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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특별하지 않은 죽음의 기록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41호] 2022년 01월 01일 (토) 박중언 parkje@hani.co.kr
   
▲ 한국의 장례 문화를 현실감 넘치게 그린 안성기·유진 주연의 2020년 영화 <종이꽃> 포스터. 로드픽처스 제공

수은주가 ‘툭’ 하고 떨어진 12월 첫날이었다. 새벽 무렵 중견기업 P부장의 휴대폰이 강렬하게 울렸다. 덜 뜨인 눈동자에 들어온 발신자는 장인이었다. 응급실에서 건 전화였다. 장모가 최근 몇 차례 구급차 신세를 졌기에 처음엔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정한 안도감이 깔렸던 이전과는 다른 통화음이 들렸다. “이번엔 힘들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언젠가 맞을 순간이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닥치니 온갖 생각과 감정이 뒤죽박죽 얽혀 사고가 일시 정지됐다.
이후 30㎞ 넘게 떨어진 병원으로 차를 몰고 가는 동안 P부장과 아내는 ‘수술할지 말지를 결정하라’는 응급실 의사의 재촉을 거듭 받았다. 장인에게 들은 얘기만으로는 어떤 결론도 낼 수 없었다. 병원에선 장모의 뇌 컴퓨터단층촬영(CT)을 통해 뇌출혈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상당한 양의 피가 흘러나와 수술이 어려울뿐더러 잘되더라도 신체 기능을 모두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응급실 의사의 견해였다.
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그들은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누구도 수술하지 말자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주재원으로 미국에 나가 있는 처남에게 상황을 전하고 의견을 듣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다만, 의식을 잃은 채 끝 모를 병 수발을 가족에게 안기는 것은 평소 장모가 바라던 삶과 거리가 멀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얼마 지나 CT 영상을 본 주임 의사의 진단은 수술이 무의미하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찍은 CT에서도 수술 불가 상태임을 재확인했다.

아스피린의 역습
‘인명은 재천’이라지만 안타까운 대목이 없지 않았다. 잠을 자는 동안이 아니라 낮에 뇌출혈이 일어났다면 발견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의식 없는 장모를 태운 구급차가 응급실을 찾아 거리에서 헤매지 않았더라면. 그동안 다니던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은 물론 주변 대형 병원의 응급실이 모두 포화상태였다. 물론 코로나19가 낳은 ‘부수적 피해’다.
다음은 아스피린의 역습이었다. 피를 묽게 하고 혈전을 녹이는 아스피린은 고혈압 환자의 친근한 벗이다. 장모는 최근 고혈압이 심해져 혈압약과 더불어 강도 높은 혈전용해제를 처방받았다. 아스피린은 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뇌혈관의 막힘(경색)이나 출혈 위험을 낮춘다. 반면에 약한 핏줄이 터진 뒤에는 피가 더 빨리 흘러나와 뇌에 치명상을 입힌다. 양날의 칼이다. 피가 잘 굳지 않으니 출혈이 더 심하고 수술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뇌수술은 말할 것도 없고 내시경 검사를 앞두고 아스피린 같은 항혈전·응고제를 먹지 말라는 이유다.
혈압과 호흡 기능이 급속히 떨어져 장모의 죽음이 임박했을 즈음 그들은 두 번째 시험에 들었다.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이었다. 가족 모두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원치 않았으나 임종을 위한 처남의 귀국은 기다려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혈압상승(승압)제를 투여하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코로나19가 다시 한번 심통을 부렸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은 백신 접종을 마쳤어도 열흘 동안 격리되지만 예외가 있다. 임종 목적의 귀국이 거기에 해당했다. 처남은 귀국을 서둘렀다. 불행하게도 격리면제 서류를 받기 직전 국내 상황 악화로 기준이 강화됐다. 장례가 아니면 격리면제가 허용되지 않았다. 장모의 사망진단서를 보내지 않으면 귀국하더라도 장례식 참석조차 힘들게 됐다. 진퇴양난이었다. 애초에 처남을 위해 잠시 장모를 연명하려 했는데, 장모의 죽음이 확인되어야 처남이 장례라도 치를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러는 동안 중환자실 병상에 누운 장모의 혈압이 하향곡선을 그렸다. 승압제를 쓰는데도. 가족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다시 찾아왔다. 떨어지는 혈압은 의미 없는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는 장모의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가족의 공통된 인식 또한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녹록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아무리 지난들 회복 불능이란 현실이 달라질 수 없는데도.
어떤 종류의 사고·질병이든 죽음은 대부분 세 갈래 길로 찾아온다. 숨(호흡)이 멈추거나, 심장이 멎거나, 낮은 혈압과 과다 출혈로 피(속의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죽는다. 이럴 때 인위적으로 숨을 쉬게 하는 장치가 인공호흡기, 정지된 심장이 다시 뛰도록 하는 치료법이 심폐소생술, 피를 원활하게 공급하는 것이 승압제와 수혈이다. 대표적인 연명의료 방식들이다.

늦춰진 장례
고민과 갈등, 입씨름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승압제 사용을 더는 원하지 않는다는 가족의 의사를 의료진에게 전했다. 이어 장모의 혈압이 서서히 떨어지면서 병상 모니터의 그래프들이 차례로 일직선으로 그어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장모가 세상을 떠나고 이틀 동안 처남의 귀국을 기다린 뒤 3일장을 치렀다. 당일에 숨진 고인의 장례 절차에 정신없이 쫓기는 사람들보다 한결 차분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갑자기 숨진 고령자가 늘면서 유족이 귀국할 때까지 장례를 늦추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법에는 ‘화장 또는 매장을 사망 24시간 뒤에 해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이다. 장례를 어느 시점에, 얼마 동안 치르든 문제 되지 않는다. 그동안 고인의 주검은 조문객이 절을 올리는 장례식장 빈소가 아니라 서늘한 안치실에 보관된다. 상을 일찍 마무리하는 것은 산 사람들이 슬픔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바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평균수명에 견줘 10년가량 일찍 찾아온 장모의 죽음은 가까운 이가 숨지는 과정을 온전하게 겪은 P부장의 첫 경험이다. 그가 노후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해온 공부와 현실 사이의 거리를 체감한 시간이기도 하다. 2018년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이 유족과 의료진의 심적 고통을 얼마나 덜어주는지와 함께.
병들고 지친 육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장모의 영혼은 살갑지 못한 그를 타박하지 않고 한동안 이승의 가족을 안쓰럽게 지켜보다 천국의 하느님 곁에 갔을 것으로 P부장은 믿는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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