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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악수’
[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140호] 2021년 12월 01일 (수) 조계완 kyewan@hani.co.kr

한겨레 기자 

   
▲ 2021년 4월28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 등 참석자들이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추모조형물 제막식’ 을 하고 있다.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비정규직이 ‘추세적 증가’ 쪽으로 들어선 것인지에 촉각이 쏠린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1988년 펴낸 책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시대에 있어 노동은 우리의 개인적·집단적 삶의 형식과 내용을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가 노동의 문제를 통하여 전체로서의 우리 역사와 사회, 그리고 사회를 이루고 역사의 변화를 담지하는 개인과 집단 또는 계층들이 각각 다르게 경험하였던, 또 그들에게 차별적으로 가해진 고난의 무게들이 뒤얽혀서 짜놓은 역사와 사회라는 집적물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산업노동자들의 절망과 고뇌, 육체적 고통을 이해하고, 많건 적건 이를 나누어 가짐이 없이 그동안에 축적된 물질적·경제적 부의 일정 부분을, 또 그것을 가능케 한 지배적 사회관계 내에서 기득권을 향유할 때 오늘날 우리 사회의 누가 과연 스스로를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른바 ‘풍요’의 사회가 노동의 문제를 지양하려는 진지한 노력에 전념하지 않을 때 이 사회가 도덕성을 갖는 하나의 사회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통계청이 10월 말에 발표한 ‘2021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는 2099만2천 명으로 전년 동기(2044만6천 명)보다 54만6천 명 증가했다. 이 기간에 비정규직은 742만6천 명에서 806만6천 명으로 64만 명 늘었다. 비정규직이 800만 명을 넘어선 건 이 조사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전체 임금노동자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38.4%, 정규직은 61.6%(1292만7천 명)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 비정규 일자리 실태’에 일대 재편이 빠르게 일어나는 것일까? 경제지표에서 중요한 건 숫자보다도 ‘추세’다. 800만 명도 놀랍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어느 정도 일정한 규모와 비율을 유지해온 비정규직이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다시 ‘추세적 증가’ 쪽으로 거대한 변동에 들어선 것인지에 촉각이 쏠린다.
표준적인 경제학 교과서는 “기업조직에서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는 소비자가 식료품가게 주인과 자유롭게 맺는 계약관계와 하등 다를 바 없다. 둘이 지속적으로 (고용)관계를 맺어야 할 그 어떤 구속력 있는 계약의무도 없고, 장기 고용계약은 ‘기업’이라고 부르는 조직의 본질이 결코 아니다”라고 가르친다. 기업이 노동자보다 더 우월한 어떤 주먹이나 권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상대방을 처벌할 방법은 오직 거래를 끊거나 약속 불이행으로 책임을 묻는 것 외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은 시장 내부에 흐르는 ‘깊고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사회·정치·제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비정규 고용은 기업이 선택하는 이윤극대화 행동인 동시에, 단지 주먹을 쓰지 않을 뿐 노동을 분할지배·통제하기 위한 규율이기도 하다. 경제학자 윌리엄 라조닉(미국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은 1990년대 초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에는 ‘보이는 손’ 혹은 ‘보이지 않는 악수’가 존재한다. 법인기업이라는 조직, 즉 보이는 손이 현실적으로 작동하면서 시장을 이끌어가고, 때로는 생산 현장에서 노동과 자본의 보이지 않는 악수가 작용한다”고 말했다. 기업과 노동자가 협력하는 악수(장기 고용계약과 적정 임금)가 시장 효율성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 자체는 무언가를 소비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버는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노동을 경험하느냐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또 우리의 정신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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