생 위한 유연교육 ‘요포’
[핀란드 복지국가 산책]
[142호] 2022년 02월 01일 (화) 신소영 soyoung.fin@gmail.com

신소영 자유기고가

   
▲ 란드의 한 청소년이 요포 프로그램에 참여해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요포 누리집

열다섯 살의 토피는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는 학교에 가서 지난번에 끝내지 못한 과학 공부를 마무리해야 한다. 오후에는 자신이 일하는 햄버거가게에서 청소와 재료 손질을 끝낸 뒤 다시 학교로 돌아와 기술 수업에 참여한다. 요즘 열을 올리는 오토바이 수리를 하기 위해서다. 온종일 학교, 일터, 학교를 왔다 갔다 해도 토피는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없다고 했다. 바로 핀란드에서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직장 경험도 할 수 있는 요포(JOPO)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부터다.

일터와 학교 오가는 하루
“요포 프로그램에 오기 전에 저는 정말 우울했어요. 누구에게나 심술궂은 못된 사람이었죠.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새 삶을 시작한 것 같아요. 긍정적인 사람이 됐고 친구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어요. 사람들도 이제는 저를 좋아해요.”
토피가 참여하는 요포 프로그램은 핀란드에서 2006년 시작한 기초교육 프로그램이다.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7~9학년 학생(중1~중3)이 대상이다. 요포 프로그램에선 학생들이 학년에 구애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과목, 진도, 공부 방식 등을 정해서 자신만의 맞춤 학습 계획을 세우면 선생님이 이를 도와준다. 7학년 때 다른 과목은 다 이수했지만 수학은 뒤처진다고 생각하면 8학년에 올라가서도 7학년 수학 공부를 마치고 8학년 과정을 시작하는 식이다.
요포 클래스는 한 반에 최대 20명으로 운영하고 교사 2명, 청소년 복지사 1명이 학생들을 담당한다. 토피가 학기 중에 햄버거가게에서 일하듯, 학생들의 직장체험, 현장학습, 캠핑 등 현장에서의 배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국적으로 해마다 1800여 명이 요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학생들의 신청과 학교 심사로 대상자가 정해진다. 주로 학교에서 동기부여가 적거나 기초교육을 중단할 위험이 큰 학생이 대상이다.
토피의 담임교사인 카탸 타이미아호는 “우리 학생들은 전통적인 학습 방식에 의욕이 적다. 그리고 일반 학교 시스템에서는 국외자거나 외로움을 느끼는 학생들이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아이들이 활동적이고 실용적이어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 직접 무언가를 하는 방식을 즐기기 때문에 직업체험이나 현장학습 등 직접 행동하는 방법으로 더 잘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요포 학생들은 여유롭고 작은 그룹에서 배우는 게 필요하다. 학생들 간, 그리고 교사와 청소년 상담사와 더 논의할 수 있고 학업에서도 개인적인 지원과 지도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포 프로그램의 가장 큰 가치는 ‘시스템의 유연함’이다. 필자가 참관해서 살펴본 요포 수업의 진행 방식은 독특했다. 교사가 칠판 앞에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 아니었다. 한 교실 안에 있는 학생들이 모두 다른 책을 펼쳐놓고 본인이 하고 싶은 과목의 공부를 하고 있었다. 몇몇 학생은 모여서 함께 공부했고, 어떤 학생은 선생님과 일대일 맞춤 수업을 했다. 수업 시간마다 특별히 정해진 과목도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각자 흩어져 점심을 해결하고, 자신이 선택한 수업에 맞춰 인근 학교의 가사 실습이나 기술 수업에 참여했다. 토피처럼 자신의 일터로 가서 직업체험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처럼 요포 프로그램에 자율성을 부여한 것은 학생들이 의무교육을 중단하는 비율을 줄이기 위함이다. 핀란드 의무교육인 초중학교 교육은 아이들이 직업인의 삶으로 나아가는 한 단계인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이 의무교육을 끝내지 않는 학생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토피 역시 요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에는 학교를 그만둘 생각을 했다.
“학교에 가는 게 너무 싫었어요. 계속되는 시험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때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다른 학생들을 따라갈 수 없어서 수학이나 다른 과목에서 늘 꼴등이었어요. 중학교만 마치면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그냥 일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예전보다 공부하는 게 훨씬 쉽고 제가 원하는 속도로 공부할 수 있어요. 모든 걸 제가 결정하거든요.”

   
▲ 요포 프로그램에 참석한 학생이 요리 실습을 하고 있다. 러닝스쿠프 누리집

청소년 복지사의 도움 병행
요포는 이상적인 학교 모습처럼 보이지만 운영에 어려운 점도 적잖다. 요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 대부분이 학교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 가정에서 시련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은 요포 클래스에 1~2년밖에 머물지 못하는데 함께 해나가야 할 일이 많아 어떤 때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이뤄내기 어렵다.
그래서 청소년 복지사가 함께하고 있다. 청소년 복지사는 학생들이 직업체험 현장을 구할 때나 사적인 일들에도 도움을 준다. 토피가 일하는 햄버거가게도 청소년 복지사가 지역 상인들과 협의해 구해준 곳이다. 토피는 학기 중 직업체험 기간에는 무급으로 일하지만, 성실함을 인정받아 여름방학 때는 정식으로 아르바이트할 예정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집에 앉아 비디오게임이나 하는 게 제 미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더 멋진 미래를 생각하게 됐어요. 좋은 직업을 갖고 돈을 벌고 좋은 차도 가지는 꿈 말이에요.”

* 한국에서 법조 전문지 기자로 일하던 중 핀란드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 낯선 땅에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만 6년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이력을 살려 간간이 핀란드의 정치·교육·문화 뉴스와 한인 동포 소식을 고국에 전하는 YTN 핀란드 해외리포터로 활동했다. 더불어 국내의 한 장애인권단체가 발간하는 월간지에 핀란드 장애인 관련 복지제도를 소개했다. 최근 고국에 돌아와 핀란드에서 겪은 출산·육아 경험을 담은 책을 준비 중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2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