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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 이스라엘식 재벌정책 본받아야
[박상인의 경제직설]
[140호] 2021년 12월 01일 (수) 박상인 sanpark@snu.ac.kr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

   
▲ ‘경제민주화·양극화해소를 위한 99% 상생연대’ 관계자들이 2021년 6월1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일대에서 문재인 정부의 재벌중심 경제정책 중단과 민생회복·노동존중을 촉구하며 청와대 쪽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벌체제를 옹호하는 논리 중 하나가 이른바 ‘주인’이 있기 때문에 단기 실적보다는 장기 성장성을 기초로 경영한다는 장기주의이다. 그런데 ‘2050 탄소중립’이나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대한 한국 재벌 대기업의 준비와 태도를 전문경영인 체제인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과 비교해보면, 한국 재벌이 장기주의를 추구한다는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총수 일가의 지분이 3~5%에 불과한 한국 재벌의 장기주의는 총수 일가 세습과 사업 영역 확대를 위한 치밀한 사전 정지 작업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혁신 내세워 규제완화 지속 요구
차기 정부는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재벌의 요구에 직면할 것이다. 특히 금융혁신과 벤처육성이라는 명분으로 문재인 정부가 초석을 놓은 은산분리 완화, 지주회사 규제의 무력화, 복수의결권 주식 확대를 지속해서 요구할 것이 자명하다.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으로 은산분리의 둑을 허문 문재인 정부는 동일기능-동일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한다. 네이버 같은 빅테크 기업이 사실상 은행업을 하게 되고, 이를 지렛대 삼아 불공정경쟁이나 역차별이라는 명분으로 향후 재벌 금융사들도 은행업에 사실상 진출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처럼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각한 나라에서 은산분리가 무너진다면, 산업 위기의 경제 위기로 전이나 이해 상충과 재벌의 영향력 극대화는 불 보듯 뻔하다.
지주회사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보유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한 이후에, 이를 빌미로 지주회사도 증권업 등을 할 수 있도록 금산분리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학계에서 공공연히 제기된다. 순환출자 해소와 금산분리라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온갖 특혜를 주면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을 유도해왔다. 이런 특혜를 모두 챙기고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고는 비지주회사 재벌과 달리 왜 금산분리 규제를 하냐는 적반하장도 유분수이지만, 도대체 누구를 위해 금산분리를 완화하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지주회사 재벌이 증권업을 못하게 되어 증권산업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증권, 보험, 은행 등을 모두 포괄하는 금융지주회사로 재편되는 금융산업의 흐름을 모르고 증권이라도 허용하자는 것인가?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정해 1주에 10개 의결권까지 부여하는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더라도, 비상장 벤처기업에는 실익이 없을 것이다. 비상장 벤처기업은 주주 간 계약으로 복수의결권보다 더 유연한 경영권 보호와 투자자 이익의 접점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제한적으로나마 복수의결권 주식 제도가 도입되면, 재벌 4대 세습을 위한 복수의결권 주식 확대 요구는 끈질기게 이뤄질 것이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한국의 기적이 ‘중남미형 국가’로의 전락이라는 비극으로 바뀌는 서막이 차기 정부에서 열릴 수 있다.
차기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난제에 부딪힐 것이다. 특히 현재의 재벌 중심 산업구조에서 못 벗어나면, 탄소중립과 디지털전환이라는 급격한 흐름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안’은 10년간 산업부문에서 2018년 대비 탄소를 14.5% 감축하고, ‘2050 탄소중립안’은 30년간 산업부문에서 총 80.2% 감축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2030년 이후 20년간 산업부문에서 65.7%포인트를 추가로 감축해야 한다. 이는 1970년대 이후 형성된 중화학공업 중심 재벌체제와 산업구조의 전환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다.
계열사를 50개에서 많게는 100여 개를 거느리고 핵심 중화학 기업을 중심으로 총수 일가가 이들을 지배하는 현재의 소유지배구조로는 탄소중립과 디지털전환에 발맞춰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에 더해, 전속거래라는 하청 구조로 이뤄진 국내 공급망으로는 디지털전환에 따른 대규모 산업 구조조정과 실업 및 재취업 문제에 대응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도 살고 재벌 기업도 살기 위해서는, 기업 소유지배구조와 산업 구조조정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2013년 이스라엘식 개혁을 실행해야 한다.
먼저, 지주회사제도 도입 당시의 입법 취지를 살려서 계열사(출자계열사)로부터 출자받은 계열사(피출자계열사)는 다른 계열사에 출자를 금지해서 출자를 2층 구조로 제한하되, 100% 출자는 출자 단계 계산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지주회사 규제에서 엄격히 적용되는 구조적 금산분리를 완화해, ‘주요 금융회사(그룹)’와 ‘주요 실물회사(그룹)’를 동시에 지배하는 것은 금지하되, 그 밖의 복합금융그룹에는 통합감독체계를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주요 회사(그룹)에 대한 정의는 이스라엘의 개혁 사례를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데, 현재는 삼성그룹과 한화그룹만이 이에 해당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순차적 출자규제로 산업 독과점 해소해야
한편, 외부 차입으로 경제력 집중을 심화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 지주회사에 해당할 출자계열사에만 부채비율 상한을 규제하고,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에 적용되는 의무지분율 규제는 불필요하다. 경제 규모나 기업 수 등을 고려할 때 이런 출자규제는 4대 재벌,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공시 대상 기업집단, 모든 기업집단 순으로 적용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정책 수용성을 높이면서 산업의 독과점화도 해소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개혁과 함께 탄소중립과 디지털전환에 따른 적극적 산업 구조조정과 노동자들의 실직과 이직을 관리할 수 있는 노동정책 및 복지정책을 동시에 실행해야 한다. 차기 정부에 한국의 미래가 걸렸다.

* 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한국 경제의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해 직격하는 논설형 칼럼으로, 재벌 개혁 등 여러 경제 현안을 제기하며 대안 또한 제시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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