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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대 1’ 중국 가전시장의 대격전
[Emerging]
[11호] 2011년 03월 01일 (화) 김민석 economyinsight@hani.co.kr

김민석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의 내수시장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가전시장은 대표적인 내수시장이다.(<그림1> 참조). 중국의 가전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글로벌 가전기업들과 중국 로컬 기업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화려한 실적과 높은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글로벌 가전기업들의 중국 내수시장 성적표는 초라하다. 중국 시장의 경쟁 환경은 얼마나 다르기에 글로벌 가전기업이 고전하고 있을까?

전국망 유통업체는 기회이자 위협
중국 가전시장은 경쟁업체가 170개에 이를 정도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시장이다. 중국 가전시장에는 LG·삼성·소니·파나소닉·월풀·일렉트로룩스 같은 글로벌 가전기업이 많이 진입해 있다. 그리고 한국 소비자에게 귀 익은 이름이지만 가전 브랜드 이미지로는 다소 생소한 지멘스, 보슈, 도시바, 산요, 히타치 등이 있다.
중국 로컬 기업은 중국 시장에 진입한 글로벌 가전기업보다 훨씬 많다. 이미 글로벌 가전기업이 된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은 한국 소비자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TV의 ‘하이신’과 ‘창웨이’, 에어컨의 ‘거리’와 ‘메이디’, 세탁기와 냉장고의 ‘하이얼’과 ‘샤오톈어’ 등은 각 부문에서 글로벌 가전기업을 능가하는 실적을 내고 있다. 이외에 언급하지 않은 글로벌 가전기업과 중국 로컬 기업을 합치면 무려 170개 기업이 중국 가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런 경쟁 구도는 어떤 글로벌 가전기업도 중국 이외의 시장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글로벌 가전기업이 진출한 나라도 없고, 로컬 기업이 백수십 개 되는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나라다. 글로벌 가전기업이 넓은 땅에 자체 유통망을 설치하기에는 투자 리스크가 크다. 이런 가전기업에 투자 리스크를 감소시킬 존재가 있다. ‘궈메이’와 ‘쑤닝’이라는 가전 전문 유통업체이다. 미국의 ‘베스트바이’(Best Buy)나 한국의 ‘하이마트’ ‘전자랜드’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궈메이는 331개 도시에 1162개 매장을, 쑤닝은 300개 도시에 약 1천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두 가전 전문 유통업체는 글로벌 가전기업에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왜 그럴까? 중국 시장에 새로 진입하려는 기업에는 아주 반가운 존재다. 전국 체인망을 가진 유통업체가 있기에, 글로벌 가전기업은 유통 투자 부담이 적어서 좋다. 중국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려는 가전기업이 기존 가전기업보다 더 나은 수익률을 이들에게 보장해준다면,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신규 진입 기업은 일단 진입 장벽이 낮아서 비용 대비 판매 효과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 반면 기존 기업은 자신의 매장 앞에 새로이 들어온 또 다른 경쟁자와 경쟁에 시달려야 한다. 신규 진입 기업도 초기에 이들과 계약했던 마진율이 부메랑이 되어 역효과를 맞을 확률이 크지만 말이다. 경쟁률 ‘170 대 1’뿐 아니라 2대 가전전문 유통업체가 존재해서 기존 기업과 신규 진입 기업 간에 마진율 경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럼, 중국 소비자의 특성은 어떨까?
중국 소비자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하는 글로벌 가전기업의 다양한 제품을 접할 수 있다. 원가 경쟁력이 탁월한 중국 로컬 기업의 괜찮은 제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러 군데 가서 비교해볼 필요 없이 궈메이나 쑤닝 한 곳만 가면 다 해결된다. 중국 도시의 주요 가전제품 보급률은 100%를 상회하거나 육박한다(<그림2> 참조). 컬러TV와 에어컨은 가구당 1대 이상 보유하고 있다. 세탁기와 냉장고는 1가구당 거의 1대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폭발적인 신규 수요보다는 기존 것을 새것으로 바꾸려는 대체 수요가 크다. 현재 자신이 가진 것과 비교해 다음에 살 때에는 더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고르려 할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제품을 보는 안목이 선진국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채소 씻을 때도 세탁기 사용
그러나 구매 뒤 중국 소비자의 패턴은 선진국과 다르다. 한 예로 농촌 지역 세탁기 고장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채소 찌꺼기였다. 농촌 지역의 일부 소비자는 채소 씻을 때도 세탁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농촌 지역의 세탁기 보급률(53.1%)은 도시(96.8%)와 차이 나지만, 농촌에서 팔리는 제품과 도시에서 팔리는 제품의 품질에는 차이가 없다. 까다로운 중국 소비자의 취향에 맞추려면 가전기업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서는 제품이 필요하다.
가전시장에서 선두 그룹을 형성한 중국 로컬 기업의 경쟁 역량은 급속하게 강화돼왔다. 하이얼은 직원 5만 명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중국 최대 가전업체이다. 세탁기와 냉장고 시장에서 다른 경쟁업체와 월등한 격차로 시장 1위를 점하고 있다. 애프터서비스(A/S)와 유통망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 있다.
하이신은 중국 TV 시장의 리더이다. 원가 경쟁력이 뛰어나고,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하고 있다. R&D 센터의 직원 수가 2천 명이 넘는다. 거리는 에어컨 시장의 리더이다. 매출의 2%를 R&D에 투자하며, 1200명의 R&D 직원이 있다. 글로벌 가전기업보다 싼 가격대의 제품을 판매하지만, 중국 소비자에게 품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메이디는 거리에 이어 에어컨 시장의 2위 업체이다. 글로벌 가전기업뿐만아니라 중국 로컬 기업의 제품 중 잘 팔리는 모델까지 빨리 복제해서 더 싼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기술을 모방하고 원가 경쟁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로벌 가전기업 쪽을 보면, 독일 기업은 벤츠·BMW 등 명차 브랜드의 후광효과와 함께 좋은 품질의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가 강점이다. 대표 기업은 지멘스와 보슈이다. 두 기업은 BSH그룹의 메인 브랜드이다. 두 회사 모두 대형 가전 부문에서 드럼세탁기와 냉장고 제품만 제조한다. 특히 지멘스는 드럼세탁기에서 넘볼 수 없는 시장점유율 1위의 절대 강자이며, 냉장고도 시장점유율 2위라는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가전기업으로서 보슈는 지멘스보다 덜 알려진 후발 주자이다. 그런데 같은 그룹 소속의 회사에서 왜 똑같이 세탁기와 냉장고를 팔까? 지멘스의 제품은 탱크처럼 견고하게 디자인됐고, 제품 색상도 은색과 백색이 대부분이다. 이런 지멘스의 보수적인 디자인보다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소비자층을 흡수하기 위해 보슈의 제품은 빨강·검정 등 다양한 색상과 지멘스와 다른 디자인이다.
일본 기업은 일본 특유의 정밀함을 강조하는 기술과 깔끔한 디자인이 강점이다. 소니, 샤프, 파나소닉, 산요, 히타치, 도시바 등이 중국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2009년 산요를 인수했다. 중국 가전시장에서 파나소닉과 산요는 TV·에어컨·세탁기·냉장고가 주요 사업 영역이고, 특히 세탁기와 냉장고 부문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멘스와 보슈의 디자인 차별화 전략과는 달리, 사업영역이 겹치는 파나소닉과 산요는 가격 차별화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산요는 파나소닉과 겹치지 않는 중저가 제품을 판매하면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파나소닉에 인수되기 전, 산요는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을 판매했지만 현재는 중저가 시장에 집중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 기업은 독일·일본 브랜드보다 가격 대비 성능과 디자인 및 기술에 강점이  있다. LG와 삼성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LG는 드럼세탁기와 냉장고 시장에서, 삼성은 TV와 냉장고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기업은 미국의 월풀과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가 있다. 이들은 세계 가전시장에서 1·2위를 하는 기업이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서 이 기업들의 실적은 세계 가전시장 리더의 성과와는 거리가 멀다. 월풀은 그나마 세탁기 시장에서만 약 4%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일렉트로룩스는 세탁기와 냉장고 시장에서 1% 미만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한다.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 대도시 시내를 걸어다니면 KFC, 맥도널드, 피자헛, 스타벅스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중국 소비자도 외국 브랜드에 많이 노출돼 있다. 휴대전화 시장도 노키아와 삼성이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중국 시장에서 글로벌 가전기업이 1등을 못할까? KMR 그룹의 제프 위켄은 “중국 소비자는 외부에 자신의 지위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남들에게 잘 보이는 차나 휴대전화는 글로벌 브랜드를 선호한다. 하지만 가전제품은 남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집 안에 있기 때문에 믿을 만한 로컬 브랜드의 제품을 산다”고 말했다. 다른 이유가 더 있을까?
첫째, 중국 로컬 기업의 탁월한 원가 경쟁력이다. 중국 로컬 기업은 소득수준은 낮지만 인구수가 많은 소비자층을 공략하기 때문에 대량으로 부품을 조달해 원가를 낮춘다. 반면 글로벌 가전기업의 타깃은 프리미엄 시장에 한정됐다. 글로벌 가전기업은 글로벌 가전기업과 하이얼 등 프리미엄 시장을 지향하는 중국 로컬 기업과도 경쟁해야 한다.
둘째, 중국 로컬 기업의 우월한 A/S 역량이다. 글로벌 가전기업에 비해 낮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만회하기 위해 A/S 서비스망 확충 부분에 많이 투자했다.
셋째, 중국 로컬 기업은 자체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중소 규모 도시에까지 매장을 확장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궈메이나 쑤닝 등 대규모 가전 유통업체는 대도시 중심으로 매장을 운영했다. 글로벌 가전기업이 이들을 이용해 소득수준이 높은 대도시를 공략하는 사이, 중국 로컬 기업은 소규모 도시와 농촌을 공략했다.
 
지멘스의 선전은 품질 덕분
중국 시장에서 성공한 글로벌 가전회사의 사례는 없는 걸까? 드럼세탁기 부문을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전체 세탁기 시장의 1위는 하이얼이고, 지멘스가 2위다. 중국 시장에서는 아무래도 더 싼 전자동 세탁기(통돌이 세탁기)가 많이 팔린다. 그런데 지멘스는 전자동 세탁기보다 훨씬 비싼 드럼세탁기만 제조하는데 세탁기 시장 2위, 드럼세탁기 시장 1위를 하고 있다. 중국 가전시장에서 품질이 중요한 이유는 소비자의 사용 경험과 문화·생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좁은 집이 많아서 냉장고를 거실에 두는 가정이 많다. 심지어 세탁기를 거실에 두고 TV를 보기도 한다. 현대식으로 잘 지은 아파트도 많지만, 오래된 주택도 많다. 자체 결함에 인한 고장도 발생하겠지만, 이런 다양성이 기업들이 예상할 수 없는 고장의 원인을 제공한다. 다양한 사용 경험과 환경에도 고장나지 않는 초기 품질이 빛을 발하는 이유다. 지멘스도 A/S 역량이 중국 로컬 기업에 뒤처지지만,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품질로서 약점을 보완했다.
mkim@lge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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